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개봉했던 영화 『Good Night, And Good Luck』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참고해 보세요

매카시가 공산주의 패닉을 만들던 때, 그 때의 실화입니다.

'돈 할렌벡'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신문 우파 칼럼니스트 잭 오브라이언으로 인해 괴로워 하다 자살합니다.

자살하기 전에 '에드워드 머로'에게 잭 오브라이언을 상대해 주길 바라는 뉘앙스를 던지죠.

잭 오브라이언의 글에 분노를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 잭 오브라이언의 글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허점 투성이의 글이었으니까요 - 에드워드 머로는 그런 사람의 글을 읽지 말라고 합니다.

에드워드 머로는 잭 오브라이언의 글을 읽는데, '반박하기 위해서' 읽죠. 그는 매체를 통해서 나오는 '틀린' 이야기들에 대해 - 매카시의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는 억지 주장 따위 - 국민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아젠다를 던져주는 역할을 해야하는 언론인이니까요.



'읽지 않는 것'. 중요한 일입니다.

'조중동'을 읽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쁜 글을 읽어서 좋을 게 없거니와, 그 글 읽어 줘서 그 나쁜 짓 하는 애들 돈 벌어주게 하는 것 막으려는 거죠.

블로그도 똑같습니다. 미친 척 낚시 글이나 공분을 자아내는 글로 늘 붐비게 하면 '네거티브 마케팅 효과'로 성공합니다. 도와줄지 말지는 독자들이 결정하는 문제죠.



어떤 정치적인 글을 볼 때면, 반갑기도, 화가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아니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미친 새끼를 봤나 하면서요.

그런데 후자는 반박해 줄 필요가 없어요. 만약 그 사람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데 잘 모르겠다'며 대화를 시도하는 거라면 소통을 하면 됩니다. 허나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의 칼럼은 그냥 씹으세요.

'그 블로그 정치적인 글만 제외하면 컨텐츠가 괜찮아'

과연 그럴까요? 다른 컨텐츠로 사용자를 확보해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퍼뜨려 나가는 것은 자유입니다. 허나 그 정치적 신념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름'이 아닌, 원칙이 '틀린' 거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영화 『Good Night, And Good Luck』을 예로 든 이유는 그런 겁니다. 등장하는 배우가 침대에 부인과 누으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죠.

'만약 우리가 믿는 것이 틀린 거라면 어떡하지?'

참으로 현명한 아내는 이렇게 받아냅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보다 중요한 게 있어?'



자신의 성향과 다른 글을 보고 화가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화를 내는 분도 있죠. 하지만 상대방 주장의 '원칙'이 어처구니 없는 논리에서 출발하면 화가나는 겁니다.

그러면 에드워드 머로의 말이 맞죠. 그런 글은 안 읽는 게 좋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참 웃깁니다. 저도 젊은입니다만. 참 웃기죠.

'전 국민이 한나라당을 택한 이유가 있을 거야'

지레짐작 9단이십니까?

'한겨례만 보면 시각이 편향 되어요'

편향이란 단어의 의미는 압니까?



쓰레기 같은 글을 판단하시는 기준은 결국 자기에게 있습니다. 다수가 본다고 반드시 좋은 글도 아니거니와, 다수가 공감한다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우위'에 놓이지 않습니다.

그 글의 사고의 출발점이 우리 자신이 세운 가치 판단의 준거,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가.

논리 전개에 억지가 없는가.

그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글입니다. 따뜻한 감성을 자아내는 글, 우수에 젖어 아름다운 추억을 꺼내게 하는 글도 좋은 글이죠.

하지만, 분명 분노를 자아내는 글은 나쁜 글입니다.



블로그가 수 만개로 넘쳐나다 보니, 좋은 글들을 꽤나 많이 놓칩니다. 그 얘기는 바꿔 얘기하면 그런 '분노'를 자아내는 글 따위 볼 시간에 더 좋은 글을 찾아 읽고, 그 사람들의 생각에 동조하고, 반박해 보고 더 나은 가치를 언급해 보는 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물론, 그 분노를 자아내는 글을 쓴 사람에게 톡 쏘아 붙이고, 논리적 우위를 보여주는 것도 혹여나 그런 글에 '혹' 해버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한 절차이기도 합니다.

그게 에드워드 머로가 했던 일이고요.

그러나 그건 효과가 있을만한 일에 하는 것이 좋겠죠. 광신도들이 모이는 곳에는 '인지부조화' 때문에 어차피 제대로 된 효과를 못 봅니다.

다만 사람들이 분별력을 갖고 글을 접근할 수 있는, 더 나은 글을 써서 공개를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물론, 상대가 대화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면 서로의 논리적 우위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논쟁을 해야겠죠.



화 나는 글을 읽는 시간에, 차라리 박노자 아저씨나, 홍세화 아저씨 등, 이 사회에서 정치적인 잣대를 깔끔하게 제공하는 좋은 글들을 읽으세요.

