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는 지금

1. 난 요 근래 더욱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혐오하게 되었다. 앞의 '자유'를 통해 '사유재산'의 보호를 자유로 부르짖고, 거기에 붙여 누진세의 '자유 침해'까지 역설하는 언론사상사 교수의 '자유찬가'는 한 귀로 흘려들으려 했건만. 도대체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는데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며 '자본이 굴러가는 논리'에 대해 애써 외면하려는 몰지성적인 태도는 분노를 삼기에 충분했다.

민주주의 정치 철학과 자본주의라는 경제 철학이 부대끼는 삶에 긍정하지만, 도대체 '자유'민주주의를 통해서 '자본주의' - 그것도 수정 자본주의가 아닌 순수 자본주의 - 를 찬미하는 이런 개념을 까부술 틈조차 주지 않는 권위주의에 경멸의 눈초리를 보낸다.

인간의 본성이 결국 자본주의로 흐른다는 이야기를 내뱉는 한 지식인 - 이라고 자처하는 - 이 내뱉는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이라던가 로크의 이야기들이 정말 '몰지각'으로 다가오는 건 내가 저 지적으로 아리따운 교수에게 무식하다고 느끼기 때문인가 내가 무식하기 때문인가? 후자였으면 참으로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분노가 표출되진 않을 테니.

인간의 본성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철학가 이름만 구워 삶으며 이야기하는 교수가 로크의 '백지화' 얘기를 꺼내며 386세대 - 혹은 그 이후의 한총련까지 - 가 '불온서적'만 읽어서 젊은 나이에 적화사상으로 물들었다는 이야기에 치가 떨리더라. 그러면서 지금 자신이 내뱉고 있는 세계의 모습에 대한 단정적 이야기가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이건 아니건 간에 마찬가지로 한 쪽에 치우쳐 '자본의 무서움'을 쉬이 넘겨버리는 태도는 내 손에 짱돌을 들고 칠판을 까부수고픈 욕망을 일게 한다.

씨바. 헤겔이 무덤에서 비웃는다.



2. 체육관에서 땀 좀 빼고 나와 맥도날드로 가는 길에 화정역 광장에서 전국 노점상 연합회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다. 풍물패가 와서 북이며 장구며 신명을 떨쳐도 지나가는 사람에겐 그저 시끄러운 소음이며, '우리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함께' 들어주기엔 저마다 바쁜 일상이다.

철거민 연합회에서도 나와 생존권과 관련해 연대하는 모습 속에서 갑자기 밤마다 홍대 거리를 누비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들 중에 그 홍대 거리 노점상도 있을까?

이화여대 앞의 서대문 노점상 연합의 2002년 투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돈을 가진 사람들에겐 '권리금'도 없고, 점포세도 없는 노점상이 아니꼬울 수밖에 없다. 그런 그들의 '불법'을, 법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대통령을 뽑아 없애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겠다.

씨바. 저 냥반들 세금 거두는 거 보다 재벌들 세금이나 잘 받는 정부가 낫지 아니한가?



3. 지난 주 100분 토론을 다시보기 했다. 나와 함께 '경희대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동명이인께서 나와주셨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봐주었다. - 당일 내게 100분 토론 나가냐고 문자주신 여러분, 제 이름 잊지 않아 주셔서 감사 - 물론 그 분은 교수. 나야 수업을 들을 기회도 없지만 - 국제경영학부는 수원 캠퍼스 - 뭐 권가가 까대기는 잘 한다.

100분 토론 내내 무서웠던 것은 저런 무식한 인간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는가란 의문이었고, 결국 우리네 수준이란 이런 거란 허망함에 치를 떨었다.

천민 자본주의. 그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이고 위대한 사명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더 내 나라를 경멸하기로 했다.

증오가 느는 만큼, 내 나라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속에 숨어 있는 사람답게 사는 법을 훨씬 빨리 터득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덩달아 커진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Posted by 함장

2007/10/16 16:07 2007/10/1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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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 단상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외우는 공부'에 취미가 없는 관계로. 부업에 나태함을 부과하여 가볍게 시험기간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예의상, 책 정도는 한 번 리마인드 해주고 시험에 임했으나, 회사 일에, 번역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의 몸은 차라리 눈을 좀 더 감아둘 지언정, 무거운 전공책을 들어 올릴 힘은 사라진지 오래다.

