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맥주, 소주, 와인, 양주 골고루 섞어서 맛나게 마셔댄 사람의 숙취란 머리 뿐만이 아니라 어께 깊숙히 박힌 날카로운 통증을 이겨내기 어렵다.
고향 친구 녀석이 드디어, 혼자 살 집을 구해서 이사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약속했기에 칼바람을 헤치고 지하철 기둥을 베개삼아 흘러갔다.
처음 시작하는 독립세대의 기본답게, 이사짐은 별로 없었다. 가장 무겁게 나른 것이 책상정도 였으니. 침대와, 냉장고, 세탁기 등은 새로 구입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혼자 사는 녀석이 방 두 개에, 거실도 있고, 주방 위치도 따로 있고, 베란다도 있는 집이라니, 너무 크지 않은가 싶긴 했다. 물론 크기 욕심이 아니라 어찌어찌 구하다 보니 그리되었겠지만 말이다. 그 동안 늘 여기저기 얹혀지내던 녀석이라 첫 자기 침대에, 곰돌이 푸부터 이것 저것 치장하고 싶은 것이 늘어나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그렇게 좋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문제가 있었다. 밤 사이에 수도가 완전히 얼어붙은 모양이었다. 복덕방에서 휴대용 가스렌지와 찬물을 얻어와 끓여서, 웅크리고 앉아, 수도 미터기 연결관에 수건을 둘둘 감아서 어릴 때 하던대로 녹여보려 했지만,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꽤 많은 구간이 얼어붙은 모양이었다. 결국 설비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잡고, 그 때까지 수도는 잊기로 했다.
이사 첫 날, 집을 구경한 부모는 잔소리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아직도 '어린' 소녀는 그런 부딪힘이 늘 껄끄럽고, 화가 나고, 나오지 않는 수도물은 더욱 짜증을 만들었을 게다.
"나 내년에 차 안사, 그 돈 가지고 이사갈거야"
이사 오는 날 부터, 집이 마음에 안 들면, 다음 집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지방에서 살다가 대한민국 서울 공화국의 일원이 되기 위해 올라올 수 밖에 없는 슬픈 '취업'현실은 이 사회가 얼마나 삐뚜루 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나마 녀석은 학원강사로 올라와서 아예 자리를 완전히 굳힘으로써 쉽게 빨리 돈을 모아, 장하게 독립을 해낸 경우라서 정말 대단하다.
나도 빚 속에 허우적 대면서 그나마 작은 전세방이라도 구해서 행복하게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사실이 돌이켜보면 무척 재미있다. 처음 올라와서, 고시원 골방에 앉아 당장 내일은 어떻게 먹고 살까 고민하던 때가 바로 몇 년 전인데 말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힘들다. 조금이라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두 다리 뻗고 편히 집에서 쉴 수 있을 뿐, 삶에 대한 걱정은 줄지 않으니 말이다. 더불어 늙어가는 내 부모와,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면 고시원 골방 때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자본에 종속된 노예가 아니던가?
늘 반란을 꿈꾸며. 그렇게 속에서 칼을 품고 독기를 뿜으며 살아가는 인생. 그렇기에 외로울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오늘부터 '혼자' 잠들고, 생활하게 될 녀석에게.
"밤이 외로울 거 같아"
라며 쓸쓸한 눈빛을 보이는 녀석에게, 무어라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는 것은 결국 그런 '삶'에 익숙해지고, 무뎌져 갈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가족을 벗어나, 친척에게 얹혀 살다가.
스스로의 손으로 독립을 이룬 너에게. 고생 길로 들어온 동지애를 느끼며, 축배를 건넨다.
Posted by 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