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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데.

'민주'는 다들 알면서 '공화'는 모른다.

민중의 넋이 주인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노래 죨라 불러도.

그리고 민중이 주인되는 삶이 참 진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들 민중으로 남기보단 '가진 자'가 못 되어서 안달이다.

'돈'이라는 게 한정되어있어, 부자는 늘 소수이고, 그 '부'가 권력이 되고, 권력은 늘 폭력을 내포하며, 그 폭력이 다수인 민중에게 뿌려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극복할 생각은 없고 저마다 조금이라도 그 소수에 편입되기 위해 지랄한다.

5년에 10억 만들어서 뭐할건데?

5년에 10억 만들고 '넌 누구니?'라는 질문에 당신 이름과 경력, 사회적 지위외에. 자신 스스로의 참 모습에 대해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데?



상아탑은 개뿔. 운동권의 '운동'에 개념조차 확인하지 않고, 비운동권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오로지 연봉과 취업에 매달려 자신들의 정체성조차 찾지 않는다.

대학생이라는 지식인이자 지성인이어야 하는 그들이, '학생운동'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공화'적인 모습을 달성하기 위해 분연히 노력하고 있는 그들이. 그들의 운동이. 그토록 고까운가?

그들의 '죄'라면 생각없는 대학생들보다, 이 사회에, 스스로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몇 번이고 더 던져보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뛰어보고 있다는 것 밖에 없다.



4천 500만 국민중, 학생 제외, 전업주부 제외, 노인층 비노동인구 제외하고, 노동자만 1천 500만인 사회.

개나 소나 기업가들의 입장을 죨라 이해 잘하면서 노동층 이해는 없다.

역지사지 죨라 잘하는 민족인 갑다.

그저 다른 직업이 부러운 이유는 좀 더 편하면서, 좀 더 많은 연봉. 그 뿐이다.



과거 '유치찬란뽕짝'님의 코멘트 따나, '로또 구매액의 절반이 사회 복지적인 성격으로 쓰인다는 얘기를 씨부린 적이 있다.

농담삼아 한 얘기지만 앞으로 쓰지 말아야겠다.

과거 '피오넬'님의 코멘트 말마따나. 나는 사회의 '공화'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글쓰기? 세금지출? 그냥 지랄하는 것일 뿐이다.



미드나잇 채널의 에로영화 번역일이 들어왔다고.

겨울 따스게 보낼 것에 행복해하며 주위에 얘기해도.

'에로'라는 이유 하나로 우스개가 되어버린 내 '노동'



재밌다.

에로가 품격이 없나보다.

봉만대 아저씨 에로비디오 안 봤나보다.

'돈'이 많아도 그 '돈'이 정직하게 벌리지 않으면 품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러면서 '돈'을 못가져 안달인 사람들.

입에 풀칠하려 넝마주이 하는 사람들.

그렇게 벌어 쌀 조금, 파 조금, 라면 몇 조각 사들고 높은 시멘트 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돈'에 품격을 논할 수 있을까?



재밌다.

철학적 자살을 택한 이들을 비웃는 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배반'이 재밌다.

그래서 슬프다.

Posted by 함장

2005/11/24 16:04 2005/11/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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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우울하다....

몇 일 전. 중앙일보에 난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보셨을게다. 대학가 '보수' 바람.

보수는 개뿔.

뉴 라이트가 '보수' 혹은 '건전우파'라고 착각하는 사람 많은데. 요거 개소리다. 물론 그 진영에 계신 분 중 일부가 '시장논리'에 중점을 두셨을 뿐, 정치적 극우를 달리는 사람이 아닌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측백나무 숲에 소나무 몇 개 있다고, 측백나무 숲이 아닌 것은 아니다.

뭐 어차피 뉴 라이트 씹을려고 쓰는 글은 아니니 혹여나 이 블로그 처음 와보시는 분이라면 주인장의 좌우파 생각과 '자유주의'에 대한 씨부렁거림을 보려면 다음의 세 글을 참조하시면 된다.

참조하기


어차피 누구나 정치적 세력을 등에 업거나, 혹은 지지하고 연대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활동이기에 '전경련 장학생'들이 총학생회장에 나서는 것이 '나쁘다'라고 얘기하는 논지는 천만의 말씀이요, 만만의 개그다.

아니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도 있는데, 전경련은 그거 없으란 소리는 할 수 없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대학은 '지성인'을 배출하는 양성소이자, 현대 교양을 유지키 위한 곳이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공화'를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기 위한 곳이어야 한다는 데에 그 '의의'를 달리하실 분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본다.
물론 '대학'나오면 다 '지성인'이 된다는 얘기는 아닐 뿐더러, 대학 나오지 않았다고 '지성인'이 아니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관용'이 통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인간의 본성이 어떻든 간에, 지식의 확장과, 폭 넓은 이해를 통해 '관용의 범위'를 넓혀갈 수 있다는 확신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화여대나, 서강대, 연세대 얘기는 차치한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아니거니와 내가 다니는 경희대가 이미 '지랄'을 하고 있으니. 내 코가 석자다.
이번 경희대 총학생회장 후보에 임교범이라는 학생이 나와서 '비운동권'과 '한총련 탈퇴' 및 '정치와 학문 분리'를 주장하며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사실 학생들 전반에 퍼져있는 '학생운동'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면이 많다.
'폭력적'이라는 것과, 국가에서 적용시킨 '이적단체'라는 개념을 짊어진 한총련이라는 단체와의 결부.

그래서 '언론'은 무서운 것이다.

반 APEC 시위가 내포한 합리적 의미에 대해서는 일견 동조하면서도 '왜 굳이 시위야?'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시민운동 조차도 얼마나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증명을 과감없이 보여준다.
비폭력 시위로 '바위처럼'을 율동과 함께 보여주며, 'APEC'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시위=폭력적'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개념을 무의식적으로 심어주는 기사들로 판을 친다.



물론 대학가에, 좀 주장이 어처구니 없는 'NL'들이 판치는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이 '못 가진 자를 쥐어짜서 가진 자를 배부르게 하는' 윤리의식 쏙 빼먹은 '경영논리'를 내세우며 지식인이 가져야 할 '진보적 자세'를 긁어먹은 적은 없었다.
민족주의 우파의 자세를 보이는 것은 우리사회가 인정하는 관용의 폭이다.