책 한 번 안 본 녀석이라, 익히 알고 있는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실험은 줄줄 풀어 쓸 수 있어도, '커뮤니케이션의 7 요소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내가 단어장 들고 다니는 - 실제로 난 중학교 때도 영단어장 한 번 들고 다닌 적 없다. - 학생도 아니거니와 그 단어들을 어떻게 내뱉겠는가?

사관학교 대학물리학 시험 이후 '반 백지 답안'은 처음이다.

그나마 재무관리 시험은 지하철에서 20분 정도 책을 본데다가, 평소 익히 아는 내용들로 이루어진 평이한 문제들은 일반 상식 - 교수님 입장에서 우리(경영대생)는 전문가라는데 과연 동의해야 하는 지는 의문이다 - 으로 풀었지만, 마찬가지로 예제 문제들 중 몇 가지는 이미 굳을 대로 굳어버린 머리가 시간을 따라가지 못 한다. 머리가 굳었다고, 안 돌아간다고 느낀 적은 없는데, 분명히 풀이 과정을 유추해 나가거나,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느려졌다.

강의 시간에 잘 듣고, 기억에 갈무리 해 둔 것, 그것들을 끼워 맞춰 논리에 맞게 야부리 푸는 거라면 언제든 가능한 게 시험인데, 사실 공부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많이 외우고, 외운 것이 지식이 되는.



외워서 점수를 받는 시스템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이유는 - 혹여나 이게 내가 공부하지 않는 변명으로 들리더라도 - 생각 없는, 삶의 주체로 설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쉬워서이다.

어떤 학우가 예전에 이야기 도중 이런 주장을 했다.

"이건희의 엘리트 경영이 참 좋아요,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리는 거 말이에요. 난 그런 엘리트가 되고 싶어요"

얼마 전에 파워 인터뷰에 유한킴벌리 CEO께서 나오셔서 부정했던 그 경영방식.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얘기는 결국 한 사람이 만 명이 먹고 살 것을 벌어서 만 명에게 나누어 준다는 얘기네?"
"직접적으로는 아니겠지만 그런 의미죠."
"그럼 만 명은 놀고 먹어도 되겠네?"
"아니죠, 일 해야죠"
"아니, 한 명이 만 명 먹여 주는데 왜 일해?"
"그럼, 그 한 명이 손해잖아요"
"넌 만 명을 먹여 살리고 싶어서 엘리트가 되고 싶은 게 아냐?"
"꼭 그런 건 아니죠, 엘리트라는 게 사회에서 지위도 있고..."
"그럼 넌 만 명을 먹여 살리려 엘리트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지위에 오르고 싶다는 거냐?"
"뭐, 겸사 겸사죠"
"그런데, 세상의 돈은 한정되고, 부의 증가 속도도 한계가 있는데, 니가 벌어들이는 만 명의 먹고 살 돈 때문에 돈이 모자라서, 만 명에게 일한 댓가로 줄 돈이 없거든? 그래서 일을 못 하거든? 그러니까 넌 엘리트가 되면 분명 번 돈을 만 명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장치를 갖춰야 해야 되거든?"
"에이, 그래도 일도 안 하는데 돈을 주는 건 좀 그렇죠"
"그래,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리는데 일하지 않으면 돈은 못 주겠다. 고로 일하고 나눠 받아가라는 얘기인데. 그럼 그 사람들에게 네 돈이 아니라 네 일을 나눠주면 되겠네?"
"에?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그럼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릴 필요 없이 각자 일 나눠 갖고, 좀 많이 버는 사람이 좀 더 나눠주고, 능력 없어 조금 버는 사람에게 모자란 만큼 채워주면, 굳이 한 명이 만 명의 부담을 지는 것 보다 쉽잖아"
"그래도 사회가 그렇게 안 돌아가죠"
"그래, 사회가 그렇게 돌기 힘들지. 그런데 원칙은 그거야, 니가 돈을 벌어서 남 밥그릇을 채워주는 게 아니야. 너도 노동자고 나눠 받을 사람도 노동자면, 노동자끼리 남 밥 그릇을 채워줄 필요는 없어, 대신에 니 밥을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눠주기 싫으면, 그 사람들이 알아서 밥을 타서 먹도록 '밥그릇'을 지키게 같이 도와줘야 해. 한 명이 만 명 먹여 살린다는 식으로 중소기업 밥그릇 죄다 뺏어가는 삼성보다, IMF가 터져도 기업의 구성원들과 회사 가치를 공동으로 생각해 서로의 일거리를 조금씩 양보해서 밥을 좀 줄이더라도 서로의 밥그릇을 챙겨주는 유한킴벌리 같은 회사가 더 중요하단 말이지. 너 같으면 밥그릇 없이, 그러니까 일하지 않고 얻어 먹고 싶겠냐, 작게 받아도 자기 밥그릇에 밥 타먹는 게 좋겠냐?"



