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꺼낸 적이 없다. 별로 언급하기 싫었다는 점과 공교롭게도 계정이 날아가버린 상태라 별로 쓸 이야깃거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촌의 결혼식으로 인해서 고향에 내려갔을 때 일이다. 그 때는 MBC의 PD수첩 첫 번째 방송 직후였고, MBC에게 광고를 내리겠다고 자본가들이 협박하던 시즌이었으며, MBC에서는 PD수첩 방영 중지를 선포한 시기였다.
밤 늦게 도착한 나는 이종사촌의 집에 모여 앉은 여러 친지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지방에서 벌어지는 농민들 이야기, 지방 중소도시 발전 이야기를 들으며 잔칫집 부침을 반찬 삼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9시 뉴스가 방영되고, 여전히 화두는 PD수첩이었다. 아버지가 넌지시 물으셨다.
“저걸 도대체 어떻게 봐야 되는 거냐?”
밥상을 물리고 감주로 입가심을 하면서 넌지시 아버지의 표정을 살펴봤다. 암만 봐도 MBC가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MBC는 할 일 한 거고, 황우석이 잘못한 것도 맞아요. 문제는 저게 황우석만 두드려 맞아야 하는 건지 미즈메디 저 냥반도 두드려 맞아야 하는 건지는 좀 봐야겠죠.”
“아니 도대체 국민들이 다 보고 있고, 세계가 다 보고 있는데, 저런 거짓말을 쳤겠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란 말이다.”
상식이라. 아버지가 생각하는 상식의 잣대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아부지가 상식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시는가 본데요. 아부지는 전두환이나 박정희가 진짜 ‘나라’를 위해서, 애국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하시죠?”
“전두환은 몰라도 박 대통령은 맞지.”
“저도 걔네들이 스스로 애국심을 가지고 그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그 ‘애국심’이 과연 ‘국가’를 위한 건지 ‘국민’을 위한 건지 따져봐야 한다는 거예요. 걔네들이 ‘나라’를 위해서 한 것은 ‘자기들의 나라’였지, ‘우리 나라’가 아니라고요.”
“뭔 소리냐, 그럼 잇속만 챙기기 위한 노름이었다는 거냐?”
“아뇨, 잘 들어보세요. 역사에 가정은 쓸데없는 거지만, 왜 박통이 쿠데타를 안 일으켜도 우리나라는 잘 성장하고, 잘 살아왔을 거란 얘기 있잖아요. 그거랑 똑같아요. 황우석 박사가 자기 기술에 ‘애국’이란 단어를 붙이고, ‘국가’란 단어를 붙여서 국민들에게 ‘이 길만이 살길이다’라고 광고하는 순간부터 국민이 속은 거예요.”
대화는 어느 새 아버지와 나의 대화가 아니라 좌중과 나의 대화로 바뀌어 있었다. 감주를 한 모금 더 들이키고 얘기를 이어나갔다.
“PD 수첩이 그간 해온 것을 보셨잖아요, 얘네들은 그 동안 사회의 온갖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댄 애들이라고요.”
“아직 드러난 사실은 없잖냐?”
“그 ‘사실’이라는 것이 중요한 건데, 분명 저 사람은 책임자라고요, 음모론 아무리 세워서 대응해 봤자, 책임자 하나만 조지면 되는 형국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건, 저 연구원들 시스템이 군대랑 똑같아서 그래요. 왜 군대에서도 책임자 옷 벗으면 끝나잖아요, 과학자가 논문에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끄적대서 발표한 거로도 충분히 욕을 바가지로 먹고 퇴장해도 되는 거예요.”
아버지는 감주를 손수 따라서 한 모금 들이키셨다.
“아니, 그래도 저게 나라를 살릴 기술이고, 저 냥반이 나라를 위해서…”
“어허, 아부지는 참. 저 냥반 기술 아니라도 먹고 살 기술 많거든요? 그런데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다고요. 그럼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기술에 돈을 대 주느니 딴 데 대 주는 게 국민을 위한 거고 국가를 위한 거예요.”
“기술이 많다고?”
