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 20대는 죄가 없다.

일본의 2008년도 2분기에 시작된 드라마 중에 '판도라'라는 것이 있다.

한 국립대 의대 연구원이 '모든 종류의 암'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해버리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는 듯 - 아직 1회까지 밖에 안 나왔지만 이미 1회에 약을 개발했다 - 하다.

감히 건방지게 말하지만, 왜 제목이 '판도라'인지 벌써 깨달은 분들은 그나마 세상 돌아가는 꼴을 어느 정도 보시는 분들이고, 도무지 '왜' 제목이 판도라인지 아직도 감이 안 오시는 분들은 순진하게 세상 사시는 분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가 '사회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면, 아니 적어도 영국이나 유럽의 일부 국가처럼 무상 의료가 진작부터 지원되는 나라였다면 위의 '모든 종류의 암'을 치료하는 약의 개발이 그토록 무서운 '판도라의 상자'가 되진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대한민국과 일본은 그 빌어먹을 '자본주의' 사회에 충실하다 못 해 사람 목숨을 돈으로 따져야 하는 - 일본도 우리도, 암 치료비 때문에 집의 재정이 풍비박산 나며, 이로 인해 돈이냐 목숨이냐를 따져야 하는 더러운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 슬픈 나라가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TV시리즈에서처럼 '모든 종류의 암'을 치료하는 약이 실제로 개발되어버리면 일본은 절대절명절체절명의 위협을 받게된다. 일본의 생명 또는 질병 관련 보험 중 '암'과 관련된 상품은 무너져 버리고 보험의 기능이 무너짐과 동시에 금융권의 악재가 온다. 이와 더불어 '암'으로 인해 죽어나가야 할 예상치의 인구가 급작스레 '살아가기' 시작하고 이 인구는 고스란히 최고령 인구가 즐비한 일본사회에 더더욱 무거운 짐으로 나타나 버리며, 이는 사회의 공멸로 이어지게 된다. 더군다나 이런 일이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암'으로 돈을 벌어먹고 있는 모든 산업에 위해가 가해진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그 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기득권'이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올 수 있을까?

자본주의 국가에서 대의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빌어 기득권이 해낼 수 있는 만행은 인간이 얼마나 '금권'에 타락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약'이 개발되면 손해를 보게 되는 제약사와 병원, 금융권은 연합을 해서라도 후생성을 비롯한 관료들에게 로비를 하여 약이 '절대'로 출시되지 못하도록, 혹은 '출시하더라도 전 재산을 털지 않으면 안되도록' 가격을 조정하게 된다. 이로 인해 '충격'은 완화되고 결국엔 가진 자들의 배를 불릴 지언정, 진정한 '암의 정복'은 결국 '한 과학자의 인간승리'가 아닌 '금권의 승리'로 둔갑할 것이다.



이는 신약 개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엄청나고도 급격한 변화는 언제나 '기득권'을 위협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변화는 새로운 '기득권'을 낳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언제나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욕심'은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버리기 어렵다. 그리고 그 중심은 언제나 기득권의 회유와 협박, 달콤한 유혹에 시달릴 것이다.



또 다시 실망 뿐인 - 이재오를 무너뜨린 문국현 케이스 제외 - 선거가 끝났다. 기득권은 밤낮 안 가리고 국민을 농락했고 국민은 또 다시 무장해제 당하고 멍청히 투표를 하지 않았다. 정치 혐오감이든 나발이든 중요치 않다. 지금의 20대를 만든 것은 지금의 4~50대 부모와 그들이 즐겨보던 조중동이며, 대입 외에 다른 꿈을 꾸지 못하게 한, 기득권이 만들어 둔 시스템일 뿐이다.

20대는 벌 받을 일이 없다.

기득권이 만든 기본적인 교육 시스템조차 파괴시키지 못한 이 사회의 중년들이 이 사태를 고스란히 책임져야 할 것이다.

20대는 분명 책임이 없다.

열 아홉부터 종이 쪼가리 도장 찍을 권한 준다고, 대가리에 똥이 들었는지 글로벌하게 원대한 꿈이 들었는지 따지면 뭐 할 것인가? 그 속에 뭔가 채울만한 그런 기반조차 주지 않은 채 바라는 게 너무 많다. 이들은 그저 이제부터 당신들의 '개발독재' 때처럼, 그렇게 허리 졸라 살면 그만이다.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고 물어 뜯고 살면 된다. 30대들, 자신들도 그런 기반 없이 이 사회를 버텨왔다고 이들에게 '우리는 그랬어'라면서 저항의 삶을 강요할 텐가? 자신들이 읽어오던 '빨간 책'이, 맑시즘이 사회에서 퇴출되고 있는 동안, 당신들이 '밥벌이'에 바빠 신경쓸 겨를이 없던 동안, 이들이 권력에 의해 '취업에만' 힘쓰는 불쌍한 자본주의의 기계가 되어가는 동안.

20대를 비난하지 말자. 이들은 그런 사춘기를 보내고, 남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비극에 놓였다.

