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엔 영화 '연애의 목적'이야기가 주를 이루니 아니 보신분은 스리슬쩍 넘어가시는 것이 DVD 대여료를 아깝지 아니하게 여길 수 있는 길입니다.
꽤 많은 분이 '연애의 목적'에 '반감'을 가지시는 것 같아서 제가 즐긴 시선들을 적어볼까 합니다.
그 누구나, 남자든 여자든 초반에 박해일의 행동을 보면서 반길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박해일과 친한 조선생 역할의 '이대연'씨가 아마 남성의 시각에서 보는 3자의 입장을 잘 비춰주고 있다고 봐야죠.
이건 박해일이 싱글이든 더블이든의 문제가 아니라 분명 '성추행'을 넘어서 '성폭력'의 문제거든요.
강혜정의 태도 또한 '교생'이라는 사회적 지위로 눌리는 것과 묘한 감정의 선상에서 노니는 듯 보여도, 분명히 '성적 접근'에 대한 거부감은 명료하게 보였죠.
그런데 여기서 오는 괴리감 하나. 분명 성폭력상담쎈터나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구호. 여성의 'No'는 정말 'No'라는 것. 이 구호와 사실여부에 관해서 100% 공감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경험담 속에서 늘상 숨어있는 스토리에서 그 'No'가 명확하게 'No'인 경우가 100%가 아니된다는 것이죠.
오해가 쉬운 얘기이기도 한데,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하게 '성추행'으로 보이는 것이 그 당사자들의 '접근'과 '거부' 사이에선 그들 나름의 다른 시각이 생길 수 있다는 점.
그 점을 관객의 입장에서 제 3의 시각으로 즐기기엔 분명하게 불편한 장면들이고, 행위였다는 점을 잊을 수가 없죠.
그러나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명확하게 나뉩니다. 50만원의 얘기가 나온 직후, 그들이 여관방을 합방한 후로 부터는 상당히 재미있는 양상이 벌어지게 되죠. 사실 그 후로는 박해일이 초반에 보였던 그 노골적이고 뻔뻔스러우며 추잡한 짓거리를 벌이지 않습니다.
강혜정이 명확하게 자신의 '집'에는 다른 '남자'가 올 수 없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박해일은 열쇠를 몰래 뺏아서 집으로 뛰쳐갑니다. 문제는 여기에서의 시선이 전반부로 인해서 갈라집니다.
이게 사랑에 빠진 얼치기의 호기심 해소인지, 그저 집에 들어가 또 섹스를 하자고 보챌 남자의 쓰레기 같은 근성인지. 그 해석의 차이가 갈리게 되죠.
그런데 하나 논리적 문제를 짚자면. 남자가 '섹스'에만 집착하는 동물로 해석을 할 수 있는 전반부를 보자면 '관계'를 가졌기에, '죨라 맛있다'는 표현을 써가며 '맛'을 본 박해일이 그 '맛'에 중독되어 계속 찝적대는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서 찝쩍대는지 명확하게 표현된 점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특유의 보여주기는 후반부에 노골적인 섹스신을 보여주지 않음으로 인해 시선의 변화를 꾀합니다.
분명 많은 이의 분노를 샀을지도 모를 '열쇠뺏기' 신공으로 강혜정의 집에 쳐들어간 장면이 오히려 강혜정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이해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도래하는 거죠.
표현하는 사람자체가 혐오스러운 '걸레'라는 표현. 그리고 그 표현이 가져오게되는 영향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해일은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는 얼치기 마초정신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얼치기'로 인해서, 세련되지 못한 토닥임은 이미 강혜정의 숨기고픈 비밀을 '훔쳐봤다'는 사실과 결부되어 강혜정의 분노를 사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악몽을 다시금 들춰낸 박해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팔베게'가 필요하게 된 웃긴 상황이 오는거죠.
자신의 아픔을 아는 것을 넘어서 이해하고 다독여주려 한 남자니까.
사실 여기서 부터 큰 변환점이 되어버립니다. 스무살 때 만나 6년이나 사귀어온 여자가 있는 녀석이 '진짜 사랑'이 뭔지 깨달아버린 거죠. 그저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성에 대한 맹목적 굶주림으로 덤벼들고 진지한 관계의 고찰없이 맺어진 끊으로 결혼까지 준비하던 그 녀석에게 사랑하는 사람, 아픔을 감싸주는 사람,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사람. 여러가지의 존재감을 깨닫게 하고, 심지어 그 안에서 '그'를 이용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그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림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어느새 박해일은 '남자'가 되어버립니다.
이 변화가 얼마나 큰지는 강혜정을 끝까지 보호하려하고, 강혜정의 자기보호의 발언에도 배신감을 넘어서 '확인'을 가지려 하는 태도는 분명 기존의 격분적인 박해일의 태도와 상반됩니다.
어느새 박해일이 커버린 거죠.
그 뒤로 맨정신에서 조차 강혜정에게 '과거'의 얘기를 들춰내지 않는 이유는 그겁니다.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돌아보고, 자신의 반성을 거쳤을 그 남자.
물론 술에 취해서, 침대위에서 나누었을 사랑의 밀어들에 대해, 자신이 가졌던 상대에 대한 신뢰가 마치 성폭력으로, 힘으로 눌러버려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들었던 여성처럼 뒤집어지는 현상을 분노로 느끼며 울분을 토로하지만.
그를 그렇게 '성장'시킨 것은 강혜정이란 여성캐릭이 되어버립니다.
꽤나 많은 남성이, 마치 성의 중독자처럼, 속물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위에 넘쳐나는 성매매업소들이 죽지 않는 다는 것은 그런 혐오감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이 가지는 '힘'이 쓰레기 같은 남성과, 그로 인해 늘 굴종되는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나빠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연애의 목적'을 보면서 초반에 박해일에게 더러운 기분과 함께 분노의 주먹을 날리고 싶은 기분과도 동일하죠.
그러나 저도 그랬고, 많은 분들도 그랬을 과거. 깨닫고, 가르침 받고, 세상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 가는 '성장'의 이야기를 놓칠 순 없죠.
강혜정이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금 설 수 있게 만든 것도 결국 '박해일'의 이해와 사랑 때문이고, '박해일'을 개 난봉꾼에서 조금 나아진 아직도 철들려면 한참 먼 인간 정도로 개과천선 시켜놓은 것도 '강혜정'입니다. 물론 그 뒤로 강혜정이 얼마나 고생해가면서 저 인간을 바꾸어 놓을지는 모르지만 말이죠.
'연애'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에 대한 완벽한 고찰이라 여겨지는 이 영화는 수작이라고 볼 수 밖에 없어요. 모든 남성이 다 역겹고 더러운 존재라 하더라도, 연애 좀 하면서 철이 좀 들어야지 그나마 그 단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은 비록 여성분들을 슬프게 할지 모르지만.
사람이 사람을 믿는 다는 것이, 믿고 같이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리고 그 힘든 '연'의 인과관계속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그 틀속에서 다독이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이 영화 각본 쓴 여자분에게 '경의'를 보냅니다 --)b
Posted by 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