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전 분명 교양 생명공학을 수강신청했습니다만.....

내용은....

이게 무슨 교양입니깟 전공이짓....orz

고등학교때 화학 관심 안가진것..... 정말 잘못했습니다 -0-

최대한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을 기억에 살려 제가 이해한 대로 적어보았습니다.

고로.... 틀린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없을 거라는 어설픈 자신감에.....orz

중간에 나오는 '암호'라는 용어는 DNA를 구성하는 염기서열 AGCT(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의 조합으로 인해 나타나는 '암호'를 뜯하는 것입니다.

그냥..... 머리도 식혀보실...... 퍼버벅... -.@

걍 읽어보삼 --)a

1. Replication이란?

Replicaiton, 즉 DNA의 복제는 세포가 증식을 위해 분열하여 두 개의 세포로 나뉠 때, 두 딸 세포(daughter cell)가 동일한 유전물질을 갖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복제를 위해서 두 가닥의 DNA는 먼저 한 가닥씩 나뉘어지게 된다. DNA가 ‘질소성 염기와 결합된 오탄당과 인산기’로 이루어진 뉴클레오티드(nucleotide)의 집합체인데다가 이 뉴클레오티드는 염기간에 수소결합으로 쌍을 이루기 때문에, DNA는 퓨린과 피리미딘이서 늘 염기쌍을 이루며, 이중 나선의 일정한 직경을 유지한다. 이런 염기쌍 규칙에 의해 DNA의 두 가닥은 서로 상보적이며 역평행을 이룬다. 고로 분리된 각각의 가닥은 복제과정에서 새로운 가닥의 합성을 위한 주형 DNA로 작용하게 된다. 원래의 가닥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읽어내며 대조해서 복제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복제 기작을 반보존적 복제(semiconservative replication)라 한다.

복제의 시작은 DNA 헬리카제(DNA helicase)와 DNA 토포아이소머라제(DNA topoisomerase)가 복제 개시점(origin of replication)이라 하는 특수한 부위에 결합하여 두 가닥을 분리시켜 나가면서 시작된다. 이렇게 Y자로 분리된 두 가닥의 접합지점을 복제 분기점(replication fork)라 하는데, 여기서 주형 DNA가 변성되고, DNA 헬리카제가 복제 개시점 전방에서 DNA의 꼬임을 풀어주고, ATP를 가수분해 한다. DNA 토포아이소머라제는 가닥이 풀릴 떄 생기는 과도한 꼬임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단일가닥결합 단백질(single strand binding protein)이 분리된 가닥에 결합하여 그 상태를 유지시키며 안정화한다. 이 상태에서 DNA 중합효소가 각각의 단일가닥에 결합하여 가닥을 읽어나가면서 새로운 가닥을 중합하고, 염기쌍 규칙에 의해 새로운 가닥의 말단에 뉴클레오티드가 더해지면서 중합반응에 의해 상보적인 딸 가닥(daughter strand)이 형성된다. 추가되는 뉴클레오티드 5’ 말단의 인산기가 복제되고 있는 DNA 가닥의 3’말단 수산화기와 결합한다.

이와 같은 복제과정에서 DNA 중합효소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주형가닥을 3’에서 5’으로 읽어나가면서 딸 가닥을 5’에서 3’으로 합성한다. 따라서, DNA 중합효소가 5’에서 3’ 방향으로, 즉 복제 분기점 쪽으로 진행하며 연속적으로 합성하는 선도가닥(leading strand)과 복제 분기점 반대방향으로 오카자키 조각(Okazaki fragment)을 만들어 진행하며 불연속적으로 합성하는 지연가닥(lagging strand)으로 나뉘게 된다.

복제가 시작되기 위하여, 주요 복제효소인 DNA 중합효소 III는 복제 개시점과 상보적인 작은 RNA(ribonucleic acid) 개시체(즉, RNA primer)를 지연가닥에서 필요로 하게 되는데, RNA 개시체는 프리마제(primase)라는 효소에 의해 합성된다. 이렇게 조각 조각으로 중합되는 지연가닥에서 DNA 중합효소 I은 DNA 수선기능을 갖는데 RNA 개시체를 제거하면서 생긴 간격을 메꾸어준다. DNA 리가아제는 지연가닥에서 새로이 합성된 DNA 조각을 연결시켜준다.

원핵생물과 진핵생물 복제의 꼬임모형에서는 지연가닥이 휘어져서 DNA 중합효소가 지연가닥과 선도가닥을 같은 방향으로 중합할 수 있다.