커뮤니케이션 수업 시간, 언론정보학부에 복수 전공을 시도하려는 여러 단과대생이 모여있다. 정치적 성향을 학생들에게 묻자 아무도 얘기를 안 한다.

"저는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우스운 농담으로 들리나 보다. 그리고 나서 이어진 거수 설문 조사. 90% 이상이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모든 정당을 싫어한다. 심지어 '민주노동당'까지도 싫댄다 - 솔직히 나도 NL 계열(아직도 주도권층이라지?)이 빠지기 전까지 지지할 마음 없다. -

우리 학교 총학회장에 뽑힌 아해는 공공연히 '사상교육의 장'이 되는 중앙동아리에게는 지원을 끊을 것이며, 학생의 탈 정치화를 구호로 삼고 - 운동권이라는 영역이 존재하는 현재의 상황도 웃기지만. 중학생도 두발 자유 시위를 하고, 예비역 대령들도 시위를 하는 이 나라에 '데모'하는 운동권이 특별관리 대상인 건 웃긴 거 아닌가? - '교육 시장'에서,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핏대를 올리더니. 결국 매년 3월에 지하철 타고 오는 홍세화 아찌는 보이지도 않고 보안요원 교내 쫙 깔고 나타난 이명박이 등장한다. 탈 정치?



예전 여자친구와 2002년 대선 개표를 보는 와중에 등장했던 MBC 개표 광고는 내용이 이러했다. 남편이 개표 실황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아내는 찻잔을 가져다주며, 남편의 관심이 참으로 의미있는 일인 양 생각하는 것 말이다.

여자친구가 대뜸 얘기했다.

"광고 마음에 안 드네, 여성도 똑같이 저 정도 관심이 있단 말이지."

커뮤니케이션 수업 수강생 대다수가 여학우였다. - 여성 폄하라 오해마시라, 경영대 주위 남학생도 대다수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아젠다 세팅이 기득권층이 원하는대로 되어 있다. -

정말. 진심으로.

나 다시 좋은 사람 만나 연애할 수 있을까?



Daum에서 강풀의 26년이 연재되고 있다. 매 회를 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려 괴롭다. 희대의 살인마가 그저 통장에 이십 몇 만원 있는 개그 거리가 되어 잊혀져 가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밀레니엄 학번 이후, 대학생들이 교내 동아리 방 어느 한 귀퉁이에서 5.18 광주 민중 항쟁의 비디오를 보지 않게 된 것이, 과연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는 증거인지 의문이 든다.

그런 일들이 어느새 26년이 흘러간 과거가 되었고, 사람들이 '넉넉해 져서' 그 포용력으로 권력자들을 희화화 하는 것으로 눈 감아 주는 것이라고 애써 외면해 보려 해도.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단어가 그저 우스개 소리가 되어 묻힐 수 있는지 말이다.

학살의 주역들과, 그 세력들이 아직도 버젓이, 목에 힘 줘가며 대권을 노리고, 기득권을 수호하며, '승리의 미소' 따위를 선거 홍보 책자에 싣고 있는 이 시대.



세상에서, 신념을 지니고 옳곧은 태도를 지켜나가기란 참으로 어렵다. 지치고 힘들다. 그러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 한 사람만 옆에 있어준다면. 정말로 행복하게 그 신념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가,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다독여 줄 수 있다면 말이다.

Posted by 함장

2006/04/26 08:09 2006/04/2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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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 Prisoners' Dilemma

실비아 님의 글에 달린 만두... 님의 코멘트를 보고, 쓰고 싶던 것인데, 이제야 쓰게 된다.

