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이해에 대한 짧은 생각

meth-tical님의 '내인생의 Blue print'에 포스팅 된 글(흑인음악의 기본에 대해 당신은 얼마나 알고있는가...)에 대한 반박으로 쓰려 했는데, '아니에요 음악을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다구요!!!' 라는 형태의 논쟁을 펼쳐볼까 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 유홍준 교수님 말씀처럼.... 아마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그리고 음악 중 힙합에 대한 마니아적 입장과 나같은 잡-_-종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음악에 대한 태도 차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해서, 흑인 음악에 대한 내 '편견'을 적어볼까 한다.

난 흑인 음악에 대해선 크게 세가지로 연상이 됀다.

하나는 영화에서 흔히 보는(ex. Sister Act) 교회에서의 찬송.
둘째는 Soul.
셋째는 힙합. 그 중에서도 랩쪽.

이게 내가 아는 전부다.

하지만 저 세 가지에서 느끼는 감정은 확실하다. meth-tical님께서

'우리는 음악들을 때 단지 좋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왜 좋은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흑인 음악의 기본에 대해서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을 천개를 들었다 한들 결국 그 음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되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셨는데, 왜 좋은지를 설명하라하면 '멜로디가 좋다, 가사가 좋다, 리듬이 좋아요'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곡도 있단 얘기로 보이진 않는다. 보다 전문적인 설명을 요하는 문맥으로 보여지는데, 이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음악이란 making부분에선 전문적인 요소가 필요할지 몰라도. listenning부분에서도 전문적인 요소를 요구한다면. 대중음악의 잣대를 내 기준으로 잰다는 것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그런식의 요구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이미 대중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제대로 소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예술의 분야로 '문학'을 들자면 독서는 음악의 청취와 일맥 상통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 어떤 문학작품도 독서자의 감상은 다르다. 이와 같이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내 짧은 독서관에 대한 확대해석을 적용하여 주장해 본다.

하나의 음악에 대한 사람의 평가는 구구절절히 다를 수 있는 다양성이 있는 것이다.

전제로 주어져 있는 '음악의 기본' 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Featuring이나 Sampling등의 기법으로 인해 재창조 되는, 그런 방법들이 기본이라고 보여지진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Proffesional'의 세계고, 훨씬 심화됀 음악세계의 일부분이라 보여진다.

그러면 내가 생각하는 '음악의 기본'을 통한 이해는 무엇일까?

음악이 나온 것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음악에 대한 이해는, 그 음악으로 인해 느껴지는 인간의 감정을 뽑아낸다면 소화를 넘어서 배설까지 끝내는 단계가 된 것이 아닐까?

영화에서 연출되었건 아니건 간에, 흑인 교회에서 찬송을 하는 부분은 정말 '행복하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축복에 감싸여있는 듯하며, 무척이나 신께 경배하는 모습이 활기차고 즐겁다.
난 기독교도 아니고 신을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에서 진정한 종교적 신앙활동을 보고 있다고 생각된다. 신앙이 없는 나의 감상이니 가식적인 평이 된다고 생각되는가?

또 다른 흑인 음악인 Soul.

한 블로그에선(기억나지 않는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Soul은 흑인의 '시나위'다' 라고 한 발언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었다.

물론 흑인음악의 전문적 입장에서 보면 도올선생의 무식함을 치도곤 할 수 있을 정도의 발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역사학자측에서 본다면 그건 충분히 대중에게 공감케 할 수 있는 설명이다.

시나위가 무엇인가?

영혼을 달래기 위해 무당(샤먼)이 시작한 음악.

지친 흑인 선조들의 핍박과 백인들에게 짓눌려진 그들의 영혼을 달래던 soul이 우리의 시나위와 비슷하다는 설명은 굳이 영화 '아미스타드'따위를 들지 않더라도 이해 할 수 있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볼때, Soul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 현대인들을 보면 그들은 Soul에서 안식을 찾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랩.

오늘 Music에 쓰려했던 이 배경음악은 덕분에 흑인음악에 대한 글로 바뀌어 버렸지만.(어제 MTV에서, 참고로 MTV 안봄--;; 채널돌리다가 봤음--;;;, Bad Boy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I'll be missing you 뮤비가 나왔음)

이 곡이 Sting이 한때 몸담았던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 원곡을 샘플링해서 만들고, 노토리어스를 추모하며 그의 아내 Faith Evans와 듀엣으로 불렀다는 것은 이 곡의 making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지 이 음악을 '이해'하는 데는 없어도 돼는 점이다.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은 그저 편하게, 음악이 주도하는 선율에 젖으면서 감정이입을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법을 써서 이런 느낌을 준 것이 매력적이다. 원래 샘플링 곡은 이것이다. 죽은 노토리어스는 이스트(East, 미국의 동부를 뜻함)의 짱이었다. 등등은, 전문가들이 음악의 평론을 할 때 필요한, 청취자들의 호기심을 유도해낼 만한 이야깃 거리일 뿐이지, Listenner들이 숙지해야할 내용이 아닌 것이다.

나는 가수가 좋아서(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의 음악을 듣지 않는다. 고 김광석氏를 좋아한다 해도 그 사람의 모든 곡을 좋아하지 않는다(정말 '꽃'은 아무리 들어도 정이 안든다--;;;) 상업적이라 말이 많은 퍼프대디도 좋아하지않는다(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제 그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170센티의 작은 체구에 그 엄청난 배기량의 바이크를 몰다가 스턴트 없이 슬립을 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가긴 한다.

하지만 그의 음악 중 이 I'll be missing you에서는 친구를 그리워 하는, 미망인은 남편을 그리워 하는, 내 귀가 막귀라도 그런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이런 느낌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곡인데.

'넌 흑인음악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어, 고로 넌 이 곡에 대해 100% 소화해내지 못해'

라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해보라.

난 이곡으로 인해 그리운 사람을 120% 그리워 할 수 있는데.

예술을 감상하는데는 분명, 아는 만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소화해낸다는 표현은 자기 만족감으로 충분할 것이다.

피카소가, 고흐가, 베토벤이 돌아와서 21세기 최후의 명작을 남긴다 하더라도, 개인의 행복추구에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나에겐 필요없는 것과 같다.

다만. 흑인음악에서 부러운 것은. 추모제가 아닌. 추모곡 하나로 저런 인기를 끌고, 많은 노토리어스를 동경하던 흑인들이 미망인과 그의 친구가 부른 저 곡으로 함께 애도할 수 있다는 점. 핍박받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단결할 수 있다는 모습.

뮤직비디오에서도 그러했지만.

남편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늘도 난. 혹여나 귓가에, 정신이 번쩍들 정도로 확 들어오는 '월척' 노래가 혹시나 들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내 귀와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Posted by 함장

2004/04/14 18:02 2004/04/1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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