2. Transcription에 대해 설명하시오.

생명공학의 전사란 DNA 주형으로부터 RNA 중합효소(RNA polymerase)에 의해 촉매되는 RNA 합성으로, 전사과정에서 DNA에 저장되어있는 유전정보는 상보적인 RNA를 합성하는데 사용된다.

RNA 중합효소는 유전자 시작부분의 바로 상류 쪽에 있는 특정 염기서열을 인식하는데 이러한 서열을 프로모터(promotor)라 한다. 이 프로모터는 유전자의 시작부분을 정확히 RNA 중합효소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원핵세포든 진핵세포든 ‘전사인자’라 하는 단백질이 RNA 중합효소에 결합하여 프로모터를 찾거나 전사를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RNA 중합효소가 프로모터를 인식하여 결합하면, 이중가닥 DNA는 풀리면서 단일가닥으로 나뉘고 그 사이엔 버블이 형성된다. RNA 중합효소는 주형 DNA를 따라 이동하면서 암호화 부분인 주형가닥을 읽어나가고, 5’에서 3’으로 RNA가 합성되면서 3’ 말단의 수산화기에 뉴클레오티드가 신장된다. RNA 중합효소가 종결부위에 다다르면 주형 DNA와 합성된 RNA 전사체를 분리시키고, RNA 전사체가 이탈되면서 전사가 종결(termination)된다.



3. Translation이란?

생명공학에서의 번역이란 전령 RNA(mRNA)의 염기서열을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서열로 바꾸어주는 과정을 말한다. 진핵세포에서는 전사와 mRNA의 가공은 핵 내에서 이루어지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가공된 mRNA는 번역을 위해 세포질로 전이된 후 리보좀(단백질이 합성되는 곳)과 결합한다.

번역은 개시(initiation), 신장(elongation), 이동(translocation) 그리고 종결(termination)의 4단계로 나뉘어지는데 개시과정 중 먼저 리보좀의 소단위가 초기 RNA(시작 아미노산 운반 tRNA)와 결합하고 이는 다시 mRNA의 5’ 말단부근에 결합한다. 이어서 리보좀 소단위는 mRNA를 검색하여 개시암호(AUG)를 찾는다. 이것이 완료되면 리보좀 대단위가 결합한다. 많은 수의 ‘개시인자’ 단백질들이 개시과정에 관여하게 된다.

개시 tRNA의 역코돈(anticodon)은 mRNA의 코돈 AUG와 상보적 염기쌍을 이룬다. 따라서 tRNA는 RNA의 염기 암호를 아미노산 암호로 번역해주는 어댑터 역할을 한다. tRNA에 결합한 아미노산은 mRNA의 유전암호에 배정된 것으로 tRNA의 역코돈이 염기쌍으로 결합한다. 이렇게 tRNA는 mRNA로부터 정보를 받아 해당 아미노산을 리보좀으로 운반하게 된다.

리보좀은 A와 P 부위에 하나씩의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tRNA를 갖게 된다. 일단 개시되면 리보좀은 개시 tRNA와 함께 mRNA와 결합하여 신장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아미노산은 단계적으로 첫 번째 아미노산에 부가된다. 두 번째 코돈에 해당하는 아미노산은 상보적 역코돈을 갖는 tRNA에 의해 리보좀에 위치하게 된다. 상보적 염기쌍이 형성되면 첫 번째 아미노산은 두 번째 아미노산으로 이동되며, 계속해서 두 번째 tRNA에 의해 운반되는 아미노산은 신장되는 폴리펩티드로 이동된다. 이때 아미노산 사이에 펩티드 결합이 만들어지는데, 예컨데 메티오닌과 두 번째 아미노산 사이에 펩티드 결합이 형성된 경우, 더 이상 아미노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첫 번째 tRNA는 리보좀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리보좀은 정확히 하나의 유전암호만큼 움직이는데 이를 이동(translocation)이라 한다. 이제 새로운 유전암호가 노출되면 이에 해당하는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tRNA가 결합하여 펩티드가 신장된다. 결국, 한번에 하나의 아미노산씩 신장된다. 이 과정에 여러 개의 신장인자(elongation factor)들이 관여하는데, 각각은 독특한 개별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신장은 종결암호(UAA, UAG, 또는 UGA)를 만날 때까지 계속되는데, 종결인자들이 종결암호를 인식하여 펩티드 사슬의 신장을 종결시킨다. 리보좀은 소단위와 대단위로 나누어지고 mRNA와 tRNA도 분리되어, 새로이 합성된 단백질은 세포 내에서 맡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4. lac operon의 조절기작에 대해 설명하시오.

