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꼴을 봐서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준다는 '악마의 유혹'을 한다.
왜 악마의 유혹일까? - 일하는 꼴을 평가하는 기준은 '악마'의 마음대로니까.
그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지 않고 '해고'시키면서 당당하게 '계약종료'라 외친다.
그렇다. 악마와 계약은 종료되지 파기되지 않는다.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쫓겨난 비정규직이 시위를 하고 지랄을 떤다. 그렇다고 자본이 몸을 드러낼쏘냐?
그저 정규직에게 압박을 가할 뿐이다.
'당장 사측에 유리한 의견을 널리 퍼뜨리라!'
그럼 원래 '아 씨발 좆같은 비정규직 새끼들, 정규직으로 취업도 못하는 주제에'라며 자기 일 불편하다고 수군대던 애들은 얼싸꾸나 도배질을 해대고
'아 씨바 이 따위 것을 왜 시키고 지랄이야'라며 '주인'을 나무라는 '사람'도 몇 있을 것이다.
결국 자본은. 그 자본이라는 '힘'만으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다툼을 이끌어낸다.
꽤 많은 '사람'들에게 쌓이는 것은 노동자끼리의 분노이며, 자본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하더라도. 그 거대한 힘 앞에 주저한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든 나타난다. 북한이 '미제국주의자'들과 맞짱을 뜨는데 항상 남한은 '정규직'과 같은 들러리였고,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죽여패야하는, 선교사업이랍시고 사진 몇 장 기록하여 헌금을 받아 먹는 '기독교'는 어디로 가고 신앙인과 분노자의 대립만 남는 걸까?
soundcard 님이 내 글 중 'RSS, 코멘트 -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글에 트랙백을 쏘셨다. 블로그에 쏟아지는 기독교에 대한 미움, 사람에 대한 미움에 진저리가 나신 모양이다.
박노해의 '다시'라는 시에 대해서 내가 했던 이야기에도 조금 언급했지만. 나는 soundcard 님과는 견해가 다르다.
저렇게 미움 가득, 증오 가득 쌓인 사람도 사람이거니와, 그들의 그런 미움과 증오 속에서도 난 희망을 본다.
사람이라서 화가 나는 거고, 사람이라서 미운 거다.
기독교 자본이든, 그냥 자본이든. 결국 그 자본은 '사람'을 옥죌 것이고. 그 옥죔을 이겨내는데 '분노'로 대동단결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슬픔도 때론 힘이 되고, 증오도 때론 힘이 되며, 분노도 물론 힘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미워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본'을 휘두르는.
기독교 단어를 빌자면 '악마'를 미워해야 하는 것이다.
개좆같은 기독교를 믿어주는 신앙인들 덕분에 우리는 기독교를 멸할 수도 없거니와
그런 종교 덕분에 자본주의 국가에서 그 '자본' 때문에 '사람'이 고통 받는 것도 막지못해 현세를 눈감고 보내면서 영생을 기약하고.
개좇같은 자본가의 위세에 눌린 정규직 덕분에 우리는 비정규직 시위도 비난 받거니와
그런 기업 덕분에 같은 노동자끼리 서로 대치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벌어진다.
내가 사람만이 희망이라 하는 이유는 별 거 없다.
주님의 뜻이 어떻든. 내게 자유의지를 그들의 논리대로 주셨다면.
'같은 사람'으로 세상에 마주 설 기회를 얻기 위해, 사는 게 지옥인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뜻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든, 기독교의 만행을 '원래는 그렇지 않지만 일부 몰지각한...'으로 두둔하는 사람들이든.
결국 싸워야 할 적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인간의 '자유 의지'라는 것에. 나와 함께 연대해서 싸울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것. 그게 내 희망이고. '사람'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다라는 것이 내 희망이다.
자본의 힘에 휘둘리고, 신앙의 힘에 휘둘리고.
그러면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인가? 나 스스로 반문해도 명쾌한 답은 나온다.
Posted by 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