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 도서 대여점에서 가장 불티나게 인기 있었던 밀리터리 소설은 단연 '데프콘' 시리즈였다. 이 좁디 좁고 외세의 침략만 받아온 나라가 중국과 맞짱뜨고, 일본과 맞짱뜨고. 나중엔 미국 본토까지 진격한다.

김구 선생을 근대의 민족 최고 지도자로 생각하던, '민족주의자'이던 내게 그 소설들은 질풍노도 청년의 심장을 4기통 모터바이크 엔진 피스톤 뛰듯 뛰게 만들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데프콘 시리즈를 쓴 사람 중 김경진 氏와 진병관 氏는 '동해'라는 잠수함 전투 소설을 써내었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해군의 '저력'이 어디서 나와야 하는지 국민들에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난 보일러도 안 들어오는 자취용 독서실 TV방에서 담요 위에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50년만에 정권 교체를 이루는 역사적 사건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전 정권이 만들어낸 IMF위기 덕분에 더욱 더 추운 겨울을 보내며 고3을 맞이했다.



진로 따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수능 400점 만점을 맞아 국립대를 들어가 4년 장학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주거비와 생활비가 감당이 안 된다. 그 IMF 시기에 어디에 담보를 잡히고 어디에 돈을 빌려서 '대학 따위'를 간단 말인가.

수능 모의고사 수학을 80점 만점에 평균 45점을 유지하는 실력으로 경찰대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다. 1차 시험 통과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다.

덕분에 내 고3 여름은 얇은 수학 문제집 2권과 낮잠으로 가득 채웠다. 독하게 공부하기엔 허연 여백의 검은 글씨가 너무도 눈을 아프게 하여 감는 것이 좋았다.

그나마 수학의 정석 집합 부분처럼 때만 태우지 않고 2권을 끝까지 잘 푼 덕분에. 수능에서는 67점을 맞는 쾌거를 이룩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높은 점수를 맞고도 담임 선생에게 들은 것은 칭찬도 아니었다.

"사관학교 갈 늠이 점수가 이리 잘 나오면 너보다 낮은 애들이 고생하잖아 임마."

그렇다. 더군다나 5공화국 시절도 아니니 '육사'를 나온다고 좋은 대우 받는 세상도 아니었다.



내가 해군사관학교를 택한 이유는 순전히 위에 언급한 '데프콘' 시리즈와 '동해'라는 밀리터리 소설 때문이었다. 물론 IMF가 아니었다면 난 '사관학교'를 선택할 이유조차도 없었다.

내가 조국의 미래와 안녕, 끓어오르는 애국심으로 사관학교를 택했다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개그다.

내 학창시절의 애국심을 일깨워주는 것은 '애국조회'도 아니었거니와 오히려 성조기를 앞세워 '미국 만세'를 외치는 헐리우드 영화에 내 조국을 투영시켜 얻어낸 '만들어진 애국심'이었다.

경찰대 입시에 떨어지자 3개 사관학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공군은 시력 때문에 제외. 육군과 해군 중에 해군을 선택하게 만든 것이 고작 두 종류의 '밀리터리 소설'이었다. - 고작이란 표현을 썼음에도 난 여전히 '데프콘'과 '동해', '남해'를 쓴 진병관 氏와 김경진 氏의 팬이다. 아마 내가 TV 드라마를 만든다면 이우혁 氏의 '퇴마록'과 함께 위의 소설들을 만들고 싶을 정도니까. -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이 '군대'를 갈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묻고 싶다. 긴 시간 동안 사회와 단절되어야 하며, 남들이 무언가 '발전'하고 있을 때 자신이 동떨어진 사회에서 기존에 살아오던 사회의 시스템에 '정체'되어야 한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그 얼마나 두려웠던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이 '첫 취업'을 할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묻고 싶다. 아무 데나 공채 자리가 날 때마다 되는 대로 꾸역 꾸역 자기소개서를, 원서를 써 넣진 않았던가? 그러면서 막상 자신이 '찝찝해 하던' 직장에서 덜컥 합격 고지가 들어오고 그리 내키지 않는 직장에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이 바닥'에서 살아야하는 그 숨막히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사관학교란 그런 곳이다. 채 고등학교 졸업식도 하기 전에 '가입교'를 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입교와 동시에 4학년의 소위 임관식에 내려올 '국가 원수'를 맞이하려 분열 연습만 하다보면 어느 새 일상 생활은 군인이며, 꽃피는 봄이 와서 학과 수업이 시작 되더라도 취미 생활 수준이 되기 쉽다.

이게 사관학교 문제일까?

육군은 '육사', '3사', '학사장교(OCS)', 'ROTC'까지. 임관 경로가 많다보니 육사 졸업 후 의무 복무 기간 후에 잘릴 것을 대비해서 3학년 정도 되면 다른 자격증 공부하는 애들도 많았었다.

공사야 'Pilot'이 되면 취업 걱정은 안 한다고 봤을 정도였으니 당연히 날라리도 많았겠지만. 내부야 어쨌든 외부인의 시각으로 '날라리'라고 폄하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개방적인 동네였다.

해사는 말 그대로 군대였다. 육사나 공사는 아예 자체 캠퍼스였지만 해사는 출입구 자체도 행정학교와 56전대를 같이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해사출신 90%이상이 20년 이상 근속을 하는 곳이 바로 해군이었다.

이 모든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체제' 속에서 살다가 어느 새 갑자기, 막 성년이 된 나이에. 크게 룰을 어기지만 않으면 평생 직장이 될 법한 자리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군대를 갔다 온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취업 연령은 27~29세가 될 것이다. 이 중에 미래에 대한 고민, 자기 설계 등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믿고 싶다. 나도 이제 어렴풋이 그 속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속으로 자문할 정도니까.

하지만 사관생도들은 이미 20대 초반에 자신의 미래 직종이 결정되어 버린다. 물론 그 속에서도 병과가 있고 자신이 원하는 걸 지원할 수는 있지만. 지금의 우리 일반인을 돌아보라.



홍세화 선생이 자신의 자녀들을 파리에서 키울 때, 중고등학생인 자녀들이 스스로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얘기하였다. 물론 지금 성장한 아이들도 그 때와 '동일한' 사고 과정을 거치면서 논리를 펴진 않겠지만, 어릴 때부터 학습된 논리적이고도 정연한 사고 구조는 훈련될수록 더욱 빠르고 정확해질 수 있다.



나는 늘 살아가면서 '계속 변하기'를 원한다.

어떤 사람들은 '초심'을 잃지 말자고 얘기하는 데 거기에 비춘다면 내 '초심'은 늘 '깨어있는 채로 변하고 또 변하자'가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처음처럼 나를 지켜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는 것 같다.

당장에 나를 보면 그렇다. 가장 처음에 언급했던 '민족주의자'던 내가 현재는 '민족주의자'들을 혐오하고, 심지어 '국가주의자'들까지도 혐오한다. 그러나 나는 '애국자'다. 내가 가진 경제력으로 이 나라를 벗어나서 이러한 삶을 누리기란 어렵기 때문에 나는 이 나라가 '건전한 방향'으로 잘 되길 바라므로, 나는 애국자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옳다거나 내가 믿는 바가 절대적이라는 생각 자체가 글러먹은 거다. 얼마나 인간의 '이성'에 합치하는가와 같은 '원칙'조차 없는 맹신은 썩을대로 썩은 종교와 무엇이 다르던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대부분 아집이다.



고작  몇 년의 시간 동안 나는 국가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인간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뭔지 고민하는 인간에 이르렀다. 그리고 난 아직 20대다.

내가 해사를 떠날 때 4중대 훈육관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어쩌면 사관학교를 나와 줄곧 군에만 있던 훈육관님 자신이야말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어느 해사 동기생의 결혼식 날 만났던 동기는 내가 사관학교를 때려칠 때 같이 때려쳤어야 했다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어떤 해사 동기생은 오늘도 국가의 안녕을 위해 늘 '패기에 찬 이정재'처럼 열심히 살고 있다.

우린 스무 살에 그토록 함께 뒹굴며, 전우애를 외치며 이 나라의 'A few good men'이 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엔 스스로가 가진 직장에 대해 만족하거나 괴로워하는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있다.



조선일보에서 2004년에 언급되고 그 뒤에 동아일보에서 근래에 '재탕'을 해먹은 '2004년 육사 가입교 생도 34%가 미국을 주적으로 생각한다'는 칼럼은 내가 봐도 역겹다.

그 가입교 생도들이 현재의 4학년일텐데, 이들이 저 생각을 사관학교 4년의 커리큘럼을 통해 바꾸었으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는 저 질문에 '잘린 부분'이 '미래의 주적'이든 '현재의 주적'이든 간에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가장 안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나랑 내기해도 좋은데 저 생도들이 저 질문에 저렇게 답한 이유는 '전교조' 교사는 커녕 내가 위에 언급한 '데프콘' 때문이라는 게 더 설득력 있다. - 참고로 '데프콘'의 저자이자 '동해', '남해'의 저자인 진병관 氏와 김경진 氏는 해군의 초대로 내 동기들 4학년 원양 실습 때 함께 동행 취재가 허락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모든 건 교육과 사회의 시스템 문제다.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과정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 이 아이들이 '대학'을 갈지, 아니면 성인이 되면서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이 없다.

그 뿐인가? 학력 인플레가 만든 '대학=취업학원' 시스템은 이 사회 전체를 갉아 먹으며 대한민국호를 침몰시키고 있다.

그나마 재수에, 삼수, 거기에 해외 어학 연수, 군대, 졸업하면 서른인 대학생이 늘어가는 데도 이 나라의 취업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인다. 경제 인구에 편입되는 것이 늦어질수록 나라는 약체로 굳어져만 간다.



그런 여건에서. 공사 4학년이면 고작 스물 셋, 재수에 삼수를 했다 해도 스물 다섯.

그 나이에 군대와 같은 커리큘럼에서. F-15K가 살인 기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보는 건 나 뿐인가?

오히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똥인지 된장인지 뭣도 모르고 진보와 보수조차 구분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더욱 늘어가는 세상에서.

엉뚱한 데서 튀어나온 희망이 더 우울하게 느껴지는 것도 나 뿐인가?



F-15K가 전쟁을 억제하여 '활인'을 하는 게 아니다.

평화에 대한 의지를 가진 '진정한 정치력'이 '활인'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리고 그 진정한 정치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건 '깨어있는 시민'만이 할 수 있다.



저런 '위대한 생도'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더욱 더 키우지 못 하고 퇴출시킨 꼰대들을 보니 앞으로도 갈 길은 멀다.

Posted by 함장

2008/10/14 08:52 2008/10/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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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인간의 존엄

우선 영상 두 개.



본 사람도 많겠지만. 위의 영상은 EBS의 지식채널-e 에 나온 '광우병' 관련 영상이다.

난 광우병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1980년대의 '영국'을 이야기 하려 한다.

위의 영상들의 시초는 모두 영국의 1980년대다. 물론 '미친 공장'의 경우 1970년대부터 시작된 소의 사료 이야기지만 그 배경에는 역시 '인간'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이 있다.

영국은 1970년대 - 1973년과 1979년 - 오일쇼크를 두 번 겪었다. 그 중 두 번째 오일쇼크 덕에 정권이 '철의 여인' 대처에게로 넘어갔다. 물론 이 배경에는 숙련 노동자들이 중산층으로 넘어가면서 '변절'하는 등의 여러가지 사건이 많지만 어쨌든 '경제 위기' 덕분에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복지 따위 집어 치우고 닥치는대로 '민영화'를 시켜버린 대처가 수상이 되어버린 거다.

대처는 이 때부터 1990년 퇴임때까지. 12년을 영국의 수상으로서 온갖 '암울한 일'을 벌였다. 이후에 '토니 블레어' 총리 시대때 대처가 벌여놓은 '경제 호황'을 누렸다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처 덕분에 영국은 빈부 및 지역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고, 영국의 근본적인 경제 문제의 근본은 건드리지도 못 했다.

어떤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경제 발전 시키겠다고 국민을 현혹시켜 당선 되어 놓고 근본적인 문제는 건드리지도 않은 채 '닥치고 민영화'? 더불어 그 뿐인가?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사람'이라는 최대의 가치를 가볍게 다루는 이 '정권'에게 저런 과거의 영국이 걸었던 길이 뻔히 보이지 않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V for Vendetta의 원작인 만화는 저런 '대처리즘'의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동시대를 살던 만화가가 '대처' 때문에 암울한 시대를 한탄하기 위해 만든 거다.

권위주의 정부.

시장 논리를 내세우며 기본적인 '인권' 마저 '국가'라는 명목으로 가볍게 여기고, 무시해 버리는 정부.

더 할 말이 없다.


'사람'을 위해,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을 위해.
우리 조금만 더 '함께' 생각하면 안 될까?

복지를 줄이고, 민영화를 시키고, 빈부 격차를 넓히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아름다운 세상이라 말하고 싶은가?

약육강식의 세상이 '본능'이 아니라 저 빨간 털 원숭이처럼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인간 아닌가?

Posted by 함장

2008/06/03 16:10 2008/06/0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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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 - 20대는 죄가 없다.

일본의 2008년도 2분기에 시작된 드라마 중에 '판도라'라는 것이 있다.