함께 조절되고 단일 mRNA로 전사되는 몇 개의 인접한 유전자들의 구조를 오페론이라 한다. 구조유전자와 프로모터 그리고 작동유전자(operator)라 불리는 억제자 결합부위로 구성되는데 억제자 결합부위는 프로모터와 겹친다. 억제자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억제 단백질(repressor protein)은 조절 단백질로서 작동 유전자에 결합하여 RNA 중합효소에 의한 전사를 억제한다.

lac operon이란 유당 오페론으로 lacZ(베타-galactosidase), lacY(permease), lacA(acetylase), 이 세 개의 유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유전자들이 유당(lactose)을 흡수하여 포도당과 갈락토오스로 분해하는 효소를 암호화 한다. lacZ는 유당을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하고, lacY는 유당과 다른 당을 세포내로 수송한다. lacA의 기능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유당이 없는 경우 이러한 효소는 불필요하다. 따라서 유당 오페론의 세 유전자는 발현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lacZ 유전자에 의해 암호화된 억제 단백질은 프로모터와 중첩되어 있는 조절유전자에 결합하여 발현을 억제한다. 전사를 위한 RNA 중합효소가 프로모터에 결합하는 것이 방해되어 전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억제 단백질은 두 결합부위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유당 결합부위이고 다른 하나는 DNA의 조절유전자와 결합하는 부위이다. 유당이 결합된 경우 억제 단백질은 조절유전자에 결합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RNA 중합효소가 프로모터 부위에 결합하여 전사가 일어난다. 리보좀은 전사가 시작되면 즉시 만들어지고 있는 mRNA에 결합하여 번역을 시작한다.

이렇게 억제 단백질에 의한 유전자발현 조절을 음성조절(negative control)이라 하는데, 이는 억제 단백질이 있을 때에는 발현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유당 오페론은 또한 양성조절 현상에 의해서도 조절되는데, 이는 특정 조절단백질이 있음으로 해서 유전자 발현이 더 증가되기 때문이다. 특정한 작은 크기의 분자가 RNA 중합효소에 직접 결합하거나 DNA 가닥의 열림을 용이하게 하여 전사속도를 증가시킨다. 대장균은 영양원으로 포도당을 유당보다 더 선호한다. 그러나 포도당이 고갈되면 고리형 AMP(cyclic AMP, cAMP)의 농도가 증가된다. cAMP는 분해산물 활성단백질(catabolite activator protein, CAP)라는 DNA 결합단백질과 복합체를 이룬다. cAMP와 CAP 복합체는 프로모터 주변의 CAP 결합부위에 결합하여 유당 오페론의 전사를 증가시킨다. 그러나 포도당이 있을 때는 cAMP 농도가 낮아지고 따라서 cAMP-CAP 복합체가 형성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전사속도가 증가하지 않는다.

Posted by 함장

2005/04/14 01:52 2005/04/14 01:52
Response
No Trackback , 23 Comments
RSS :
http://harmjang.com/rss/response/282

이거 원 너무 바빠 정신이 없습니다.

다음 주에 퀴즈가 회계원리, 경제학원론 두 가지가 있는데다가, 과제도 쏟아지고 있으니 하루가 모자랍니다.

경제학원론은 연습문제 풀이집이 없는 관계로 쉽게(?)공부할 수 없기에 시간 투자를 꽤나 많이 해야하는데 이거 큰일입니다 그려.

다른 독서 다 포기하고 교재만 읽으려 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란 이유는 아마 그냥 읽기만 하는게 아니라 시험을 대비해 '개념정의'를 갈무리 하면서 읽다보니 더뎌져서 그런가봅니다.

한 챕터가 기본이 50페이지다 보니 상태 메롱에 가깝기도 합니다 --;

각설하고, 이번에도 또다시 '시민사회와 혁명'에서 제가 부여받은 '참고문헌' 요약을 여기 올려볼까합니다.

아직 발표하려면 멀었지만 워낙 과제 같은거 미뤄두는 성격이 아니라서 --;;;



이 글은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서울대 박지향 교수의 "제국주의 - 신화와 현실"이라는 도서의 '5장'인 '제국주의와 경제: 수탈인가 근대화인가' 부분에 대한 요약입니다.

