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바이크 번개장소

남산에는 바이크 라이더가 모이는 곳이 있다. 물론 여기서 얘기하는 바이크는 자전거가 아니라 모터싸이클을 의미한다. 모터가 달린 싸이클이긴한데 바이크라 부르는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사실 배기량 600cc 가 넘는 미들급 이상들은 전부 모터싸이클이라 불려야 하는데 - 엔진이 클수록 bike에서 ㅡ> motorbike -> motorcycle 쪽으로 넘어가는 개념이 영어권 개념이다 - 동호회든 까페든 어딜가나 bike라 불러제끼니 나도 어쩔 수 없다.

아르君의 말에 의하면 미국에서 bikers 는 폭주족을 의미하는데 - 사전적 의미에서 3번, 마지막 의미라서 난 slang 수준인 줄 알았다 - 그렇게 치자면 우린 모두 폭주족이다.

사실 이도 부정할 수 없는게 이 남산의 라이더 모임 장소에 가보면 정말 개나소나 다 bikers다. 다들 공도에서 제한 속도 넘기기는 기본이고, 차선 넘나드는 것에다가 아주 윌리 - 앞 바퀴 들고 주행하는 것 -, 잭나이프 - 급 브레이크를 잡아서 앞 바퀴만 닿은 상태로 차체 뒤를 들어 제동하는 것, 옆이나 뒤에서 보면 차체와 라이더가 V자를 이루기 때문에 잭나이프라 부른다 - 를 하고파 안달이 난 사람들 말이다.



난 공도에서 그러는 걸 싫어한다. 특히 공도에서 고속으로 커브를 돌기 위해 무릎을 땅에 긁는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론 고속 주행시 안전을 위해서 하는 거지만, 일반 4륜 자동차는 공도에서 고속으로 회전을 할 수 없다. 전복의 위험도 있거니와 안전 운행 때문이다. 그런 4륜 자동차와 같이 쓰는 '공도'에서 자신들의 고속 주행을 위해 그런 위험을 부리는 것은 자신들의 목숨은 둘째치고, 4륜 자동차 운전자에게 위험하지 않은가? 자신과 부딪힌 모터싸이클 운전자가 죽었다고 생각해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뭐 다들 그러는 건 아니니까. 어쨌든 그건 그렇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파란색으로 된 사각형이 라이더의 집합소 같은 곳이다. 동호회나 까페의 번개가 주로 이루어진다. 백범광장 가장자리에 있는 매점 앞의 주차장에 보통 모인다.

전에는 국립극장 입구를 통해서 서울타워 바로 아래까지 올라갈 수 있었으나, 이젠 아예 자전거를 포함한 이륜차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서 다들 저기에서 모이나보다.



폭주족이라는 표현을 써서 오해할지도 모르겠는데, 요즘은 저 곳에 가면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패거리와 미들급 이상의 큰 차를 타는 패거리. 패거리는 단어가 눈에 거슬릴지도 모르나, 사실 분명 집단을 밖에서 보는 시각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반인'의 모습이라기 보다, 좀 더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 복장은 스쿠터나 모터싸이클을 탄다고 허용되는 개념은 아니니까 말이다.

위에서 '오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바로 그런 점이다. TV에서 비춰지는 폭주족의 개념은 '보호장비'없이 차선을 마구잡이로 넘나들고 곡예운전을 하는 치기어린 애들이 비춰지지만, 내가 얘기하는 폭주족은 그냥 사전적 의미의 '폭주' - 매우 빠른 속도로 난폭하게 달림 - 일 뿐이다. 분명 일반 차량보다 가속도 빠르고, 그렇게 '빠른 것'이 공도상에서는 '난폭한' 모습임에는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확실히. 여기 모이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스쿠터 타는 사람들도 기본 헬멧은 착용하고 - 사실 올라오는 입구에 경찰차가 상시 대기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 배기량이 좀 되는 모터싸이클을 타는 사람들은 프로텍터는 기본에 수트까지 차려입고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제대로 '준비하고' 타는 사람들이다. - 물론 사실 스쿠터 동호회는 좀 거부감이 든다, 것도 최소 7~80km의 최고속력을 낼 수 있는 무서운 탈 것인데 그렇게 마냥 펄럭거리는 반바지에 힙합 복장은 좀 많이 걱정된다 -