한 국립대 의대 연구원이 '모든 종류의 암'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해버리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는 듯 - 아직 1회까지 밖에 안 나왔지만 이미 1회에 약을 개발했다 - 하다.

감히 건방지게 말하지만, 왜 제목이 '판도라'인지 벌써 깨달은 분들은 그나마 세상 돌아가는 꼴을 어느 정도 보시는 분들이고, 도무지 '왜' 제목이 판도라인지 아직도 감이 안 오시는 분들은 순진하게 세상 사시는 분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가 '사회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면, 아니 적어도 영국이나 유럽의 일부 국가처럼 무상 의료가 진작부터 지원되는 나라였다면 위의 '모든 종류의 암'을 치료하는 약의 개발이 그토록 무서운 '판도라의 상자'가 되진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대한민국과 일본은 그 빌어먹을 '자본주의' 사회에 충실하다 못 해 사람 목숨을 돈으로 따져야 하는 - 일본도 우리도, 암 치료비 때문에 집의 재정이 풍비박산 나며, 이로 인해 돈이냐 목숨이냐를 따져야 하는 더러운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 슬픈 나라가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TV시리즈에서처럼 '모든 종류의 암'을 치료하는 약이 실제로 개발되어버리면 일본은 절대절명절체절명의 위협을 받게된다. 일본의 생명 또는 질병 관련 보험 중 '암'과 관련된 상품은 무너져 버리고 보험의 기능이 무너짐과 동시에 금융권의 악재가 온다. 이와 더불어 '암'으로 인해 죽어나가야 할 예상치의 인구가 급작스레 '살아가기' 시작하고 이 인구는 고스란히 최고령 인구가 즐비한 일본사회에 더더욱 무거운 짐으로 나타나 버리며, 이는 사회의 공멸로 이어지게 된다. 더군다나 이런 일이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암'으로 돈을 벌어먹고 있는 모든 산업에 위해가 가해진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그 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기득권'이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올 수 있을까?

자본주의 국가에서 대의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빌어 기득권이 해낼 수 있는 만행은 인간이 얼마나 '금권'에 타락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약'이 개발되면 손해를 보게 되는 제약사와 병원, 금융권은 연합을 해서라도 후생성을 비롯한 관료들에게 로비를 하여 약이 '절대'로 출시되지 못하도록, 혹은 '출시하더라도 전 재산을 털지 않으면 안되도록' 가격을 조정하게 된다. 이로 인해 '충격'은 완화되고 결국엔 가진 자들의 배를 불릴 지언정, 진정한 '암의 정복'은 결국 '한 과학자의 인간승리'가 아닌 '금권의 승리'로 둔갑할 것이다.



이는 신약 개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엄청나고도 급격한 변화는 언제나 '기득권'을 위협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변화는 새로운 '기득권'을 낳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언제나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욕심'은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버리기 어렵다. 그리고 그 중심은 언제나 기득권의 회유와 협박, 달콤한 유혹에 시달릴 것이다.



또 다시 실망 뿐인 - 이재오를 무너뜨린 문국현 케이스 제외 - 선거가 끝났다. 기득권은 밤낮 안 가리고 국민을 농락했고 국민은 또 다시 무장해제 당하고 멍청히 투표를 하지 않았다. 정치 혐오감이든 나발이든 중요치 않다. 지금의 20대를 만든 것은 지금의 4~50대 부모와 그들이 즐겨보던 조중동이며, 대입 외에 다른 꿈을 꾸지 못하게 한, 기득권이 만들어 둔 시스템일 뿐이다.

20대는 벌 받을 일이 없다.

기득권이 만든 기본적인 교육 시스템조차 파괴시키지 못한 이 사회의 중년들이 이 사태를 고스란히 책임져야 할 것이다.

20대는 분명 책임이 없다.

열 아홉부터 종이 쪼가리 도장 찍을 권한 준다고, 대가리에 똥이 들었는지 글로벌하게 원대한 꿈이 들었는지 따지면 뭐 할 것인가? 그 속에 뭔가 채울만한 그런 기반조차 주지 않은 채 바라는 게 너무 많다. 이들은 그저 이제부터 당신들의 '개발독재' 때처럼, 그렇게 허리 졸라 살면 그만이다.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고 물어 뜯고 살면 된다. 30대들, 자신들도 그런 기반 없이 이 사회를 버텨왔다고 이들에게 '우리는 그랬어'라면서 저항의 삶을 강요할 텐가? 자신들이 읽어오던 '빨간 책'이, 맑시즘이 사회에서 퇴출되고 있는 동안, 당신들이 '밥벌이'에 바빠 신경쓸 겨를이 없던 동안, 이들이 권력에 의해 '취업에만' 힘쓰는 불쌍한 자본주의의 기계가 되어가는 동안.

20대를 비난하지 말자. 이들은 그런 사춘기를 보내고, 남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비극에 놓였다.

이제 고민은 오히려 중년, 당신들의 것이다. 애새끼들은 서른이 넘어도 취업하지 '않은' 채로 집에서 돈 달라 보챌 거고, 의료보험 민영화되어 늙어가는 몸이 아파도 병원은 커녕 약도 못 사고, 연금이고 나발이고 수급액은 줄어들어 결국 피폐한 노년이 될 테니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은 '기득권'이 원하는 방향대로 흐른다. 가끔 변수가 생겨봤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기득권은 '돈'을 가지고 '사람'을 농락한다.

그에 대항할 수 있는, 현실의 유일한 방법인 '대의 민주주의'조차도 결국 '돈'과 '권력'에 농락당하면 끝이다.

슬슬 땅값 오르던 노원구에 노회찬이 아닌 '한나라당 홍정욱'이 됐다.

유시민을 두 번이나 당선시킨 덕양구 갑에 재개발 시기로 슬슬 땅값이 오르더니 심상정이 아닌 '한나라당 손범규'가 됐다.



판도라의 상자에 '희망'이 남았다고 하던가?

그 희망이 의지로 발현되어 결국 우리는 나설 것이다.

투표고 나발이고 언제나 물러나 무임승차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내 아버지 세대의 무지렁이처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결국 짱돌을 손에 쥐고 금권에 타락한 정권에 맞서고 피터지는 사람들이 없는 한 신의 '약'은 일반 국민의 손에 오지 않는다.

내 학창시절을 386, 486 선생들의 아래에서 보냈던 걸 감사해하며.

p.s 시위장에서 자주 봅시다 여러분.

Posted by 함장

2008/04/10 13:44 2008/04/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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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 - 김광석



2002년은 월드컵의 열기와 함께.

내 민주주의 열망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주말마다 벌어지는 민주당의 국민 경선을 신화처럼 바라봤고.

대선 당일 저녁 6시, 엄기영 앵커가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노무현의 당선 예상을 알릴 때 애인과 부둥켜 안으며 만세를 불렀다.

난 언제나.

내 사람들에게.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노무현의 웃음

이 사진 속에는.

내가 바라고 또 바라는.

그런 '사람'이 그대로 나타난다.

소탈했으며.

원칙과 소신을 지켰고.

물러서지 않았으며.

희망을 공유하려 늘 노력해 주었다.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우리는 지금부터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의 꿈을 또 이어 나가야겠습니다.

힘든 10년이 될 겁니다.

Posted by 함장

2008/02/22 22:41 2008/02/22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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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센스 죽이지 않나연?

현역 의원 중 역시 최고!

앞으로도 나올까말까한 - 대한민국 정치 풍토 상 - 의원!

경선은 축제답게!

물론 전 당연히 이해찬 - 정동영이 경선에 1위하는 말도 안되는 사태가 벌어질 경우! -> 문국현으로 급선회 ㅡ.ㅡ

Posted by 함장

2007/09/21 08:07 2007/09/2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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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작동하는 방법

비정규직이든 인턴이든 개나발이든.

일하는 꼴을 봐서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준다는 '악마의 유혹'을 한다.

왜 악마의 유혹일까? - 일하는 꼴을 평가하는 기준은 '악마'의 마음대로니까.

그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지 않고 '해고'시키면서 당당하게 '계약종료'라 외친다.

그렇다. 악마와 계약은 종료되지 파기되지 않는다.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쫓겨난 비정규직이 시위를 하고 지랄을 떤다. 그렇다고 자본이 몸을 드러낼쏘냐?

그저 정규직에게 압박을 가할 뿐이다.

'당장 사측에 유리한 의견을 널리 퍼뜨리라!'

그럼 원래 '아 씨발 좆같은 비정규직 새끼들, 정규직으로 취업도 못하는 주제에'라며 자기 일 불편하다고 수군대던 애들은 얼싸꾸나 도배질을 해대고

'아 씨바 이 따위 것을 왜 시키고 지랄이야'라며 '주인'을 나무라는 '사람'도 몇 있을 것이다.

결국 자본은. 그 자본이라는 '힘'만으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다툼을 이끌어낸다.

꽤 많은 '사람'들에게 쌓이는 것은 노동자끼리의 분노이며, 자본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하더라도. 그 거대한 힘 앞에 주저한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든 나타난다. 북한이 '미제국주의자'들과 맞짱을 뜨는데 항상 남한은 '정규직'과 같은 들러리였고,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죽여패야하는, 선교사업이랍시고 사진 몇 장 기록하여 헌금을 받아 먹는 '기독교'는 어디로 가고 신앙인과 분노자의 대립만 남는 걸까?



soundcard 님이 내 글 중 'RSS, 코멘트 -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글에 트랙백을 쏘셨다. 블로그에 쏟아지는 기독교에 대한 미움, 사람에 대한 미움에 진저리가 나신 모양이다.

박노해의 '다시'라는 시에 대해서 내가 했던 이야기에도 조금 언급했지만. 나는 soundcard 님과는 견해가 다르다.

저렇게 미움 가득, 증오 가득 쌓인 사람도 사람이거니와, 그들의 그런 미움과 증오 속에서도 난 희망을 본다.

사람이라서 화가 나는 거고, 사람이라서 미운 거다.

기독교 자본이든, 그냥 자본이든. 결국 그 자본은 '사람'을 옥죌 것이고. 그 옥죔을 이겨내는데 '분노'로 대동단결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슬픔도 때론 힘이 되고, 증오도 때론 힘이 되며, 분노도 물론 힘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미워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본'을 휘두르는.

기독교 단어를 빌자면 '악마'를 미워해야 하는 것이다.

개좆같은 기독교를 믿어주는 신앙인들 덕분에 우리는 기독교를 멸할 수도 없거니와

그런 종교 덕분에 자본주의 국가에서 그 '자본' 때문에 '사람'이 고통 받는 것도 막지못해 현세를 눈감고 보내면서 영생을 기약하고.

개좇같은 자본가의 위세에 눌린 정규직 덕분에 우리는 비정규직 시위도 비난 받거니와

그런 기업 덕분에 같은 노동자끼리 서로 대치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벌어진다.



내가 사람만이 희망이라 하는 이유는 별 거 없다.

주님의 뜻이 어떻든. 내게 자유의지를 그들의 논리대로 주셨다면.

'같은 사람'으로 세상에 마주 설 기회를 얻기 위해, 사는 게 지옥인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뜻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든, 기독교의 만행을 '원래는 그렇지 않지만 일부 몰지각한...'으로 두둔하는 사람들이든.

결국 싸워야 할 적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인간의 '자유 의지'라는 것에. 나와 함께 연대해서 싸울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것. 그게 내 희망이고. '사람'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다라는 것이 내 희망이다.

자본의 힘에 휘둘리고, 신앙의 힘에 휘둘리고.

그러면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인가? 나 스스로 반문해도 명쾌한 답은 나온다.

Posted by 함장

2007/07/24 21:04 2007/07/2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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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과 자본주의

재무관리 시간이었을게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일수'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자기네 아버지가 영세자영업자였던 학생이라면 알법도 했지만, 뽀송뽀송한 아해들이 알 턱이 없었다. 학생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내게 교수의 시선이 돌아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고, 난 당연히 교수의 의도와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보증이나 담보가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주로 돈을 끌어쓰는 방법이죠. 서민들이 목돈이 필요할 때 자주 손 벌리기도 하고요'

물론 교수가 바라는 답은 그게 아니다. 일수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매월'이 아닌 '매일' 이자가 복리로 붙는 것이 바로 그 '일수'다.



고등학교 미적분이 지나가면 가장 골 아픈 게 바로 저 '복리' 계산이었다. - 물론 며칠 고생 후엔 별 것 아닌 걸 알게 되지만 - 시그마 기호 하나 붙이고 그걸 공식에 넣어 계산하던 그 '복리'도 '월리'를 따졌다.

그런데 그게 '일리'가 된다고 생각해 봐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미 자신이 갚아야 할 금액이 빌린 금액의 두 배가 된다.

그런데도 '쩐의 전쟁' 독고 영감 말마따나. 일수는 서민 경제에 없으면 '큰일' 날 존재다.



민주노동당 말을 빌리자면 이건 순전히 '공공의 기능'을 개무시한 은행의 더러운 욕망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불평등한 요소인 '태어날 때 주어지는 자본의 규모'는 서민들에게 '담보'를 쥐어주지 않으며, 인간의 본성은 성선도 성악도 아니기에 도무지 '보증'을 설 사람도 얻기 어렵다.

