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런 이야기

주말에 후배 결혼식이 있어서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여자 후배 결혼이라서 기말고사 기간이기도 하여 아니 내려갈까 했습니다만 - 그냥 관습 상, 여자 후배의 결혼은 가지 않거든요 - 애 결혼하고 나면 더욱 보기 어려울 듯 하여 내려갔더랬죠.

직장 다니다가 때려치고 고생하던 후배 녀석은 구미에서 취업했다길래 한 시름 놨습니다.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 흐르는 만남이죠.

결혼식장은 꽤 붐볐습니다. 후배 녀석이 학교 선생이다 보니 초등학생 애들도 왁자지껄 돌아다니더군요.

후배 녀석의 동기들도 죄다 남자 애들이라서 결혼식 친구 사진 촬영에도 아니 들어갑니다. - 마찬가지로 관행이죠. - 밖에서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면서 촬영 끝나길 기다리다가 문득 사진이나 찍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식장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신랑과 신부, 축하객 몇 명 사이로 끼인 여자 후배들의 얼굴을 찾아가며 셔터를 누르던 순간.

예전 여자친구가 보이더군요.

이런.

렌즈를 어디로 향할지 잠시 고민했더랬습니다.



뭐 예상대로 서로 아는 척 없이 그렇게 어긋났지만. 묘한 기분이더군요. 4년만에 처음 본 건데.

아시다시피 혹은 모르시는 바와 같이

전 그 뒤로 연애를 못 하고 있어요.

물론 예전 여자친구는 저랑 헤어진 후에 바로 다른 남자를 만나서 그 아이 부담을 덜어 주려 저도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고 얘기를 해주었지만.

뭐 그렇더군요.

사는 건 영화와 다른데, 왜 전 영화처럼 살려고 하는지 말입니다.



전 분명히 과거에 얽매여서 이렇게 살고 있진 않아요.

현재의 내가 그렇게 살 뿐.

지금의 그녀를 그리워 하지도, 과거의 우리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요.

과거의 제가 무척 많이 모자랐고, 지금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는 건 무의미 하거든요.

더군다나 지금의 그녀는 더욱 더 많이 바뀌었겠지요.

그런 걸 머리로, 그리고 가슴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저는 그런 것에 얽매여 살지 않아요.



다만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내 안에 충만하게 남아 있는 게 제게는 비극이겠죠.

누군가에겐 잊혀지고, 누군가에겐 남아 있고.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거잖아요.



제게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예전 여자친구 얘기를 하지 말라고.

그럴 때 마다 지금의 저를 만든 건 그 여자라서 '죽일 수 없는 질투'도 생기고, 그건 넘기 힘든 산이 된다고.

뭐 어떻습니까?

지금의 저를 만든 건 그녀라는 걸 부정할 순 없잖아요.

그런 사실을 감추고, 숨기고, 부정한다면 그건 자기 기만이죠.



여전히 아름답던 그대.

늘 행복하시길.

Posted by 함장

2007/06/19 21:56 2007/06/1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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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는 것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뜻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
황금빛 물결 속에 부드러운 미풍을 타고서
손에 잡힐 것만 같던 내일을 향해 항해했었지

눈부신 햇살 아래 이름모를 풀잎들처럼
서로의 투명하던 눈길 속에 만족하던 우리
시간은 흘러 가고 꿈은 소리 없이 깨어져
서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멀어져갔지

우~ 그리움으로 잊혀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속에 사라져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 가지

사랑이라 말하며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고
길잃은 아이처럼 울먹이며 돌아서던 우리
차가운 눈길 속에 홀로 서는 것을 배우며
마지막 안녕이란 말도 없이 떠나 갔었지

숨가쁜 생활 속에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무감한 발걸음에 만족하며 살아 가던 우리
시간은 흘러 가고 꿈은 소리 없이 깨어져
이제는 소식마저 알 수 없는 타인이 됐지

- 김광석, 잊혀지는 것


비오는 새벽.