위화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같이 출퇴근을 위해서 쓰거나 퀵 서비스 아저씨들과 달리 레저용으로 타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인데다가 그들이 타고 다니는 외산 모터싸이클의 가격 또한 1,000만원에 육박하거나 가볍게 넘어버리니까 말이다.

물론 헝그리 라이더도 많다. 기름값을 아끼려고 투어 따라 가서도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까.

뭐 어쨌든. 그런 위화감이 있더라도 그렇게 모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참 반가운 일이다.

나도 비가 안 오는 더운 밤이면 저 곳에 올라가 800원짜리 캔 커피를 뽑아 먹으며 남산타워의 야경을 구경하다가 돌아 내려오길 수 십번.

그러나 매번 올라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가끔은 라이더인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확실히 모터싸이클을 타는 언니는 넘흐 섹시하거든.

Posted by 함장

2007/07/11 20:02 2007/07/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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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런 이야기

주말에 후배 결혼식이 있어서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여자 후배 결혼이라서 기말고사 기간이기도 하여 아니 내려갈까 했습니다만 - 그냥 관습 상, 여자 후배의 결혼은 가지 않거든요 - 애 결혼하고 나면 더욱 보기 어려울 듯 하여 내려갔더랬죠.

직장 다니다가 때려치고 고생하던 후배 녀석은 구미에서 취업했다길래 한 시름 놨습니다.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 흐르는 만남이죠.

결혼식장은 꽤 붐볐습니다. 후배 녀석이 학교 선생이다 보니 초등학생 애들도 왁자지껄 돌아다니더군요.

후배 녀석의 동기들도 죄다 남자 애들이라서 결혼식 친구 사진 촬영에도 아니 들어갑니다. - 마찬가지로 관행이죠. - 밖에서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면서 촬영 끝나길 기다리다가 문득 사진이나 찍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식장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신랑과 신부, 축하객 몇 명 사이로 끼인 여자 후배들의 얼굴을 찾아가며 셔터를 누르던 순간.

예전 여자친구가 보이더군요.

이런.

렌즈를 어디로 향할지 잠시 고민했더랬습니다.



뭐 예상대로 서로 아는 척 없이 그렇게 어긋났지만. 묘한 기분이더군요. 4년만에 처음 본 건데.

아시다시피 혹은 모르시는 바와 같이

전 그 뒤로 연애를 못 하고 있어요.

물론 예전 여자친구는 저랑 헤어진 후에 바로 다른 남자를 만나서 그 아이 부담을 덜어 주려 저도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고 얘기를 해주었지만.

뭐 그렇더군요.

사는 건 영화와 다른데, 왜 전 영화처럼 살려고 하는지 말입니다.



전 분명히 과거에 얽매여서 이렇게 살고 있진 않아요.

현재의 내가 그렇게 살 뿐.

지금의 그녀를 그리워 하지도, 과거의 우리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요.

과거의 제가 무척 많이 모자랐고, 지금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는 건 무의미 하거든요.

더군다나 지금의 그녀는 더욱 더 많이 바뀌었겠지요.

그런 걸 머리로, 그리고 가슴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저는 그런 것에 얽매여 살지 않아요.



다만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내 안에 충만하게 남아 있는 게 제게는 비극이겠죠.

누군가에겐 잊혀지고, 누군가에겐 남아 있고.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거잖아요.



제게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예전 여자친구 얘기를 하지 말라고.

그럴 때 마다 지금의 저를 만든 건 그 여자라서 '죽일 수 없는 질투'도 생기고, 그건 넘기 힘든 산이 된다고.

뭐 어떻습니까?

지금의 저를 만든 건 그녀라는 걸 부정할 순 없잖아요.