학내의 진보적 학생들이 임교범 학생애게 정체성 확인을 위해 질문을 했다.

'임교범 학우는 뉴 라이트 입니까?'

임교범 학생은 분명, 자신은 뉴 라이트가 아니며 정치와 학업의 분리를 주장할 뿐이라고 얘기하며 항명했다.

그러던 오늘.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의 대자보는 인터넷 게시판으로 치자면 hit 수 깨나 기록한, 슬픈 대학 현실을 보여줬다.
한때, 자유주의 연대(이름도 죠까따, 어따가 자유를 저 따위로 팔아먹는가?)의 뉴 라이트 리더스 청년논객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던 그.

과거 행적이 욕을 먹어서는 아니된다.

그러나 그 과거행적을 지금으로 끌어오는 모습은 역겹다.

EIC(EIite Integrated Club, 전경련 프로그램 수료자 클럽)의 게시판에, 타 대생들에게 경희대 학교 자유게시판 주소를 링크시켜 지원사격을 바라는 그의 모습에서 심한 배신감을 느낀 학우들은 드디어 대자보에 '임교범氏'라는 호칭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전경련이 '정치단체'가 아니라고 얘기하면 이건 사회감각이 없거나, 죨라 순진하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대학에서 조중동+한나라당+전경련이 얼마나 무서운 '세뇌'를 시키는 지 자주 목격해 왔다. 경영대학 학우들 중 일부 '엘리트 급'이라 불리는 동아리 아이들을 '국회'로 초빙하여 어디서 죠까튼 '경제학자'라는 위명을 가진 교수들을 불러놓고 시장경제를 예찬하는 건지 노동탄압, 정경유착의 자기 합리화를 돌려서 얘기하는 건지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대는 고까운 꼴 따위를 보게 된단 얘기다.



대학이란 곳에 '자본의 힘'이 미치게 되면서 그 신성한 '노동자의 삶'은 온데 간데 없고, 오로지 경영의 철칙만이 '합리성'이라는 이유로 판을 친다.

지나가는 경영대생 10중 8,9를 붙잡고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그 정도의 대우를 해주면서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빠른 의사 결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얘기하는 학우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헌법에 보장한 노동 3권의 권리는, 노동자에겐 죽음과도 맞바꿀 수 없는 권리이다.

경영대 졸업자의 90% 이상이 '노동자'가 될텐데, 당신들 중 그 누구도 CEO는 커녕 평생 봉급자로 살아갈 확율이 훨씬 높을 텐데.

당신들은 어디를 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임교범 학생이 내건 총학생회장 선거운동 코멘트는 과연 내가 '대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건지. 현실에 찌들어, 이상따위 개나 줘버린 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 놀고 있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서강대 정문에 걸린, 'GE' 제너럴 일렉트로닉스 리쿠르트 현수막을 보셨습니까? 전 그게 부럽습니다. 모든 대학들이 취업을 위해 올인하고 있는 이 상황에, 우리 학교에선 지난 몇 달간 APEC 때려잡고, 부시 때려잡자는 현수막만 즐비합니다. 이게 우리학교의 현실입니다!'

임교범 학생. 당신은 느꼈을까요? 갑자기 싸늘해지는 강의실 공기를?

현실주의? 당신에게 더욱 싸늘한 현실주의를 말해줄까?

툭 까놓고 얘기해서 우리 학교 나와서 서강대 경영 졸업자들이 원서내는 곳에 내서 합격할리는 만무하다. 대학 서열화. 그거 쉽게 까부숴지는 거 아니니 현실론으로 '대학의 서열을 높이자'는 주장.

내 그 주장 이해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대학'물 먹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를 인식한다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대학'이라는 교육의 혜택을 공급하고, 사회의 상식을 풍요롭게 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위해 달려나가는 것이 지식인이자, 지성인이 갖추어야 할 '이상'이자 '현실'이 아니던가?

경남 어느 교수의 글처럼, 대학가에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안을 고수하려는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경제적 효익만을 목적으로 노동권과 삶의 권리를 빼앗는 자들을 덮어주려는 개소리가 대학가에서 나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운동권 시위의 폭력성. 폭력.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다. 모든 운동권이 폭력적이지도 않다.
그들이 내고 있는 '대학의 목소리'는 이 사회에 진보 지식인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이야기이며,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의 불합리를 개선해 나가려는 의지를 천명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들은, 운동권이 자기들만 잘난 줄 아냐고 투덜대기도 한다. 그런 이들은 결국 진보세력이 깨뜨려 나가는 과거의 불합리들을 뒤로하는 버스에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모 대학에서는 '성적소수자'를 강제로 커밍아웃(아웃팅)시키고, 레즈비언을 반대하는 후보들이 선거에 나온 모양이다.
나는 우리학교에서 '생리 공결(휴강) 제도'가 도입된다는 사실에 죨라 멋진 학교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고 다녔다.



모든 대학생이 지성인일 수는 없다. 극우 세력이 총학생회장이 되어 전경련으로 부터 학교 지원금이 늘어나게 되고, 기업체로 부터 학교 이미지가 좋아지고, 학생들 복지가 늘어나길 바라느니.

한총련이나 운동권 학생들이 더욱 많이 '비폭력'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 사회의 더 많은 사회적 모순들에 저항하기를 바라겠다.



엥똘레랑스가 죨라 필요하다.

Posted by 함장

2005/11/21 18:25 2005/11/2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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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의 사명

엽민님께서 엮어주신 글을 보면 분명 맞는 말씀이다.

내가 늘상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논리'는 그 전제가 올바르게 정해져야, 그 논리의 결과도 올바른 것이고, 늘상 '인권'이 우선이라고, 개혁 세력의 도덕적 우위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 논리의 출발점은 분명 '도덕적 권위'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 예전에 쓴 글 을 들춰보면 그 글에 달린 코멘트의 맥락들과 엽민님이 유시민의 '논리적 한계'를 비난한 부분의 맥이 그리 틀리지 않다.

