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반추’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날들에 대한 회상이 문득문득 밤을 비껴 오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이다. 더불어 이를 ‘고백’할 수 있는 점 또한 인간이 누리는 축복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외칠 수 없음이 인간에게는 결국 ‘말하고자 하는 욕망’과 죽음이 닿아 있음을 일깨우며, 이로 인해 느끼는 고백의 욕망은 살아온 날들의 후회가 아닌, 인지부조화의 간극을 줄이고, 자신이 살아온 날에 대한 합리화를 위함이다.
루소의 ‘참회록’이 명작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점에서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기 어려우며, 솔직하다는 것의 정의 또한 모호하다. 자신이 믿고 싶은 바만 믿으며, 그 많고 많은 이해관계의 폭을 좁히기 위해 무던히 사고작용을 펼쳐야 하는 인간의 고뇌란,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이라는 거룩한 미명 아래 한낱 자기 만족을 위해 뇌까리는 그 무엇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가치야 말로 인간이 가져야 할 고귀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 글이 명작으로 남은 것이리라.
자본주의라는 것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루소는 분명 현대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지언정, ‘경제력’의 위협이 늘 ‘공포’로 다가오는 사람이었다. 유사이래 언제나 신권은 권력을 가졌고, 권력은 금권을 가졌으며, 금권은 신권을 능히 농락할 수 있는 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신권은 만들어졌고, 권력은 자연스레 생겼으며, 금권은 결국 ‘노력’을 통해 얻어낼 수 있었으니, 자본주의는 곧 ‘동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 몸부림 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금권을 허락하는 길이었다.
루소에게 자유란 권력이었다. 경제력이 없으면 육체가 자유로울 수 없었고, 주변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사유에 대한 자유’가 위협 받았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과 다른 ‘자본’을 가지고 타인의 의지로 태어나 자의로 삶을 유지해야 하는 우리에게 ‘모든 이에게 자유와 평등을!’이라는 구호는 그저 금칠이 된, 만져볼 수 없는 타구(타액을 뱉는 그릇)와도 같다.
인간은 ‘합리적이고자’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합리적이지 않다. 오직 경제적인 판단만으로 미래를 결정해야 할 때도 있으며, 자신이 바라는 가치에 대한 열망으로 타인의 합리적 이성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단을 할 때도 있다. 루소의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삶 속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루소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그렇다.
나 또한 그렇다.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내 삶의 길을 바꿔야 하는 기로에 놓인 것이 몇 번이나 되었지만, 그 때 그 때 나의 결정은 매번 내가 꼭 원하는 길도 아니었고 반드시 합리적인 길 또한 아니었다. 주변 상황의 ‘위협’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기도 했고, 때로는 누가 봐도 가장 합리적인 길을 외면하고 딱 잘라 내 고집대로 - 혹은 아집일 수도 있지만 - 내 가고픈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결정’이 반복될수록 어떤 ‘일관된’ 결정을 내리도록 학습되고, 나 스스로도 나에게 그런 ‘철칙’을 적용시켜가며 하나의 가치관을 성립한다는 거다. 누가 봐도 ‘자본’에 휘둘리는 결정일수록 나 스스로의 존재와 모순되는 결정이 허다하다. 조금 더 나은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것과 조금 더 ‘경제적 피해’를 덜 보기 위해 선택해야하는 상황은 그 절대량은 같을 수 있을 지언정, 목표가 다른 만큼 결단에 필요한 목적의식 또한 달라진다.
어떤 결정이든 그 책임은 결국 결정에 조언을 한 사람이나, 그 주변상황이 책임을 질 수 없이, 고스란히 결정자에게 전해진다. 그러므로 결정자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은 이상 언제나 결정에 후회를 남기거나, 결정으로 인해 닥쳐오는 시련 - 또는 행복 - 이 힘겨울 수 있다. 자기 결정에 책임을 진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회고’를 하고 그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한 인간이 선택의 기로에서 내린 결정은 주어진 ‘환경’에서도 결국 ‘살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결국 인간이 가지는 가치는 노력한 댓가로 얻는 ‘자본’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권력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일관된 합리적 결정을 적용할 수 있는, 자신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걸어야하는 길이기도 하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데 책뒷표지에 추천사를 쓰면서 루소의 참회록을 극찬하기에 저도 올해 읽어 봤죠.
톨스토이, 아우구스티누스, 루소의 참회록을 읽었는데, 막상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없네요.. 암튼 그가 치열한 삶을 살았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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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대 차이, 혹은 경험 차이
저자인 전인권 교수가 아마 70년대의 학번일 것이므로, 내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거나 조금 어릴 것이다. 그 얘기는 곧 나와 한 세대의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이며, 그로 인해서인지 유년기의 ‘가정 내부 경험’은 나와 사뭇 다르다. 이는 그저 ‘세대’의 차이로 보기엔 판이하게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예를 들어 아버지의 직업이라던가, 집안 내부에서의 권력 구도가 바로 그런 것이다.