그런 사실을 감추고, 숨기고, 부정한다면 그건 자기 기만이죠.



여전히 아름답던 그대.

늘 행복하시길.

Posted by 함장

2007/06/19 21:56 2007/06/1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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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여성은...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수업 중 과제.
1시간 내에 2,000자 작성. '내가 좋아하는...'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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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가끔 나는 급진 여성주의자로 오해를 받는다. 그건 내가 남녀문제에 관해 자주 언급하는 것이 급진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이야기하기 때문인데, 이도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그들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진 않기 때문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중요한 건 동일한 ‘사람’으로 인식되길 바라는 건데, 그런 면에서 여성들의 주장에 대해 얘기를 꺼내 놓으면, 어느새 나는 주위의 편견에 휩싸인다.

물론 남성인 내가 그런 여성주의 주장을 하는 것도 웃긴일일지 모른다. 주체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흥미롭게 생각했고, 그런 생각들은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게 좋다는 뜻을 펼치고 있다. 계속 이야기가 나와야 뭐가 변해도 변할 게 아니던가?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남성이 여성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이유는 그만큼 모르기 때문에 왜곡이 생기는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여성들 일부의 주장에 관심을 표명하고 그 언어 중 일부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심각하게 왜곡한 시각으로 여성을 바라본다는 의미도 된다.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을 보고 전체를 이해하려는 모순 말이다. 가끔은 인간이 가진 ‘이성(理性)’으로, 그 나머지를 유추해낼 수 있다라는 자만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타인의 시각에 내 생각이 깎여나가기 시작하고, 그 거대한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하지 않은 내 모습을 발견할 때 마다, 무턱대고 이미 알고 있다고 덤벼들어 보지 못한 나머지 부분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세상을 모두 바라보고픈 욕심이 있다. 그 얘기는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더불어 그 누구도 그만큼 알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꼬투리를 튼다. 이런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찬 한 인간에게 찾아올 행복이 있다면 그건 바로, ‘함께’ 세상을 바라볼 반려일게다.

‘사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남성과 여성. 이 둘이 펼치는 생각 구조의 다른 이유가 사회적 환경에서 왔든, 아예 본능에서 튀어 나왔든 다른 건 사실이다. 어쩌면 이 차이마저도 부정할 수 있는 지식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 문제는 사람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거다. 남성끼리 살지도 못하고, 여성끼리 살지도 못하는 우리네 삶 속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든, 같은 곳을 지향하든 ‘함께’ 살아간다는 건 분명 문제를 일으킨다.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꼭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소통’이다. 상대의 마음을 눈치로 읽어내든, 문자로 읽어내든, 그 생각을 읽어내야 이해를 시도할 수 있다. 이해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가치관 속에서 나오며, 그런 가치관의 공유를 가지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참으로 행운이다.

나는 그렇게 ‘소통’할 수 있는 여성을 만나고 싶다. 나와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고, 내가 모르는 것을 일깨워주며, 나를 변화시키는., 그리고 나도 반대의 경험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이런 여성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삶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우리네 삶은 우리가 원하는 마냥 흘러가진 않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를 만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분명 나는 페미니스트 파트너를 원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페미니스트’에 대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권유가 오히려 적확한 지적인데도 못 알아 듣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2% 부족하다. 더군다나 ‘가치관의 공유’라는 것이 같은 흥미 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가에 따른 이야기지, 취향의 공통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여성은 얼마나 서로의 생각에 포용력을 갖고, 그에 대한 대화를 지속히 해나가는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다. 늘씬하고, 예쁘고, 귀엽고, 애교많고. 그런 여성은 ‘바라봤을 때’의 여성이다. 난 ‘이야기하고픈’ 여성이 필요하며, 소통할 수 있는 여성이 필요하다.

같이, 사람으로서, 함께 살 사람 말이다.

Posted by 함장

2007/05/14 13:59 2007/05/1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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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불 홈페이지 광고 & 한 곡조 발견

드디어 3대 9년 만에 야부리 홈페이지가 리뉴얼 되었다.

