V for Vendetta를 보면서 계속 느낀 것은 '떨림'이었다.
수다스러운 V의 등장을 통해 영웅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는 방안 가득 책을 쌓아둔 지식인이었고, 괴로워할 줄 아는 인간이었으니까.
처음 재판소 폭파와, 엔딩의 의사당 폭파가 주는 전율은 그저 '까부수는' 혁명이 아닌 축제의 감동이었다. 극장 내부를 가득 울리는 웅장한 사운드는 가슴을 끓어오르게 했고, 화려한 폭파는 부패의 척살도, 정권의 교체도 아닌. '잘못된 것의 재정립'일 뿐이었다.
재판소를 까부수지만 썩어빠진 사법관료는 나오지 않고, 의사당을 폭파시키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부패한 의회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V는 억압과 고통의 폭발속에서, 분노의 화신으로 태어난 태생적 한계와 함께 과거와 사라져가고.
Evey는 빗속에서 신을 느낀 그대로, '삶'의 의미를 충분히 머금은 생명의 화신으로 깨어난다.
전혀 낯설지 않은 사회.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을 옥죄던 사회.
물론 우리 사회는 많이 바뀌었다. 이젠 누가 사회주의자라고 주장을 해도 신변에 위해가 가지 않으며, 정부를 힐난하고, 대놓고 성토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에 나올 수 없는 연예인이 있지도 않고, 욕설이 심하게 섞여서 방송금지를 먹을 지언정 부르지 못하는 노래가 생기진 않는다.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천국일까?
V는 '이 나라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겁니다'라고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통제된 언론과 국민을 유린하는 정책속에서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영국'이 과연 가상현실일 뿐인 걸까?
그저 우리 네도 겪었던 격동의 7~80년대일뿐일까?
과연 잘못된 것은 정부뿐일까?
조중동 나쁜 줄 모르고 신문 구독자의 70%가 보는 나라.
농민층을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이 농업지역에서 득표율 최하위를 기록하는 나라.
전 세계 몇 개 안 남은 갯벌을 골프장으로 만드는 데 사법부까지 지원해주고, 그날 뉴스의 50% 이상을 스포츠에 쏟아주는 메인뉴스가 공중파를 타는 나라.
조갑제와 전여옥의 발언들은 사람들의 우스개로 포털 Page View를 올려주어 돈벌이가 되고,
대학생 자신들이 처해질 운명이 될지도 모르는 비정규직 법안 기사는 카트라이더 실행과 함께 지나간 페이지가 된다.
2002년 대선 전날. 노무현 후보측의 마지막 TV광고가 전파를 탔다.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방종은 분명. 또 다른 지배를 부른다.
그렇기에 V for Vendetta는 혁명의 교과서로. 그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Posted by 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