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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28 유행가로 찾은 삶 by 함장 (2)

유행가로 찾은 삶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3차과제
2,000자 잊지 못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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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

그런 글귀를 보면서 나도 이런 읊조림을 했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유행가였다’라고.

어린 시절 자라던 환경으로 인해서 TV를 보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이 TV를 보지 말도록 통제한 것은 아니었지만, 집이 두 채로 나뉜 상태에 부모님이 주무시는 곳에 TV가 있었거니와, 항상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온 나로서는 그 흔한 어린이용 만화 영화도 볼 시간이 없었다. 그런 환경에 익숙한 탓에 라디오를 끼고 살던지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유행가들은 꿰어찰 정도가 되었다.

사실 꽤 많은 노래가 내 삶의 태도를 결정짓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지쳐있는 내게 용기를 준 것도 유행가이거니와, 우울한 어린 날의 감성을 순화시켜 준 것도 유행가였다. 그 어떤 친우의 따뜻한 말이나, 가족의 위대한 포근함 따위와도 비교되지 않는. 내 안의 고요하고도 부드럽게 강한 힘을 쌓아 준 것이 바로 그런 철학들이리라.

그렇게 학창시절, 줄기차게 유행가를 옆에 끼고 살아오던 내가 사관학교를 들어가면서 음악과 멀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훈련기간 동안 가까워진 것은 ‘멸공의 횃불’과 같은 군가였고 그런 노래는 내게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만들기엔 너무도 괴리감이 가득한 곡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훈련 기간 중. 외부와 연락이 단절된지도 어언 한달. 석식 후 과업에 카톨릭 군종 장교가 조그만 포터블 카셋트 레코더를 들고 들어와, 우리가 입대한 후에 사회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곡이라며 노래를 틀어줬다. 당시에 처음 데뷔한 GOD라는 그룹도 생소했거니와, ‘어머님께’라는 제목과 달리 울려퍼지는 ‘랩’은 약간 어울리지 않는 듯 하였다. 그런데도,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면서도 담담했던 내가,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랫말에 눈물이 핑 돌아버렸다. 역시 유행가의 힘이란. 그 어떤 시보다도 더 뛰어난 음악적 여운이 있지 않던가?

그 때, 잊혀졌던 내 어린 날의 유행가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출과 외박이 금지된 시절에는 주말마다 보급받은 노트북을 들고 전산실의 인터넷 접속 가능지역을 찾아가서 mp3를 검색했다. 당시엔 소리바다도 없었고, 음악서비스 같은 것도 없었거니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CD를 구매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토요일 저녁에는 사관학교 안에 있던 호국사라는 절을 찾았다. 그곳에는 케이블TV가 연결되어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KMTV에 나오는 뮤직비디오 보기를 즐겨했다. 어린 날의 군생활에서 무료함을 깰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을 찾는 독서도 아니었고, 공부는 더욱 더 아니었으며, 무언가 현재의 불만족스런 삶을 뒤바꿔 줄 수 있는 하나의 커다란 ‘충격’이 필요했던 거다.

당시에 사관학교에서는 인트라넷 보급이 시작되고 있었다. 생도들을 위해서 전산과장이 게시판을 하나 내 주었고, 나는 그 곳에서 ‘제다이’라는 닉네임으로 내가 선곡한 mp3파일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곡에 얽힌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적어 내려가고 있었고, 이런 ‘사이버 활동’은 생도들 사이에서 격론을 끌어내기도 했다.

공공재인 ‘서버’에 mp3를 거의 도배하다시피 올리고 있는 나의 행동이 고깝게 느껴지는 생도들은 너무 하는 게 아니냐며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했고, 어떤 생도들은 어차피 글도 잘 올라오지 않는 게시판에 음악이야기 좀 올리는 것이 어떻냐며 두둔했다. 더불어 전산과장인 중령이 전산학 수업 중에 내 선배들에게 접속 아이피를 이야기 해주며 서버에 쓸데없는 mp3를 올려 용량을 차지하게 한 괘씸한 ‘제다이’를 잡아 족치라고 성토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러 파란만장한 일을 겪은 후에, 나는 사관학교 자퇴를 결심했다. 결심을 확정짓게 해준 것도 다름아닌 이현우라는 가수의 ‘슬픈 전쟁’이라는 노래였다. 난 미치도록 이 노래를 읊조리며 내가 하고픈 일이 무엇인지 고뇌했고, 결국 그 노래의 가사처럼. ‘자유’를 택했다.

내가 자퇴하던 그날. 통로를 걷고 있던 뒤에서 한 선배가 날 불러 세웠다.

‘어이 제다이!, 네가 하던 일은 이제 내가 맡아서 계속 하마!’

그때, 떠나던 날 보면서 안타까워하던 이보다. 그렇게 환하게 배웅해주던 그 선배를 잊을 수가 없다.

난 그렇게, 유행가를 통해 자유를 찾아 세상에 다시 나왔다.

Posted by 함장

2007/04/28 19:15 2007/04/2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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