웹마인 칼통이 워낙 한방주의라, 이번 싸이트로 아마 또 4년은 울궈 먹을 게다 - 참고로 예전 야부리 홈페이지는 4년 동안 'Merry Christ Mas' 달고 있었다 - 여름 다 지나가고 여름 컨셉으로 4년이라니. 웹마의 사계절 통일정신이 돋보인다 하겠다.

각설하고, 다들 순방해 보시라.

http://yaburies.com

저 싸이트 뒤지다 보면 내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내 예전 여자친구' 정보도 나온다 ㅋㅋㅋ

싸이트를 보다가 우연히 노래 한 곡을 건졌는데 - 싸이트에 나와 있는 건 아니다 - 벌써 햇수로 7년이 되는 야부리 사람들과, 내 예전 여자친구와 스쳐간 과거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흥겹게 흥얼거리게 되니 묘한 기분이 든다.


그리 어린 객기로 살았던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과는 다르던 그 시절. 야부리 사람들과 PC방에서 같이 밤을 새고, 그러고도 아쉬움을 느끼며 헤어지던.

노래 가사처럼,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고, 작은 일에도 날 설레게 했더느 그 사랑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참으로, 기억에서 나올 일이 없던 이름 하나만으로도 과거가 속속들이 기억나는 것도 재미있고, 그런 아름다운 기억이 있음에 또 다시 행복해지는 내가 자랑스럽고,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걸 아쉬워 하지 않는 내가 불쌍하며, 그래서 마냥 노랫말만 흥얼거리는 내가 슬프다.

정말.

내가 너처럼 좋은 사람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Special thanks to Calito.

Posted by 함장

2006/09/14 20:59 2006/09/1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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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 단상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외우는 공부'에 취미가 없는 관계로. 부업에 나태함을 부과하여 가볍게 시험기간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예의상, 책 정도는 한 번 리마인드 해주고 시험에 임했으나, 회사 일에, 번역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의 몸은 차라리 눈을 좀 더 감아둘 지언정, 무거운 전공책을 들어 올릴 힘은 사라진지 오래다.

책 한 번 안 본 녀석이라, 익히 알고 있는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실험은 줄줄 풀어 쓸 수 있어도, '커뮤니케이션의 7 요소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내가 단어장 들고 다니는 - 실제로 난 중학교 때도 영단어장 한 번 들고 다닌 적 없다. - 학생도 아니거니와 그 단어들을 어떻게 내뱉겠는가?

사관학교 대학물리학 시험 이후 '반 백지 답안'은 처음이다.

그나마 재무관리 시험은 지하철에서 20분 정도 책을 본데다가, 평소 익히 아는 내용들로 이루어진 평이한 문제들은 일반 상식 - 교수님 입장에서 우리(경영대생)는 전문가라는데 과연 동의해야 하는 지는 의문이다 - 으로 풀었지만, 마찬가지로 예제 문제들 중 몇 가지는 이미 굳을 대로 굳어버린 머리가 시간을 따라가지 못 한다. 머리가 굳었다고, 안 돌아간다고 느낀 적은 없는데, 분명히 풀이 과정을 유추해 나가거나,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느려졌다.

강의 시간에 잘 듣고, 기억에 갈무리 해 둔 것, 그것들을 끼워 맞춰 논리에 맞게 야부리 푸는 거라면 언제든 가능한 게 시험인데, 사실 공부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많이 외우고, 외운 것이 지식이 되는.



외워서 점수를 받는 시스템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이유는 - 혹여나 이게 내가 공부하지 않는 변명으로 들리더라도 - 생각 없는, 삶의 주체로 설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쉬워서이다.

어떤 학우가 예전에 이야기 도중 이런 주장을 했다.