'농협'은 농민을 위한 은행이 아니라 농민의 피빨아 먹는 은행이라고 공공연히 회자되는 만큼 - 주변의 농협 관계자 여러분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하게 살자 - 은행은 그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일 뿐, 서민을 위해 손해의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융자해주지 않는다.



아무 것도 없는데. 목돈이 필요하면.

서민은 어쩌겠는가?

복리를 따져 계산하면 엄청 손해다.

그러나 당장 들어갈 목돈이 있고, 매일 몇 천원에서 1~2만원 정도는 갚을 능력이 되는 서민들 - 아마도 하루 품삯의 절반이 넘겠지만 - 은 그렇게라도 끌어 쓸 수 있는 곳에 감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돈 놀이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안 꼬울리 없지만.

그 일수돈의 숨통까지 조여버리면 서민들은 어디가서 돈을 구걸하나?



나는 돈을 역전 시장통에서 배웠다.

그래서 재무관리를 들으면서도 저 따우 '질 낮은' 답변을 골랐다.

배운 사람들 주식으로 돈을 버나.

사채시장 고리로 돈을 버나.

부동산으로 돈을 버나.

돈 놓고 돈 먹기.

다만. 바라는 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有錢無罪 無錢有罪.

국가 시스템이 서민의 '자본'을 해결해주리라는 망상따윈 하지 않는다.

다만 법 앞에서 평등하게 사람다운 대접이라도 받아보고 죽고 싶다.

Posted by 함장

2007/06/26 00:20 2007/06/2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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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있어...

가끔 무슨 재미로 살아가고 있을까란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어차피 태어나서 죽지 못해 사는 거고, 종교인이 만든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게 곧 지옥이라는 생각으로 비참하게 연명하는 것이 현실이라 생각하지요.

왜 비참하냐 하면 우리는 모순 덩어리의 허술한 '국가'라는 단위 속에서 짐짓 선한 표정의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야 하거든요.

아시다시피 전 노빠이자 유빠죠. 그래서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갈수록 슬펐습니다. 커다란 희망 하나가 서서히 죽어가는 기분이랄까요? 실망감이 아닙니다. 내 생에 - 비록 길지 않은, 이제 곧 서른을 바라보는 웃긴 나이지만 - 이런 정치적 희망이 벌써 사라져간다는 아쉬움. 그런 거죠.

저는 과거만을 보고 자랐습니다. 당연히 미래를 볼 수 없으니까요. 머리가 굵어져가면서 어릴 당시에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재조합하면서. 그 과거는 제게 삶의 길을 던져주듯 스승이 되어 버리죠. 역사란 그런 겁니다.

노무현 정권은 모자란 게 많아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에 있어서 아직도 우리네 나라에서 '집회'가 '허가제'인 것처럼 다루어지고 있죠. 헌법에 보장한 권리기에 '신고'만 하면 되는데 말이죠. 그런데도 과거보다 '무척' 나은 정권이라서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물론 노무현 정권이 독재 정권이랑 뭐가 다르냐고 윽박지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 비해서 저는 어느새 '왕창' 보수적인 사람이 된지도 모르죠.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보수적이 되어가면서. 차츰 다음에 들어서는 정권들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처럼, 저도 다음 정권이 마음에 안 드는. 그런 보수가 되어버린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다른 점이 있더군요.

과거로 돌아가긴 죽어도 싫다는 거죠. 구관이 명관인 것도 없고, 늘 부족한 점이 아쉬울 뿐인 겁니다. 그런 부족한 점은 현존 세력이 절대 '정책적'으로 보완할 수 없는 점들이에요. 당연히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죠.

이런데 '보수'라는 단어가 어울릴 수가 없죠. 지킬 게 없어요.



늘 더 나은 삶을 이야기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삶 말이죠.

가볍게 이루어지는 차별. 그 속에 숨은 날카로운 폭력을 볼 때마다 심장이 펄떡펄떡 뜁니다.

젊은 혈기라고요?

이미 제 젊음은 국가라는 폭력 앞에서 무참히 살해된 지 오래입니다.

사람들이 치기 어린 열정으로 치부하는 내 숨 속에 꿈틀대는 분노는 그냥 기분에 따라 흔들리는 불꽃춤사위가 아니라 노도처럼 녹여내며 흐르고픈 용암이고 싶은 겁니다.

빌어먹든 벌어먹든 몸뚱아리 하나 굴려 밥 굶지 않는 법을 알게 된 이후로, 굶는 게 두려워지지 않게 되면서 결국 늘어간 건 건방짐입니다.

원칙에 어긋나고,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고, 최소한의 기본적 소양에 어긋나는 억압에는 직급, 지위 따지지 않고 들이밀고 봅니다.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아닌 건 아니거든요. 좇도 모른다며 구박하는 사람한테는 좇대가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봐야 하는 겁니다.

사는 게 참 복잡하고 어렵다고요? 전 이렇게 사는 게 훨씬 쉽습니다. 내 맘대로 지껄여서요? 절대 아니죠.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어서죠. 타인에게 날이선 비수 같은 말로 찔러대서요? 아니죠. 제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어서죠.



존경하는 분과 대화하면서 '다음 선거에서는 결국 한나라당이 되지 않겠냐'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께서는 지나가는 말로 '그렇구나, 이미 한나라당의 집권이 당연시 되는구나'라며 읊조리셨죠.

충격이었습니다.

이건 완전 패배주의예요. 저 스스로 어떻게 그렇게 나락까지 떨어질 수 있었던 걸까요?

희망이 사그러지는 모습은 그렇게 내면의 열정도 잊게 만드나 봅니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더 지독한 지옥에 살아보지 못 해서 망각하고 있던, 아예 근원조차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불러낼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희망이 사라지면 어떻습니까?

내가 희망이 되고, 날 믿는 사람들이 희망이 되고, 내가 믿는 사람들이 희망이 되고.

사는 데 있어. 그런 희망이 되어가면 될 텐데요.



언젠가. 살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가 생겼던 적이 있죠.

체념하고 사는 삶은 어느새 죽음입니다.

Posted by 함장

2007/06/09 00:58 2007/06/09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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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한 단상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수업 중 과제.
자유로운 주제, 자유로운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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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7월에 개봉한다. 5.18을 배경으로 광주에서 벌어진, 군부독재의 민중 탄압 사건을 극화해서 만든 영화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이 땅에 ‘자유’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화두에서 5.18은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의 개념과 ‘반공’의 개념을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가지는 철학 자체가 ‘자유’와 정반대되는 개념이 아닐진데, 그 ‘자유’를 제한하려는 요소 때문에 싸잡아서 비난한다. 그러나 더 웃긴 것은 ‘자유’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이 자유가 타인에게 방해가 될 경우 ‘방종’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자유의 ‘제제’가 가능하다는 선을 먼저 그어둔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교육인가?

자유라는 것이 가진 광범위한 의미와 그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타인의 피해라는,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의미는 분명 ‘자유’가 가지는 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종족이 사회를 구성하면서 생기는, 서로의 마찰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이 한계는 분명히 어떤 형태로든 ‘제한’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제한’이라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만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정당화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두렵다. 자유에 대한 제한이 ‘정당화’된다는 논리는 어떤 면에서든 악용될 우려가 있다. 인간이 만드는 시스템의 한계는 늘 그 악용과 선용(善用) 사이에서 저울질을 한다. 분명 ‘사회적 합의’라는 토를 달았음에도, 이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숙제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가진 ‘사상’에 대한 제제를 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사유는 자유로워야 하며, 이에 대한 방해는 불가능하다. 이는 좀 더 확장하여 이야기하자면 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방해도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보장이 필요하다. 외적인 강압이나 육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폭력에 의해 생각을 꺾게 만든다면, 이는 인간이 가져야 하는 원천적인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범법자를 가두어 육체적인 ‘자유’를 빼앗아 제제를 가하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여도, 비전향 장기수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육체적 제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심야에 자동차가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규칙을 어겨도 ‘지금 상황에 그건 따를 필요가 없어’라는 생각의 자유를 실제 의사로 표현한 것이다. 자기 양심의 의무냐 합리적 선택이냐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 내리는 ‘자유’가 있고, 이에 대한 법적용도 탄력적이길 기대하는 것이다.

언제나 따르는 이야기,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에는 우리 모두 동의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도 책임이 필요하다. 더불어 그 표현을 받아들이는 수용자도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관으로 비판하여 받아들일 책임이 따른다.

우리 나라에서 심심하면 ‘사회적 통합’을 운운하는 분들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그런 생각의 자유가 표현된다고 해서 사회는 선동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많고, 그런 사람들이 어우러져 ‘우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와 같길 바라지 말고, 자신의 가치관이 타인과 같길 바라지 말자.

대신에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자신의 자유로 스스로를 구속하자.

Posted by 함장

2007/05/21 14:15 2007/05/2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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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 사건 단상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수업 중 과제.
1시간 내에 2,000자 작성. '조승희 사건'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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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주에 있는 대학에서, 한국인이 총기를 난사했다. 그리고 서른 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나갔다.

사실 내가 더 의아했던 것은 그 후에 우리 나라의 태도였다. 이건 인류애적 차원의 弔意표현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죄인이 된 모습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는데, 이걸 마치 우리 나라 국민이 ‘실수’로 미국에게 ‘전쟁’나부랭이 비슷한 걸 시도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건지, 아니면 마치 미국을 自國으로 여겨서 같은 동포 - 조승희가 동포가 아니라 전 미국민에 대하여 - 에 대한 ‘학살’로 사죄를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후자에 대한 고민을 할 때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나라가 미국에 州로 편입됐나?’라고 고소를 지을 정도였다.

우리 나라는 ‘부모에게 효도, 나라에 충성’이라는 지고지순(?)한 道義를 가르친다. 이 묘한 이치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야 하고, 나라의 뜻을 따라야 하며, 그 ‘뜻’은 결국 교육으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나서서 잘못했다 용서를 구한다. 잘못 가르쳐서 미안하다는 얘기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이제 ‘교육’이라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맡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인’으로 만들어 세금을 받고, 이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교육’을 시킨다. 그렇기에 조승희는 ‘우리 국민’이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가르쳤을 테니 우리 잘못이라 미안하다는 걸까? 조승희는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교육’을 미국에서 받았단 얘기다. 그렇다면 그들의 부모가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문제가 되는 건가? 도대체 말이 되기는 하는가? 그저 우리나라에서 살다가 이민을 택한 사람의 범죄이야기에 스스로 원죄의식을 뒤집어 쓰고, 외교관까지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것은 도리어 상식 밖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가?

이건 명백히 과잉대응이다. 그저 스쳐간 인연의 광기로 인해 벌어진 참극에 애도를 표하는 것 이상을 국가가 시도하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조롱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같이 슬퍼할 권리는 있어도 미안해야할 의무는 없다. 이 사건은 미국 자체의 문제로 그 ‘나라’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는 아무리 긍정적인 ‘국가 발전력의 원동력’으로 봐주고 싶어도 영 아니꼬운 것이 사실이다. 국가란 ‘미명’아래 국민이 탄압 받거나, 민족이란 이름 하에 소외되어가는 사람들은 결코 공평한 ‘사람’으로 대우받지 않는 것이 사실 아니던가? 미국이라는 엄연한 ‘국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아일랜드 민족인가, 이탈리아 민족인가에 따라서 갈라지기도 한다. 백인들 간에도 그런 ‘분류’와 ‘차별’이 존재하는데, 인종간 갈등과 권력에 대한 접근도의 차이는 얼마나 심하겠는가.

예컨데 이런 거다. 나는 어느 국가던 그 헌법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명기하기 보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명기되길 원한다. 국가라는 개념적이고도 추상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한정적인 영토 내에서 한정적인 법을 적용하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국민’이 아니라는 사실로 ‘다른 법’을 적용시키는 것은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그토록 추천하는 기본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던가?