그저 아련한 그리움에.

Posted by 함장

2006/06/15 02:05 2006/06/15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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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 간만에 버닝

주말에 일을 하다가 도저히 집중이 안 되어서 분위기 환기용으로 드라마를 뒤졌다. 감우성이 나온다하고, 평도 괜찮길래 혹시나 해서 첫 편을 봤다가 내리 4편을 다 봤다.

공형진이 VIP 신드롬으로 감우성과 손예진의 첫 아이를 사산하게 했다는 자괴감을 갖고 이혼한 지 2년된 감우성과 손예진을 이어주려 발악한다는 이야기.

주인공 공형진 아닌가? - _-)a

손예진 여동생 역할 참 깜찍하고, 오윤아 푼수 역할 괜찮고.

연애시대.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시대.

과연 요즘 세상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가, 그 순수성이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미 결론은 오윤아가 내 버렸다.

'니가 헤프게 써?'
'아니면 때리길 해?'
'그럼 왜 헤어진 거야?'

생각없이 욕심을 내나, 그렇다고 힘 있다고 폭력가정을 만드나.

성격차이. 그거 참 웃긴 거다.


성격차이로 헤어지는 건 결국, 그 성격을 갈무리하지 않고 돌아서는 것. 그건 사랑도 아니고, 같이 살 의지도 아니고. 그저 맞는 장난감 찾는 거랑 똑같다.

100이면 100 서로 성격이 맞는 사람은 없다. 당신들이 '맞다고' 생각하는 건 서로의 성격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판단 잣대의 기준이 맞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당신이 변화한만큼만 적용된다.

몇 백번 헤어지고 드디어 인연을 찾았다는 사람은, 결국 그 상대도 닳고 닳아 상대의 어떤 점도 받아들일 포용력을 갖춘거고, 마찬가지로 본인도 그런 포용력을 갖춘 시점이다. 물론 그게 포용력이 아니라 콩깍지면 당신의 포용력은 얼마 가지 않아 바닥을 보이겠지만 말이다.


같이 산다는 것. 결혼. 그거 쉬우면 쉽고, 어려우면 어렵다. 그런데도 오윤아가 명쾌한 지적을 한 건 사실이다. 때리는 남편만 없어도. 현명한 아내만 있어도(물론 이 둘은 바꿔 적용해도 무방하다). 결혼 생활은 쉽다. 상대의 성격이 반복될 수록, 지루함과 짜증이 생기겠지만, 그걸 이겨내고 살아가느냐, '코요테 어글리'라는 단어처럼, 그 지겨운 일상을 잘라버리고, 잠든 남편의 얼굴이 역겨워 자신이 한 팔베게를 잘라버리고 세상에 다시금 도전하는 여성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끼는 사람들은 결국, 이기적인 사랑을 배우기 보단 이기적인 사회인으로 남을 뿐일테니까.


조연들의 역할 또한 너무나 멋드러진다. 김갑수 아저씨가 목사로 나와서, '이 사람 선물 주지 마세요, 선과 악이 장난입니까?'라고 비웃는 거나, '사랑은 이기적인 겁니다'라고 즐겁게 내뱉는 거나. 참으로 명쾌하고 명쾌하다.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은 결국 타인에게 이익을 준다.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랑은 결국 서로가 얻어갈 것만 얻어가니 서로에게 이익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지 않으면 사랑은 결국 굴레가 되어 삶을 옥죄어 온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려를 하고, 그게 좋다는 자기 만족성 합리화를 하는 순간, 당신이 느끼는 감정과 머리의 부조화가 결국 당신들의 사랑을 멍들게 할 거다.


뭐 결국, 손예진이랑 다시 이어지고, 오윤아 상처 받고, 서점 여직원 상처 받고, 공형진이랑 손예진 여동생이랑 얼레리 꼴레리 되겠지만.