“당연하죠. 아부지. 나라가 잘 돌아갈라믄 국민들이 세금 꼬박꼬박 내죠? 근데 세금 잘 내는 사람들이 ‘나 세금 잘 내고 국가를 위해 이 한 몸 바쳤다’고 광고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니면 묵묵히 자기 할일 하면서 세금내는 사람이 많아요?”
“당연히 묵묵히 내는 사람이 많지.”
“그거 그대로 확장시켜보시면 돼요. 우리나라 생명공학 박사들이 300명 쪼메 넘는데, 미국에는 한 주립 대학교 안에만 그런 박사급 연구원이 3,000명이 넘어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계에서 버금가라면 서러워할 기술들을 가진 박사들이 우리나라에 넘쳐나요. 황우석만이 살길이 아닌데다가, 저런 거짓말까지 치는데 세금 아깝게스리 뭐하러 줘요?”
“허허, 아버지는 잘 모르겠다.”
“모르셔도 돼요, 언젠간 알아서 밝혀져요. 우린 그냥 보고만 있으면 된다니까요.”
그렇게 대화는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PD 수첩 2탄이 방영되고 며칠 지난 후.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면목이 없다.”
“네? 뭔 말씀이십니까?”
“이젠 아버지가 자꾸 틀리고, 니가 계속 맞는구나.”
“에이, 아버지가 틀린 게 아니라, 아버지가 잘 모르시는 부분이 나온 것 뿐이죠.”
전화가 끝난 후. 꽤나 많은 생각들이 지나치게 된다.
어릴 적에, 적어도 중학교 3학년 전까지는. 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던 분이셨다.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늘 특유의 논리적인 사고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시면서 날 이해시키기 위해서 궁리하셨던 분이시니까.
그런 아버지가 정부에 속고, 언론에 속아서 뒤틀린 세상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사신지 꽤 되셨다고 말씀 드리는 것에 거리낌은 없었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치셨듯. 누구나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아버지가 알던 세상이 바로 ‘모든 거짓말’로 꾸며진, 한 없이 의도되어진 뒤틀린 세상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으시면서 얼마나 슬퍼지실까? 한 평생 자신의 존재하는 감각을 유지시켜준 언론과 정부가 잘못되고, 그릇되고, 올바르지 못한 권력의 구심점이라는 것에 얼마나 분노가 되고 이가 갈리실까?
물론 이젠 나이 지긋하셔 그런 분노도 속으로 삭이시며, 흘러가는 세월, 자식들의 세상이라 한 걸음 물러나 관찰하심에도. 그런 슬픔이 짙게 배어나오는 이유는 그래도 한 시대의 아버지로서, 지금의 가장으로서, 자수성가한 완성형의 남성으로서. 그런 자신감으로 가득차 세상을 받아치던 분이셨기 때문이리라.
세상엔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존재들이 많다. 그 하늘은 ‘민심’도 아니고 사실 ‘지식인’들 스스로가 서로 아웅다웅하며 논리적인 약점을 하나 둘 씩 지워가며 만들어내는 투명한 세계를 말한다. 그렇기에 조선일보 사옥과 한나라당 당사를 그런 몰지각한 소인배들의 군집터로 갈겨대며, ‘민심’을 우롱하고 우리 아버지 같은 순진하신 분들을 골려대는 쓰레기들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아버지는 이번 기회에 다시금 ‘권위’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깨달으셨나 보다. ‘싸이언스’라는 ‘권위’있는 과학잡지에 실리는 이야기도 못 믿을 글이라는 것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권위 있는’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애국자’이고 싶었던 한 인간의 ‘권위있는’ 거짓말에.
‘권위로부터 오는 거짓말’이 얼마나 국민을 쉽게 현혹시키는 지 보셨다. 그리고 과거에 그 ‘권위로부터의 거짓말’에 속아오셨던 자신에게 화나셨고, 슬퍼지셨다.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수많은 잘못된 일들.
우리는 ‘애국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것을 왜 잊고들 사는 걸까?
왜 뻔한 거짓말을 ‘감성’으로 봐주는 걸까?
Posted by 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