나는 우리네 정부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 안을 들여볼 때라고 생각한다. 이미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민족’에 얽메이지 않고 내부의 문제를 다잡아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50만명을 돌파한 나라다. 대한민국의 1%, 아니 그 노동자들의 가족들까지 합치면 족히 100만에 달할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면, 조승희가 미국의 영주권자였듯, 우리 나라의 영주권 혹은 시민권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후에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이미 그들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나라는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다. 해외에 나간 동포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된, 그리고 이웃이 될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머리 깊숙히 박힌 ‘민족’을 뿌리 뽑고 즐겁게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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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억지로 주어진 글은 쓸 때마다 느끼지만.
너무 당연한 글을 쓴다 ㅡ.ㅡ

Posted by 함장

2007/04/30 14:17 2007/04/3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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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서울공화국의 폐해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수업 중 과제.
1시간 내에 2,000자 작성. '서울'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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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 드라마였던 ‘서울의 달’은 서울에서 사는 밑바닥 인생의 삶과 야망을 다룬 작품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를 속여 돈을 빼앗고, 결국 캬바레의 제비로 사기를 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더불어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로 시작하는 드라마의 주제곡은 ‘서울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각인시켜준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우리나라 인구의 40%가 모여 있으며, 대부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이 서울 위주로 돌아간다. 대학 입시 인구 80만 중에 취학율이 90%대로 가까워지고, 사회 구성원을 이루기 위해서 대학 졸업장이 ‘자격증’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부터 존재하던 대학의 서열화도 기정 사실처럼 굳어져 여전히 서울대학교가 최고로 인정되고, 학력의 서열화도 서울 ‘안’에 있는 대학들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물론 중심지가 생기고, 그 곳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지독히 심화된다면 곪아터지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근대화된 국가의 초등 및 중등 교육은 결국 사회 생산을 담당할 ‘경제인구’ 창출에 쓰이는 국가의 도구이다. 경제인구는 소득과 더불어 국가의 주요 수입원인 세금을 내고, 이런 시스템은 국가를 유지한다. 그렇기에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교육의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에서 ‘교육’이란 것이 이런 용도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대부분이 대학교에 입학하여 고등 교육을 받는 풍토는 중등 교육을 졸업하고 평등한 대우를 원하기도 어렵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자.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러서도 동생에게 당부하는 것은 ‘공부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교육열에 불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문인(文人)’이 우대되는 사회 풍조는 학력으로 인한 국민의 서열화를 만들어냈다. 그나마 과거에는 ‘돈’을 거머쥐는 상인은 비천한 신분으로, 학식을 갖춘 선비는 굶어 죽어도 높은 신분으로 나뉘어졌으나, 이제는 자본주의와 합쳐져 배운 사람이 ‘돈’을 더 벌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지옥같은 입시를 보내고 있다. 서열화된 대학 중 상위 대학을 가야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업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불편하면서도 당연한 구조는 서울 중심의 사회 구조가 맞물려 더욱 굳어졌다.

당장 취업 문화를 살펴보자. 이력서에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기입해야 하고, 학력을 보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회사에서도 대학 성적표를 요구한다. 이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온 사람과, 지방에 있는 대학을 나온 사람도 구별된다. 이는 취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엄연히 사회에 취업할 수 있어야함에도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가 없어 대도시로 나와 취업을 시도해도 몇 십년 동안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직종을 택하려면 ‘대학’을 나와야 한다. 더불어 요즘엔 대도시에도 일자리가 없다. ‘사람’이 많이 몰려드는 서울을 찾아야 비로소 ‘일거리’가 생긴다.

지방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더불어 돈을 쓸 사람도 줄어드는 바람에 경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돈을 벌어 지방에 가 써주지도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돈’이라는 것은 순환되지 않으면 체제 자체가 무너지게되건만, 우리의 ‘돈’은 심장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오지도, 한반도 전체를 돌지도 못한다.

고향이 지방인지라 명절 때 내려가서 지인들을 만나다보면, 지방대를 나와 취업을 못하고 힘들어하는 후배들이 있다.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 설움을 겪고, 졸업하고 나서는 ‘지방대 출신’의 설움을 겪고, 먹고 살려 일자리를 구하자니 ‘지방’에 살고 있다는 설움을 겪는다.

서울 중심의 사회 발전은 주류만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유리하게 만드는 폐악이다. 한 국가의 틀 안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왜 ‘서울’에 들지 못한다고 차별을 받아야 하는 걸까?

Posted by 함장

2007/04/16 12:24 2007/04/1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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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좌파에 대한 착각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1차과제
2,000자 '한국, 한국인' 주제 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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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대선에서 좌파정당에 실망한 지지자들의 표가 극좌와 우파쪽으로 분산되는 바람에 좌파 후보가 1차 선거에서 탈락됐다. 결국 2차 선거에서 우파 후보인 시라크와 극우 후보인 장-마리 르펜이 겨루는 상황을 맞았다. 극우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좌파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라크를 지지했다. 결국 80%가 넘는 득표율을 얻으며 우파 대통령이 등장했던 과거다.

이제 다시 대선을 맞아, 프랑스 시민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계급과 정체성에 맞춰 ‘좌, 우’파를 구분하여 정당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도 대선을 곧 맞이하게 되지만, 과연 우리 국민들은 좌우파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기나 할까? 그저 색 바랜 이데올로기로 아는 것은 아닐까?

사실 좌파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엔 너무 방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자신이 지켜야 하는 가치, 그리고 자신이 배격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동반된다. 그런데도, 우리의 언론에서는 '좌우파'라는 단어를 너무나 많이 접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 중, 민주노동당을 ‘좌파’라고 얘기하는 언론이 꽤 있다. 이건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복지 정책을 늘려달라고 주장하면 좌파가 되고, 거기에 ‘친북’이라는 단어를 붙여 ‘친북좌파’라는 어이없는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우리의 비틀어진 언론이기에 더욱 재미있다.

‘친북’이라는 개념은 사실 민족주의의 성격을 나타낸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기에 통일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밑바탕인 친북은 그에 합당한 근거이다. 그런데도 이런 ‘친북’이 ‘좌파’라는 단어와 나란히 쓰이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이데올로기에 무지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민족주의라는 것은 지극히 보수적이면서 우파적인 생각이다. 민족이라는 가치를 지켜내야 하는 우파의 스펙트럼이며, 이는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런 ‘민족주의’가 ‘좌파’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기 시작했을까?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는 스스로 ‘민족주의’를 이용해서 외세에 대항하였다. 항일운동의 근간에는 ‘민족주의’가 있었으며, 이는 곧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고픈 ‘진보’의 삶도 묻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상황은 ‘민족주의’계열의 지식인과 ‘사회주의’계열의 지식인이 ‘독립’을 위해서 한데 뭉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진보적인 삶을 이끌어내는 데는 우파나 좌파나 가릴 것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서구의 천재 지식인 중 사회주의자였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걱정이 바로 이것이었다. 식민지배로 인해서 사회주의보다 민족주의가 먼저 각 국가에 퍼져나간다는 예견을 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예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광복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졌다거나, 이승만의 북진 통일이 성취되어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완성되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체성의 혼동은 겪지 않고 있으리라. 식민지배를 당했던 하나의 민족이 둘로 나뉘어져 완전히 다른 체제의 국가를 세우고, 서로를 적으로 규명한 시대의 아픔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기본적 정체성마저도 혼동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반공주의와 자유 민주주의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는 구세대와 그를 이용해 정략적 흔들기를 일삼는 언론의 시너지 효과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악랄하게 작용한다. 지성인이라 불리는 대학생들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도 구분하지 못하며, 이런 색안경을 만들어낸 정치인들과 언론은 한술 더 떠 자신들의 정략에 이용한다.

민족주의와 사회 민주주의가 더불어 공존하는 정당이 좌파로 불리고, 시장경제체제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독점을 눈 감아주려는 정당이 우파로 불리는 나라.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니던가?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의 미덕이 교과서에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단어로 묘사되는 교육은 잘못된 것이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더더욱 좌파와 우파의 정책적 대결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우파 일변도의 교육을 펼치고 있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이는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권력 자체가 자본과 닿아있는 기득권층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일제 강점기의 숱한 ‘사회주의 세력들’이 ‘신경향파’, ‘계급주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는 단어들로 완곡하게 표현된 역사 교과서를 살펴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좌파’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교육해왔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제는 좌파들 스스로도,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도, ‘좌파’라는 단어나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움찔 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 ‘공화국’의 시민들이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도, 구분도 못한다면 획일화된 체제 속에서 살던 봉건 시민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Posted by 함장

2007/04/02 00:53 2007/04/0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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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패러디한 '힐러리 1984' 광고



요즘 몇 군데 애플 관련 사이트에서 애플의 20주년 광고를 패러디한 정치 광고가 올라왔다. 물론 이 영상은 3월 5일에 이미 미국에 퍼져나간 것이지만. 그 글들의 코멘트를 보면서 사람들이 몇 가지 오해하는 것도 있고 해서 저런 광고가 왜 나왔는지 썰을 풀어볼까 한다.

1984년은 애플이 '매킨토시'를 발표한 해이며, 동시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었고, 부통령은 1989년 레이건의 뒤를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되고 걸프전을 이끌어 낸 조지 H. W. 부시였다.

각설하고.

1984년이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를 갖는다. 당시 애플의 광고를 감독한 사람은 '리들리 스콧'감독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를 까부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의 영상이 패러디라는 이유로 마치 힐러리가 빅 브라더인 것처럼 묘사하며 네거티브 전술이다 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마지막에 1984년을 기억하라는 의미는 미국의 1984년 대선을 들여다봐야 하는 거다.

공화당의 레이건 재선을 막기 위해 민주당에서는, 월터 몬데일이라는 인물이 대통령 후보로 등장했는데, 정치에 등장하기 전에 영화배우로까지 활동한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의 '여심(女心)' 또한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기 위해 부통령 후보로 제랄딘 페라로라는 여성을 지목한다.

결과는 민주당의 개박살로 이어졌다.

이 선거 후 연구에 의해 '여성 유권자'중 다수가 '여성 후보'를 찍지는 않는다는 점도 발표되면서 그 후로는 미국에서 대통령, 부통령 후보에 여성 후보는 아직까지 발도 디민 적이 없다.

오바마 측 - 지지자든 뭐든 간에 - 에서 이런 패러디 광고를 UCC로 올린 이유는 바로 이거다. 공화당에 승리하면서, 여성표까지 얻겠다는 심산으로 민주당이 '힐러리'를 택하는 것은 1984년의 재현이 된다는 이야기를 던지는 거다.

그러나.

과연 그게 1984년의 재현이 될지, 암울했던 민주당의 화려한 부활이 될지는 뚜껑이 열려봐야 아는 거고.

이 광고를 통해서 우리 대선도 한번 돌아봐야 한다.

박근혜의 등장을 통해서 '우리도 여성 대통령 한 번 나와야 하지 않느냐'라는 '요상한 남녀평등주의'부터 시작해서, 심장정 의원과 한명숙 전 총리도 가세를 하는 '야릇한 삼파전'이 이루어질듯도 하다.

뭐 판도는 더 재미나겠지만.

뭐 어쨌든, UCC 때문에 정치 패러디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Posted by 함장

2007/03/21 11:28 2007/03/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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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움, 다시 태어나는 희망.

요즘 계속 정치얘기를 쓰게 되는데.....

솔직히......

총선 끝나니깐 심심해서......(...)

농담이고, Music만 자꾸 채우니까 찔리고--;;(아니닷. 내 블로그는 종합 미디어닷.....설득력이 모자란다--;;;;) 요즘 바빠서, 책이나 영화 볼 시간이 없고(구라쟁이, 맨날 퇴근하면 할일없이 블로그만 도는 주제엣--++), 게임만 좀 하는데(좀은 개뿔, 팡야 벌써 20시간 해뚜만 --++)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정치얘기에 대한 thinking을..... 쿠..쿨럭.

각설.

늘 밝혔듯이 난 노빠이자 유빠다. 여기서 '빠'는 오빠부대를 뜻하는 속어의 개념이라 나를 낮추고자 하며 의도를 회두 시키기 위해 쓰기도 한다. 오빠부대란 팬을 지칭함으로써, 팬은 맹목적으로 그들을 옹호하기도 하지만, 변절하면 모멸차게 내치기도 한다. 그러나..... 분노에 빠지게 하는 변절이 없다면, 온갖 논리를 들먹여가며 옹호하는 것이 팬의 성향인 것.

여기서 잠시 내 정치관을 비춰보자면. 정치는 어차피 Show Business 형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흔히들 얘기하는 이번 총선의 이미지 정치. 대다수의 분들이 '정책은 없고 이미지만 있다'라며 분개하고, '쇼한다'라 비난 하셨지만. 그에 휘둘리고 있는 국민을 보면 우리나라 정치는 Show와 정책이 공존 할 수 밖에 없다는 모습이 내 생각이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의 이미지개선용 광고는 가히 SKTelecom의 마케팅을 느끼게 할 정도로 혀를 내두른다. 그들의 차떼기를 비롯한 온갖 만행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광고를 봤던 사람들은 흔들릴 수 있었다. 그만큼 공중파의 영향력은 강했다.

물론 열린우리당도 만만찮았다. 박근혜의원의 미소사진을 부각시키며 '탄핵을 잊지말라'는 메시지는 정책이고 뭐고 암것도 없고, 오로지 Anti-한나라를 부각시키는. 그런 이미지 '뿐'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광고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과연 두 세력 중 어느 한쪽이라도 정책성 광고로 이미지를 내세우지 안았다면. 득표율을 비롯한 개선된 이미지가 나타났을까?

Showing이 주는 impact는 매우 크다. 더군다나 그것이 감성적인 호소력이 가득할 경우, 긍정적이든(동감) 부정적이든(저것은 쇼다!) 효과는 매우크게 나타난다.

정책정치는 공청회 등을 통한 정치권과 국민과의 교류관계가 밀접한 상태, 확실한 통화채널이 확보된 상태에서 진정 빛을 발하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오늘 내가 하고싶은 얘기는 이런 Show 정치 상황에서 노짱에 대한 얘기를 좀 풀어보고 싶음이 있다.

노짱은 요즘, 뭐 쉽게 얘기하자면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칼의 노래'를 보고 있단 얘기가 나온다. Show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은 이 모습을 보고 한마디 한다

'생Show를 하네, 지가 이순신처럼 억울하게 붙잡혀있단 얘기야 뭐야?'

그렇다. 억울하게 붙들려있다. 그 모습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저 책 보는 거다. 틀린말 하나 없다.

