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의 지휘명령체계는 한 국가의 '이상적인' 그것과 닮아있다. 함장의 권한은 잠수함 전체를 좌우하는 능력을 가지며 그 지위도 구성원들 모두의 동의로 보장된다. 사관식당에서 이루어지는 장교들의 대화나 회의는 '국가안보회의'와 같은 역할을 하며, 함장으로 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지휘통솔구조는 명확하게 구분되고 통합되어있다. 그리고 잠수함 승조원은 '전부' 남자로 구성되어있다. 이는 '남녀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성적인 평등'을 의미한다. '성'으로 인하여 구성원 간에 차별받는 것이 없는 완벽한 '유토피아'에 가까운 구조다. 마치 아마조네스 왕국처럼 말이다.
허나 국가든 잠수함이든, 권력의 수장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기에, 만약 그가 폭주할 경우엔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조처'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Manual'. 규정이다. 중요결정사항에서 국민이나 국회의 동의를 얻거나, 부함장의 동의하에 지휘를 내리게 되는 시스템. 이는 역사적 '군부독재'사건들에서 보아온 일련의 지휘권 폭주들을 방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결정안'들임에 틀림없다.
그런면에서 『크림슨 타이드』와 『유령』은 '핵'이라는 최강의 무력사용을 두고 벌이는 잠수함 이야기 속에서, 'Manual'이라는 것의 존재가치와, 인류보편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 '이성'이 하는 역할에 대해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크림슨 타이드』의 서두는 미국인들의 Nationalism으로 부터 출발한다. 그들은 USS 알라바마호에 승선하기 전에 함장("진 해크만")으로 부터 일장연설을 들으며 '국가주의 의식'을 고취시킨다. 자신들의 잠수함 이름이 가진 의미가 '선한 사람들'을 상징한다 스스로 다짐하며, 자신들이 '세계에서 제일 좋은 곳에 사는 사람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 사람들'이라 다짐하고, 앞으로 자신들이 벌일지도 모르는 '핵무기 발사'라는 임무가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선'을 행하는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이점을 욕할 수는 없다. 이는 미국의 '대외 정책' 기조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들은 명확하게도 '프랑스의 인권선언문' 정신을 따르고 있다.
혹자는 '미국'이란 나라가 왜 남의 나라에 자신들이 '자유'를 못가져다 주어서 안달이 났는지 궁금해 하며 우리의 기억속에 있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떠올려 본다. 허나 '민족자결주의'의 허울은 그 민족이 '어느 제국의 식민지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지 자체 독립을 옹호해 준 것은 아니다.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 받은 '프랑스 혁명 정신'을 따르는 국가다. 그 정신은 '국가의 위기는 곧 국민의 위기'라는 정신으로 대처하며, '자유정신'을 퍼뜨리는 것은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서 전세계 방방곡곡에 능동적으로 전파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면들을 이해해 볼때, 그들이 그들의 힘으로 '세계 경찰 국가'를 자처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사고'에서 무리함이 없는, 아주 당연한 처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자유 전파'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또 다시, 간디께서 설파하신 인류 보편적 가치. 즉 '비폭력'에 대한 이야기로 반박할 수 밖에 없다. 과연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유'를 전파하는 것이 합당한가? 라는 '목적의 합당성에 대한 수단의 변칙'을 짚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함장("진 해크만")과 부함장("덴젤 워싱턴")은 사관식당에서 '핵'에 대한 이견을 보인다. 그리고 클러스위츠 얘기를 들먹이며 '전쟁'이라는 국제 정치사회의 '수단'에 대해서도 '이견'을 보이며, 하버드에서 '수료'한 엘리트 부함장과 상당히 권위적이고 단순한 함장 사이의 의견대립을 통해 '사회의 권력층과 지성인층의 의견대립'을 보여준다.
권력층이 자신들이 내비치는 '정치적 행동'에 대한 변명을 늘 '구국의 결단'이라 위엄있게 칭하는 것을 보며, 지식인 엘리트 층이 그 '구국'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류보편의 가치에 어긋나는 지를 보여주는 이 사관식당 장면은 우리가 '국가'라는 틀안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함장이 '클러스위츠는 전쟁이란 또다른 정치의 연장이랬지.'라는 발언을 통해 세계의 권력구도 속에서 '핵'이 가지는 정치적 권력에 대한 이해도를 보여주며 자신들의 행동에 '합리화'를 시키는 반면.
'하버드 수료생'이라는, 지식인의 잣대라는 편견을 관객에게 부여한 부함장의 해석은 함장과 달리 '전쟁은 정치적 이유보다 전쟁 자체를 위한 겁니다.'라는 대사로 맥을 달리한다.
이어서 '핵병기가 있는 현재에선 진정한 적은 파괴되선 안되죠.....핵이 있는 현재의 진정한 적은 전쟁 자체입니다.'라는 통렬한 비판으로 '군인'으로서의 자신들의 존재 정체성과, 현재 자신들이 잠수함으로 항해하는 이유가 '핵'을 발사키 위한 일이라는 아이러니를 통해 Nationalism과 인류보편의 가치추구가 상충하는 점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그럼 우리 영화『유령』은 어떨까? 설정은 『크림슨 타이드』와 매우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핵'을 발사하려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자로 구분되니까. 허나 그 설정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져오는 충격은 분명 『크림슨 타이드』와 다르다. 이는 우리민족의 정서 뿌리 깊숙히 심어져 있는 반일감정과, 강대국에 대한 '한' 때문이기도 하다.