그래서 초반 스타트 재미났지만.

그 잘생긴 미남 청년. 차라리 가난한 게 더 좋지 않나?

어째 죄다 트라우마 주인공 뿐이야?

Posted by 함장

2006/04/17 17:37 2006/04/1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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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섭섭한 것은...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저 뒷 모습만이 닮았을 뿐인데도, 계속 돌아보게 되고, 전혀 다른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 모습에서 너를 찾는다.

술이 들어가서 일까? 아니면 그저 기분 탓일까?

미치도록 그립지도, 애타지도 아니하거니와, 이미 내가 그대에게 잊혀졌을, 그리고 지워졌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속일 수 없는 기억 속의 헤어스타일, 옷 매무새. 그 모습만으로도 두근거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기다린다고, 기다리지 말라고.

그렇게 편한대로 잊고, 잊혀져가고.

그 와중에도 섭섭한 것은. 잠깐 귀국한 그 시점에서도, 한마디 인사 없이.

그렇게 조용히 왔다가 다시 떠나버린 당신이 못내 아쉽고, 그립고, 얄밉고, 무섭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인줄 알면서도.


새벽 별 사이로 널 그린다.

Posted by 함장

2006/03/22 04:34 2006/03/22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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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여자라면...

내게 매일 추억될 권리가 있고,

내게 매일 행복을 기원받을 권리가 있으며,

내게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부여할 권리가 있다.

유치할지언정,

그 고마움을 지울 수는 없다.

마음 껏 비웃어도 좋으나.

내가 사랑한 여자는 내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로 예우받을 권리가 있다.

Posted by 함장

2006/01/17 21:00 2006/01/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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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버디님과 앨리스님의 코멘트를 보고, '사랑을 얘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좀 옛 얘기를 끄적거려볼까한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다'라고 얘기하지만 결국 제목과 같은 '노랫말'하나 덕분에, 그것은 공허한 외침이 된다. 가장 그리운 것은 '행복했던 기억'이고, 그토록 '다정했던 사람'이 이젠 곁에 없다는 사실, 냉혹하게 이성적으로 '헤어진 사람'이라 규명짓고, 그로인해 선을 그어버리는 현실은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부터  '사랑이 어찌 변하니'까지 온갖 유행어를 지어낼 정도로 처참하고 처참하다.

어쩜 그렇게, 내게 다정했던 사람이. 그토록 냉혹해질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이 꽤나 많은 여성을 만나본 인간은 아니지만, 그나마 '찐한 사랑' 몇 번 해본 기억에서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 두 사람 있다.

한 명은 그토록 내 이야기에 자주 나오는 '예전 여자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그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에 만난 사람이다.

아마 내 '지인'들은 그 '헤어진 여자친구' 얘기를 질리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이 그녀 뿐이었고, 지금 자주 만나거나 온라인으로 '함장'을 아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이며, 4년이란 연애 기간동안 개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 권영준을 어느 정도 사람같은 모형으로 조각해 준 인물이니까 말이다.

두 번째로 잊을 수 없는 사람은 그런 '예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몇 달 후에 만났던 사람이다. 이 사람에 대한 '기억'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 밖에 없지만. 그토록 강렬하게 사랑했던 기억에 너무나 가슴깊이 아로 새겨진 내 상처는 이제 아물지 못해 짓이겨진 상태로 남아버렸다.

하지만 난 이 사람과 연애했던 그 짧은 기억을 반추할 수 없다.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며, 공개되지 못한 기억이며, 존재가 부정된 기억이다.

비 안개가 자욱한 공원 원두막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자태로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행복한 기억을 지울래야 지울 수 없어도. 내 행복했던 기억이라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없는 것은. 그게 나만의 행복한 기억일거라는 슬픔 때문이다.

짝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말대로 그저 내 '예전 여자친구'의 그늘이 남아, 그녀 스스로 옭아맨 자해였을까?