경제학을 배우다 보면 Prisoners' Dilemma, 즉, 수인(죄수)의 딜레마 라는 것이 나온다. 물론 경제학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단 '철학'에서 나온 것이라 사료된다. 아마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고 싶다면 Prisoners' Paradox 혹은, Prisoners' Dilemma 등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요약해 보자면, 두 명의 죄수가 공범으로 경찰에게 붙잡혀서 취조를 받는 상황에 놓여있다. 경찰은 둘을 잡아 넣을 수 있는 그 어떤 증거도 포착하지 못했다. 그래서 범죄를 수습하기 위해 경찰은 자백을 받아내야만 한다. 각각 격리된 곳에서 서로 연락을 취할 수 없게 해두고, 양쪽에게 경찰은 이렇게 고한다.

"자, 자백하면 넌 1년만 썩고, 저 방에 있는 네 친구녀석은 5년을 썩는거야"

물론 반대 방에서도 동일한 일이 이루어진다. 더불어 이미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법적 계산도 하고 있다.

'둘 다 자백 안하고 뻗대면 경미한 처벌로 2년만 살고 나오면되고,  둘 다 자백하면 정상 참작으로 3년을 살게 되겠지'

이런 상황에서, 한 형사가 취조실로 들이닥치며 외친다.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형사님!"

형사는 웃으며 범인을 돌아본다.

"자 마지막 기회다, 자백할텐가? 네 친구 녀석이 먼저 자백할지도 몰라"

물론 들이닥치며 증거를 확보했다고 한 경찰은 '엄포'를 놓은 거다. 그것이 바로 우리네 언론이나 다름없다. 조선일보 보라, 우리나라 경제 바로 내일 망할 것 같지 않은가?

위의 Prisoners' Dilemma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합리성'이 가지는 한계를 얘기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순전히 교과서의 문맥이 틀려서 그렇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성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모든 인간의 선택이 합리적이라면, 우리는 아마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이치를 순식간에 꿰뚫고, 쉽게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라, 그럴 수 있는가?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합리적 효용성'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인데, 예컨데 어떤 의사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봉사하는 것이 생의 '낙'인 사람도 있고, 어떤 의사는 병원하나 개업하고 그 동안 번 돈으로 외제차 몰며,  골프치는 것이 '낙'인 사람도 있다. 이는 저마다가 느끼는 '효용'이 주관적이기 때문이며, 이는 곧, 경제적 합리성이 '돈'과 관련된 이익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다시금 Prisoners' Dilemma로 돌아가보자면, '친구'와 소통할 수 없고, 미리 자백 안 하기로 짜둔 상황에서 증거를 확보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여건을 만나면 '합리적이고자'하는 인간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여기서부터 인간군상의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친구는 '자백'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자신이 먼저 '자백'해 버리는 이 얼토당토 않는 '나부터 살고보자'는 식의 대처는 일견, '내가 그 사람이라면....'이라는 추측과 함께 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불쌍하게도,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친구'도 그러하다. 결국 '나만 자백하기'로 결심하고 친구는 어떻게 되든 '난 1년 살테야'하고 자백을 감행했건만, 친구도 똑같은 상황으로 자백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둘은 3년형을 언도받고, 3년동안 '친구'를 믿었던 자신을 한탄하며 출소후에 어떻게 상대방을 갉아먹을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울한가?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명확하게 짚어낸다.



여러분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국민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데, 왜 늘 '권력'은 소수만 갖는지 말이다.

경제학을 좀 읊어댄 사람은 이렇게 말하겠지, '권력의 희소성' 때문이라고. 개뿔.

권력에 희소성이 어디있는가? 한 개인이 가진 권력은 제한되어있고, 그 제한된 권력은 평등하게 나누어져 있고, 더 필요하지도 않는데다가 '소모'되지도 않거늘 무슨 '희소성'운운인가?

그렇다. 권력이 '소수'만 갖게되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와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 거기 '지나가는 사람'. 키보드 내려놔라, 지구상에 나타난 '공산주의'가 그게 공산주의더냐?