다만. 이순신 제독과 노무현의 다른 점은. 주위에 보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노짱은 한국인이 통념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관리를 모른다. 유시민 의원 말을 빌리자면, 같이 도와주며 일 끝내주면 수고했다고 밥한끼 사주지 않는(한국사회에서 이러면 욕먹는다--;;).더군다나 급히 불러서 차타고 달려가서 도와줬는데, '어~ 고마워요' 한마디 남기고 노짱이 내빼버려서 주차비만 왕창 날렸다는 얘기도 있다--;;. 어찌보면 째째(?)한 사람일 수 있다.(풍문에 1차로 강금실장관을 쓰고 개각때 추미애의원을 법무부 장관으로 교체시키려는 의도를 맘속에만 품고 있다가, 추미애의원이 노짱을 공격하자 '허..참... 저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왜 저러지?...허....'라며. 도무지 사람속을 못알아채는 센스가 떨어지는 대통령이라는 말이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마치 전두환의 측근에 장세동이란 인물이 있었듯이(흠. 정말 이런 족속들을 비교인물로 내세운건 정-_-말 싫지만....쩝. 장세동이란 사람의 충성심은 너무 뛰어나서--;;;;;), 문재인 전 정무수석과 유시민 의원이 있다는 것에 매우 놀라울 따름이다.

오늘 윤태영 대변인의 육필 원고를 보면서. 나 스스로가 팬으로서 너무 서러워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노짱이 어떻게 당선된 대통령인가. '자갈치 아지메'의,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협박에도 불구, 그런걸 각오한 지지선언. 그 외의 수많은 노사모의 노력. 국민의 선택. 계속 쥐어흔드는 야당.

아무리 Show라 하더라도. 탄핵 전날의 노짱 기자회견은 가슴 북받쳐오르는 서러움에 몸서리 치게했다.

그렇게 쥐고 흔들어도, 깨끗하다. 난 가족을 믿는다.

대통령 친인척이 죄인인가? 오히려 친인척이라고 역차별을 받고, 대통령 친척뒀다는 이유로 사업에 실패한 그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내게 '인간적 고뇌'를 하는 노무현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그의 행보는 온갖 음모론을 가져다 붙여도 꼼수한번 없는 '무식한 행보'였다. 이미 미치도록 짜증나는 비난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는 야당에게

'탄핵론을 무마키 위한'사과는 할 수 없다. 다만 '국민'에게는 사과한다.

그의 사과가 그토록 받고 싶었던가. 한국에만 있는 괘씸죄의 적용인가? 그래 그렇게 노짱 같은 사람이 대통령인것이 괘씸한가?

문재인 전 민정수석이 민정수석에서 사퇴를 하던 2월 12일. 쉬고 싶어하는 사람을 붙잡을 노짱이 아니다. 그런데 한달뒤 탄핵이 터져버렸다. 문재인 전 수석. 바로 돌아와 탄핵대변인단의 간사로 뛰게 된다.
오늘 기사를 잠시 인용하겠다.



대통령은 방콕에서 급거 귀국한 문재인 전 수석과 오찬을 함께했다.

탄핵 심판 대리인단 구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인 듯이 보였지만, 대통령이나 문재인 전 수석이나 식사 도중에는 아무도 그 문제를 꺼내려 하지 않았다.

오찬이 끝나고 배웅하는 자리에서 한 마디를 하는 것으로 대통령은 모든 주문을 대신했다.

"그렇게 쉬게 해주려고 해도, 결국은 쉬지 못하게 하는군요."

그들은 지음(知音)인가? 어떻게 자신을 변호해 줄 사람에게 '이렇게 해주세요' 한번 요구치 않고. 그저 서로를 신뢰하며 오히려 도움요청도 없는데 스스로 나서서 쉬지 못한 채 도와주는 모습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과연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을 때, 저렇게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노대통령에 대해 주위에서 욕하는 사람이 많은데, 팬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나도 변론해 보겠다.

우선, 비리에 관한것. 이건 검찰의 한마디로 요약하겠다.

'금도 있어야 캐내지!!'

노짱이 사법권의 완벽한 자율과 독립을 위해 TV공중파까지 타가며 '검사스러운' 검사들과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죠'하면서 피튀기게 싸운 이유는 국민에게 '사법권은 이미 권력의 시녀가 아님'을 공고히 하는 자리였다.

그렇게 독립을 시켰기에 집권초기부터 야당에서 '비리'라고 질러대면 수사에 맘놓고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입이 가볍다는 얘기. 기가찬다. 조중동의 언론플레이란 말도 지겹다. 가까운 나라를 예로 들어볼까? 일본의 수상 '고이즈미 총리'는 신사참배 발언부터 최근 이라크 인질이 계속 이라크에 남겠다는 발언에 '화'까지 낸다. 대통령이 하지말아야 할 소리라는 기준의 잣대를 국민공감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서는 안된다. 국민대표라도 국민에게 자신의 입장을 공개할 자유는 있는 것이다. 스캔들에 휘말리더라도 말이다. 그의 발언들이 인권침해적이었는가? 욕설이 있었는가? 상생과 화합을 주장하며 국민대통합에 힘을 쏟고자 하는데 여기저기서 파워게임만 하려하니 대통령이 설자리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이미 검사가 대통령과 맞짱토론을 하고, 대통령이 TV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아직도 대통령이 불문율 처럼 권위적이어야 하는가?

이제 유시민의원 얘기를 해보자. 그가 개혁정당으로 덕양구에서 지역구 보궐선거로 당선된 후에 국회에 입성했을 때 얘기다. 국회의원 휴게실을, 당시엔 개혁정당은 유시민의원과 김원웅의원 둘 뿐이어서 한나라당과 함께 사용하는 위치에 있었다.

휴게실에서 국회의원들 늘 그렇게 불렀다 '노무현이가', '노무현 그 새끼가'

그렇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대통령 알기를 지나가는 강아지 취급하는데 국민이라고 그렇게 못하겠는가. 당연한 귀결이다.

유시민 의원이 선배 운동권 세력에 화가 난 부분이 그 부분이다.

상고출신이면 사법고시를 패스해도, 자신의 윗 대가리로 인정 못한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내가 서울대 나왔습니다. 그런 내가 노빠라고 노무현 아저씨 뒤를 졸졸 따라 다녀요. 주는거 암꺼도 없어요. 오히려 내가 내 돈 쓰면서 따라다녀요. 왜냐구요? 좋으니까'

얘기한다. 학벌이 그렇게 선망의 대상인가? 상고출신 대통령은 대통령도 아닌가?

문성근氏가 대선 준비중 일때, 경선으로 후보가 확정되면서, 노짱에게 그랬다

'이젠 외모도 신경쓰셔야 합니다. 양복도 아르마니로 입으시고....'

노짱 왈.

'알마니? 그게 뭐꼬? 왜 내가 촌스러운가? 내 이 정도면 므찌잖아 얼마나 쎄련됐노'

그렇다 우린 아르마니도 모르는 무식한 대통령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김영삼 전 대통령보다 무식한가?

유시민의원이, '경제학 까페'란 책까지 낸 유시민의원이.

'노무현氏는 똑똑합니다. 경제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경제학 교수와 대화를 해도 이해를 하면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에요'

라 말한것은 다 거짓인가?

노짱을 욕하는 사람들. 진정 무엇을 욕하고 싶은건지 내게 말해보라. 과연 노짱의 언행이, 노짱의 정책이(아니 조그만 자치구 정책도 예산집행까지 1년이 걸리는데 국가정책을 1년만에 결과물을 보려하다니--;;;;) 과연 당신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는지, 우리가 지금까지 봐온 국가수반의 모습과 이토록 차이남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미워하는지. 내게 말해보라. 난 당신을 노빠로 만들어줄 자신이 있다.

그리고 유시민이 변절했다고, 벌서 욕하기 시작하는 분들도. 한나라당의 국회 내 왕따시킴과, 인격비하발언,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동지들을 찾아나가기위해 애쓰는 그 모습을 의미있게 되새겨 보라.
자신의 중학생 딸에게서

'아빠도 똑같아'

라는 현재까진 대한민국 최고의 욕설인(정치배와 똑같다니.--;;;) 말까지 들어가며 그가 지켜나가고 있는 소신이 얼마나 다수의 폭압에 의해 휘둘려지는지. 그의 마음이 되어 이해해보자.

어쩌면 이번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을 가장 고마워하고 반길 사람은 유시민의원 자신일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하루전날 남긴 cf광고 '노무현의 편지'가 있다.

청와대 가서 대선 CF 6편을 보고싶은 사람 클릭하기

Amazing Grace가 울려퍼지며 노짱의 나레이션이 시작된다.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납니다.
성별, 학력, 지역의 차별 없이 모두가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세상
어느 꿈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어느 꿈은 아직 땀을 더 쏟아야 할 것입니다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하셨다면.
우리 아이들이 커서 살아가야할 세상을 그려보세요.
행복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후략....

탄핵 얘기로 또 다시 어수선 해질 수 있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더러운 모리배들의 모습이 개혁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상식이 통하는. 행복한 세상을 바라는 것이다.

김구선생 말씀처럼. 나는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나라이길 바란다.

Posted by 함장

2004/04/20 14:04 2004/04/2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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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국회는 무너지는가?

유시민 의원이 고양시 덕양구의 보궐선거로 국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사진이다. 난 당시에 고양시에 생활권을 두고 있었기에, 그의 유세활동을 본적이 있다. 그는 유세할 때도, 양복을 입고 다닌 적이 거의 없다. 면바지에, 잠바 하나만을 입고, 그렇게 다녔다. 하지만 그의 국회의원 선서 당일. 그의 캐쥬얼룩은 국회에서 무참히 무시당했다. 무려 그가, 그의 지역구인 덕양구의 쇼핑몰 Save Zone에서 거금(?)을 들여 산 새 옷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번 총선으로 원내에 진입한 민주노동당 단병호 당선자 께서도 오늘

“양복은 안 어울린다는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라고 본회의장 내에서 양복을 입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농민인 강기갑 당선자는

“개량한복을 입겠다”

라고 마찬가지 의견을 보였다.

과연 그들은 성공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당시 유시민 의원이 캐쥬얼룩으로 본회의장에 들어섰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내 주위를 예로 들어보자

'아직은 이르지 않은가?'
'저게 무슨 태도야 신성한 국회에!'
'멋지네, 다 갈아엎는거야'
'쇼하는군, 저런 이미지를 부각시켜 국민에게 다가서려 하는가? 위선자 같으니라구!'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땠는가?

오늘 민주노동당의 '서민 국회 만들기'에 대한 기사를 보고 느낀 점을 적어본다.

우선 잠시 독일의 국회모습에 대해 묘사해 볼까한다.

독일의 국회의원은 수많은 시민계층을 대변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예를 들어,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이들은, 양복정장에, 넥타이 메고, 세단을 타고 국회를 출퇴근 한다.
하지만 이 계층도 두 가지로 나뉜다.
외산자동차를 타는 계층과 국산(독일제)자동차를 타는 이로 나뉜다. 이는 각 국회의원의 경제정책을 솔선수범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국산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은 내수경기부양에 힘쓰는 사람들이고, 외산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은 '수입'을 해야 '수출'이 가능 하다는 지론으로 경제정책을 펼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민당의 사람들도 계층의 비례대표에 따라 복장과 행동이 무척다르다.

블루칼라(노동자 계층중에서도 기계공쪽. 사무직이 아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국회에, 단정한 공업계열 근무복을 입고 출근 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 노동직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국회에 캐쥬얼룩을 자주 입고 나온다.

녹색당의 어느 의원은 자동차가 공해의 주원인이라고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얼마나 다양성이 공존하는 국회인가?

여기서 우린 국회라는 장소에 대해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국회는 입법기관이다. 입법은 국회의원이 모여서 한다. 입법하는 정책들은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한다. 그리고 국회의원도 국민이다.

이리하여 나온 말이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인 것처럼.

그렇게 볼 때, 국회는 신성한 곳이 맞다. 하지만 국회는 신성한 노동장소일 뿐이다.

국회의원은 일꾼이다. 국민의 일꾼이다. 고로 그들은 노동자다. 모든 종교에서 설파하듯이,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직업엔 귀천이 없다(다만 수입만이 다를뿐....이라고 믿는다!!ㅠㅠ).

일터에선 누구나 단정한 복장을 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단정의 개념정리는 누구나 다르겠지만.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복장이 아니라면(어머 멋진 근육 ㄱㄱ ㅑ~~, 늘씬한 몸매 ㄱㄱ ㅑ~~) 그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국회는 사회 각 분야의 사람들이 민중의 대표로 나와서 일하는 곳일 뿐이다. 회의를 할때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메어야 한다는 사상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가?

이야 말로 화이트칼라를 지향하고, 서울대 공화국을 만들며, 권위주위에 가득찬, 그네들의 세상일뿐이지 않은가?

진정 국민에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양복입고 와서 공장한번 쭈욱 몇분간 둘러보고, 사장실가서 그 푹신한 팔걸이 쇼파에 앉아 한두시간씩 커피마시며 농담푸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다가서서 말을 건넬 수 있게, 그대들의 담장을 헐어버려라. 일반 관공서 행사장 나가보면, 시민들과 국회의원의 대화는 볼 수가 없다. 국회의원 주위에는 행사주최 공무원과 지역관계자(관계는 얼어죽을, 그 지역 기득권층)밖에 없다. 그런 그들은 과연 국민의 말을 듣고는 있는가?