기억과 추억을 부정하는 것은 그토록 쉽지 않으면서도 실행 가능한 편법인가 보다. 그토록 다정하게 속삭이던 네가, 사랑하던 우리가. 그렇게 가볍게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며 기억에서 사라진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는 현실.

난 분명 내 '예전 여자친구' 얘기를 스스럼 없이 함구할 수도, 꺼낼 수도 있음이,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나라고 생각하게끔 했고, 그렇기에 굳이 '과거의 인연을 잊기 위한 연애의 시작'이 아니라,

그렇게 다정하게 날 대해주는 사람이 또 존재한다는 행복감에 연애를 시작했던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두 번째 사람은.

내게 상처만 남기고, 멀어져 갔다.

온라인이라는 것이 바로 옆에 있게 느껴지도록 하건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다정했던 사람이.

벌써 나를 잊어버렸는 듯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과연 미쳐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다정함이 그립고 아쉬워. 미치도록 그리워.

기다리겠다고 그토록 목메어 외쳐봐도. 연을 끊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비수보다 날카롭게 상대의 가슴을 후벼판다.

돌아오지 않을 사람일지, 언젠가 돌아올 사람일지 알 수 없다고. 기별조차 없으면 기다리기라도 하련만. 여기저기 보지 않으려, 듣지 않으려 해도 찾아오는 소식들은 결국.

더 이상 '내게만 다정했던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서서히 침전해 간다.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리움만 남겨놓고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이 두 마디의 가사에 펑펑 울어버릴 수 있는 나는, 그 행복했던 기억들로 하루하루의 미소를 찾는 철부지며, 다시 다정한 사람을 찾기 보다 그저 행복하고 다정한 과거의 그 사람들을 떠올리는 변태이며, 그렇다고 돌아올 것을 기대조차 하지 않는 무식쟁이일 뿐이다.

순애보도 아니고, 못난 사람이라면 그럭저럭 이해해 줄 수 있는.

그저 그런 비극 같지도 않은 스스로의 비극을 즐기며 사는 취향 고약한 변태.

다정했던 사람이 사라지면 이렇게 미친 채, 다른 다정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일 뿐이다.

Posted by 함장

2006/01/17 15:54 2006/01/1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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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저주

그녀가 1년 여의 천주교 교리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세례를 받던 크리스마스 이브. 난 축하를 해줌과 동시에 이제 우리가 그만 만날 때가 된 듯하다고 전했다. 세례라는 것, 그리고 종교라는 것, 그 외의 모든 것의 테두리에 서기엔 내가 너무 부족했고, 그것을 묵묵히 인정함으로써, 난 더 이상의 미련이 없었다.

더 이상 그녀를 지켜줄 필요가 없었다
.

벌써 세 해가 흘러가는 지금. 나는 여전히 그 크리스마스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아는 지인께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

"
함장님 블로그를 통해서 작업 걸어오는 사람은 없어요
?"

그 냥반은 있었댄다. 여성블로거와 남성블로거가 같을리가 있나. 그리고 어떤 분의 말씀을 빌리자면
,

"
그런 정치 얘기나, 사회 얘기하는 남자는 여자들이 별로 안 좋아하지
"

라고 명쾌하게(?) 정의해 주셨다. 내가 생각해도 난 재미없는 남자일 뿐이다
.



아직도 여전히, 사랑 얘기로 가득 찬 영화나, 연인들의 눈물과 애절한 눈빛을 볼 때면, 가슴이 설레고 나도 덩달아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도 현실의 '감성'이 그저 평온하고, 격해지지 않으며, 열정적으로 끌어오르지 않는 이유는 사랑을 받지도, 누군가에게 줄 수도 없는 지금의 상황이 고착되면서 그저 그런 이야기로 저물어가고 있기 때문이라
.

