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내용은 참 훌륭했으나, 현실과 참 괴리가 있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 대책에 대한 기획 기사를 쓰는 기자가 ‘몇 십억’을 가지고 직접 거래를 해 본 경험이 없어서 ‘이성’과 ‘과학’이 있는 ‘기사적 상상’으로 기획을 한다는. 예를 들어 강남의 집값이 비싼 이유가 ‘이효리가 강남에 살아서?’라는 상상보다 매매 차익이 어떻느니 투기 자본의 흐름이 어떻느니 하며 ‘과학적이고도 이성적인 사고’를 통한 ‘기사적 상상’이 쏟아내는 기획 기사가 더 합당하다는 얘기는 일견 옳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런 ‘이성’과 ‘과학’ 따윈 상관없는 우주적 상상력의 극치와 왜곡을 넘나들지 아니하던가? ‘조선일보’라는 간판으로 인한 색안경을 억지로 벗고 보려 하더라도 이런 예시는 수강생의 헛웃음만 짓게 할 뿐이다. 아니 조선일보가 언제부터 그러셨나?
각설하고. 창의와 공부의 공통점 중 하나는 끊임없는 탐구심에 근거한다는 데 무척 공감을 하게 된다. 사물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거나 현상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이유 하나를 알아내기 위해 덤벼드는 그 열의야 말로 창의에의 욕구와 진리 탐구에의 욕구로 점철된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것, 김종래씨처럼 오로지 징기스칸 하나 만을 지독하게 파내려 가면서 얻어내는 소득이란 이루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어느 한 분야에서 상성을 이룬 사람은 다른 분야의 이치도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라는 고리타분한 이분법의 인간형 속에서 늘 창의적인 사람은 ‘능동적’인 사고를 발휘하는 사람으로 몰아져 왔고, 설령 그 경계가 모호하더라도 ‘창의’라는 것은 가만히 있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그 이분법은 줄곧 주류 이론으로 자리잡아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잠재 가능성은 ‘수동과 능동’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인프라’, 즉 기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보급형 디카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서점에서는 그런 디카들로 찍은 사진을 어떻게 ‘예쁘게’ 만드는 가를 가르치는 책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그런 잔기술은 결코 ‘빛과 구도’가 만들어내는 ‘창의적 이미지’를 따라 잡기 어렵다. 이는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 노출 등의 기본이 이루어내는 하모니이니까 말이다.
창의의 기본은 원리의 깊은 이해에 있을 거라 생각된다.
Posted by 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