내가 노빠이자, 유빠이기 때문에 자꾸 유시민 의원의 사진을 올려서 죄송하다. 보고 있는 것이 유시민 의원의 국회 내부 사무실이다. 열악하다고 생각되는가? 내가보기엔 일반 중소기업 사무실과 큰 차이가 없다. 다른 국회의원 사무실 사진은 명예훼손혐의로 잡혀갈까봐 두려워 못올리겠다. 일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저렇게 좁은 사무실이 미어터질 정도로 일한다. 하지만 다른 국회의원들은....... 상상에 맡긴다.

이번 선거의 최대 이변은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제는 좋은 정책을 가진, 어떤 특정계층의 정책을 가진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흑색선전 따위로 낙선되어 정책이 죽어버리는 것을 상당부분 막아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정당의 정비나 상향식 공천등이 확실히 정비되어 있어야 하지만.

독일이 1:1(지역구:비례대표) 에서 2002년에 의석수를 줄이기 위해 지역구만 줄인 것을 봐도 비례대표제가 얼마나 실효를 거두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국회의원에서 지역구라는 것은 지역을 대표할 뿐이지 지역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직업이 아니라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직업이다. 이것은 초등학교때 배우는 이론이다.

하지만 지역구의 '지역'이라는 말 하나로 인하여 우리 '지역'사람 뽑아야지 등등은 이미 네트워크 되고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이 나라에선 의미가 반감된다. 오히려 그 '지역'안에서도 경제적인 이유로 계층분화가 심화되는 이 사회에선 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의 등장과 그런 정당에 계층이 표를 던질 수 있는 비례대표자의 확대가 옳다.

일선에 알려진 '전문적인 집단'을 위한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제의 순수한 의미를 감추기위한 노력일 뿐이다.

국회의원은 심지어 극한 표현을 쓰자면 무식의 극을 달려 경제에 무지해도 된다. 민의를 대변하는 의지만 있다면 국정의 무지는 전문가로 부터 지식을 차용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 제도적인 정비책으로 先해결된 웃긴 케이스이다.

국회의원이 한달에 받는 그 천만원 가까이 되는 돈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 골프치고, 룸쌀롱 가라고 있는 돈이 아니다.

경제정책 포럼하나 개최하고, 교수분들께, 교통비와 강연비 조금 드리고, 자신이 이런 정책하나 내놓으려 하는데 이러면 향후 사회에 영향이 어떤 방향으로 파생될지 궁금하다고 하면, 국가위한 일인데 조금 시간 할애해서 안 도와줄 교수가 누가 있겠는가?.....(있을지도 모른다--;;, 농담이고 실제 경제정책 중, 국가 R&D사업(Research & Development)들의 지속이나 중단 등은 많은 기업 경영 실무진과 대학교수들의 감사와, 조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제발, 국회가 대단하다고, 나랏님들이라고, 우러르고 알아서 기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국회의원은 존경받아야 하지만, 국회는 신성시 되고, 존경해야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우리가 밥먹고 살기위해 하는 일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잊지말자.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노동에도 경중은 없다. 오히려 국회의원은 우리가 밥먹고 살기 바빠서 우리 대신에 보내준 대리인일 뿐이다.

모두 다 국가를 위해 일하고 생각하고 말한다.(일부... 옛날엔 다수였는데 그래도 요즘은 좀 줄었을거라 믿는다--;;;)

17대 국회는.
조폭 모임같이 양복만 입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긴. 여성의원 늘어났으니. 색깔의 다양성은 이미 많이 확보 되었다 --)b

Posted by 함장

2004/04/19 13:00 2004/04/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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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시작이다.

결과는 나버렸다. 현실적인 타협점으로 보이는 결과지만. 역시나 이상과 현실 차이는 너무나 크다.

탄핵시점 이후,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에 대해 다시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부정적인(negative) 시각을 되도록이면 피하려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일정기준을 정하고 그 선을 넘지 않는다면 되도록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염세주의가 지적(知的)으로 보이던 철없던(지금도 철없다--;;;;) 시절이 너무나 아까워서 지금부터라도 짧은 생 행복하게 살려는 의지일지도 모른다.

난 정치에 관심없다고 늘 얘기해왔었다. 아마 작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까지 쭈욱 그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관심없음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나의 냉소였다. 무관심이 아닌 비웃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김근태의원의 경선사퇴와 그로 인한 조선일보의 학력비하 만평. 그 때 부터가 나의 정치바로보기의 시발점이 된듯하다.

어째서 학력중심주의 사회, 조중동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사회가 되었는지 고찰하게 되자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기득권층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위협적인 두려움이 아니다. 1%의 사람들에게 전 국민 재산의 대부분이 모여있을 뿐만 아니라 권력까지도 모여있다는 확신이 들면서 내가 내 나라에 4천500만의 국민중 4천500만분의 1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조수천수억분의 1정도의 권력도 갖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두려움이다.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보여줬던 노무현 現 대통령의 창천항로(蒼天航路)는 나에게 '무언가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고무감을 주었다. 민주당에서 평당원으로 아무지지기반도 없는 그에게 노사모라는 시민단체의 지지와 정동영 現 열린우리당 의장의 경선 완주(完走)는 상향식 공천으로 하나의 새로운 당체제 혁명을 부르는 멋진 모습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등장으로 50년만에 정권이 교체되고, 노무현 대통령으로 3金시대가 청산되고 새로운 국민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우리는 청산하지 못한것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물론, 5년~10년만에 청산될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선거 막바지 2~3일동안 많은 블로그에 선거관련 글이 올라왔다. 좋은 글도 많았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열린 토론의 자세가 우리에겐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

나는 이런 종류의 글을 쓸 때는, 될 수 있으면 언급되는 모든 단체 및 개인의 이름을 존중한다. 흔히 딴나라당이라 불리는 내가 아주 혐오하는 그들도, 정식명칭을 불러야 한다. 이유는 하나 뿐이다.

토론은 지성인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론을 할 떄는 지성이란 것을 갖춰야 한다. 상대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이며 나 자신을 객관화 할 능력이 된다는 것은 지성을 갖추었다는 얘기다. 이 두가지면 토론은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

탄핵 이후 토론회에서, 유시민의원과 노회찬 現 당선자의 '열우당이라 부르지 마시고 열린우리당이라 불러주세요', '민노당이 아닙니다. 우린 민주노동당입니다'는 말꼬리 잡기나 자존심이 아니다. 서로 존중하자는 뜻이다.

유시민의원이 전여옥 現 당선자(오. 아부지. 말도안돼ㅠㅠ)와의 토론에서 그렇게 눈을 부라리며 '그것은 비열한 비유입니다'라 힐난한 것은 이와 동일하다.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는 망언은 토론자가 갖추지 말아야할 악습이다.

그런면에서 볼 때, 진중권氏의 글 또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상대를 격하시키는 글은 맹렬한 비난이 아니라 도의를 넘어선 저자거리 쌍소리와 진배없다. 그의 '생리'운운 발언은 기가차서 말도 안나온다.

아쉬웠던 부분이지만. 우리가 정치에 대한 의견개진이 자유로워 졌다는 점. '나는 어느 당 누구를 지지한다'라고 밝힐 수 있는 분위기의 확대. 이 두가지의 사실은 우리 정치가 이젠 더 이상의 '더럽고 음흉한' 세상이 아니라 밝고, 열린, 서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미지를 보이는 형태로 바뀌어 갈 수 있는 노력을 보여준다.

어제 SBS방송의 유시민의원 말마따나, 세대간의 갈등이 이번 표를 보여준 것이 아니다. 매체를 접하는 습관에 따른 표갈림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우리 부모님, 컴퓨터와 인터넷의 터字도 모르신다. 신문은 아마 조선일보 보시고 계신걸로 알고 있다. 뉴스도 SBS랑 MBC랑 보신다.

이 차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8시 9시 TV뉴스에 논평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날 하루 사건 사고와 정치, 날씨 밖에 볼것이 없다. 하지만!, 신문은 느긋하게 사설을 감상(?)할 수 있다.

사설은 여론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매체를 접하는 층과 인터넷을 이용하여, 정보를 찾아보고, 또 다른 시각을 접하게 되는 층의 의견이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은 조중동 덕분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의 노력은 무척이나 필요하다. 일개 과반당의 노력으로는 절대 불가능 하다. 장담컨데 121석의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또다시 행정권과 의회권을 흔들어 댈 것이다.

필요한 것은 국민의 힘이다.

오늘 노회찬 당선자 말마따나 열린우리당 뿐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도 한나라당도 국민에게 '가불'받은 것이다. 잘했다고 찍은 것이 아니라 잘해보라고 찍은 것이다.

이젠 국민이 감독하는 시대를 넘어서 국민이 참여해야 한다. 알바들에게 둘러싸인 정당홈페이지가 아니라 국민들에 의해 비판받고 박수받고 해야하는 홈페이지로 거듭나주어야 한다.

우리는 투표기계가 아니다. 투표한 뒤에 가불해줬다면, 채무독촉을 지속적으로 해야한다.

뽑아 놨으니 잘하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것을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이 몸소 보여주었다.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1번 장향숙 당선자와 노회찬 당선자의 악수는 내게 흐뭇한 미래를 떠올리게 만들어 준다. 어제 SBS에서 민주노동당 심상정 당선자의 언행은 심히 민주노동당의 미래가 저렇게 근시안적이고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가에 대한 격분까지 갔었지만.

사람들은 열린우리당에 대한 걱정만 많이 한다. 하지만 그런 걱정보다 더한 걱정을 열린우리당의 개미당원들이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미래가 밝은 이유는 그런점이다. 겉으로는 '잡탕당'이다, '정체성이 없다'라고 비난 받고 있지만. 그들 속에서는 수만가지의 생각에 대한 개미당원들의 토론과 열정, 국민행복에 이르는 끝없는 노력이 있다. 비례대표 선정에서 밀려난 고은광순氏(호주제폐지에 대한 뛰어난 활동과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여전사'라 불리며 엄청난 우먼파워를 보여주었음)조차도 당에 대한, 정확히 얘기하자면 개미당원에 대한 신뢰가 넘쳐 흐른다. 자신을 비례대표 후보군에서 밀어낸 당원들이지만, 자신의 실수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호주제폐지'문제가 공동선에 부합되지 않음에 아쉬워할 뿐, 열린우리당 개미 당원에 대한 신뢰와 그로인한 열린우리당의 밝은 미래를 내다 보는 사람이다.

나는 우리 국민에게서 어쩌면 그런 열린우리당과 같은 모습을 보고있는 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생각이 난립하면서 왠지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넘쳐나는 생동감은 럭비공같이 어디로 튈지는 몰라도 충분히 가능성을 잠재하고있는 것이다.

이젠 국민이 투표로 끝낼 때가 아니다. 열린 광장 인터넷으로 나와 서로 정치정책에 대해 옹호하고 비판하며, 서로를 존중하며 합리적인 논리로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저 두분의 악수처럼,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신선한 경쟁을 기대해 본다. 더불어 우리 국민의 4천500만가지 생각이 인터넷에 날뛰며 파란만장한 다이너믹 코리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들의 어깨에 놓인 짐을 우리 함께 지고 가자.

Posted by 함장

2004/04/16 16:08 2004/04/1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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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하루

왜 이럴까 이제 겨우 사흘 남았구만.

경북 영주 출신인것도 너무 쪽팔린다. 어떻게 요즘 시대에 돈봉투가 도냐.ㅠㅠ

박근혜 아줌마 아주 뻔뻔스럽게, YTN에 대고,
'요즘 열우당이 박근혜가 청중 고용해서 다닌다고 흑색선전하는데....'

아줌마. 오늘 노사모에 관광차 동원해서 노친네들 실어나르는 거 캠코더에 찍혔어요.

추미애 아줌마는 이제 기도 안차요. 아줌마 내가 광진구 을인데, 아줌마가 당선되면 이사간다.

지금 YTN 보면서 정동영 아저씨 기자회견 기다린다. 아저씨. 정말 이대로 물러날랍니까? 정말 꼭 그래야 합니까?

부산의 열린우리당 출마자들 울고, 선대위원장들 삭발하며 지역감정 이겨내려 호소하는 모습.

당신들, 얼마나 억울 하겠습니까. 얼마나 분통터질까요.

뒤에서 슬슬 비꼬며. 국민을 비웃으며, '그래 요렇게하면 국민들 우왕좌왕 하겠지' 하면서 비웃고있을 저 기득권층에 대해 침을 못뱉는게 한스럽겠죠.

어디가서 이젠 경상도 촌놈이라고 말하기도 무섭습니다. 왜그래 못났는교 TK여. 그렇게 잃는 게 싫습니까?. 그렇게 그 호남보다 우월하게 살았던 그때가 그립습니까?

전라도 도로한번 차타고 돌아보소. 당신들이 사는 TK가 얼마나 살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는가. 88고속타고 대구서 광주함 가보소. 가다가 전라도 넘어가면 도로관리가 왜 그 모양인가.