우선 글의 초반에 전개된 집안 내부 인물들의 소개에 대한 경험적 이야기에서부터 상당한 거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는데, 저자가 느낀 아버지의 모습과 내가 느낀 모습의 아버지, 그리고 저자가 그토록 ‘따뜻했다’라는 어머니의 품과 내 어머니의 품이 너무도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저자와 우리 부모의 세대가 비슷해서, 그 세대의 차이로 인해 벌어진 간극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저자는 자신의 5세 때부터 유년기에 느낀 감정을 그대로 소회하고자 했으나, 전반부를 읽는 내내 느끼는 느낌은 오히려 유년기의 기억을 현재의 ‘지적 자아’가 확대 해석, 혹은 편향된 접근을 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거리감을 느꼈다. 이는 나의 곡해일 수도 있으나, 유년기의 ‘시각’을 통해 아버지의 권위와 어머니와의 격식 없는 편안함을 이야기 하려는 시도는 보이나 결국 그 ‘시각’이 해석되는 형태는 현재의 자아를 버리지 못한 채 서술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2. 엄마, 어머니.
세대 차이, 혹은 경험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동일선이 보이는 이유는 내 고향이 지방 중소도시라는 점과 어머니가 시골 출신이라는 점. 이 두 가지가 결합하여 저자가 겪었을 50년대 말, 60년대 초의 일반 가정 생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쉽게 여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살던 지역의 특징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그런 분위기인지는 모르지만, 나와 내 주위, 그리고 우리 형은 어머니에게 예사낮춤인 ‘하게체’를 쓴다. 이는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도 동일한 경험을 얘기해 주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던 기억이 있는데, 정확하게는 ‘하게체’를 쓰게 된 시점이 내 ‘키’가 어머니보다 커진 이후로부터인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는 아버지에게 어리광 같은 ‘편안한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행동들을 유년기에 하지 못 하고, 오히려 어머니와 그런 일을 자주 겪은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정말 지극한 개인차가 있다고 생각된다. 교육 수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환경 요인으로 인한 차이인지 구분할 수는 없지만, 유년기보다 오히려 머리가 굵어질수록 아버지와의 ‘벽 아닌 벽’이 두터워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내 어머니도 내게 아버지를 대하는 ‘관습’을 가르쳤다. 밥상에서 수저는 아버지가 가장 먼저 든다는 것과, 은수저는 아버지의 것이라는 명제,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올 때면 일어나서 맞이하고, 식사 준비는 어머니의 몫이라는 우리사회의 통념을 그대로, 아무런 비판 없이, 당연한 일로 우리에게 가르쳤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격식이 내 어린 날의 사고를 경직시키지는 않았다. 이는 철저하게 아버지의 배려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내 아버지는 내가 ‘버릇없이’ 먼저 수저를 들어도 뭐라 하시지 않았고, 오히려 배고픈 데 먼저 들라고 권하시거나, 집에 돌아오실 때 누워서 TV를 보고 있어도 뭐라 한 적이 없으시다. 눈을 마주보고 돌아오셨냐고 인사만 건네면 될 뿐이었다.
그렇다. 오히려 어머니가 관습적인 격식을 ‘교육하고 실행하게’ 만드셨고, 아버지는 그에 대한 허용 폭을 더욱 넓혔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가 훨씬 편한 존재였다. 형이라는 폭력과 폭압을 주무기로 사용하던 가족 구성원의 존재에게 유일한 방패막이가 되어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가족 내부의 폭력 – 흔히 얘기하는 부부싸움과 가정 폭력과 형제간의 싸움 – 으로 인해서 나와 형은 다른 대립 각에 서 있었다. 우선 1차적으로 형과의 터울이 컸기에 그 차이로 인한 내 생각의 다름과 미숙한 가족 체제의 적응에 대해 형은 늘 내게 교육의 방식으로 폭력을 선택했고, 나는 그 폭력의 수혜자가 되어 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비슷하게도 내 어머니는 우리 두 형제가 머리가 굵어지기 전까지 전적으로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아무런 반항 – 소리치기와 욕설을 제외한 – 을 못하셨는데 ‘폭력’이라는 물리적 힘의 차이로 인해서 어머니가 피해자였을 뿐, 어머니의 ‘소리치기와 욕설’의 가능함은 분명 두 분이 ‘동등한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대로 나는 내 형과 절대적으로 동등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내 선택은 ‘절대 강자’에게 빌붙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흉기로 위협을 가할 때, 형과 달리 방 구석에서 숨죽이고 자는 척을 했던 초등학교 초년생 시절. 그 무서운 분위기를 숨죽이고 보낸 내게 보내는 어머니의 싸늘한 시선은 가족 내부에 편을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는 눈에만 띄면 나를 못 살게 굴던 어린 날의 형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아버지 곁에 있는 것을 택했고, 형은 덕분에 아버지의 눈을 피해 언제나 나를 통제하고픈 욕심과 더불어 자신을 통제하려 드는 아버지를 향해 어머니와 연대하여 대립각을 세웠다.