'자본'은 한정되어있고, 쟁취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 쪽이 '부'를 축적하면 반드시 '부'를 잃어버리는 쪽이 생긴다. 그래서 '부'는 소수가 독점하게 된다.  이 점이 '민주주의'와 닿으면서 웃기게 흘러버린다. '부'를 가진 쪽이 '권력'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분명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오고, 그 행사권도 국민에게 있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로 Prisoners' Dilemma에 그 해답이 있다. 각 국민이 '민주공화국'의 '공화'적인 성격, 즉, '개인적인 합리성'이 아니라 '사회적인 합리성'을 추구해야 권력추구에 있어서도 국민의 '진성'이 우러나오는 법인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Prisoners' Dilemma에서 '사회적인 합리성'이란 결국 둘다 자백하지 않고 가볍게 2년 형량을 보내고 끝내는 것이다. '친구'가 자백할 거라는 두려움도 이겨내고, 혼자 고백하면 1년만 살면 되지만, 둘이서 끝까지 버텨내면 둘다 2년씩만 살면 된다는 '연대감'으로 상황을 극복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사회적 합리성'이며, 서로 '상생'하자는 '공화'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국민연금, 월급에서 10만원 채 안되게, 혹은 10만원 넘게,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것 보면 울화가 치미는 것 이해 못할 바아니다. 어딜 가서 '연봉 얼마예요'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실 수령액'이 사실 얼마 안 되면, 짜증도 난다.

하지만, 당신은 '늙는 것'이 두렵지 아니한가? 우리 사회의 노령화 지수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불어 장년층과 노년층은 늘어나지만 그들이 '노동인구'로 남아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기업'은 당연히 정부를 압박하여 해외의 싸고 젊은 노동자들을 들여올 것이고, 50을 넘으면 일자리는 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물론, 똑똑한 개인께서, 스스로 돈을 굴리면 노년을 보장하기 위해 돈을 잘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똑똑한 당신만의 착각이다.



어떤, 정규직 노동자가 어느 날 갑자기 '비정규직'으로 몰려나면서 '동일 가치 노동에 동일 임금을!'을 외치는 일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이다.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을 거라는' 왜곡된 기대 심리.

마치 복권을 살 때, 나만 당첨될 확율이 높은 것 처럼 기대되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다.

현재 자신이 처한 입장이, 노년까지 저축할 비용을 충분히 벌어둘 수 있을 거라고 쉽게 계산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건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분명, 현재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너무나 많고, 그런 위치의 사람들과 우리가 '함께' 늙어가고 있으며, '함께' 노동인구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라는 것이 '세금'으로 지탱되고, 그 '세금'이라는 것이 노동을 하든, 자본으로 굴려 먹든 소득이 있는 사람들에게 징수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소비하는 사람들'의 그 지불가격에도 엄청난 양의 세금이 붙어있다는 것도 말이다.

이 많은 인구가, 늙어서, 돈도 못벌고, 소비도 못하고, 생산도 못하는.

그런 대 재앙과 같은 세상을 상상해봤는가?



지금 국민연금에는 국민 전체가 '들이부어도' 한참 모자랄 우리 젊은 층의 '인구'가 생성되어 있다.

이들이 동남아로, 아프리카로, '돈 적게 드는' 곳으로 이민을 가서 정착하고 살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뼈를 묻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서구 유럽국가가 '이민정책'을 주도한 이유는 젊은 노동인구와 그 인구가 내어야 할 '세금' 확보를 위해서였다.

이제 우리나라도 '단일 민족국가'라는 개뿔딱지 같은 소리를 내뱉을 수 없다. 분명, 우리 사회는 노동력을 원하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이민정책'을 고려해야될 것이다.



우리 부모세대는 다카기 마사오 아래에서, 그저 가족 먹여살릴려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커녕, 가족의 미래를 챙기기도 바빴었다. 그렇게 허리띠 졸라매고 애들 낳아서 여기까지 달려왔더니. 이제 애들은 '당신들처럼 살지 않겠어요'라면서 자기 소비에 열심이다. 돈을 모아서, 차도 사고, 아파트도 사고, 좀 더 좋은 생활, 좀 더 나은 '소유'를 꿈꾼다.

한 마디로 이러다간 좆됀다.

Prisoners' Dilemma에서 처럼, 지하철 역사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와,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30~40대 인부들을 바라보며,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이라고 비아냥 거리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자기 혼자 '1년' 살려다가 같이 3년 살게되는 꼴을 불러온다.

지금 20대부터 40대는 우리 부모세대가 고생했듯, 대한민국의 미래에 '연금'이라는 희망을 남겨주기 위해. 돈을 갖다 부을 수 밖에 없다.



그게 '사회적 합리성'으로. 우리가 민주'공화'국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Posted by 함장

2005/12/15 18:21 2005/12/1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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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자본주의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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