한때, 종군위안부 발언으로 곤욕을 치룬 '이영훈 교수'가 얘기했던 '조선의 근대화'와 요 근래 일본이 우리에게 근대화를 안겨줬다며 장장 몇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했던 한승조 교수.

그리고 곳곳에서 나온 "제국주의가 안겨준 '근대화'라는 꿀물"이라는 것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 더, 반드시 기억하고 읽으셔야 할 것.



'근대화가 과연 좋은 것인가?'라는 의문을 한번쯤 가지고 보시고,

온갖 미사여구를 써도 한 주권국가를 '침략'한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천명하고 요약해봅니다.

그럼 시작해보죠.

흔히 제국주의는 식민지의 자원을 고의적으로 분배하여 식민제국의 경제발전을 돕는 한편, 식민지의 경제발전을 저지하거나 왜곡시킨 것으로 믿어져 왔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럽제국들이 식민지 없이는 산업화를 이룰 수 없었으리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이 문제에 관해 기존 평가가 정확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지향 교수는 유럽의 경제발전에서 식민지가 행한 역할과 제국주의가 식민지 경제발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 사례 연구로서 영제국이 경제적으로 이익이었는가에 대한 최근 학계의 연구 성과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든 식민제국의 식민지들에 대한 총체적이면서 분석적인 연구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박지향 교수는 '제국과 식민지'라는 개념에 대신해서 '유럽과 주변부' 혹은 '선진국과 제3세계'라는 개념을 여기서 사용하고 있고, 이때, 주변부라는 것은 저발전 학파(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의 저발전과 상대적 후진성의 원인을 16~18세기 중상주의 시대에 형성된 국제 무역의 불리한 조건에서 찾으려는 학파)가 사용하는 착취의 대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유럽을 제외한 지역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본론을 살펴보도록 하죠.

1. 유럽의 경제 성장과 식민지

우선 식민지가 어느 정도 제국주의 종주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했는지, 식민지가 없었다면 서유럽의 산업화가 불가능했는지, 혹은 지연되었는지의 문제부터 살펴봅니다.

윌러스틴, 세계체제론이나 저발전론을 주장하는 제3세계 학자들은 원료의 공급지 및 제품의 시장으로서 식민지가 매우 중요했고, 식민지에서 창출된 이윤이 산업혁명의 처음단계의 자본을 제공하는 데 결정적이었으며, 이 관계는 산업화 이전에 이미 성립되었다고 주장해왔는데, 최신 연구들은 그러한 주장이 단지 신화일 뿐이라고 반박합니다. 교통과 통신상의 제한이 있어서 유럽의 전통사회와 식민지의 경제관계는 매우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데다가 오히려 반대의 수순인 '산업화'로 인한 기술혁신이 있은 후에야 서유럽이 세계 여러 영역을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이는 유럽의 전통사회와 식민지의 생활수준과 소비 정도가 큰 차이가 없다가 산업혁명 이후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그리하여 소비가 늘어남으로 인해서 거대한 식민제국이 이익으로 다가오고, 경제적 차이도 크게 발생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식민지와 제국간의 '무역'이 많다면 식민지가 주는 이득이 엄청났을텐데 '산업화'이전에는 해외무역이 극히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얘기지요.

더군다나 산업화에 필요했던 석탄이나 석유등의 동력자원은 식민지로 부터 사들인 것이 아니라 제국 스스로 생산했고, '영국'이나 '독일'은 석탄을 오히려 수출했고, '미국'은 1870년대 당시 최대 산유국이었습니다. 선진국의 에너지 자급자족은 1939년까지 이어졌다는 점을 볼때, 산업화를 위해 식민지로 부터 '원료'를 수탈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죠.

금속자원인 철, 구리, 납, 보크사이트, 주석, 망간 등도 20세기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진 '선진국끼리' 무역을 하였으며, 식민지 없이 자급자족률이 98%에 달했기에 이마저도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잉여상품'의 시장으로서 식민지가 유용했는가? 이것 마저도 그렇지 못합니다. 식민지가 인구가 너무 희박한데다가 시장 기능을 하기엔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이죠.

다른 식민제국국가가 총 수출의 9%를 식민지로 향하는 정도로 미미했다면 유일하게 '영국'만이 총 수출의 40%가 제3세계로 향했는데 이는 영국이 가진 특수성(국민 총 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몫이 타 국가보다 큼) 때문이지 보편적인 '제국주의'에서 보여주는 성향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19세기를 통해 식민제국이 아닌 독일, 스웨덴, 미국 등의 경제성장이 더 빨랐다는 사실이 지적되면서 제국의 '채산성'이 의문시됩니다. 식민지 지배, 제국적 팽창등이 분명 '수익성'있는 사업이긴 하지만 결정적 발전요소는 아니었고, 오히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이 있어서 기술혁신의 동기가 소홀해지는 등의 여파로 '국내투자'를 미진하게 함으로 발전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식민지의 입장에서 제국주의를 살펴보죠.