자기합리화, 변절자의 변명.

뭐 그렇게 민주노동당 지지자나 이상을 가지고 개혁을 원하는 진보 세력들의 비난을 받아 마땅한 '논리'임에 분명할지도 모른다.



유시민 의원이 '감히' 내뱉은 "나는 가진 무기가 '논리'뿐이다"는 말이 어처구니 없는 실소에 묻힐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정치적 결단에 대해서 '국내'와 '국외'에 다른 잣대를 둔다. 경제학에서 '가계, 기업, 정부' 파트와 '해외' 파트를 추가한 도출이 다르듯이, 정치적 해석도 그리하게 된다.

이 이중적 잣대에 대해, 중심이 없다 부터 시작하여 온갖 비난이 들어와도 어찌 할 수가 없다.

국내에서, 누구와도 맞짱 뜰 수 있는 동등한 권리가 부여되는 반면, 세계라는 라운드에서는 체급이 다른 권투가 속계된다.

실리주의, 효용성, 현실주의 등등. 갖다 붙일 수 있는 것 죄다 갖다 붙여서 변명을 하든.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국가를 '지향'하면서 '비 전투병'이라는 명목을 붙여 '파병'을 해대는 모습과, 파병연장까지 국민비위 거슬러가면서 이미 미국의 '파웰'까지도 후회하는 파병을 해대는 이유는 분명 '도덕적인 지지'를 받을리 만무하다.

여기서 부터, 논리는 자기합리화로 발전한다.



정치학을 공부하다 보면, 결국 세계정치 논리는 '도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힘의 논리'다. 물론 이런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지만.

사실 이 점이 '합리'라는 명목하에 논리적 시발점이 되는 것은 분명 우리가 추구하는 '글로벌 사회'에 반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가난다.

난 미국이 무섭다. 'UN'도 개무시하는 미국이 무섭고, 유럽 연합의 강력한 권고도 개무시하는 미국이 무섭고, 대한민국 통틀어 300여명의 생명공학 관련 박사들이 있는 반면, 한 주(State)안의 대학에 3,000여명의 생명공학 관련 박사들이 있어 마음놓고, 종교도 다른 동양인 연구자를 '보이콧'할 수 있는 그들이 무섭다.



사실 이 모든 주장이, 민주노동당 지지자들과 진보세력이 쏴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자기합리화 논리의 시작이되는 기본 '세계 정치 구도'의 모습이다.

영국이 아무리 휴 그랜트를 앞세워 '미국 정부'를 우롱해도. 결국 미국과 손잡고 이라크를 정벌한 것은 영국 정부다.

이것이 '현실론'으로 쓰레기 같은 논리라 부정하면 나는 묵묵히 인정하면서 이런 자기합리화를 결론낸다.



'진보 세력은 순수하게 이상적인 세계화를 추구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다 개새끼, 그리고 조금 더 나쁘면 씹쌔끼.

그리고 난 개새끼로 만족'

그 뿐이다.

파병에 대한 이야기에서 민주노동당과 같이 걸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그런 맥락이다.



'논리적'이라는 것, 합리적이라는 것. 그리고 효용을 찾는 것은 그런 거다. 암만 싸워도 체급차이와 힘의 차이로 아니되면.

주머니에 구슬 몇 개 주고 쇼부치던가, 딱지 몇 개 안겨주고 친해지던가.

아 씨바, 딱지 세 개 주고 싶은데 곧 죽어도 네 개 받겠다 하면.

'유시민'의 얘기처럼, 100개 중에 한 의견 틀린다고 '넌 개새끼'로 정의하면 곧은 성격은 인정 받을 줄 모르나. 목적한 것을 얻어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죨라 뚜드려 맞는게 싫어서, 딱지 세 개 주려다가 네 개 줘서 한 개가 죨라 아까워도.

안 맞는 것이 자신의 '효용성'에 가장 합당한지 판단하는게 아쉽게도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었다.

이게 합리고, 이게 논리고, 이게 효용성이다. 암만 설경구가 '비겁한 변명입니다'하며 아카보로 갈겨대도 이 '논리'의 전제는 '세계'라는 시장과 '국내'라는 시장의 적용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출발하는 '경제학자'의 논리에는 어긋나는 점이 없는 것이다.



사실 유시민은 노무현의 팬클럽 회원이다.

그리고 나는 유시민의 팬클럽 회원이고 노무현의 팬클럽 회원이다.

이를 줄여서 노빠이자 유빠라고 소개한다.

빠돌이는 스타가 노래부르다가 목소리 갈라졌다고 욕해대지 않는다.

그저 뭘 하든 스타는 이뻐보인다.



나는 충분히 진보세력에게서 '개새끼'소리를 쉽게 들어온 사람이다. 그래서 분명, 세계 정치구도에 대한 '이중잣대'를 적용시키는 나 스스로를 그렇게 '자기합리화'하면서 묵묵히 욕먹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팬클럽 회원으로서, 스타가 욕먹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래서 개새끼에서 진보세력의 순수한 영역으로 가기가 꺼려진다.

기왕 버린 몸. 그냥 씹쌔끼 수준으로 안 가고 개새끼에서 머무르는 것이 마음에 든다.



신해철은 간통죄 폐지 토론에서 그의 명언들이 회자되기 보다 옷차림이 문제가 되는 헤프닝이 생겨 아쉽지만, 유시민의 '말,말,말'은 늘 '말'로 회자되어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하기 쉽게 만든다.

툭 까놓고 얘기해서.

만약 선거구제 개편이 이루어진다면, 이건 민주노동당의 공인가 유시민의 공인가?

그리고 그 이득은 누가 보는가?



올해 초 던가? 학교 등교길에 총학생회에서 '파병반대 서명안'을 내밀며 사인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학생에게

'저 파병 찬성자입니다'

했더니 언뜻 스치는 당혹과 경멸이 섞인 눈초리.