그래 그렇게 가진자들 뭐라싸트만, 결국엔 당신들도 쪼메라도 더 가지고 싶은게요. 한스럽소 이사람들아.

주위 사람들 서서히 열린우리당 욕하고 나올때. '그럼 민주노동당은 어때요?'.... 어떻게 다시금 한나라당을 믿겠다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믿고 있던 MBC는 왜 아주 초보적인 실수로 이렇게 사람맘을 암담하게 만드는지.... 왜 이렇게 우울하냐....

신강균 아저씨. 아저씨의 신랄한 비판이 필요해요. 이 답답한 맘좀 풀어주세요 ㅠㅠ

사람들은 저마다 고집이 있다. 하지만 합리적이지 못한 고집은 아집이 아닐까?

왜!!!! 이번선거에서 아집을 세우냐고 이사람들아ㅠㅠ 열린우리당이 당신이 뽑은 대통령을 탄했했나, 아니면 당신이 낸 세금을 차떼기 했나, 아님 당신 선친을 빨갱이로 몰았나. 도대체 뭐가 문제냔 말이다.

탄핵을 아직까지 몰고간다고? 탄핵선거가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하면서 지역주의를 내세워, 돈을 앞세워 영남권을 싹쓸이 해보겠다고?

어림도 없다 이놈들!

그래 곧 죽어도 내가 옳다. 그런 물의 흐름이라면 나 혼자라도 그 강을 거슬러 오르리라.

덤벼라 세상아!!

Posted by 함장

2004/04/12 20:50 2004/04/1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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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을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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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밝힙니다.

전 제 글에 리플(엄밀히 얘기하자면 코멘트.)을 왠만하면 달지 않으려 합니다. 일종의 제 블로그는 퍼블리슁 됀 순간부터 그 아래에 달리는 코멘트는 제 사고와 공감의 물상(物相)들에 대한 다른 관찰자 및 방문자 분들의 감상의 코멘트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질문을 제외한 리플들에는 제가 코멘트를 달지 않습니다. 일부러 방명록을 만든 이유도 어떤 질문들이 있을까봐, 상호대화의 場으로써 열어둔 것이죠.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는 제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폭을 확대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보는 시각과 타인의 시각에서의 차이점. 그 속에서 오는 차이를 어떤 기준으로 극복할 것인가. 거창하게 얘기한 듯 하지만. 상대방의 리플을 통해서 제가 볼 수 있는 시각이 넓어지는 것은 무한한 영광입니다.

그리고 논쟁의 소지가 필요하게 되는 것들은 트랙백으로써 격론을 벌일 필요가 있겠지요.

각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글에 달린 리플에 반박을 하게된 점. 1인 매체의 주인으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만. 마찬가지로 제가 쓴 글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매체로서의 의무를 다 할 수 있기에. 시작해 볼까 합니다.

우선 첫째. 고 남상국 사장님에 대한 것. 타인의 모든 것을 일반화 한다라. 글쎄요. '쪽팔려서 자살했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자살'의 이유가 뭡니까? 자신의 정체성 상실? 이유없는 삶의 권태로움?. 글쎄요 제가 고 남상국 사장님의 입장이 되어도 명예의 실추로 인한 쪽팔림밖에 떠오르지 않는 군요. 억울해서 자살했다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 조중동 모두 노무현 대통령님 못잡아 먹어 안달인데 노무현 대통령이 명예를 훼손했다며 기자회견만 열어도 충분히 몇달 울궈먹을 수 있는 건이었습니다. 이때 자살을 택하신 이유는 뭘까요? 익명님 말씀대로 입장이 되어보면, 자신이 인사청탁을 했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공표되어서 그 동안 쌓아왔던 자신의 명성이 한번에 무너졌음에 너무나 부끄러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약속대로 그렇게 폐가망신 시켰습니다.

송만기氏보세요. 문화방송을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 등등, 대단히 뻔뻔스럽죠. 뻔뻔스러워도 억울하다면 저렇게 해야하는 거죠.

오히려 고 남상국 사장님 친지분들 말씀대로, 정치권에서 죽음을 애도는 못할망정 정략에 사용하니 울분이 넘치지요. 적어도 고 남상국 사장님은 자살을 택함으로써 누구처럼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시키지 않았잖습니까.

적어도 사람에게 명예란 중요합니다. 목숨과 바꿀 정도로.

그리고 둘째. 대통령이 할말 안할말 가려야 한다. 이건 누구 발상입니까? 대통령이 권위적이어야 한다는 것과 다른점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렇지 못하다면 갓난아기보다 못하는 사람이 된다뇨? 유시민 의원님이 전여옥氏(現 한나라당 대변인)에게 했던 말 기억나십니까? '그건 비열한 비유입니다'.

가끔 국회의원들이나, 정치계 주요 인사들이 이런 얘길 하죠. '내가 입열면 여러명 다친다'. 지금 그 얘길 하고 싶으신건가요? 대통령이라면 해야할 말이 있고 안 해야 할 말이 있다는 것은? 사실 은폐가 때로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의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 은폐가. 썩어빠졌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면 감출 수록 나쁜 것이 되겠지요.

셋째. 탄핵이 되면..... 노사모? 전 국민이 가만 있을 수 없죠. 3월 12일 탄핵일 당일. 전국의 생업전선에 있는 사람들. 여의도 집회를 방송으로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용산에 계신 한 자영업자 한 분 얘기를 해 드릴까요?

'어? 아저씨 집회 안가보세요?'
'아, 밥먹고 살기 힘든데 집회 갈 시간이 어디있어요. 일단 투표때까지 참고 선거날 박살내야죠'
'ㅎㅎㅎ 그래도 국민이 화났다는 건 보여줘야죠'
'미친놈들 한테 화내면 안되죠(웃음), 농담이고, 지금보다는 만약 탄핵 가결되거나, 선거 미루거나, 개헌 한다고 떠들어 대면 그땐 아예 가게 문 닫고, 텐트가지고 갈겁니다. 그땐 저희찾아오세요 직원들 다 라면박스 사들고 철야 농성 할꺼에요(웃음)'

노사모? 저 분 노사모가 쓰는 좀 과격한 언어때문에 노사모 싫어합니다.

넷째. 되도 문제고 안되도 문제다. 뭐가 문제죠? 탄핵은 성립이 말이 안되는 거죠. 전 세계의 언론을 보세요. 탄핵이라니 말이 됩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정도의 대박을 터트린 것도 아니고, 정치자금 문제로 특검까지 동원 됐지만 특검 결과 보셨나요?
나올게 있어야 나오죠. 추미애 의원. 탄핵사유가 책을 한권을 쓸 수 있다 했죠. 그게 탄핵사유인지 맘에 안드는 사유인지 궁금하군요.

노무현 대통령이 말씀하신것 중에 지켜진게 얼마나 되던가요..... 법.... 어리석은 국민.....소심.....툭하면 재신임...... 10분의 1.......

정말 반박하기 힘들군요. 대통령이 법을 안지킨다... 어떤 면에서인지 이해 할 수 없군요. 하나하나 따져보죠.

뭐 일단,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 가장 큰 업적인 사법권 독립을 들어볼까요?

보통 우리나라에선. 지금까지. 법조계 계신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권력의 시녀라고 불려왔습니다. 좀 달리 얘기하면 폭압적인 정권앞에 묵묵히 할일만 하신거죠. 그러던 사법권에게 완전 독립을 줘버렸습니다. 대통령이 '협조'라는 단어를 쓰며 사법권을 대통령과 같은 권력으로 상급시켜 주며, 취임 초기에 측근비리까지 마구(?) 수사할 수 있도록, 풀어준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팔을 잘라버린거죠. 소심? 국민들이 사법권 독립시켰다는 말을 안믿을까봐 검사들과 1:검사라는 맞짱까지 뜨면서 사법세력과 철천지 원수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완전히 독립시켰다는 것을 각인시켜주는 대통령이 소심하다구요?

저것이 대단한 업적이냐? 그렇지도 않죠. 지금까지 잘못굴러가던 3권분립의 체계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일 뿐이죠.

그 외의 기득권 세력을 향해 권력을 뺏어 국민에게 나누어 주려는 정책들은 모조리 야당에게 짓밟혔습니다. '대통령 못 해먹겠다' 이게 대통령이 할 소리냐구요? 대통령이 어디 토로합니까?

국민이 '아 당신이 대통령하면 나라 잘 굴러 갈것 같아' 하고 맡겨뒀는데 기득권층은 서로 힘으로만 해결하려 하고 대화가 없으니 위기감이 들지요. 언론은 기득권층을 보호하지, 정치인들 미친척 하지. 답답하죠.

툭하면 재신임..... 재신임 발언 몇번 했습니까? 툭하면 탄핵 보단 적지 않습니까?

익명님께서도 다시한번 뒤를 돌아보실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Posted by 함장

2004/04/06 17:58 2004/04/0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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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바뀔 수 있다.



요 근래 가장 통쾌한 시사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곳은 MBC다.
완전 배째라는 식으로 수구꼴통과 대립하고 있다. 죵니 통쾌하다.

손석희氏가 진행하는 100분토론. 솔직하게 토론 패널들 수준(일부 정치인)이 떨어지면 떨어졌지 정말 진행자의 날카로운,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모습은 대단하다. 석희옹. 존경스러워~ ㄱㄱ ㅑ~~~

분명 어제 방영된 신강균의 사실은... 에서 탄핵찬성측 집회 분량을 다시한번, 그것도 편집 없이 내보낸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편파적인 방송이 될 우려가 있다.

탄핵 찬성과 반대, 두 집회에 모두 참석해 본 사람의 말을 빌자면. 두 집회에서 차이점은 두 가지밖에 없다고 한다. 집회 시에는 모두 열광적이고, 모두 자신의 의지가 확고 했으나.

집회가 있을 때, 자녀들을 데리고 나왔는가?
집회가 끝난 후에, 해산하는 모습에서 부끄러운 점은 없는가?

보통 부모는 자식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찬성측 집회 참석자는 제대로 된 부모답다고 생각한다. 하긴 집회장에서 이새끼 저새끼 소리나오는데 누가 데려가고 싶겠나--a

촛불집회 한번이라도 참석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사람들 해산할 때, 자원봉사자들이 나누어준, 탄핵 반대/민주 수호 피켓이라던지, 홍보전단을 고스란히 간직해서 돌아간다. 물론 버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자동차에, 집앞에 달아두고 자신은 탄핵에 반대한다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사람들.

그런면에서 탄핵찬성측의 해산 모습은 실로 가관이었다. 탄핵반대파가 해산할 때도 '탄핵반대! 민주수호!'의 구호를 외치며 지하철역으로 사라져 가는 반면, 그들은 집회가 끝남과 동시에 모든 전단홍보물등을 다 쓰레기통에 쑤셔박고, 서로 모르는 남처럼 후다닥 자리를 떠버린다.

성경책을 들고, '노무현 개새끼'라는 소리를 해대며. 그 장소에 있던 한 고대생은 이랬다지 아마

'쪽팔려요, 왜 왔는지 모르겠네요. 같은 교회 집사님이 나오라 해서 나왔지만. 이건 아닌데....'

기독교를 비방하는 것도 아니고, 고대를 비방하는 것도 아니다.
왜 종교단체가, 왜 지성인들까지. 저렇게 끌고(?)가서 저 따우 말도 안돼는 행사를 해대는가.

신강균의 사실은에서는 제대로 된 방송을 했다.

당시의 찬성측 집회의 분위기는 민의가 반영된 집회가 아니라 저런식으로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고. 미디어를 통해, 논리적이지 않은 인신공격으로 민심을 흐트러뜨리려는 의도가 다분했기 때문에. 합당한 편집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또다시 조중동은, 빠져나갈 궁리를책을 써가며(조중동 기자가 아닌 CBS기자의 말만 지속적으로 인용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MBC를 두들겼다.

고 남상국 사장께서 자살을 했다. 쪽팔리셨나보다. 학식있고 배운분이. 촌에가서 머리 조아렸다는 사실이 공표되서.

노대통령이 인사청탁 관련해서 국정 초에 발언한 내용을 잊었나?

'인사청탁은 절대 효과를 볼 수 없다. 오히려 인사청탁을 하면 패가망신시키겠다.'

그래 그런 사실이 발표되니까 그렇게 쪽팔리셨나. 그리고 그런 사실을 오히려 학벌역차별이라는 핑계거리를 대며, First Lady에 대한 모욕을 감행하나?

송만기氏에 대한 동정론이 빠짐없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일제의 앞잡이와 뭐가 다른가?

민주주의 사회에선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그럼 그런 논리도 맞지 않는 선동이 표현의 자유인가? 돈을 받고 선동한 일제의 앞잡이와 뭐가 다른가?

우리나란 바뀌어 가고 있다. 시민들 의식이 개혁되어가고 있고, 물론 약간 상관없지만 유홍준교수의 '아는 만큼 보인다' 처럼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시민이 요소요소의 사건들을 그만큼 빨리 알게 되는 점도 빠른 의식개혁에 도움을 주고 있다.