2. 식민지 경제발전과 제국주의

제국주의의 부정적 효과 가운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하에서의 '탈산업화'인데, 이는 대표적으로 인도의 탈산업화에 대한 영국의 책임이 언급되어왔습니다.

인도의 전통사회에서 직물은 전체 공업제품 생산의 65~7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분야인데다가 인도 수출의 60~70%를 책임지고 있었고, 이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독점 무역권을 통해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1813년 동인도회사의 독점이 끝나자마자 반대로 인도로의 영국 방직산업화의 결과물인 제품들이 수입되면서 인도의 대규모 '탈산업화'를 이끌어내게 됩니다.

더군다나 영국으로 부터 빌린 부채로 인해 매년 이자만 해도 천만 파운드씩 나가고 있었고, 식민통치를 하는 영국인들에게 급여로 매년 천만파운드씩 지출되었으며, 인도 육군을 유지하는 비용도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들임으로 인하여 인도는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죠.

헌데 이는 외부적 요인이고 인도의 노동공급력이나 산업화에 대한 준비 부족, 인도인들의 산업화 의지 부족 등의 '내부적 요인'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기됩니다.

영국의 영향력하에 있던 이집트 경제는 몰락했고, 아르헨티나는 농업국이 되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는 비교적 빨리 산업화했던 것을 볼때, 지역적 상황에 의해 더욱 잘 설명될 수 있다는 얘기로 귀결지어진다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식민주의가 유럽의 경제발달에 기여했다 해도 그 기여도는 매우 낮았고, 경제적관계에 있어서 한쪽의 이익이 반드시 다른 쪽의 손해일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단 얘기입니다. 나아가서 동기는 상업적 목적이었지만 식민지 지배자들이 식민지에 사회 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결과를 나타내면서 독립국보다 빠른 자본구축을 이루었다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분명히, 유럽 식민주의의 부정적 결과는 경제적 영역을 넘어서 종교와 언어를 포함한 중심부의 문명을 식민지 주민들에게 부과하려고 시도하고, 인종, 기원, 종교를 근거로 식민지 주민들을 차별하고 중심부 사람들을 선호하는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적 독립의 상실과 개인적 자유의 제한이라는 것이죠. 거의 모든 제국주의가 피지배자들에게 물질적, 심리적 고통을 야기했던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죠.



3, 영제국의 경제적 수익성

1) 상품 및 자본시장으로서의 가치

타 제국과 식민지와의 수입,수출량을 비교해 볼때, 식민지는 원료 공급지나 수출 시장으로서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될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심지어 '폭발적인' 인구 이동도 없었기에 '이민'을 위해서도 식민지는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헌데 해외투자가 급증한 시기에 바로 제국주의적 팽창이 일어났기에 자본시장으로서의 식민지의 가치에 대해 관심이 기울여지는 것은 눈여겨 볼만 할겁니다.

그런데 1870년대까진 해외투자와 국내투자가 비슷하게 이루어지다가 이 시기를 고비로 해외투자는 증가하고 국내투자가 감소함으로 인하여 영국의 경제성장이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저 해외투자 중 1/4 미만이 식민지에 투자되고 투자가들은 식민지 보다는 해외 독립국가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 얘기는 영국 자본이 식민지로부터 '착취'하여 높은 수익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 무역과 투자 모든 면에서 제국시스템은 영국 경제에 이익이었음을 볼 수 있는데, 어떤 학자들은 영국이 식민지와의 교역에서도 자유무역 원칙을 고수하고 경쟁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식민지'라는 것이 제공하는 특별한 이익이 없었다고 주장하며, 식민지와의 교역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영국 경제는 성숙한 경제이기에 충분히 다른 해결책을 강구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 하면서 '정치적 개체'로 존재시켰기에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적 제국에 국한된 이야기고, 직접적 이익외에도 전세계로 퍼져나간 식량과 원료개방이라던지 생산비용 절감등의 '효과'로 수입에 크게 의존하던 영국의 수입액이 줄고 무역수지도 개선되는 점을 본다면 제국시스템이 이득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봐야겠죠.