사랑이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여유로운 사람일게다. 이 여유라 함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은 더욱 아니오, 정신적인 여유로움은 약간 핀트가 틀린. 그저 남을 위할 줄 아는 사람 중에, 그 덕목이 출중하여,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

그런면에서, 난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없는 고장난 녀석임엔 틀림없다. 진심으로 즐거웠고, 행복했던 시간들도,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점에선 틀림없지만, 그것이 '연애'의 기본 덕목으로 불려지기엔 너무나도 모자란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때 봤던, 이현세의 만화 때문일까?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감정은 그저, 대쪽같은 마초 정신으로 지켜주는 것 뿐이라 여겨왔던 그 시절, 결국 연애의 감정을 알아가면서도 ''이 반응하지 못하는 괴리감은 상대를 힘들게 할 뿐이었다
.

지켜주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 철칙은 결국,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로봇으로 전락한 인간형을 만들었으며, 그 어떤 구속감조차 용납되지 않는다는 변명으로 무관심으로 일관한 삶을 살았다.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와도 그저 묵묵히 찡그리며 원하는대로 해줄 뿐, ''를 낼 줄도, 무엇을 요구할 수도 없는. 그저 그런 수동형 사랑을 찍어냈다
.



"
이번 크리스마스에 무얼 하시나요
?"

라는 질문에, 조금의 생각도 없이


"
일 해야죠"

라고 대답하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것을 느낀 어느 날. 벌써 잊혀져 버린 옛이야기들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무덤덤한 일상들이 교묘하게 가로지르며 비웃음을 날려온다
.

이요원의 대사가 그랬던가? '여자는 짐작만으로 움직이지 않아요'라고? 어느 새 여자가 되어버린 기분은 그저 '소극적'이 되어버린 건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내게 부질없는 이야기로 그쳐버린 것일까
?



술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꼬시기 위해 찝쩍거릴 생각을 못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기분 나빠지듯, 내 그런 모습이 날 기분 나쁘게 할 테니까
.

더 웃긴 것은, 스무 살의 감성과 열정으로, 모든 것을 바쳐가며 사랑할 의지가 없다. 누구든 이 얘기를 보고, 고작 스물여섯 짜리 남자아이가 사랑이 어쩌네, 아직 세상의 ''字도 모르는 녀석이 웃기는 소리 한다고 말하겠지만. , 그 순진하던 열정의 시간들은 이제 그만, 꺼져버렸다
.

호감이 가는 여성에게 관심을 얻기위해 매달려보던 열정도 사라진지 오래고, 누구에게 사랑고백을 받아본 기억조차도 없다. 그저 그런 인연들의 교차점에, 스쳐가는 연인들처럼 눈이 마주쳤던 사람들은 어느 새 잊혀져가고. 내 삶속에 하나의 불꽃처럼 타오르는 그 사랑은 다시 아니올 듯, 까마득히 머나먼 빛으로 아스라히 사라져 갔다
.



다정히 속삭이던 기억들이, 더 이상 다시 올 수 없는 '다정함'에 좌절케하고, 행복했던 눈망울을 떠올리며, 주위에 스쳐가는 눈동자가 차갑다는 서러움에 몸부림치면서. 어느 새 익숙해진 혼자가 그토록 편하고 아름다운 生의 한 자리로 메겨져 있는 모습에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

난 그저 재미없고, 무뚝뚝한, 그런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다정할 수도 없으며, 그저 사랑스럽고, 날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그렇게 다정하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는지도 의심스러운, 그런 사람이다
.

어린 것이 쓸데없다고 비웃어도 좋다. 분명, 내 이십대의 청춘은 갔다. 삼십대의 청춘이 올거라 생각지도 않고. 그저, 이 고운 기억들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아둥바둥 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

난 충분히 행복했고, 충분히 서러웠으며, 충분히 악했다
.



그것으로 족하다.

Posted by 함장

2005/12/20 00:18 2005/12/20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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