"이건희의 엘리트 경영이 참 좋아요,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리는 거 말이에요. 난 그런 엘리트가 되고 싶어요"

얼마 전에 파워 인터뷰에 유한킴벌리 CEO께서 나오셔서 부정했던 그 경영방식.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얘기는 결국 한 사람이 만 명이 먹고 살 것을 벌어서 만 명에게 나누어 준다는 얘기네?"
"직접적으로는 아니겠지만 그런 의미죠."
"그럼 만 명은 놀고 먹어도 되겠네?"
"아니죠, 일 해야죠"
"아니, 한 명이 만 명 먹여 주는데 왜 일해?"
"그럼, 그 한 명이 손해잖아요"
"넌 만 명을 먹여 살리고 싶어서 엘리트가 되고 싶은 게 아냐?"
"꼭 그런 건 아니죠, 엘리트라는 게 사회에서 지위도 있고..."
"그럼 넌 만 명을 먹여 살리려 엘리트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지위에 오르고 싶다는 거냐?"
"뭐, 겸사 겸사죠"
"그런데, 세상의 돈은 한정되고, 부의 증가 속도도 한계가 있는데, 니가 벌어들이는 만 명의 먹고 살 돈 때문에 돈이 모자라서, 만 명에게 일한 댓가로 줄 돈이 없거든? 그래서 일을 못 하거든? 그러니까 넌 엘리트가 되면 분명 번 돈을 만 명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장치를 갖춰야 해야 되거든?"
"에이, 그래도 일도 안 하는데 돈을 주는 건 좀 그렇죠"
"그래,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리는데 일하지 않으면 돈은 못 주겠다. 고로 일하고 나눠 받아가라는 얘기인데. 그럼 그 사람들에게 네 돈이 아니라 네 일을 나눠주면 되겠네?"
"에?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그럼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릴 필요 없이 각자 일 나눠 갖고, 좀 많이 버는 사람이 좀 더 나눠주고, 능력 없어 조금 버는 사람에게 모자란 만큼 채워주면, 굳이 한 명이 만 명의 부담을 지는 것 보다 쉽잖아"
"그래도 사회가 그렇게 안 돌아가죠"
"그래, 사회가 그렇게 돌기 힘들지. 그런데 원칙은 그거야, 니가 돈을 벌어서 남 밥그릇을 채워주는 게 아니야. 너도 노동자고 나눠 받을 사람도 노동자면, 노동자끼리 남 밥 그릇을 채워줄 필요는 없어, 대신에 니 밥을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눠주기 싫으면, 그 사람들이 알아서 밥을 타서 먹도록 '밥그릇'을 지키게 같이 도와줘야 해. 한 명이 만 명 먹여 살린다는 식으로 중소기업 밥그릇 죄다 뺏어가는 삼성보다, IMF가 터져도 기업의 구성원들과 회사 가치를 공동으로 생각해 서로의 일거리를 조금씩 양보해서 밥을 좀 줄이더라도 서로의 밥그릇을 챙겨주는 유한킴벌리 같은 회사가 더 중요하단 말이지. 너 같으면 밥그릇 없이, 그러니까 일하지 않고 얻어 먹고 싶겠냐, 작게 받아도 자기 밥그릇에 밥 타먹는 게 좋겠냐?"



커뮤니케이션 수업 시간, 언론정보학부에 복수 전공을 시도하려는 여러 단과대생이 모여있다. 정치적 성향을 학생들에게 묻자 아무도 얘기를 안 한다.

"저는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우스운 농담으로 들리나 보다. 그리고 나서 이어진 거수 설문 조사. 90% 이상이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모든 정당을 싫어한다. 심지어 '민주노동당'까지도 싫댄다 - 솔직히 나도 NL 계열(아직도 주도권층이라지?)이 빠지기 전까지 지지할 마음 없다. -

우리 학교 총학회장에 뽑힌 아해는 공공연히 '사상교육의 장'이 되는 중앙동아리에게는 지원을 끊을 것이며, 학생의 탈 정치화를 구호로 삼고 - 운동권이라는 영역이 존재하는 현재의 상황도 웃기지만. 중학생도 두발 자유 시위를 하고, 예비역 대령들도 시위를 하는 이 나라에 '데모'하는 운동권이 특별관리 대상인 건 웃긴 거 아닌가? - '교육 시장'에서,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핏대를 올리더니. 결국 매년 3월에 지하철 타고 오는 홍세화 아찌는 보이지도 않고 보안요원 교내 쫙 깔고 나타난 이명박이 등장한다. 탈 정치?