그러나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식민지가 접근이 쉬운 시장이라는 점으로 인해 '세계 경쟁 구도'에서 일찍 탈락하는, 제국시스템으로 인해 경쟁국들로 부터 도태되는 단점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게됩니다.


2) 방위비

분명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제국은 우리가 익히 보아오던 것과 달리 큰 액수는 아니지만 식민지로부터 경제적 수입을 얻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 제국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 수입보다 적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방위비를 들여다 봅니다.

1860년도 부터 1912년도까지 국방비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영국이 37%, 해외 독립국이 32%인데 반해 영국의 자치령은 4%, 영국의 직할식민지는 6%, 인도는 33%를 지출하고 있었습니다.

자치령과 직할식민지도 이론상으로 30%가 넘는 지출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영국국민이 대신 부담해주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점은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치령과 직할식민지에 대해 단순비교 형식으로 국방비를 맞추어봐선 안된다는 것이죠.

심지어, 인도가 영국의 해외원정에 참여하고, 자치령과 직할식민지의 자원이 병참으로 공급되고, 군사력이 보조되는 것을 볼때, 영국민이 부담했던 방위비의 두배에 가까운 혜택을 돌려받았다고 봐야 한단 얘기입니다.

그리고 영국이 지원병제도라서 임금자체가 비쌌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헌데 이 영국민에게 많은 부담을 안겨준 방위비가 결국 누구에게 이익으로 돌아갔는지를 따라가보면 '신사적 자본가들'이 나오게 됩니다.

신사적 자본가들은 지주 등의 엘리트 층과 런던 거주의 상인들을 포함안 집단으로서 '자유무역'으로 인한 '이익'을 노려 영국해군력의 우세를 위해 방위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제국의 세력확장을 통해 '해외투자'로 수익을 앞세우고 '국내투자'의 감소로 산업적 지위가 쇠퇴하는 시점에도 꿋꿋하게 금융자본의 수출로 적극적인 확장을 펼쳤습니다.

이런 성공이 결국 독일과의 적대감을 조장하게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야기되었다는 결론도 도출됩니다.

저런 투자를 즐기던 자본가들은 영국 국민 총소득의 40~45%를 차지하면서도 세금은 전체 세수입의 11%만 부담함으로 인해 영국국민들에게 크나큰 부담을 지우고,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에 급급해 영국이란 전체 사회에 큰 손해를 안겨줍니다.



이로써 제국의 경제적 유용성이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다는 것을 둘러보았습니다. 제국주의의 주된 목표가 자유시장에서의 가격으로 구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부와 노동을 차출하는 것인데 그 실제 결과는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국민 다수는 제국을 확장하고 운영하고 방위하는 부담을 떠맡았고, 반대로 상인들, 기득권, 엘리트 등 일부만 이득을 얻습니다.

지배자도 피지배민도 이익을 본 소수와 손해를 본 다수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비록 세계체제론이나 저발전 학파의 주장이 과장된 것임을 밝혀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이나마 그들의 주장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이유는 제국주의의 부정적 효과에 대한 도덕적 비판이라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물론 제국주의는 단지 경제적 효과에 의해서만 평가될 수는 없는 현상입니다. 비록 식민지 사회가 사회 간접자본의 확충과 같은 어부지리를 얻었는지는 몰라도 다른 한편으로 피지배민이 겪은 결핍과 상실은 다른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기억되어야 합니다.



- 아 너무 졸립니다. 내일 일어나서 보면 요약이 완전 엉망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

Posted by 함장

2005/03/24 01:41 2005/03/24 01:41
Response
No Trackback , 7 Comments
RSS :
http://harmjang.com/rss/response/272

아~ 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던가~

우리는 패러디와 성담론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땅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ㅠㅠ)b

자~ 짬지사장님께서 직접 공언하신!

정기구독자 100명 확보 후 PC사라 발간!!!

짬지닷컴 짬지사장님의 발언에 대한 확인사살용 글 보러가기



자~ 블로거의 힘이여!

우리 한번 힘을 모아봅쉐다 ㅠㅠ)bb

정기구독자 100명 서명운동에 동참하여

짬지사장님의 번뜩이는 위트와 유머, 날카로운 꼬집기를 통해 밝은 세상에서 우리의 즐거움을 논하는 날을 만들어 봅시다~ ㅠㅠ)b



정기구독자 100명 서명운동 하러가기


Vex님의 삽질로 인한 링크 수정....orz

Posted by 함장

2005/03/08 23:11 2005/03/08 23:11
Response
No Trackback , 5 Comments
RSS :
http://harmjang.com/rss/response/265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나 근래에 나온 내셔널 트레저를 보면 미국인은 전 세계의 유물이 마치 자기네 것인냥, 세계인 모두에게 주어야 할 공동의 유산이라는 나름의 주장을 펼치며 '박물관'을 외칩니다.