202('유령'호의 부함장, "최민수")가 자신의 카리스마로 함내 장교들과 부사관들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관객이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된 이유와도 동일하다. 러시아에서 차관 대신 몰래 들여온 '핵잠수함 유령'이 미국과 일본에게 들키는 바람에 결국 국가 수뇌부에서 이 '핵잠수함'을 태평양 한가운데 자침(스스로 파괴하여 침몰함)시키는 결정을 함으로써, 잠수함 승조원 모두와 늘 국가의 권력층에게 반감을 가져온 실제 현실의 국민들은 자연스레 202의 의견에 동류된다.
국가의 명령대로 잠수함을 자침시키려는 함장을, 202가 암살하고 잠수함의 지휘권을 잡으며 자신들의 '유령'을 침몰시키게 압박을 가한 '일본과 미국'에게 핵미사일을 퍼부으려는 상황전개에 관객들 스스로가 국가 수뇌부를 '군사력'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두 번의 상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류해나간다.
이는 관객의 국민적 이성을 넘어, '약소국'이라는 설움과 '반일감정'이라는 분노감이 합류되어 어떤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가에 대한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심리적 요인이 크다.
파시즘국가는 어렵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민들 스스로가 동류의식을 타면서 국민의 민족주의가 인류보편 가치를 넘어서서 자민족중심주의로 굳어지면 정치권력의 상층부는 쉽게 국민의 정서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 사건들이 증명해주며, 『유령』이란 영화를 통해서도 쉽게 보여진다. 잠수함 승조원 공동체, 즉 국민공동체가 전체적인 '멸망의 위기의식'을 느끼면 쉽게 '대동단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대동단결을 통한 '단체행동'자체의 향방은 그 권력의 구심점이 가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맞 대응과 폭력성이냐 혹은 평화적인 대화와 토론 또는 거래를 통한 협상인가 라는 성향으로 결정된다.
흔히들 우리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 얘기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지는 의문이다. 김진명씨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핵'을 보유하고 쏴대는 대한민국 이야기가 300만부나 팔리며 베스트 셀러를 장식하고, 언젠가는 통일을 이룰 북한의 핵 보유에 미래의 핵보유국을 꿈꾸며 열광한다.
헌법에는 '방어적 개념의 국군'을 표방하고 있지만 '공격적 개념의 해병대'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아이러니는 '북한과의 대치상태'라는 이야기만으로 설명해내기엔 '헌법'이 가진 위력이 너무나 초라해져 버린다.
지정학적 위치의 약소국,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 사이에서도 '명분'과 '실익'을 쫓아 한반도 비핵화 선언, 군축협약 등을 논의화하며 '평화'를 부르짖는 것은 허공에 부르짖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일까?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이 '반핵시위'를 하며, 인류의 평화를 부르짖으면서도 '일본 극우 지도층의 망언'에 발끈하여 '일본 국민 전체를 비하하는'이야기를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선 궁금증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한 국가 정부의 의식수준은 그 국민의 의식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일본 군국주의 망령에 씌인 사람들을 향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부정하는....' 운운 하시며 준엄하게 꾸짖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우리 국민은 유난히 '일본'에 관하여서는 아직도 그 '분'이 풀리지 않은 채, TV에서 하는 600년전 '이순신 이야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현재의 일본'과 '과거의 일본'을 동일 선상에 놓고 바라보는 우를 범한다.
『유령』을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코멘트에서 '대량학살을 가져올 뿐인 핵의 발사'를 저지한 힘없는 지식인 엘리트 431("정우성")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강한 힘의 논리를 펼친 202처럼, '역시 나라가 설움을 받지 않으려면 핵이 있어야 해', '핵잠수함을 만들어야 해'라는 의견들이 수없이 발견되고 있음을 본다면 우리 국민의 '평화'에 대한 이중잣대가 무엇에 의해 가려지는지는 명백하다.
분명 막강한 군사력은 세계적인 안목의 국가권위를 세워준다. 허나 '핵'이 가지는 그 위협력을 모두가 이해하고, 전 세계 지식인과 지성인들이 반핵시위를 하며 전 세계의 '핵무기 감축'을 요구하는 이 순간에도 '국가가 강해지기 위해', '민족이 자주적으로 일어서기 위해' 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우린 어떤 연유로 동의를 해주어야 하는걸까?
아무리 세계가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다 하더라도, '힘의 논리'가 도덕적 당위성을 갖출 순 없다. 인류가 '배우고 가르치는' 이야기는 모두 '사람이 걷고 있는 평등한 길'에 대해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과 관련있다.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로 시야가 가려져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는 일들에 지식인층이 뛰어들어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가하는 것은 '이성을 지켜내려는' 그들의 순수한 노력이다.
『크림슨 타이드』에서 부함장이 이성적인 판단으로 Manual에 의거, 함장의 권한과 지위를 박탈하는 것은 Power Game이 아닌 '이성적인 고찰로 만들어진 규정'을 통해 상황을 차분히 대처하는 지식인 다운 행동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인류보편의 가치가 민족이나 국가가 추구하는 이상향 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 국민이 중국에서 반일감정으로 폭행당하는 일본학생의 안위를 걱정할 높은 수준의 인권의식을 가지고 있을거라 믿고싶다.
민족주의, 좋다. 민족의식 고취도 좋다. 허나 분명 그 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습관적으로 민족의식으로 인해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