이제 고민은 오히려 중년, 당신들의 것이다. 애새끼들은 서른이 넘어도 취업하지 '않은' 채로 집에서 돈 달라 보챌 거고, 의료보험 민영화되어 늙어가는 몸이 아파도 병원은 커녕 약도 못 사고, 연금이고 나발이고 수급액은 줄어들어 결국 피폐한 노년이 될 테니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은 '기득권'이 원하는 방향대로 흐른다. 가끔 변수가 생겨봤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기득권은 '돈'을 가지고 '사람'을 농락한다.

그에 대항할 수 있는, 현실의 유일한 방법인 '대의 민주주의'조차도 결국 '돈'과 '권력'에 농락당하면 끝이다.

슬슬 땅값 오르던 노원구에 노회찬이 아닌 '한나라당 홍정욱'이 됐다.

유시민을 두 번이나 당선시킨 덕양구 갑에 재개발 시기로 슬슬 땅값이 오르더니 심상정이 아닌 '한나라당 손범규'가 됐다.



판도라의 상자에 '희망'이 남았다고 하던가?

그 희망이 의지로 발현되어 결국 우리는 나설 것이다.

투표고 나발이고 언제나 물러나 무임승차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내 아버지 세대의 무지렁이처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결국 짱돌을 손에 쥐고 금권에 타락한 정권에 맞서고 피터지는 사람들이 없는 한 신의 '약'은 일반 국민의 손에 오지 않는다.

내 학창시절을 386, 486 선생들의 아래에서 보냈던 걸 감사해하며.

p.s 시위장에서 자주 봅시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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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8/04/10 13:44 2008/04/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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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내 나라가 아니라

딴 나라네 - _-)a

투표하기 편리하더군요 민노당 안 나온 경기도지사, 경기도의원, 고양시장은 열우당 찍고

나머지 민노 올인.

쩝. 내 나라는 언제 되찾는겨 -  _-)a

영화 『한반도』처럼 내 나라가 독립은 언제 하는겨? -    _-)a

하긴. 뻔뻔하게 NAVER 메인배너 광고에 김구 선생님이랑 박그네 얼굴 같이 걸리면서, '아버지' 나오는데....

씨바, 김구 선생이 니 애비 다카기 마사오랑 같냐?

아, 씨바 내 나라 독립 언제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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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6/05/31 18:28 2006/05/3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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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시작이다.

결과는 나버렸다. 현실적인 타협점으로 보이는 결과지만. 역시나 이상과 현실 차이는 너무나 크다.

탄핵시점 이후,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에 대해 다시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부정적인(negative) 시각을 되도록이면 피하려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일정기준을 정하고 그 선을 넘지 않는다면 되도록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염세주의가 지적(知的)으로 보이던 철없던(지금도 철없다--;;;;) 시절이 너무나 아까워서 지금부터라도 짧은 생 행복하게 살려는 의지일지도 모른다.

난 정치에 관심없다고 늘 얘기해왔었다. 아마 작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까지 쭈욱 그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관심없음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나의 냉소였다. 무관심이 아닌 비웃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김근태의원의 경선사퇴와 그로 인한 조선일보의 학력비하 만평. 그 때 부터가 나의 정치바로보기의 시발점이 된듯하다.

어째서 학력중심주의 사회, 조중동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사회가 되었는지 고찰하게 되자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기득권층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위협적인 두려움이 아니다. 1%의 사람들에게 전 국민 재산의 대부분이 모여있을 뿐만 아니라 권력까지도 모여있다는 확신이 들면서 내가 내 나라에 4천500만의 국민중 4천500만분의 1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조수천수억분의 1정도의 권력도 갖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두려움이다.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보여줬던 노무현 現 대통령의 창천항로(蒼天航路)는 나에게 '무언가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고무감을 주었다. 민주당에서 평당원으로 아무지지기반도 없는 그에게 노사모라는 시민단체의 지지와 정동영 現 열린우리당 의장의 경선 완주(完走)는 상향식 공천으로 하나의 새로운 당체제 혁명을 부르는 멋진 모습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등장으로 50년만에 정권이 교체되고, 노무현 대통령으로 3金시대가 청산되고 새로운 국민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우리는 청산하지 못한것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물론, 5년~10년만에 청산될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선거 막바지 2~3일동안 많은 블로그에 선거관련 글이 올라왔다. 좋은 글도 많았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열린 토론의 자세가 우리에겐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

나는 이런 종류의 글을 쓸 때는, 될 수 있으면 언급되는 모든 단체 및 개인의 이름을 존중한다. 흔히 딴나라당이라 불리는 내가 아주 혐오하는 그들도, 정식명칭을 불러야 한다. 이유는 하나 뿐이다.

토론은 지성인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론을 할 떄는 지성이란 것을 갖춰야 한다. 상대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이며 나 자신을 객관화 할 능력이 된다는 것은 지성을 갖추었다는 얘기다. 이 두가지면 토론은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

탄핵 이후 토론회에서, 유시민의원과 노회찬 現 당선자의 '열우당이라 부르지 마시고 열린우리당이라 불러주세요', '민노당이 아닙니다. 우린 민주노동당입니다'는 말꼬리 잡기나 자존심이 아니다. 서로 존중하자는 뜻이다.