그래. 그냥 개새끼로 취급되는 것이 속편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Posted by 함장

2005/11/16 16:24 2005/11/1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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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다툼이 있던 글은 사나흘 후에 잠잠해지면 쓰는 데, 보통 때 보다 좀 길어지길래, 한번 들춰볼까 한다.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해보려 한다. 타인의 옷을 입는 자유, 그리고 남성의 '성적 매력'에 대한 시각의 차이.

먼저 몇몇 글에서 보면 자폐님의 글이 남성 전체를 도매급으로 비난했다고 쓰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전 글에서도 밝혔 듯, 자폐님이 '정리한' 글만 보면, 매우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시선 구분부터, 확실하게 '극 소수의 악질 남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어차피 자폐님도 더 이상 이야기에 오르길 싫어하실 것 같으니 내 얘기를 해보자.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여성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든, 란제리 룩으로 다니든 자신이 입고 싶은 것을 입고 아무런 신체적 자유를 방해받지 않으며, 거북한 시선을 받지 않는 사회의 이룩이다.

거북한 시선이란 빤히 보는 것도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많은 분이 공감할 것이다. 물론 그 '빤히'라는 것도, 그 눈빛에 음탕함이 묻어나는가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그 어떤 잣대로도 그 사실을 정확하게 측정해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진중권씨의 견해처럼, 신해철이 100분 토론에서 복장을 어떻게 입었든 우리는 타인의 '복장'에 대해 강요하거나, 참견할 권리따윈 없다. 고로 어르신들의 딸래미 걱정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자기들이나 노래방가서 도우미 찾지 마시라.

흔히들 얘기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공공장소를 활보하며 노출시키는 권리가 있다면 '볼품없는 다리'를 안 보고싶다는 권리도 있다는 것. 이거 상당히 무서운 논리인데, '보고싶지 않은 권리'의 잣대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라면 반대로 '입고 활보할 권리'도 분명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서로 잡아먹는 논리가 되는데, 보고싶지 않은 권리라는 것이 웃긴 이유는 시야권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대해 자신이 재단해서 호불호를 판단하여 그를 이해시키라는 것은, 현대사회의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비롯하여 '의식주'의 다양성까지 말아먹어버리는 말도 안되는 논리인 것이다.

다리가 굵어서 이쁘지 않다고 하자. 그 이쁨의 기준도 천차만별인데다가, 오로지 '이쁘지'않다고, 그게 시각에 대한 폭력이라는 논리는 어처구니 없지 않은가? 왜? 뚱뚱한 사람이 이쁘지 않아서, 빼빼마른 사람이 이쁘지 않아서 눈에 안보였으면 한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는 이제 밀어내고, 그 '중년'들의 시선. 그리고 '성폭력'운운하는 시선을 말해보자.



미니스커트가 성폭력을 유도하고, '중년'들은 그저 자신의 딸 같아서 그리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는 심정. 그래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우리 아버지 한나라당 좋아하는 것도 이해하는데, 그까이꺼 뭐 이해 못하랴만은.

원칙에 위배된다.

그들의 노파심 섞인 눈빛이든, 변질되어 변태스러운 눈빛이든. 그들은 여성의 미니스커트 입을 권리, 노출이 좀 심한 옷을 입는 것에 대해 오지랖 넓게 충고할 권리가 없다.

이 얘기는 정동영의 선거 때 발언,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투표하러 아니 나오셔도 좋습니다'와 동일하게 보여서 싸가지 밥말아먹은 것으로 보이기 쉬우나. 분명 다름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가끔 나는, 한국 사회의 밤거리는 서구사회보다 안전하다고 주절거린다. 이는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바로, 꽤 신빙성 있는 이야기라 자주 확언하듯 내 뱉는다.

그도 그럴것이.

신촌 한 길바닥(지방에 계신 분을 위해 첨언하자면, 연세대학교 정문 쪽의 흔히들 '신촌'이라 부르는 곳은 불야성이어서 동이 터올때까지 꽤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에서 한밤중 혹은 새벽에. 어떤 여성이 미니스커트 입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한쪽 구석에 쭈그려 있어도, 꽤 많은 사람들의 측은한 시선을 받을지언정, 이 여성이 주민들의 신고로 파출소로 가거나, 지인들에게 부축되어 어딘가로 가기전까지는 안전하다. 물론 똑같이 술먹고 개가된 남성이 옆으로 접근하거나 의리의 열혈남아가 접근하는 경우도 있긴하나, 전자는 또 다시 주변을 지나가던 '의리의 열혈남아'가 떼어주기 쉽상이고, 후자는 오해받기 쉽상이니 될 수 있다면 4천만의 안전요원 112를 이용하는 센스를 발휘하기 바란다.



반대로 한국의 어떤 여성이든, 집이 으슥한 골목길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로등 한 두 개 꺼져있어도. 그 곳은 공포의 대상인 것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꽤 많은 여성이 퇴근 길, 집 근처 으슥한 골목에서 변태나, 불한당들에게 모욕을 당하거나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버스에서 내려서 쫓아오는 변태도 한 둘이 아니다.



이런 두 가지의 극을 달리는 상황. 한국 사회의 밤이 안전해 보이는 이유는 번화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밤까지 환한 곳에서 흥청망청 마셔대기 때문이고, 여성들에게 밤이 무서운 이유는 어느 어둠에서 뛰쳐나올지 모르는 불한당들 때문이다.

미니스커트 때문에 성폭행이 일어난다고? 웃기는 소리 달나라가서 하시라. 으슥한 장소와 아무도 없는 상황이 결국 인간의 쓰레기 같은 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안 들키면 그만이라는 짐승보다 못한 쓰레기.



다시금 얘기하지만. 여성이 스스로 무엇을 입든, 그것은 심지어 '남자친구'도 권유할 수는 있을지언정. 요구할 순 없다. 그것은 '신체의 자유'와 동일한 것이며, 옷을 입는 이유 또한 방한 내지 피서를 위함이고, 거기에 미적감각을 더할 뿐. 개인의 자유에 대해 함부로 '보지 않을 권리'나 '성폭행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키 위함'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를 내세워선 안될 것이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제 남성의 '성적 매력'에 대한 시각 얘기를 해보자.