돈 할렌벡처럼, 화나는 글을 읽고 감정을 주체 못 하는 것 보다. 명쾌한 글들을 읽고 선명한 시각을 갖추는 것이 훨씬 보람차고, 즐겁고, 힘을 얻는 길입니다.



권해주는 사람들이 죄다 '좌파'라서 편향적이라고요? 위에서 얘기 했듯. 좌파와 우파는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좌파든 우파든 똘레랑스를 가지고 서로가 믿는 가치 하에서, 서로의 시각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겁니다. - 그러니 당연히 한나라당은 우파가 아닌 극우 세력이죠 -

편향적인 것 걱정마세요. 저 분들의 글이 '원칙'을 어긴다면 권해드리지 않았을 글들이죠.



'정치적'이라는 단어에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부정적인지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정치를 떠나서는 조금도 살 수 없어요. 정치는 생활입니다. 그런 생활을 악이용해서 화나게 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주면 계속 똑같은 지랄을 합니다.



그냥 끊고, 좋은 글 보세요. 세상에 널린 게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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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6/06/09 00:21 2006/06/0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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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어디에 서 있는가?

수업 중의 하나가 후문에 있는 관계로, 요즘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외대역에서 내려서 걸어올라 온다 - 경희대 후문과 외대 후문이 직선거리로 200미터 정도 밖에 안 된다 - 외대 정문 우측에 붙어 있는 대자보. 총학의 대자보 같은데, 문구가 어처구니 없다.

' 학습권 침해하는 교직원 노조 파업을 규탄한다'

문장이 완벽하진 않지만 - 하도 어처구니가 없길래 - 학습권 침해라는 단어와 현재 투쟁 중인 외대 교직원 노조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그 '파업'을 비판하는 문장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씨발.

몇 주 전에 자유기업원 원장의 강연이 있다는 현수막을 봤을 때, 이 동네도 총학 회장이 전경련 장학생인가 했더니만, 아주 지랄을 하는구나.



솔직히 아젠다 세팅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다.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하노아란 사람과 두호리란 사람의 글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정치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아젠다를 설정하고, 그 설정을 얼마나 '원칙없이' 받아 들이는가를 볼 때마다 씁쓸했다.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이유로 '무시'해 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옳다'라고 주장하며 발발뜨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이 '볼테르'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가 궁금하다.

나라면 도리어 그런 사람들 - 주체 세력 - 이 주장하는 이야기는 개무시해버리겠지만, 그로 인해 부화뇌동 하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목에 핏대 세워가며 논리성과, 정치적 당위성, 윤리적 우위성을 점해줄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에서 '극우파' 장 마리 르펜이 인기를 끄니까, 많은 프랑스 지성인들이 '공화국'을 지키자며 뛰쳐나온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녀 사냥? 극우나 극좌의 발언을 '차단'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권력구도가 그 '극'을 달리는 발언들에 힘을 얹어주고, 폭주를 막지 못 한다면,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뛰어들어 막아야만한다. 온갖 독설이 난무하고,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비난하지 말라'는 소리도 무시해가면서.

용납할 수 없는 것에 다양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외대 내부를 거치면 뿌듯한 일이 더 많다. 건물에는 '고려대 조합원'들이 보낸 응원 현수막도 붙어있고, 새로 생긴 잔디공원 주위에는 각 단대별로 총학의 '파업 파괴 공작'을 규탄하는 서명 운동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왜 이런 '삽질'을 해야 하냐는 거다.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도 대다수가 취업을 한 후에나 깨닫는 사회. 심지어 이 마저도 깨닫지 못하는 사회.

혹자는 그 동안 '운동권'이 교내 정치 권력을 잡다가 '극우 세력'이 정치 권력을 잡은 거라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지 않은가? 그래도 꼴에 '대학' 아니던가?

대학에 진보 세력만 있으라고 주장하는 거냐 묻는다면, 다시금 '배움의 길'에 대해 돌이키라고 생각해 보고 싶다.



'자유 시장 경제'를 그토록 외치면서, 모든 사람들이 개개인의 '이기적인' 합리성을 추구하면 시장이 조화롭다고 얘기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이 '노동자'라는 것을 버림과 동시에, 기업의 입장을 이해하고, 재단의 입장을 이해하고, 가진 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순간.

시장의 권력 구도는 독점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 '보수'인가, '멍청한 것'인가?



어처구니 없는 총학의 태도에 항거하는 외대생과, 경영대와 총학만 홀랑 빠진 채 등록금 투쟁을 하는 경희대생과.

그 외 모든, 전경련 장학생들이 총학생회를 구성한 대학 학우 여러분들의 건투를 빈다.