유시민의원이 전여옥 現 당선자(오. 아부지. 말도안돼ㅠㅠ)와의 토론에서 그렇게 눈을 부라리며 '그것은 비열한 비유입니다'라 힐난한 것은 이와 동일하다.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는 망언은 토론자가 갖추지 말아야할 악습이다.

그런면에서 볼 때, 진중권氏의 글 또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상대를 격하시키는 글은 맹렬한 비난이 아니라 도의를 넘어선 저자거리 쌍소리와 진배없다. 그의 '생리'운운 발언은 기가차서 말도 안나온다.

아쉬웠던 부분이지만. 우리가 정치에 대한 의견개진이 자유로워 졌다는 점. '나는 어느 당 누구를 지지한다'라고 밝힐 수 있는 분위기의 확대. 이 두가지의 사실은 우리 정치가 이젠 더 이상의 '더럽고 음흉한' 세상이 아니라 밝고, 열린, 서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미지를 보이는 형태로 바뀌어 갈 수 있는 노력을 보여준다.

어제 SBS방송의 유시민의원 말마따나, 세대간의 갈등이 이번 표를 보여준 것이 아니다. 매체를 접하는 습관에 따른 표갈림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우리 부모님, 컴퓨터와 인터넷의 터字도 모르신다. 신문은 아마 조선일보 보시고 계신걸로 알고 있다. 뉴스도 SBS랑 MBC랑 보신다.

이 차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8시 9시 TV뉴스에 논평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날 하루 사건 사고와 정치, 날씨 밖에 볼것이 없다. 하지만!, 신문은 느긋하게 사설을 감상(?)할 수 있다.

사설은 여론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매체를 접하는 층과 인터넷을 이용하여, 정보를 찾아보고, 또 다른 시각을 접하게 되는 층의 의견이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은 조중동 덕분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의 노력은 무척이나 필요하다. 일개 과반당의 노력으로는 절대 불가능 하다. 장담컨데 121석의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또다시 행정권과 의회권을 흔들어 댈 것이다.

필요한 것은 국민의 힘이다.

오늘 노회찬 당선자 말마따나 열린우리당 뿐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도 한나라당도 국민에게 '가불'받은 것이다. 잘했다고 찍은 것이 아니라 잘해보라고 찍은 것이다.

이젠 국민이 감독하는 시대를 넘어서 국민이 참여해야 한다. 알바들에게 둘러싸인 정당홈페이지가 아니라 국민들에 의해 비판받고 박수받고 해야하는 홈페이지로 거듭나주어야 한다.

우리는 투표기계가 아니다. 투표한 뒤에 가불해줬다면, 채무독촉을 지속적으로 해야한다.

뽑아 놨으니 잘하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것을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이 몸소 보여주었다.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1번 장향숙 당선자와 노회찬 당선자의 악수는 내게 흐뭇한 미래를 떠올리게 만들어 준다. 어제 SBS에서 민주노동당 심상정 당선자의 언행은 심히 민주노동당의 미래가 저렇게 근시안적이고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가에 대한 격분까지 갔었지만.

사람들은 열린우리당에 대한 걱정만 많이 한다. 하지만 그런 걱정보다 더한 걱정을 열린우리당의 개미당원들이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미래가 밝은 이유는 그런점이다. 겉으로는 '잡탕당'이다, '정체성이 없다'라고 비난 받고 있지만. 그들 속에서는 수만가지의 생각에 대한 개미당원들의 토론과 열정, 국민행복에 이르는 끝없는 노력이 있다. 비례대표 선정에서 밀려난 고은광순氏(호주제폐지에 대한 뛰어난 활동과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여전사'라 불리며 엄청난 우먼파워를 보여주었음)조차도 당에 대한, 정확히 얘기하자면 개미당원에 대한 신뢰가 넘쳐 흐른다. 자신을 비례대표 후보군에서 밀어낸 당원들이지만, 자신의 실수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호주제폐지'문제가 공동선에 부합되지 않음에 아쉬워할 뿐, 열린우리당 개미 당원에 대한 신뢰와 그로인한 열린우리당의 밝은 미래를 내다 보는 사람이다.

나는 우리 국민에게서 어쩌면 그런 열린우리당과 같은 모습을 보고있는 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생각이 난립하면서 왠지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넘쳐나는 생동감은 럭비공같이 어디로 튈지는 몰라도 충분히 가능성을 잠재하고있는 것이다.

이젠 국민이 투표로 끝낼 때가 아니다. 열린 광장 인터넷으로 나와 서로 정치정책에 대해 옹호하고 비판하며, 서로를 존중하며 합리적인 논리로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저 두분의 악수처럼,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신선한 경쟁을 기대해 본다. 더불어 우리 국민의 4천500만가지 생각이 인터넷에 날뛰며 파란만장한 다이너믹 코리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들의 어깨에 놓인 짐을 우리 함께 지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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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4/04/16 16:08 2004/04/1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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