계몽시대는 이미 하향식이 아니라 상향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선동해서 계몽이 되는 게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가 계몽의식을 국가 시스템에게 전파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너넷 세대가 아닌. 어르신들은 조중동에서 벗어나실 수가 없다. 이는 솔직하게 대화로도 해결이 힘든 부분이 꽤 있으며 요소요소에 불안감이 잔재한다.

어제 신강균의 사실은...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내부고발자의 보호..... 좀더 광의 해석하면. 열린우리당의 유시민과 같은 사람은 그런 내부고발자에 가깝다.

'우리가 국회에서 이런 토론을 합니다. 국민여러분 제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을 국회로 보내주십시오.'

이미 국회에 대해 신뢰도는 바닥을 치다 못해 맨틀 거치고 지구반대편으로 가서 은하계를 떠났는데. 한나라당을 고쳐보겠다고 들어갔던, 김한길 아저씨, 김홍신 아저씨. 두손들고 나와버렸다. 국회를 개혁해보겠다고 절필선언 후 금빼찌를 단 유시민 아저씨. 조중동에서 얼마나 두드리고 있나. 그런 그들을 보호 할 수 있는 것은 언론 뿐이다.

MBC를 좋아하는 건 그것 뿐이다. 별 쓰레기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해도, 수요예술무대와, 시사프로그램이 있는한 MBC는 내게서 사랑받을 것이다.

박근혜 의원. 기가찬다. '개헌 저지선'....기가 막힌다. '거여 견제론' 코메디 수준이다.

건전보수?

조중동이 떠들어대는 열린우리당 모습. 우낀다.

정동영의장도 얘기하고 문성근氏도 얘기한 우리나라 미래 정치 모습. 잠시 썰을 풀어보자.

정치학에 대해 쪼메라도 강의를 들어본 사람은 중도좌파정권이 가장 발전적이며 안정적인 사회를 구현해 나갈 수 있다는 정도는 상식선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식의 선. 왜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 나섰을때, 386이 열광하고 한국 사회의 희망을 보고, 언론에서 미친척 떠들어 댄 이유를 고민해 본적 있는가?

'왜 조용해오던 국민 중, 노사모란 불순단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거야?'

이런 의구심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한국정치에 지금까지 건전보수 세력은 없었다. 기득권의 수호세력만이 있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까지 걸어온 행보를 보았을 때 그의 메인마스크는 서민 대통령이 아니라 중도 좌파 정권의 도래를 의미하는게 옳다.

그런면에서 볼때 열린우리당은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 두 가지를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당이 된다. 지금 언론에선 열린우리당이 집권세력이 되면 불안하니 여권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개소리다.

여권을 견제하는게 아니라 기득권세력을 지속적으로 잔명시킬 속셈이다.

분명. 열린우리당은 불안하다. 명확히 진보세력도 아니고, 명확히 보수세력도 아니다. 하지만 이점은 장점으로 바뀌게 된다.

열린우리당이 개혁세력이란 점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박근혜의원을 앞세워 이탈이 적다는점. 민주당이 조순형으로 인해 몰락해가는 점은 정말 다행이다. 분리수거를 완벽히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장점으로 바뀌는가?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치 개혁의 승리가 된다.

아마 그때부터 열린우리당은 두가지로 분열. 아니 분열이란 네거티브성 보다는. 분리가 된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바로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로 분리되어. 실로 건전 보수와 건전 진보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열린우리당의 후보들이 80%이상 맘에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탄핵이후 유행했던. '너흰 아니야~' 처럼
한나라당과 '현재' 민주당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들은 보수세력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이다.

마무리를 해보자.

신강균의 사실은.... 처럼. 저런 방송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요즘 흔히 얘기하는 정치'알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밝혔던 것처럼 증거는 없지만 동원이 확실한. 뭐 돈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저런 동원된 선동이 아직 먹히는 사회. 이런 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양비론. 매우 위험하다. 분명 옳고 그름은 분별해야한다. 하지만 그 분별의 기준이 명확하면. 양비론이 생길 수는 없다.
여긴 이쪽이 잘못되었고, 저긴 저쪽이 잘못되었으니 둘다 잘못이다.
이건 웃기는 짬뽕이다.

물론 우리 국민은 똑똑하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바뀔 수 있는 것은 국민이 똑똑해서이다. 왜 똑똑하냐고?

문맹률이 낮다는 것은, 국민에게 설명하기 쉽다는 것을 뜻하며, 그만큼 국민들도 의견을 수렴하기 쉽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세종대왕님 덕분에 우리국민은 민의를 누구든 표현 할 수 있으며, 반대로 계몽도 매우 쉽게 할 수 있다.

계몽이란 말이 몇번 사용되었는데, 나는 이말 무척 싫어한다. 하지만.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아집에 빠진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토론의 방법도 무시한채, 설득을 할줄도, 당할 줄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 그런 점들은. 언론의 계몽성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토론에 임하는 자세는 열린 마음과, 합리적 사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 논리이다. 논리가 어려운게 아니다. 상식이 곧 논리가 되어야 한다. 상식이란 관례나 인습이 아니다. 다시 합리로 귀결되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우리가 부자인 사람 거지로 만드려 하는가? 우리가 적화통일을 외치는가?

각설.

4.15일 누구 말마따나 좀 덜 썩은 사과 표하나 던져 국회에 골라 넣자.
그 중에 안썩은 사과 있다면 다행이다.

대한민국. 국가도 작고 국민도 적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민의 정치시스템을 구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 나라를 바꾸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가슴이 끓어오르지 않는가?
그 불씨를 고이 간직하자.

Posted by 함장

2004/04/03 12:16 2004/04/0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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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는 딴나라당

미쳤구나.
겨우 내세운 카드가 박근혜의원이냐.
그래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 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도 좋아한다.
그러나 그가 짓밟은 무구한 국민의 넋과 그가 멈춘 민주주의 시계도 기억한다.

내가 박근혜 의원을 비판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 때문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였든, 김종필 현 자민련 총재를 시켜 일본에게 역사를 팔아먹었든 중요치 않다. 부모의 허물을 자식에게 씌우는 것은 빨갱이 자식이라고 돌 던지는 것과 진배없다.

일부 사람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다, 군사정권의 시발점이자 독재정권의 정점이다 하며 그 딸인 박근혜 의원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벌인 일들의 수습책 쯤으로 생각하는 데 옳지 않다.

더군다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 운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의 정치 형태 보단 개인적인 권위와 태도 때문인 점도 있다. 미국의 자존심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의 회동 때, 선그라스를 벗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며 다리를 꼬고 앉은, 어찌보면 무뢰배 같은 모습이지만 어찌보면 당당한 모습. 후에 케네디는 그 기억을 '박정희 대통령은 꿋꿋한 사람'이라고 평했다지 아마.

하지만 박정희는 박정희일 뿐이다. 박근혜가 아니다.
흔히하는 표현처럼. 목련꽃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시고 스물넷에 퍼스트레이디가 됀 박근혜 의원. 오히려 그녀는 닮기는 육영수 여사를 더 닯았을 것이다.

박영선 열린우리당 대변인의 회고를 둘러보면 박근혜 의원의 육영수 여사께서 살아계실 때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박 대변인은 "90년대초부터 박 의원을 여러차례 인터뷰했는데 내공이 많이 쌓여 있고, 인내심이 굉장히 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가지고 있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며 "다만 서청원의원 탈옥사건때 침묵한 것과 탄핵안이 가결되던날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릴때 승리의 미소를 보인데 대해 해명해달라"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있다.

사람이 좋은 것과 정치적 행보는 분명 다르다.

툭 까놓고 얘기해서 조순형씨와 최병렬씨가 옆집아저씨라서, 이웃이라서 자주 왕래한다면 그들 인간의 면모를 관찰하다가 괜찮은 사람이라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은 정치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요즘 이전에 꽤 깨어있는 생각과 합리적인 사고로 우리의 사상과 사고를 이끌었던 사람들이 우릴 어떤 식으로 배반하고 '미친거 아냐?'라 의문이 들정도로 180도 노선을 바꾼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박근혜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가 아무리 육영수 여사와 같은 깨끗한 모습을 유지해오고 지금까지 정치적인 행보가 옳았다 하더라도 요 몇달 우리에게 보여준 행보를 잊어선 안됀다.

이미지 정치라 했던가?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이미지도 변한다. 그 옛날 홍사덕 의원이 지금 이렇게 될거라고 판단한 경북 영주 사람들이 있을까? 그 옛날 전여옥씨가 '일본은 없다',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로 사회에게, 여성들에게 어필했을 때, 현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는가?

문제는 현재다.

서청원 의원을 탈옥시킬 때 침묵하고, 탄핵에 표를 던지고 독립투사의 딸인 김희선의원이 단상에서 끌려나올 때 비웃던.

저 모습을 잊어선 안됀다.

딴나라당. 영남권의 표라도 마지못해 차지하여 연명해 보겠단 술수. 이젠 안통할 것이다.

또 모른다. 사람은 변하는 것이니. 박근혜의원이 대표로서 딴나라당을 한나라당으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전에는. 저 모습을 잊을 수 없다.

Posted by 함장

2004/03/24 12:43 2004/03/24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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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日也放聲大哭

분노가 끓어올랐다.
어찌 감히 대한민국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쓰레기 국회의원들이 노무현대통령을 탄핵시키나.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 개표시작 후, 표가 역전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얼마나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가.
아. 내 나라가. 내 민족이. 50년 넘는 구태를 벗어던지고 드디어 미래를 향한 힘찬 걸음을 걷는 구나. 태어나 국가를 향해, 얼마나 가슴터지는, 목메이는 사랑을 보였던 한 해이던가.

5공 청문회 시절 노무현
5공 청문회 때, 전두환에게 질문공세를 퍼붓고, 전두환의 쓰레기같은 답변에 울분에 차 자신의 명패를 바닥에 내리쳤던. 기억하는가? '본인은 아직도 의혹이 남아있습니다!!''국민의 비판은 누가 책임질겁니까!!'

난 노빠다. 유시민님 못지 않은 노빠다. 비록 어린나이지만. 노무현이 걸어온 길을 알고 있고. 앞으로의 행보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얼마나 솔직한가? 분명 모든 종류의 청탁은 받아 들여지지도 않을 것이며 폐가망신까지 시키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진실이 최고의 품위라며, 자신의 모든것을 다 까발리는. 그 누구의 기사처럼 국회와 메이저 찌라시들을 상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도 1인 시위를 하고있는. 대한민국 정치의 일대 개혁을 위해 도박을 하고 있는 그이다. 대통령직에서 도박을 하는 짓이 미친짓이라고? 보라 그의 뒤에 국민이 있는 것을. 우리 국민은 노빠는 아니다. 당연히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상식은 국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치가 썩었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다. 그런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대통령은 자신 한몸 자존심 바쳐가며 시위하고 있지 않은가?

노짱이 1년동안 한일이 뭐가 있냐고? 권력의 첩인 검찰을 저만큼 독립시킨 것이 보이지 않는가? 검찰과 담을 쌓았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검사스런 검사들과 자존심 긁혀가며 토론하던 그. 그렇게 홀로 찢겨지면서도 검찰이 겁을 상실하고, 정치권을 향해 사정의 칼부림을 부려도 아무런 압박을 가하지 않고 있잖은가.

유시민 의원 끌려나가며 외치던 '누가 뒷책임을 집니까 누가 뒤책임을 져요 한나라당 민주당에서 뒷책임만 질 수 있어도 이것은 총칼없는 쿠테타죠 자기들이 뭔데' 그렇다 지들이 뭔데.....

그 2명의 반대자. 박수쳐 줄만 하다. 마치 1990년 1월, 통일민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3당 합당에 대해 ‘이의가 있느냐’고 묻자 홀로 이에 대해 반대하며

3당 야합을 반대하던 노무현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을 해야합니다!'
주장하던 노대통령과 진배없다.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오늘은, 아니 한달은 이렇게 울면서 지내겠다.
오히려 그들의 개소리로 내 마음을 더욱 때리며 외치겠다.
'더 내려쳐라, 날이 시퍼렇게 설때까지.'
그리고 총선날. 그 시퍼렇게 선날로 너희를 처단하겠다.

좋다, 전여옥부터 시작해서 다 들러붙어라. 한국사람들 쓰레기 분리수거 잘한다.

유시민님의 인터뷰처럼, 난 운동권을 믿지 않는다. 촛불시위에서도 각 대학 깃발만 보면 짜증부터 난다. 서울대 컴플렉스가 아니라. 노무현이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운동권 정치인들에게 무시받는 다는 사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가진 돈과, 권력, 학벌로 대접받는 다는 사실. 진정한 민초의 항변은 없다는 슬픔. 서민들이 낮시간에 집회를 어떻게 하는가? 노짱이 얘기했던 것 처럼. 밥그릇이 우선이다. 적어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투쟁을 할것 아닌가?. 학벌사회, 직업에 귀천이 있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유토피아는 올 수 없다. 우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추구할 뿐이다. 지속적으로 인권이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서민들은. 지친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도. 더욱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촛불을 들고 모여든다. 깃발을 들고 군중을 이루며, 투쟁하지 않는다. 집회가 아니다. 하나하나 서민들의 촛불, 소망이 모일뿐이다.

다시 한번. 노무현과 유시민을 닮고 싶다.

Posted by 함장

2004/03/12 15:16 2004/03/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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