그렇게 편이 갈리다 보니, 당연히 가족 구성원 중 내가 가장 편안하고 아늑하게 느끼는 곳은 아버지의 품이었다. 저자가 기존의 가족이 가진 ‘아버지가 권위적인 가족’에서 살면서 느낀 어머니에 대한 포근함은 나와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분명 아버지의 직업과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도 어머니에게 ‘하게체’를 쓰게 된 것은 어머니와 편한 ‘친구’같은 관계가 설정이 되어서도 아니고, 어머니가 우리보다 지위가 낮아서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어머니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고, 분명히 가족 내부에서의 권력 서열로도 우리보다 상위였으니까. 다만 어머니에게 ‘하게체’를 쓰게 된 시점, 그러니까 고등학생이 되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느끼는 아버지의 ‘폭력성’에 대한 일종의 연대가 그 시발점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행한 폭력의 희생자였고, 형은 나로 인해 통제를 받던 희생자였으며, 나는 형에게 받던 폭력의 괴로움을 알고 있기에 그에 동참해줄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린 거였다. 어찌보면 저자가 얘기하는 ‘아버지’와 그 외의 가족구성원이 결성된 시점이 내게는 더 늦춰진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근본적 접근 관점은 여기에서도 달라진다. 그 이야기는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다시 다루도록 한다.
결국 아버지에게는 지금까지도 ‘존대’를 하면서 어머니와는 반말이 되어버린 ‘하게체’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그런 일종의 ‘아버지에 대한 반연대 구축’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도 심각한 항전이 아닌, 이제 이빨이 빠져버린 호랑이에게 ‘아부지가 예전엔 어떠셨는지 아세요? 이젠 엄마에게 그러시면 쫓겨나요’라고 비아냥거리는 연대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연대를 넘어서서. 어쩌면 이제는 늙어가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를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가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바뀐 지도 모르겠다. ‘밥은 먹었는가?’라고 여쭈면서 안위나, 돈 걱정을 같이 하면서 말이다. 어머니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나,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결국 또다시 경제인구로 들어가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생각. 그런 무의식과 사회적 관습의 결합이 어머니를 그렇게 대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3. 일터의 아버지 = 가정의 아버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자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직업’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월급을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이었고, 내 아버지는 우리가 생활하던 집에 붙어있는 작업장에서 일을 하던 영세 자영업자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일터에 노출되어있었고, 어머니도 그 일터에서 아버지를 도왔으며, 아버지가 직업상의 일로 타인을 만날 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직업인으로서의 아버지와 가정 내부에서의 아버지가 다른 모습을 갖추는 점은 분명히 있었다. 가정 폭력을 비롯하여, 사업상의 얼굴과 형과 나를 대하는 얼굴을 같게 둘 필요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작업장이 집 바로 옆에 붙어있었듯, 그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다.
아버지의 일터를 보면서, 그리고 일터에 따라다니면서 같이 보고 듣고, 행동한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험인데, ‘돈’을 벌어오는 주체가 아버지 혼자가 아니게 됨으로 인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권위’자체도 자극적으로 높지 않다. 물론 일을 따오거나 지속적인 영업을 하시는 것은 아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전원이 아버지의 일에 생계가 달렸음을 알고 거기에 매달렸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점은 분명 아버지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아버지에게 자유롭게 건의할 수 있었고, 아버지도 우리와 어머니에게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면서 상황을 제의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기셨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민주적인 가정인 것은 아니었다.
분명 위에서 언급한대로라면 내 아버지의 세대에 비추어 봤을 때, ‘폭력성’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진보적’일 수 있는 아버지, 남편의 모습을 갖춘 것일지도 모르겠다. – 분명 이는 추측일 뿐이다. 나는 내 아버지와 동시대를 살아온 또래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결과를 가지고 있지 않다. – 그러나 오랜 군생활로 인해서 생긴 아버지의 ‘군인정신’은 가끔 합리성을 넘어선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어쨌든, 아버지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직업을 넘어선 놀이에 가까웠고, 그 놀이는 어머니의 집안 일을 거드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들었으며, 그로 인해 내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수록,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간과 더불어, 친근하게 다가서는 시간조차도 길어진다.
