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설에는 부석사를 들렸네요. 익히 아시다시피. 많이 알려진 부석사지만 사실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르는 곳이 부석사라서 좀 긁적여볼까 합니다.
현판에 써있는 글이 '봉황산부석사'입니다. 물론 우측에서 좌측으로 읽어야죠.
봉황산은 산세가 봉황을 닮았다고 그렇게 이름 붙여져 있어요. 잠시 위치 얘기를 해보자면, 배운 사람들의 '나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현재의 위치는 '경북 영주 부석사'가 맞습니다.
경상북도야 틀릴 것도 없고, 과거에 행정구역의 명칭이 변경되기 전에는 '경북 영풍 부석사'로 배운 분도 있을 거예요.
경북 영주시는 제가 태어나던 1980년도에 '시'로 승격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영주읍이었죠. 어쨌든, '영주'의 첫 글자와 풍기 인삼으로 잘 알려진 '풍기'의 첫 글자가 합쳐져서 '영풍군'이라는 지명이 있고, 영주시와 영풍군이 붙어있는 거죠. 그러다가 행정구역 체계가 바뀌면서 영풍군이라는 이름과 군청이 사라지고 영주시 안으로 모두 통합되었습니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봉황산은 경북 영주시와 경북 봉화군의 경계에 위치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산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경계부분이라는 거죠. 정확하게는 '태백산맥의 끝자락'이며, '소백산맥'의 시작은 '소백산'입니다. 그래서 부석사 일주문 - 절의 입구에 해당하는 문 - 현판에는 '태백산부석사'라고 씌여 있습니다.

한 단 올라서면 이제 유명한 '안양루'가 보입니다. 이 방향에서 보는 현판에는 '안양문'이라 써 있지만, 저길 지나쳐 올라가서 무량수전을 등지고 바라보면 '안양루'라는 현판이 붙어 있어요.

어릴 때는 누각 아래로 난 계단이 신기해서 자주 다녔지만, 이젠 계단이 싫어서 그저 평탄한 오르막으로 오르지요.

부석사 무량수전을 등지고 산세를 바라보면 딱 병풍이 펼쳐진 느낌인데, 이 모습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습니다.

유홍준 씨 책에도 나왔던가요? 어쨌거나 올해는 '눈'이 없어서 겨울의 아름다움은 못 느꼈지만. 그래도 약간 흐린날에 저런 다단의 산세를 볼 수 있는 경관은 드물죠.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배흘림 기둥'입니다. 토실토실하죠? 기둥이 약간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안정감을 위해서 그랬다고 하네요.

무량수전이란 현재의 글은 고려 '공민왕'이 피난와서 쓴 글입니다. 당시 공민왕은 안동까지 피난을 갔는데, 그 와중에 들려서 저 글을 남겼다네요. 좀 특이하죠? 가로로 한 줄이 아니라 세로로 두 줄을 쓴 현판은 아주 드물걸요?

부석사 하면 '주심포 양식'이 떠오르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지금 보는 안양루의 공포들은 '다포' 양식이죠.
'포'가 뭐냐 하면 현판 상단에 즐비하게 놓여있는 삐쭉한 뿔들의 모습입니다. 저건 나무를 깎아서 저렇게 '결합'시킨 모습인데 지붕을 받치는 완충역할도 멋지게 할 뿐더러 못 따위는 하나도 박지 않은 대단한 건축 기술이에요.
정말 우리 조상 똑똑하죠?
어쨌든 '다포'양식은 포가 저런 식으로 다닥다닥 즐비하게 붙어 있는 것을 말하고, '주심포'양식은 기둥 - 기둥 주 - 위에만 포가 놓이는 것을 말해요.

무량수전이 바로 주심포 양식인 거죠.

배흘림 기둥 위에만 포가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게 보이죠?

다음은 바로 유명한 '부석'입니다. 부석사의 이름이기도 한 이 '부석'은 '뜰 부' 자에, '돌 석' 자. 한마디로 '뜬돌'인데요.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지었죠. 의상대사는 화엄종입니다. 그래서 부석사도 화엄종찰이죠.
의상대사를 사모한 선묘낭자가 절을 지을 때 용으로 변하여, 저 큰 돌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절 짓기를 방해하는 무리들을 놀래켰다고 전해져 오죠.
사람들이 저 돌이 '정말' 떠 있는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택리지에서 '새끼줄' 하나 들어갈 정도로 떠 있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불교 청년회에서 '실'을 가지고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실이 '부석'의 아래를 관통했다고 전해져 오네요.
그렇다면 왜!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등록되지 않는 걸까요 - _-)a

무량수전보다 국보 등록에 한 번호 빠른. 석등입니다. 어릴 때는 밤이 되면 안에 초를 켰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삼각대도 없이, 망원렌즈 하나 달랑 가져가서 예쁘게 찍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운치는 내보려고 시도해 봤죠.


사실 4년 전에 헤어진 애인을 어머니께서는 올해 설에도 '그 아이는 진짜 며느리로 생각했는데...'라며 말을 흐리십니다.
그 아이를 명절 때, 집에 데려왔을 때도 부석사에 데려왔었죠.
당시엔 종교가 기독교이던 아이라서, 법당 안에 들어서는게 '무서웠다'고 얘기하던 아이였는데.
설에 고향에 오니 3년 동안 듣지 못하던 그 아이 소식을 후배에게 듣고.
아직도 잊지 못하신 부모님을 보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어서 임용고시도 되고, 멋진 선생님으로, 그리고 행복한 천주교인으로.
그렇게 살아가야 저도 편안할 텐데요.
안양루에서 석양을 봐도.
번뇌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행복하기를.
Posted by 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