당신들만이 아젠다 세팅을 바꿀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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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6/05/02 14:23 2006/05/0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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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학우의 미니홈피를 들렀다가 '자유기업원'이라는 곳에서 주최하는 강연회 공고를 보았습니다. 대학생 동아리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에다가, 이 강연을 들을 경우 주어지는 특전이 '삼성전자 인사 담당'이 강연할 때, 우선적으로 초청된다는 것이니, '취업'에 목말라하는 대학생들이 그냥 지나치긴 어렵겠지요.

그런데 그 '공고'를 보고는 참 어이가 없더군요. 잠시 빌어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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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십니까? 확 돌지 않습니까?

참 어처구니가 없길래 학교 경영학부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글 보기


글을 올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전화가 오더군요. 게시판을 자주 보시는 어떤 교수님이십니다. 첫 마디부터 웃깁니다.

"니가 이제야 본색이 드러나는구나"

무슨 본색일까요? 영웅본색일까요? 짧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글의 품격이 없다.
'전경련 장학생이 총학회장'이 되었다고 공격하는 거냐?
무슨 근거로 경영대가 대학 먹여 살려주는 학부라고 단정하는 거냐?
니가 열심히 사는 대학생이길래, 졸업한 선배의 장학금도 이어줬잖느냐, 기업의 장학금 말이다.
구분도 못하는 어린 학생이라면서 같이 공부하는 애들을 바보로 만들다니 지독하게 오만하구나
니가 그렇게 많이 아느냐?
니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 관용이 없냐.
생각이 다른 거다.
제가 가만히 듣고 있을리가 없지요. 간만에 열좀 올렸습니다.

패러디 글에 품격을 바라십니까?
사상의 관용을 바라시는 분이 표현에 대한 관용은 없으십니까?
경영학과를 학부를 넘어 단과대로 만들고 타 과의 정원을 축소하면서까지 경영대 허용인원을 늘리는 것이 '먹여 살리는 게' 아니면 무엇입니까?
교수님이 아는 것 많으셔서 절 가르치려 드는 것과 제가 같이 공부하는 애들이 '어리다'고 한마디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내부고발자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용은 상대가 관용의 의지가 있을 때 하는 겁니다.
다름과 틀림은 엄연히 다릅니다.
아시다시피. 전 싸가지 밥말아 먹고,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보다 불합리한 건 못 봐주는 지랄맞은 성격입니다. 제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을 교수님에게 '대드는' 성깔은 지독하게 오래된 것이지요.

고등학교 때, 교감선생님이 좀 불합리한 지적을 반 학우 모두에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교무실로 불려가 교감선생님이 타이를 때, 이런 얘기를 하셨더랬지요.

'그건 소영웅심리다. 애들 앞에서 어른에게 대드는 것이 또래에선 '우월감'을 줄 수 있다. 네가 아이들 보다 어른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런 방식은 옳지 못하다'

당시엔 '우쭐하다'는 느낌조차도 들지 않고, 그저 합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대한 거부감일 뿐이었는데, 내가 아이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거라는 '교사'의 추측은 교육자의 말이기에, 날 관찰하는 '성인'의 얘기이기에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얘기를 직장으로 끌어올리면 이렇게 될 겁니다.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상사에게 '대들지'말고, 조용히 따로 얘기하라고.

이거 완전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조직'이라는 것이, 윗대가리가 안정적이어야 잘 굴러가듯, 윗대가리가 불합리해도, 일단 묵묵히 듣고 있다가, 나중에 조용히 '원만하게'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거라고, 그게 '더불어 살아가는'데 중요한 길이라고.

그런데 갈 수록 그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왜 기득권의 논리를 들어줘야 하는데?'

윗대가리는 윗대가리일 뿐입니다. 우리가 선출한 윗대가리가 아닌 이상, 우리가 그의 '권위'를 세워준 것이 아니라는 거죠.

나는 '조직의 시스템'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득권의 위치에서 자신이 유지해 온 세계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권위로 누르려 하는 자와 그 권위가 비합리적이라고 부정하는 자가 '조용히 만나서' 얘기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거리일 뿐입니다.



위의 제 패러디 글이, '너무 단정적이고, 편견으로 가득찼으며, 관용이 필요하다'고 긴 장문의 답글을 달아준 선배가 있길래, 답글을 달아주었습니다. 선배의 글은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글 보기


교수님의 지적처럼, 제 글이 지독하게 '오만한' 글일지도 모르지요.

지독하게 오만해서, 같은 경영대생으로서 '그렇게 살지마'라고 오만하게 글을 쓴 거겠지요.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니. 제가 그들보다 '많이 안다'고 주장한 것처럼 보이면 그게 바로 오만이 극에 달하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어쩝니까? 사실을 왜곡하는 기업가의 나팔수나, 불합리하다고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교수님의 권위주의나 전부다 어처구니 없어서 또 이렇게 '품격없는' 글을 써대니 말입니다.



곧 죽어도 잘못 된 건, 잘못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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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6/02/22 09:04 2006/02/2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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