내가 어머니의 품에서 얼마나 많이 잤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확실한 건 내 아버지 ‘옆’에서 잔 기억이 남아있을 뿐이다. 가끔, 아주 가끔 어머니 옆에서 자게 된 적도 있으나, 그것은 특별한 상황 – 외갓집에 놀러 간다거나 – 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저자가 어머니와 ‘부부 같은’ 생활을 영위한 것에 대한 느낌을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비슷한 경우를 찾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경험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4. 관점의 차이가 가져오는 성장
내가 진지하게 고찰해 본적이 없는, 그러니까 분명히 심각하게 왜곡되어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은 내가 탐구해 본적이 없는 관점을 보게 되는 경험을 하면 이루어진다. 집에 형과 나밖에 없던, 그러니까 어머니를 제외한 남자만 셋이던 집안에서 ‘여성의 시각’이라는 것은 죽어버린 그 곳에서, 내 어머니가 느꼈을 고립성과, 안타까움은 내가 ‘집안에서 어머니를 관찰했던 여성’의 시각을 접해보기 전에는 아예 깨닫지를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흰머리를 보면서 부모님이 늙어간다는 생각을 하던 내가, 어머니의 음식이 짜게 바뀌는 것을 느끼면서 미각이 늙어가는 어머니를 깨닫게 되려면 그에 대한 경험이 있는 시각을 만나기 전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말이다.
저자의 경험을 돌아본 이야기는 오히려 내가 기성세대의 세계를 보는 눈에 대한 이해를 더욱 확대시키기 보다는 이미 드라마에서 지치도록 보아온 남존여비 사상의 재확인과 내 경험과 상이하게 다른 부성과 모성의 인식을 통해 거리감만 두게 되었다. 물론 후반부로 가면서 그 생각들을 정리해 사회 구조에 대한 의견을 던지는 것은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존재와 책임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혹자가 내게, ‘부모님의 노후’에 대해 걱정하면서 계획을 얘기하자 ‘그러면 당신을 위한 삶은 살지 않나요?’라고 물은 기억이 있다. 아마 전인권 교수가 서두에 제기한 문제도 그 맥락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어머니’가 되면서 자신의 모든 삶을 접고 ‘자식’을 위해서만 살아오셨던 어머니. 그러나 그 ‘자식’을 위한 삶에서 내가 만났던 어머니의 모습은 자식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엄밀히 얘기하면 ‘엄마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 듣지 않게 하도록, ‘자식’의 사회적 시각을 걱정하며 이혼이나 자살을 결심하지 못하고 고된 삶을 견디는 강한 – 혹은 약한 – 여성의 모습이 있었다.
가족의 해체를 얘기하기엔 너무나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한 기억은 그런 자기 존재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부정해버린다. 매슬로우의 5욕구이론 최 상위 욕구가 ‘자아 실현의 욕구’라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그리고 그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배반하지 않은 대가는 처참했다. 그저 서로가 밥 한번 더 굶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자신의 내부에 가족에 대한 걱정이 있고, 자신이 아파 가족을 돌보지 않아도, 다른 구성원들이 자신을 돌봐주며 또 다른 ‘부채’가 생기는 끝나지 않는 연결구조.
결국 내가 느낀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폭력을 위시한 권력’으로 수직적 위계가 생겨나는 가족과 ‘생계’를 위해 공동체적 분업을 일삼는 가족. ‘어머니’만 있고 ‘여성’이 사라진 가족 구성원 속에서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여성의 관점’이 만들어낸 허상. 그런 것들이 연합하여 다른 관점과 대립하며, 결국 포용으로 더 넓은 시야를 갖춘다 하더라도. 과연 내 ‘아버지’의 모습을 살해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광기 어린 폭력성을 만난 유년기의 기억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증오해본 적이 없는 무경험자가 내 안의 틀을 깨고 아버지의 자리를 대체해나갈 수 있을까?
내가 살해해야 하는 것은 내게 가장 편안한 기분을 선사했던, 그리고 나와 어머니와 형과 함께 ‘가족’을 먹여 살렸던 아버지가 아니라, 그저 남성 – 혹은 일부 여성 – 을 돈 벌어오는 기계로 만들어버리는 사회가 아닐까?
음...가족의 사례를 빗대어 독후감을 쓰신 모양이군요. 쓰시는 모든 글에서 느낄 수 있었지만, 이 글도 큰 주제를 그리고, 그것을 자세히 일관성있게 정리하시는 모습이 보이네요. 상당히 부러운 능력입니다 그려... 아 방학하시겠네요. 생각해 보니 그게 더 부럽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