또 다시 밝히는 데, 분명 시발이 된 '자폐님'의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남성들의 시선을 도매급으로 매도한 부분이 전혀 없다. 분명 남성의 본능이든 무엇이든, '살색'의 노출에 시선이 가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게 흘끔 보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난 도무지 그 글이 왜 그리 남성을 '도매급'으로 매도한 글이라고 이야기들이 퍼졌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각설하고.

분명 '자폐님'의 생각과 내 생각에 큰 차이가 하나 존재하긴 했다. 나는 지나가는 여성의 미니스커트 아래로 뻗은 다리를 스쳐보거나, 자세히 보거나 하면서 '도덕적 창피'를 느낀 적이 없다.

물론 지하철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과 마주 앉으면 시선처리가 곤혹스러우며, 그 곤혹스러움은 무심코 그 여성의 다리 사이나, 치마속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풍기게 하여 그 여성과 주변인들로 부터, '변태'라는 낙인이 찍힐까봐 두려운 점이다. 이는 바쁜 출근길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할때, 손가방으로 늘 치마 뒤를 누르듯이 가리고 올라가야하는 여성의 불편함과 동일선상에 놓이기도 한다.

이는 속옷과 관련한 문제인데, 위에서 란제리 룩을 언급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란제리 룩은 속옷을 '일부러' 드러나게 하거나 비슷한 느낌의 의상을 입는 것을 말함이지 '속옷'의 기능을 하는 것을 노출시키기 위함은 아닐게다.

분명 미니스커트가 속옷의 노출에 대한 위험도가 크긴하다. 그렇다고 미니스커트가 아찔하게 속옷을 노출시킬랑말랑한 디자인으로 나오는 것이 섹시한 의도 외에 '실제로' 속옷을 노출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기 위한 의상이라는 것은 오버다.



어쨋든 다시금 '다리를 바라보는' 이야기로 돌아가서.

사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 미니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다리를 들여다 보는 것이 그 어떤 '섹시미'라던가 '성적연상'을 던져주진 않는다. 상당수가 '여성의 섹시한 다리' 혹은, '팬티가 보일 정도로 아찔한 미니스커트'가 '성적연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는 듯 한데. 이거 오버다.

이게 말로 설명이 가능할까 모르겠는데, 어떤 분들에겐 역겨운 비교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시각적 충격'이 지속되어 무뎌지는 성적자극의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어릴 때는 도색잡지의 비키니만 보고도 발기하던 아이가, 벗은 여성으로 가득찬 포르노를 봐도 발기가 아니되는 수도 있다.

'성적연상'이 발생하는 것은 '시각적효과'가 그 빌미를 줄 수는 있을 지언정, 무턱대고 '살색'이 많이 보인다고, 치마가 짧다고 그런 연상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치면 나는 학교에서 건물 사이를 이동만 하려면 발기해 있어야 한다.

미안하지만 그러면 청바지 입고 걷기가 매우 불편하거든?



어릴 때는, 각선미가 최고라느니, 가슴이 이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아무리 보고 지나가는 여중, 여고 누나들의 다리를 아무리 봐도 뭔 소린지 몰랐다. 굵고 가는 것은 알 수 있었어도, 어느 정도가 이쁜 것인지 몰랐다.

어느 여배우가 '세븐 라이너' 광고를 할 때도 이쁜 각선미가 7도라는데 도무지 그 기준이 뭔지도 몰랐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서서히 여성의 '곡선'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어떤 영화를 보다가 여배우의 가슴곡선에 탄성을 자아내기도 하고, 학교 복도에서 지나가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보면서 몸에 달라붙는 옷도 아닌데, 어께에서 허리에 이르는 등의 양쪽 곡선을 보면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한다.

물론 여성이 돌아서서 날 봤으면 나도 그만 봤겠지만,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 내가 바라본 행동은 '경탄'의 행동이지 도덕적으로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훔쳐보기'는 아니다. 이유인 즉슨,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제 3 자들이 봤을 때, 내 스스로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분명 위의 '지하철' 케이스와 다르다. 지하철에서는 분명 주변사람들의 시선까지 의식하게 되지만, 이 시선은 그저, 상대방이 '불편하게 느낄 시선'을 주지 않는 선에서. 그렇게 감탄하게 된다.



이는 스쳐가는 배꼽티도 마찬가지다. 살짝 드러나는 허리선에 지나치기 전에도 한번, 지나친 후에도 한번 돌아서며 바라보게 되는 것은 성적의도 보다는 '예쁜 것'을 한번 더 보게 되는 의도이다.



다리가 예쁘지 않거나, 몸매가 이쁘지 않은 여성에게 분명, 시선이 다시금 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점에 관해서는 '본능'이라는 이야기로 변명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다.

왜냐하면 인간이 '본능'대로 살지 않고 억제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 점을 억제시켜야 주장한다면 크게 반박할 여지는 없다.

그러나 이런 비교법으로 여성을 악세사리로 보느냐, 인권의식이 미친거 아니냐고 욕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여성들이 예쁜 악세사리를 보면 시선이 집중되듯, 나와 비슷한 시각을 가진 어떤 남성들은 여성의 곡선이나, 발목에서 대퇴부에 이르는 직선과 곡선들이 '예쁘게 보여' 시선을 주게 되는지도 모른다.



물론 악세사리 보듯, 만지거나,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거나 해서는 분명히 안되는 것. 그런 의도로 비유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예쁜 것에 눈 한번 더 주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본능'.



여기까지가 그 '흘끔' 보게 되거나, 가끔 넋놓고 바라보게 되는 여성의 패션에 대한 이야기다.

그 여성이 '불쾌하게' 느끼는 시각의 정도는 개인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일 것이고, 그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그러나 이 점은 확실하다.

1.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완력에서 우수하다.

2. CSI 마이애미 시즌 1의 2편인가? 3편에서 서로 모르는 여성끼리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3. 시선을 마주치면 서로 살짝 웃어주는 예의는 어색한 조우에서나 일어나는 에티켓이다.

4. 양아치들이 자주 뱉는 '뭘 꼬라봐?', '눈 깔어'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빤히 보는 시선. 바라보는, 전혀 모르는 상대가 알아차리는 시선은 '폭력'이 될 수 있다.