예전 여자친구와 2002년 대선 개표를 보는 와중에 등장했던 MBC 개표 광고는 내용이 이러했다. 남편이 개표 실황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아내는 찻잔을 가져다주며, 남편의 관심이 참으로 의미있는 일인 양 생각하는 것 말이다.

여자친구가 대뜸 얘기했다.

"광고 마음에 안 드네, 여성도 똑같이 저 정도 관심이 있단 말이지."

커뮤니케이션 수업 수강생 대다수가 여학우였다. - 여성 폄하라 오해마시라, 경영대 주위 남학생도 대다수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아젠다 세팅이 기득권층이 원하는대로 되어 있다. -

정말. 진심으로.

나 다시 좋은 사람 만나 연애할 수 있을까?



Daum에서 강풀의 26년이 연재되고 있다. 매 회를 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려 괴롭다. 희대의 살인마가 그저 통장에 이십 몇 만원 있는 개그 거리가 되어 잊혀져 가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밀레니엄 학번 이후, 대학생들이 교내 동아리 방 어느 한 귀퉁이에서 5.18 광주 민중 항쟁의 비디오를 보지 않게 된 것이, 과연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는 증거인지 의문이 든다.

그런 일들이 어느새 26년이 흘러간 과거가 되었고, 사람들이 '넉넉해 져서' 그 포용력으로 권력자들을 희화화 하는 것으로 눈 감아 주는 것이라고 애써 외면해 보려 해도.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단어가 그저 우스개 소리가 되어 묻힐 수 있는지 말이다.

학살의 주역들과, 그 세력들이 아직도 버젓이, 목에 힘 줘가며 대권을 노리고, 기득권을 수호하며, '승리의 미소' 따위를 선거 홍보 책자에 싣고 있는 이 시대.



세상에서, 신념을 지니고 옳곧은 태도를 지켜나가기란 참으로 어렵다. 지치고 힘들다. 그러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 한 사람만 옆에 있어준다면. 정말로 행복하게 그 신념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가,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다독여 줄 수 있다면 말이다.

Posted by 함장

2006/04/26 08:09 2006/04/2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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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섭섭한 것은...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저 뒷 모습만이 닮았을 뿐인데도, 계속 돌아보게 되고, 전혀 다른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 모습에서 너를 찾는다.

술이 들어가서 일까? 아니면 그저 기분 탓일까?

미치도록 그립지도, 애타지도 아니하거니와, 이미 내가 그대에게 잊혀졌을, 그리고 지워졌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속일 수 없는 기억 속의 헤어스타일, 옷 매무새. 그 모습만으로도 두근거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기다린다고, 기다리지 말라고.

그렇게 편한대로 잊고, 잊혀져가고.

그 와중에도 섭섭한 것은. 잠깐 귀국한 그 시점에서도, 한마디 인사 없이.

그렇게 조용히 왔다가 다시 떠나버린 당신이 못내 아쉽고, 그립고, 얄밉고, 무섭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인줄 알면서도.


새벽 별 사이로 널 그린다.

Posted by 함장

2006/03/22 04:34 2006/03/22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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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버디님과 앨리스님의 코멘트를 보고, '사랑을 얘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좀 옛 얘기를 끄적거려볼까한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다'라고 얘기하지만 결국 제목과 같은 '노랫말'하나 덕분에, 그것은 공허한 외침이 된다. 가장 그리운 것은 '행복했던 기억'이고, 그토록 '다정했던 사람'이 이젠 곁에 없다는 사실, 냉혹하게 이성적으로 '헤어진 사람'이라 규명짓고, 그로인해 선을 그어버리는 현실은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부터  '사랑이 어찌 변하니'까지 온갖 유행어를 지어낼 정도로 처참하고 처참하다.

