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외대 후문을 지나 학교로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경희대를 다니다가 외대 영어교육과로 편입한 초,중,고 동창 녀석이 당구장 앞에서 큐를 든채 전화를 받고 있더군요. 간만에 만난 얼굴이지만 수업에도 늦었거니와, 친구도 전화 중이길래 서로 손만 흔들고 헤어졌습니다.
『공공의 적 2』 인트로를 보면 강철중이 돈이 없는 놈은 뭘 해도 못 따라가는 길이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물론 절대적인 얘기는 아니지만.
학창시절 친구들이 주말에 만나서 어울릴 때, 단란주점 옥상으로 로프를 짊어지고 뛰어 가야 했고
야간 자습에 만화를 즐길 때, 유조에 닭을 튀기고, 그릴에 패티를 굽고, 배달용 스쿠터를 타야 했고,
뜨거운 방학에 지겨운 보충수업을 할 때, 간판 샤시를 조립하고, 네온을 바인더로 묶고, 간판을 달았죠.
사관학교 가서 좀 피나 했지만, 결국 열 아홉 순정부터, 20대 초의 아름다운 날들을 나라에 적선하고, 공사판 그늘에 널부러져 곡괭이 베개 삼아 먼지와 살던 날들에서 벗어날 순 없었죠.
그리고 다시 지금. 공강시간에 당구장에서 보낼 수 있는 그 친구와, 빠듯한 시간 쪼개가며 아둥바둥 살고 있는 내 모습이 교차되는 그 순간. 『공공의 적 2』 에서 강철중의 독백은 현실이라는 걸 다시금 떠올리죠.
여기서 얻는 깨달음이란 다른 게 아니죠. 아둥바둥 쫓아가느니, 아예 처음부터 다르게 산 것. 따라잡아 보느니 과감하게 다르게 사는 게, 저 다운 객기 아니겠습니까?
어버이 날이라고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형님은 평택으로 병력을 수송하느라 자리를 비웠죠.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아버지께서는 간판 제작 및 설치를 하십니다. 간판을 '그리는'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간판일만 하셨죠.
간판도 크게 하면 돈을 법니다만,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영세업을 못 벗어나십니다. 그래도 자수성가 하셔서 저는 솔직히 부잣집 아들보다 몇 배로 잘사는 집이나 다름 없는 거죠. 그래서 솔직하게 '가난'이란 트라우마는 없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아버지가 술, 담배, 외도 없이 성실하게 사셨고, 그 모습을 보고 살아왔기에, '가난'따위 보다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받고 자란 아이죠.
이번에 경북 영주시 풍기(인삼, 부석사)에 새로 생기는 인견직 공장 벽에 그림을 그리셨답니다. 아직 가 보진 않았습니다만.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시다 보면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그림입니다. 아마 김홍도 그림을 따라 그리신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주말에 조카 돌 때, 내려가면서 봐야겠습니다.
벽에 그림을 그리신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경북 예천에 새로 생긴 아파트 벽면에도 김홍도 그림을 하나 그리셨죠.
이번에는 보상이 남달랐나 봅니다. 인견직 회사 회장의 집에 개인적으로 식사에도 초청 받으시고, 공장 개장식에 지역 유지 인사들 모여있는 자리에서, 국회의원도 인사 안 시켜주는 자리에 아버지를 소개시켰다니, 회장에게 그림이 마음에 쏙 드나 봅니다. 표창장까지 받으셨다네요.
아버지 말씀을 빌리자면 '남들이 보면 화가인 줄 알았을 게다'라고 하시니, 자랑하실만 합니다.
간판장이는 간판 만들어서 달아주고 돈만 받으면 됩니다. 간판이 예뻐서 사람들 장사 잘 되면 더 좋죠. 그러나 제 아버지는 간판 재료 고를 때도, 원가보다 '품질'을 고르시고, 잔고장으로 출장비도 좀 챙기시면 될 것을 잔고장없고 튼튼하게 만드시던, 그래서 적어도 2년은 거래처 사람들 싫은 소리 한번도 안 나오게 만드셨더랬죠. 그 덕에 어머니가 늘 돈 구해오고, 빚 갚고, 돈이 없어 늘 고생하셨지만 말이죠.
물론 악명은 높으실 겁니다. '늦게 만들어주기'로 말이죠. 늘 개업식에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만드셨으니까요. 그렇다고 게으르시냐고요? 1년에 설날까지 쉬는 날이 없이 살아온 분이십니다. 그만큼 간판 품질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신 거죠.
그런 장인정신이 지금의 아버지를 만들었을 겁니다. 분명 아버지는 대충대충 만드는 것 같은대도 이미 '달인'이 되신 거죠.
물론 회사 회장과 전무가 그저 시골 촌부에게 사탕발림으로 한 소리들일지도 모릅니다. 허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아버지 스스로도 마음에 들어하시고, 자식에게 자랑하는 '즐거움'이 있으신 겁니다.
제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일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숱하게 나누었던 대화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보충수업과 야간타율학습에 찌들던 시간에, 아버지와 간판을 달고, 간판을 만들며 주고받던 그 숱한 생활의 지혜들과 아버지의 생각들.
스스로 가장이 되고, 농담삼아 '남편'이나 '아버지'가 아닌 돈 벌어오는 기계라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런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니죠.
자식에게 좀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부여해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게 자식 사랑이라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사라진 당신을, 후에 그리워할 자식은 어떡합니까?
아버지가 스스로의 꿈을 넘어, 자신의 삶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버지의 자랑이 지겹고 한 귀로 흘리고 싶어도, 그렇게 '삶'을 완성해나가시는 모습을 지금까지 지켜봐 온, 그리고 덩달아 즐거운 자식의 기쁨을 선사하고 싶지 않습니까?
자식에게 자신의 투쟁을 그대로 보여주세요, 자신의 계급과, 자신의 위치를 그대로 보여주세요. 그리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보여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주세요. 한 삶의 '거장'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세요.
P.S
어머니의 존재도 익히 알고 있고, 이 글은 그저 사내자식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쓰여졌을 뿐입니다.
더불어 불의의 사고나, 흔히들 '운명'이라 생각하는 편모 가정에 대한 배제를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Posted by 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