분명 자기정체성에게 위협적인 시선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리고 위협을 느끼게 하는 시선은 충분히 범죄스럽다.



관객을 위해 전시된 아름다움도 아니거니와, 그저 스스로를 위해 입고, 지인들에게 '이쁘게' 보이려 행복해하면서 옷을 입는 자유를 가진 이들에게.

우리는 무어라 말할 자격도 없고.

스쳐가면서 이쁘게 보이는 모습에 작은 감탄이나 하는 소소한 즐거움 또한 그리 변태스러운 짓이라 모독받을 일도 없다고 여겨진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미니스커트 입은 모습을 지나가는 남성들이 빤히 보는 것은 싫어하면서, 왜 그리 타인이 '빤히' 보는 모습, 그것도 사회 구조와 방범태세의 잘못으로 일어나는 성폭력을, 피해자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는 '사고'를 가진 꼰대들의 모습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알길이 없다.

사실 자신의 여자친구가 미니스커트 입어서 타인의 시선을 끈다고 불편해 하는 것도 웃기다. 위에서 말했듯이, 여자친구든 여성이든. 남자친구 혹은 남성의 소유물이 아니잖는가?



무엇을 입든, 무엇을 하든.

자유를 허하라.

당신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

한 개인의 변화와 당연한 자유를 막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Posted by 함장

2005/11/15 22:14 2005/11/1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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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글쓰기, Position.

얼마 전 Ha 1님의 코멘트에서 나왔던 얘기처럼.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꽤 조심스럽게 물러서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딴나라당 까대기나, 어처구니 없는 궤변론자들을 까댈 경우엔 싸가지 밥말아먹은 문체를 즐겨쓰긴 합니다.

암튼, 조심스럽게 쓰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범위가 확정적인 대상에게 사과를 하는 경우와, 좀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때입니다.

첫째는 차치하고, 민감한 문제라 함은 아직도 사회 저변에 깔린 상충적일 수 있는 의견들, 그에 대해 제 판단기준에 의해 좀 민감한 주제다 싶으면 이것 저것 다 따져가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여기서 나올만한 반론들, 저기서 나올만한 반론들에 대해 나름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계속 집어넣고 있다 보니, 글은 중언부언 길어지고, 지루해지기도 쉽상입니다. 그런데도 그리 긴 글을 써가면서 이것 저것 생각해 보는 이유는 글을 혹시나 다 읽어주시는 분이 있다면, 그런 분들과의 소통을 위해서겠지요.



며칠 전 있었던, 자폐님의 정리 글(너무 마음 고생이 심하셨던듯 하여 링크를 하지 않겠습니다.)은 그런면에서 볼 때, 지극히 조심스럽게, 서로의 차이에 대해 차분히 써내려 가신 글이었고,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지켜지기 어려운 이야기들에 대해 어떤 시각이신지 명확하게 보여준 좋은 글이었지요.

우선 이 글의 목적은 Position에 관한 글이니 미니스커트 얘기는 추후에 포스팅 해볼까 합니다.



처음에 글을 쓰면서 이 땅의 '조중동'덕에 제 정치에 대한 이야기나, 소소한 이야기 속에 묻어나는 생각들이 '좌파' 또는 '진보'로 블로거들 사이에 회자되는 경우가 있었더랬지요.

물론 저야 어찌 불려도 손해볼 것은 없습니다만... '진짜 진보 세력'이 보면 코웃음 칠 일이지요. 지성인들의 잣대에서 보자면 저는 그저 뜨내기 중도 우파정도일 뿐입지요.

어쨋거나 사회의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거리를 가져와 때려대는 것은 '상식의 우파'이지 '진보의 세계'는 이미 그 고정관념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훨씬 더 나은 세상, 평화와 공존이 있고, 세상 누구나 평등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세계인'의 모습을 갖춘 분들입지요.

그런 면에서 이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실리적인 이야기에 주절거리는 저는 '우파'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블로그에 글을 써대는 것은 결국 세상에 '내 얘기'를 하고자 함입니다. 모든 세상의 일은 객관적인 시각을 갖던 주관적인 시각을 갖던 '내가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글 하나가 세상을 바꾸거나 하는 '원대한 꿈'을 갖는 것은 무의미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꾸준히, 상식적이고도 이성적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써나가며 굳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 둘씩 고정관념과 인습들을 타파해 나가며 겪게되는 일들은 실로 값어치 있는 일이 될거라 믿습니다.



제 블로그의 Positioning은 그 정도입니다. 그 누구의 블로그 또한 자신들만의 Position을 가질 것입니다.

관용과 불관용.

그 견제속에서 분명히 발전해나가고 공감을 얻거나 침묵속에 무시되고 비난받는 속에서.

조금씩 현란한 글들 사이의 선명하고 아릿한 주제와 통찰들을 보며. 오늘도 '생각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의 진심을 이해키 위한 노력과 이해의 한계를 내비치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그게 소통의 즐거움이 아닐까요?



물론 스스로의 수양도 한참이나 모자란 저이지만. 지지하고 좋은 글들이 사라져가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사실이 슬퍼서.

아쉬움을 전합니다.

Posted by 함장

2005/11/14 15:52 2005/11/1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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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짧게 쓸 수 있다!

캠퍼스의 영어화?

관련기사 : http://news.media.daum.net/edition/life/200511/06/hani/v10709676.html

뭐 영어실력 늘리기 위해서 마구잡이 정책을 쓰는 건 좋은데, 대학교육까지 무상교육화 되기를 무지하게 갈망하는 나로서는....

.....장난하냐?



경희대 합격자 발표 '방사'

관련기사 : http://news.media.daum.net/edition/affairs/200511/06/yonhap/v10710406.html

모든 판단 변수를 고려해볼 수 없는 한 인간의 실수는 인정하는데...

맨 아래, 대학 원서 접수나 합격자 발표 서비스 하시는 측의 말씀.

"대학 사이트는 상업 사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링크를 걸어왔다"

................ 정말?





