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단잠에 취해 마냥 베개를 껴안꼬 뒹굴고 있는 시간. 동창 친구 녀석의 전화에 화들짝 일어났다.
"야, OO이가 방송에 나와!"
그 친구는 현재 프로덕션 AD로 취업하여 TV를 모니터링하는 것 같았고, 그러다 보니 K-2TV에서 하는 '박수홍 박경림의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를 보다가 OO의 등장을 목격했던 것이다.
난 눈꼽도 떼지 않은 채, 리모콘을 눌러 그 채널을 틀었다. 마침 프로그램이 끝나면서, 결국 한 커플이 이루어졌다는 내용과 함께, 이루어진 커플이 바로 동창 녀석인 것을 보면서, 간만에 반가움을 찾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알게 된 그 친구는, 집에 컴퓨터를 고쳐주러 가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친구 녀석 누님이 참 살갑게 대해 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떠오른다. 누나만 셋이던가? 둘이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누나만' 있는 집에서 보통 사회적인 '여성스러움'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과 조금 달리, 남성적인 성향을 많이 띄던 아이였다.
고 3 여름, 그 무더운 날씨에, '경찰대학교' 1차 시험을 보러 대구 경찰청에 내려갔던 녀석과 나는 그렇게 서로에게 잊혀져 갔다.
그 친구는 경찰대학 합격으로, 나는 낙방과 동시에 해군사관학교로.
둘 다 제복을 입는 인간들이 되었지만, 결국 나는 한달 한달 아르바이트 수입을 계산하며 바둑 포석 깔 듯 사는 삶으로 바뀌었고, 녀석은 어엿한 대한민국 경찰 '경위' 4년차에 접어들게다.
방송이 끝나면서 듣게된 녀석의 목소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들을 수 있던 '의젓하고 늠름한' 남자의 목소리를 다시금 확인케 해주는, 반가운 목소리였다.
내가 어릴 때, 멋 모르고 즐겨봤던, '유쾌한 스튜디오'같은 프로그램. '결혼 적령기'들이 나와서 '선남선녀'들이 만나 서로를 떠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
그런 프로그램에 어느 새, 친구가 나오고, 연을 찾아간다.
인연은 '필연'이라던가? 내 친구들은 꽤나 많이 결혼했다. 사관학교 동기들은 올해 3월이면 죄다 대위를 달 녀석들이 벌써 중위 2년차에 결혼식을 서둘러 올렸다. 군인은 '일찍' 결혼하는 것이, 生을 위해서도, 미래를 위해서도 무척이나 좋다. 그런 면에서는 경찰도 마찬가지리라.
고향의 대학을 가지 않은 친구들은 벌써 애가 두 셋이나 있고, 설이나 추석에 만나 내가 아직 대학생이란 얘기를 들으면 걱정되는 눈빛으로 소주잔을 건넨다.
결혼 적령기라는 것, 사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니다. 문제는 안 그래도 없는 친구들, 갈 수록 나보다 몇 발자국씩 앞서 있는 그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그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져 갈 내 모습이 불쌍함도, 내 삶이 도태되고 있다는 자격지심도 아닌.
그저 자식 비교를 낙으로 삼았을 내 어머니와 아버지, 동생이 무조건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내 형에게 보여줄 '대한민국 사회의 잣대'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괜스레 미안해 진다.
돈이라도 많이 벌어 떵떵거리게 해 드릴 수도 없겠다. 사회에 미달되는 수준의 '잉여인간'이겠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친구, 프로덕션 AD인 친구, 내가 그토록 타고 싶던 잠수함 타는 친구, 파출소장인 친구.
그 모든 친구들의 '결혼 적령기'를 하나 둘 스쳐가며, 축의금을 줄 때마다. 난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인연'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하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삶을 사는 것 같아, 그들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친구들이여,
당신들의 사랑이 늘 축복되고, 행복하며, 즐거웁길 무척이나 원하고 바란다.
우리네 젊음의 끄트머리에서, 조용히 뒤돌아보며 잔을 기울일 수 있길 바라며.
늘 행복하고 행복하시라.
Posted by 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