도굴되어 밀거래되고 숨겨지는 것 보다야 나을겁니다만. 마치 그것이 '미국인'의 역사인 마냥 포장될때의 기분이란 참 묘합니다.

일례로 유럽이야 원래 이집트에서 강탈해간 오벨리스크를 세웠으니 뭐 그러려니 합니다만 미국은 아예 워싱턴DC에 제일 높은 이집트 양식의 오벨리스크를 세워둠으로써 유럽과 '걸맞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양 폼을 재기도 하지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와 달리 200년의 역사를 가진 그들이지만, 세계에 대한 우월감 하나로, 인디언의 역사까지도 송두리째 뽑아먹어버리는 그들의 '개척정신'에 조용히 중지를 들어올려 한방 먹이고 싶기도 하죠.



이집트의 유물 도굴은 아주 오래전 부터, 유럽의 침략이 있기 전 부터 존재했습니다.

부장품이 워낙 고가인데다가, 원래 돈과 권력을 가진 녀석들이 죽어갔으니 그 '부'로 치장된 것을 꺼내어 내다 판다면 분명 큰 이득이 되겠지요.

아직도 이집트의 농부들은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합니다.



유럽의 사람들이 고대의 유물에 그토록 집착하고, 미국인들이 '역사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이 늘 찜찜하게 여기는 '역사의 빈곤'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서양의 정복사가 늘 동양에 눌리고, 오리엔탈리즘이 아직도 신비스럽게 느껴진다는 그들의 모습에선 그런 '동양'의 문화에 대한 경외감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역시나 고고학자들의 놀라운 집념은 과거를 다시금 '복원'해내는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씁쓸함이 묻어나오는 것은.

루브르 박물관이든 어디든.

왜 그렇게 남의 유물에 집착을 집요하게 보이는 것일까요? 서양사람들은 말입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우리 직지심경이나 좀 뱉어내지 --)a

Posted by 함장

2005/02/15 18:17 2005/02/15 18:17
Response
No Trackback , 15 Comments
RSS :
http://harmjang.com/rss/response/254

학교가는 길이 꽤 멀어, 올 한해 시공디스커버리 전권을 읽어보겠다는 말도 안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분명 1권 후미엔 총 115권으로 되어있던것이, 4권을 보니 118권으로 늘어나 있는 것을 보며

'끝은 어디에?'

라는 의구심을 가짐과 동시에 올 한해 목표를 전면 수정했습니다.



상형문자와 설형문자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의 타이포그라피까지 아우르는 '문자'에 대한 총체적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을 통해서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문자를 통해 '기록'이 남겨짐으로 인하여 생겨난 새로운 권력층과, 그 권력이 '문자의 대중화'를 통해서 얼마나 퍼져 내려왔는가를 생각해보자. 결국 '만인 평등의 길'은 지식의 전체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멀고도 험난한 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지론에 더욱 가까워지게 한 것 같습니다.



진흙, 석판,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에 이어 현대엔 자기저장장치에 0과 1의 숫자로 비트화된 글들이 저장되면서.

그리고 '펜'으로 쓰던 것이 이젠 자판을 두드리며, 시각엔 나타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글들의 나열이 '시각'으로 판별할 수 없는 저장매체에 기록된다는 사실이 상당히 흥미로운 변화라고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중세 필경사들의 '원본'을 복기하는 작업을 보면서, 오늘날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펌질'이 매체의 접근성이 용이함으로 인하여 얼마나 '가볍게'이루어지는 가에 대한 고찰도 해보게 되는 꽤 괜찮은 독서였던것 같습니다.



출판기술이 발달하면서, '원본을 복사하는 일'보다 '창작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펜'의 사용이 늘어났음을 보면, 과연 이 무한한 웹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무수한 펌질 사이에서 웹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창작자'들의 지위는 과연 '권력을 가진 자'일까요? 아니면 그저 평등한 'Provider'일까요?