물론, 학문이 발달된 곳이 서구와 미국쪽임은 인정한다. 그러나 복거일 이나 공병호 같이 경제적인 요건, 혹은 합리성이라 '포장'하여 자신들이 뭘 주장하는 지도 모르는 치들 처럼.

교육에 '영어'가 그리 필요한지, 일반 국민이 아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며, 번역을 위해 '몸'바친 사람들이 마음껏 일하여 내 놓은 번역서를 읽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데, 굳이 '외국어'를, '자국어'를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강제로 배워 도무지 자신들이 쓰는 언어체계의 '비효율성'을 내세우고픈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 더, 과연 저 '영어쓰기'는 학문을 위해서인가, 취업을 위해서인가? 취업해서 영어 회화 써먹는 직업 몇 % 되는지 아는가? 먼 미래를 내다 보라고? 통,번역사 시험을 준비하며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애들이 훨씬 전문적일 것 같은데? 언어의 다양성은 전 세계인들의 '사고의 다양성'을 잃지 않게 하는 위대함이기도 하다.

대학 교내 청소부, 경비직원, 용역업체에 맞기고, 하루 12시간, 2교대 근무에다가 한달 월급 80만원, 실 수령액은 훨씬 밑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몇 십만원이라도 있어야 아이들 학비에, 생활비라도 대어주고, 겨우 끼니를 이어가실.

그런 '감사한' 고용을 지금까지 해오시다가, 이제는 더 값싸고 영어도 할 줄아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서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환경 처우'를 개선해 주려는.

대학이란 이름의 개새끼들.



취업을 위한 학원.

'대학'의 홈페이지가 '상업 사이트'가 정말 아닌건가?



죨라 우껴.

Posted by 함장

2005/11/06 23:28 2005/11/06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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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담론 혹은 음담패설

참고로 이 글은 리하나닷컴의 글을 보고 작성한 것도 아니거니와 일주일에 걸쳐 구상하던 글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거슬리는 글'이 될 수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상당히 '불쾌'할 수도,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도, 첨들어 보는 해괴망측한 이야기일 수도, 그저 그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리하나닷컴에서 언급한 '음담패설'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나, 충분히 그 논의에 들어갈 수 있으며, 순수하다 생각하는 그대에게 더러운 이야기 일 수도 있다.

분명 '음담패설의 논의'에 대해서 리하나닷컴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쓸 얘기는 100%, 내가 여느 자리에서, 혹자에 따라서는 성담론으로, 혹자에 따라서는 음담패설로 보일 수 있는 이야기의 '시작'이 된 질문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분명히 밝혀두지만, 여기서 '시작'은 내가 남성이기에 '다른 성'인 여성의 '궁금증' 혹은 '호기심' 또는 '무지'로 인해 빚어나온 질문들에 대한 내 답변들로 중심이 되는 것이며, 이는 지극히 내 주관적이고도 나름의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성담론이라 주장하고 싶다.

따라서 여성의 심리에 대해선 '조금의 확신'도 가질 수 없기에 최대한 겹치지 않는 선상에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 글이 음담패설로 치부되더라도 할말은 없다. 다만 적어도 이렇게 '性'에 대해 술자리든, 커피숍이든, 대학교정 벤치든. 어디서든 한 명확한 개인의 Privacy를 드러내거나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폭넓은 이해를 위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 '저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주관하에, 그리고 리하나닷컴님의 말씀에 따라,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호동의하에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일련의 연계하에, 얘기를 해볼까 한다.

그러므로 이 성담론 혹은 '음담패설'이 저질이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아니 읽으시는 것이 제 글로 인한 '성폭력'을 피하시는 길이며.

자신이 성에 대해 알고 있다고, 혹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요놈은 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하군'이라고 느끼시는 분들만 이 글을 보시면 좋겠다.

이 동의를 구하는 이유는 블로그의 글이 아무리 '코멘트'로 소통이 된다하더라도 '음담패설'의 경우 물이 엎질러진 상황에서 기분이 더러워 질 수 있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이다. 그렇기에 서두가 죨라 길었지만 이해하시기 바란다.



그럼 시작해보자.

흔히 비교하길 '조선시대 여성'이라 불리는, 성에 대해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들의 질문 중 하나는 이거다.

'남자들은 많은 사람이 자위 한다면서요?'

그와 연계되어 튀어나오는 '몇 살부터 해요?', '왜 해요?'들은 심히 당황스럽다.

아니 요즘 학교 성교육에서 '남성의 자위 경험은 90% 이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아니하는가?



내 경우엔 6학년 말 겨울, 중학교 반 배치고사를 볼 때 쯤이었다. 그 당시에 '발기'의 개념을 알게되었고, 이어 자위까지 이었졌다. 그리고 내 주위 친구들 대부분 중학교 1, 2학년 때 자위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자위행위의 은어인 '딸딸이'를 중2쯤 되면 반에서 모르는 애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여고생 혹은 여대생의 경우 남동생이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남동생이 자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는 여성분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더럽다, 혐오스럽다'는 표현을 남발하시는 분을 보면 나도 눈앞이 캄캄하다.

그건 더러운게 아니다. 手淫은 정액을 배출하기 위한 행동은 더욱 아닐 뿐더러, 그와 관련된 부위가 인간의 '배설'과 연계된 부분이라 더러운 것은 더욱 아니다. 남성들에겐 지극히 당연스런 행위이며, '자위'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이 조용히 집에 있을 때나, 외로울 때, 스스로 위로하는 행위에 속한다.

야한 상상을 하든, 무엇을 하든 간에 성기를 애무해서 쾌감을 얻어내고, 성교육 지침서에 쓰인대로 '허무감'이나 '죄책감' 비스무리한 것이 초반엔 들지만 세월이 지나가면 자연스레 무감각으로 바뀐다.

이것은 영화 '킨제이 보고서'의 기독교인들이 얘기하는 '죄의식'이 아니라 감정의 선이 극 정상에 달한 뒤에 이전되는 상실감이며, 그 감각이 무뎌지는 것은 '죄의식에 대한 무감각'이 아니라 그저 감각에 대한 무뎌짐일 뿐이다.