어쩜 그렇게, 내게 다정했던 사람이. 그토록 냉혹해질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이 꽤나 많은 여성을 만나본 인간은 아니지만, 그나마 '찐한 사랑' 몇 번 해본 기억에서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 두 사람 있다.

한 명은 그토록 내 이야기에 자주 나오는 '예전 여자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그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에 만난 사람이다.

아마 내 '지인'들은 그 '헤어진 여자친구' 얘기를 질리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이 그녀 뿐이었고, 지금 자주 만나거나 온라인으로 '함장'을 아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이며, 4년이란 연애 기간동안 개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 권영준을 어느 정도 사람같은 모형으로 조각해 준 인물이니까 말이다.

두 번째로 잊을 수 없는 사람은 그런 '예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몇 달 후에 만났던 사람이다. 이 사람에 대한 '기억'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 밖에 없지만. 그토록 강렬하게 사랑했던 기억에 너무나 가슴깊이 아로 새겨진 내 상처는 이제 아물지 못해 짓이겨진 상태로 남아버렸다.

하지만 난 이 사람과 연애했던 그 짧은 기억을 반추할 수 없다.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며, 공개되지 못한 기억이며, 존재가 부정된 기억이다.

비 안개가 자욱한 공원 원두막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자태로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행복한 기억을 지울래야 지울 수 없어도. 내 행복했던 기억이라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없는 것은. 그게 나만의 행복한 기억일거라는 슬픔 때문이다.

짝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말대로 그저 내 '예전 여자친구'의 그늘이 남아, 그녀 스스로 옭아맨 자해였을까?

기억과 추억을 부정하는 것은 그토록 쉽지 않으면서도 실행 가능한 편법인가 보다. 그토록 다정하게 속삭이던 네가, 사랑하던 우리가. 그렇게 가볍게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며 기억에서 사라진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는 현실.

난 분명 내 '예전 여자친구' 얘기를 스스럼 없이 함구할 수도, 꺼낼 수도 있음이,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나라고 생각하게끔 했고, 그렇기에 굳이 '과거의 인연을 잊기 위한 연애의 시작'이 아니라,

그렇게 다정하게 날 대해주는 사람이 또 존재한다는 행복감에 연애를 시작했던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두 번째 사람은.

내게 상처만 남기고, 멀어져 갔다.

온라인이라는 것이 바로 옆에 있게 느껴지도록 하건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다정했던 사람이.

벌써 나를 잊어버렸는 듯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과연 미쳐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다정함이 그립고 아쉬워. 미치도록 그리워.

기다리겠다고 그토록 목메어 외쳐봐도. 연을 끊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비수보다 날카롭게 상대의 가슴을 후벼판다.

돌아오지 않을 사람일지, 언젠가 돌아올 사람일지 알 수 없다고. 기별조차 없으면 기다리기라도 하련만. 여기저기 보지 않으려, 듣지 않으려 해도 찾아오는 소식들은 결국.

더 이상 '내게만 다정했던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서서히 침전해 간다.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리움만 남겨놓고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이 두 마디의 가사에 펑펑 울어버릴 수 있는 나는, 그 행복했던 기억들로 하루하루의 미소를 찾는 철부지며, 다시 다정한 사람을 찾기 보다 그저 행복하고 다정한 과거의 그 사람들을 떠올리는 변태이며, 그렇다고 돌아올 것을 기대조차 하지 않는 무식쟁이일 뿐이다.

순애보도 아니고, 못난 사람이라면 그럭저럭 이해해 줄 수 있는.

그저 그런 비극 같지도 않은 스스로의 비극을 즐기며 사는 취향 고약한 변태.

다정했던 사람이 사라지면 이렇게 미친 채, 다른 다정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일 뿐이다.

Posted by 함장

2006/01/17 15:54 2006/01/1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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