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서울공화국의 폐해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수업 중 과제.
1시간 내에 2,000자 작성. '서울' 주제

--------------------------------------------------------------------------------

MBC 주말 드라마였던 ‘서울의 달’은 서울에서 사는 밑바닥 인생의 삶과 야망을 다룬 작품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를 속여 돈을 빼앗고, 결국 캬바레의 제비로 사기를 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더불어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로 시작하는 드라마의 주제곡은 ‘서울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각인시켜준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우리나라 인구의 40%가 모여 있으며, 대부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이 서울 위주로 돌아간다. 대학 입시 인구 80만 중에 취학율이 90%대로 가까워지고, 사회 구성원을 이루기 위해서 대학 졸업장이 ‘자격증’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부터 존재하던 대학의 서열화도 기정 사실처럼 굳어져 여전히 서울대학교가 최고로 인정되고, 학력의 서열화도 서울 ‘안’에 있는 대학들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물론 중심지가 생기고, 그 곳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지독히 심화된다면 곪아터지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근대화된 국가의 초등 및 중등 교육은 결국 사회 생산을 담당할 ‘경제인구’ 창출에 쓰이는 국가의 도구이다. 경제인구는 소득과 더불어 국가의 주요 수입원인 세금을 내고, 이런 시스템은 국가를 유지한다. 그렇기에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교육의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에서 ‘교육’이란 것이 이런 용도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대부분이 대학교에 입학하여 고등 교육을 받는 풍토는 중등 교육을 졸업하고 평등한 대우를 원하기도 어렵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자.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러서도 동생에게 당부하는 것은 ‘공부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교육열에 불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문인(文人)’이 우대되는 사회 풍조는 학력으로 인한 국민의 서열화를 만들어냈다. 그나마 과거에는 ‘돈’을 거머쥐는 상인은 비천한 신분으로, 학식을 갖춘 선비는 굶어 죽어도 높은 신분으로 나뉘어졌으나, 이제는 자본주의와 합쳐져 배운 사람이 ‘돈’을 더 벌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지옥같은 입시를 보내고 있다. 서열화된 대학 중 상위 대학을 가야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업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불편하면서도 당연한 구조는 서울 중심의 사회 구조가 맞물려 더욱 굳어졌다.

당장 취업 문화를 살펴보자. 이력서에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기입해야 하고, 학력을 보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회사에서도 대학 성적표를 요구한다. 이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온 사람과, 지방에 있는 대학을 나온 사람도 구별된다. 이는 취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엄연히 사회에 취업할 수 있어야함에도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가 없어 대도시로 나와 취업을 시도해도 몇 십년 동안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직종을 택하려면 ‘대학’을 나와야 한다. 더불어 요즘엔 대도시에도 일자리가 없다. ‘사람’이 많이 몰려드는 서울을 찾아야 비로소 ‘일거리’가 생긴다.

지방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더불어 돈을 쓸 사람도 줄어드는 바람에 경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돈을 벌어 지방에 가 써주지도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돈’이라는 것은 순환되지 않으면 체제 자체가 무너지게되건만, 우리의 ‘돈’은 심장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오지도, 한반도 전체를 돌지도 못한다.

고향이 지방인지라 명절 때 내려가서 지인들을 만나다보면, 지방대를 나와 취업을 못하고 힘들어하는 후배들이 있다.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 설움을 겪고, 졸업하고 나서는 ‘지방대 출신’의 설움을 겪고, 먹고 살려 일자리를 구하자니 ‘지방’에 살고 있다는 설움을 겪는다.

서울 중심의 사회 발전은 주류만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유리하게 만드는 폐악이다. 한 국가의 틀 안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왜 ‘서울’에 들지 못한다고 차별을 받아야 하는 걸까?

Posted by 함장

2007/04/16 12:24 2007/04/16 12:24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harmjang.com/rss/response/2630621


블로그 이미지

수정 자본주의자의 삶

- 함장

Archives

Authors

  1. 함장

Calendar

«   2010/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1886236
Today:
171
Yesterday:
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