이미 대세는 '접근성이 용이한' 온라인으로 기울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종이로 된 '출판기록물'이 무척 중요하며, 앞으로도 지속될거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으나, '문자'를 통한, 지식의 유포로 '권력'을 쥐고 흔드는 세력은 이제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대 메이저 신문사가, 광고 시안을 가지고, 대행사가 찾아오길 느긋하게 기다리던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전화해서 '광고 확실히 마감전에 가져오실 것인지?'를 물어보게 되는 우리 시대의 흐름속에서.

이젠 '문자'로 일방적 정보전달을 행하던 오프가 쇄락하고, '격전의 토론잔치'가 벌어지는 온라인이 새로운 흐름으로 탈바꿈하면서.

더 빠르고 신속하며, 편협한 기자의 눈이 아닌 수 많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통해 출품되는 정보들의 신빙성을 여러각도로 검증할 수 있는 하나의 '망'이 구성되고 있는 시대.

'문자'가 문맹탈출을 넘어서, 지식과 정보의 교류로 자유롭게 구사되며,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노출 시킬 수 있는 시대.



출판력이 가진 막대한 힘. '문자 유포, 정보 유포'의 독점이 가져오던 큰 폐해들.

온라인시대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위의 폐해들이 가진 문제점을 극복하여 문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토론을 통해 더 나은 정보와 견해를 피력할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자가 가진 능력, 그것으로 이루어진 정보, 정보의 광역교육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성향 발전.

이런 단계가 '급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는 '온라인 시대'는. 어쩌면 너무 빨리 발전해와서 무리가 생긴 '지구촌'의 시급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희망의 장일지도 모릅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읽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Posted by 함장

2005/02/03 15:57 2005/02/03 15:57
Response
No Trackback , 5 Comments
RSS :
http://harmjang.com/rss/response/249

유시민氏의 책들을 다행히 머리가 굵어진 뒤에 읽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집과 독선에 빠진 그들의 '그건 유시민식 이야기고'에 반박할 수 있다는 점은 유빠인 나에게는 일종의 무기와도 같은 점이니까요.

가끔 내가 읽어본 적도 없는 '유시민식 글'들의 논조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넌 유빠야', '유시민의 色을 많이 탔군'하면서 가볍게 웃어넘기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한마디 아니 내뱉을 수 없지요.

'그래? 그럼 이 얘기가 틀렸어?'

합당한 얘기가 아니라면 반박을 하세요. 내가 유시민氏의 글을 읽지 않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요?

'왜 비슷한 얘기를 할까?'

라고 말입니다. 결국엔 합당한 이야기는 그런식으로 통하게 되어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왜 책이름이 '거꾸로' 읽는 세계사 일까요?

무엇이 '거꾸로'라는 것일까요?

인류의 20세기, 한 세기를 전 세계의 절반을 붉은 깃발로 덮게한 '사회주의'가 무조건 나쁘며, '공산주의'는 사회의 극악이며, '빨치산'은 무조건 쳐죽여야 하는.

승자와 강자의 논리의 극점에 서서 바라보는 이 시대 한국인의 왜곡된 시각을 타파해보고자 다른 시각을 찾아보는 노력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굳이 다른 시각을 찾아봐야 하는가요?

상대에 대한 이해, 역사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만이 해답을 찾아낼 수 있는 길입니다.

흔히들 '빨갱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당신들. 과연 왜 '사회주의' 이론이 생겨나고 그 이론에 그 수많은 농민과 노동자들이 동조하며, 전 세계의 절반을 사회주의 체제아래 한 세기를 보낼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바보였을까요?

강자들의 논리로 점철된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왜 그토록 도의적인 부분들을 무시해 가고 있었을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면, 더불어 평화롭게 살줄을 알아야 합니다.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가 '영토욕'을 비롯한 '침략욕'에 불타고 있다고 착각하는 당신.

이미 공산주의는 실패했고, '사회주의 국가'는 해체되어가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빨갱이'를 외치는 당신.

팔레스타인들의 눈물과 흑인들의 절규, 북아일랜드 사람들의 '대영제국'에 대한 항쟁 등등.

약자의 입장을 이해치 못하는 당신들의 모습에서. 고소를 머금케 만드는 이 사회에서.

그나마 저 지식소매상의 책 한권이 아직도 '베스트셀러'에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Posted by 함장

2004/08/03 11:50 2004/08/03 11:50
Response
No Trackback , 12 Comments
RSS :
http://harmjang.com/rss/response/127


블로그 이미지

수정 자본주의자의 삶

- 함장

Archives

Authors

  1. 함장

Calendar

«   2010/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1886600
Today:
99
Yesterday: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