그러면 여기서 또 되묻는다, 자위를 얼마나 자주하냐고. 사춘기때 자위에 빠져드는 애들은 주말에 집안에 들어앉아 하루에 몇 번이고 자위를 한다. 5번~10번 등등 종잡을 수 없다. 가능하냐고? 스무 살 넘어서도 가능은 한 일이다.

그것은 '중독'이라는 표현이 비유될 수는 있어도 '독'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자위는 아무리 빠져든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법이며, 여기서 얘기하는 한계는 '삽입'을 통한 또 다른 범위의 성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고 반복되는 '자위행위'에 대한 관심이 당연스레 줄어들기 마련이란 의미다.

성인이 된 후에 자위행위의 횟수는 천차 만별이다, 통계가 먹힐 지 안 먹힐지도 확신 할 수 없다. 어떤 이는 한달에 한번 할까 말까, 어떤 이는 자위라는 것을 잊은지 오래, 어떤 이는 집에서 매일 밤 시간 날 때 마다. 정말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밤에 불끄고 조용히 잠만 자는 사회가 아니라 별의 별것을 심야에 즐길 수 있는 사회다.



여기서 하나 더, 혹시나 여성분들, 주위에 있는 '성별이 남자인 친구'와 이런 대화를 하거나 혹시 한 기억이 있는 분들. 그 남자에게 '남자들은 대부분 자위한다며?'라는 질문에

'응 나는 안 하는데, 주위에선 그런 애들이 있지'

라 대답한 남성이 있다면 주저없이 권한다. '친구'로 남지 말고 절교해도 무방하다.



다시금 그 '사춘기 남동생'의 입장을 커버하기 위해 구성애 아줌마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아이들이 '자위'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초등학교 후반기가 되면 자연스레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가 각방을 쓰도록 가정환경을 만들어 줘야한다.

이는 '갓난아기'나 어린아이를 부모의 방과 다른 방에서 키우게 하는 미국식 환경에서도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데, 부모의 성행위 중에, 여성의 신음소리로 인해 아이가 '아빠가 엄마를 괴롭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로 인한 '공포감'이나 '혐오감'따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개인적인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그러한 것이다. 어느 날 남동생의 자위가 여동생 혹은 누나에게 들키는 것으로 인해 가족간에 '혐오감'이 생기면 이건 골때린 수준이 되어버린다.

여동생은 몰라도, 누나 정도라면 그런 것을 알고 방문이 잠겼으면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동생은 '더러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거나, 혹은 자신만의 '쾌감'을 찾을 뿐이다. 나쁜 일이 아니다.



물론 자위행위로 인해 '공부'할 시간을 뺏기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주말 내내 부모님도 안 계시겠다. 형제도 없겠다 아예 홀라당 벗고 자위를 즐기는 청소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야한 상상을 하며 딴청을 부리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뺏긴 시간만큼. 공부를 더 하는 환경인가? 요즘이야 남학생들이 컴퓨터 게임 때문에 공부를 안해서 그렇다 쳐도, 과거의 남학생들이 90% 이상이 빠져있을 자위행위로 인해 여학생보다 꽤 많은 수가 성적이 낮아야 하지 않은가?

성에 대한 과도한 호기심이라는 단어는 웃긴 것이다. 궁금한 만큼 가르쳐 주고 반드시 벗어나서는 안될 '선'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지 성적이 하락할 가능성이 '자위' 탓인가? 성적호기심으로 그릇된 만행을 저지를 지도 모르지만 '자위'를 많이 한다고 반드시 '그릇된다'는 논리는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성경험' 이야기와 '사창가'. 이거 참 많이 받는 질문인데, '남자는 26세 되면 다 경험해 본다면서요?' 부터 시작하여 '다 그런 동물인가요?'까지 총 천연색 질문들이 파생된다.

우선 '모든' 남성이 26세까지 이성과의 성행위를 경험해 보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이 '혼전순결'에 대한 지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있듯, 남성도 섹스에 관해서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사창가'에 관한 질문도, 모든 남성이 간다고 일반화 시키기엔 너무 현실과 괴리가 있다. 아무리 발달한 매춘산업구도라 할 지라도, 모든 남성이 소비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용층도 상당수가 착각하는데, 소수이긴 해도 부모님께 받은 돈 모아들고 친구들이랑 어른인척 행세하고 찾아가는 중3부터 고등학생은 물론이거니와, 군대가기전의 동창을 밀어넣어주는 20대 청춘들, 술에 쩔어 20~30대 직장인들, 아예 질펀하게 놀 생각으로 찾아가는 40~50대 아저씨들까지 각양각색이다.

혐오스럽다고? 당연히 그럴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찾아가는 것은 억압된 성교육으로 경험해보기 위해 뛰어들어가는 것이고, 그 마저도 못해본 청년이 군대가기 전에 총각딱지 뗀답시고 들어가는 것이며, 집에서 부부생활에 재미를 못찾는 한량들이 먹고 마시고 자기 마음대로 성행위를 해보기 위해 찾아가는. 일반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더럽고 추잡한 남성의 백태를 보게 되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직업이기도 한 매춘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책은 많다. 그리고 도덕적인 이유로 비난을 날려야 하기에 무어라 다른 궤변을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다만 경험에 의한, 소회를 풀자면, 과연 사랑 속의 '섹스'가 어떤 것인지 내가 충분히 성교육을 받았더라면, 그리고 그 '사랑'이 없는 섹스가 얼마나 기분 더러운 것인지 사전에 알 수 있더라면. 사창가로 찾아가는 남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지 않을까라고 추측해 본다.

한 친구가 영화 '쇼걸'을 보고 느낀 감정이, '그저 고깃덩어리로 보였어'라고 얘기했다. '사랑'. 여기서 얘기하는 사랑은 오랫동안 깊게 사귄 사랑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눈빛만으로 반해버린', 흔히 얘기하는 원나잇 스탠드도 포함한다. 사랑이란 단어외에 딱히 표현할 수 없음이며, 지고 지순한 사랑만 사랑이라 정의하시는 분께는 궤변일 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그런 불꽃튀는 감정을 표현할 단어는 이 뿐인듯 하다.

어쨋든 그 '사랑'이 없는 섹스, 즉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하는 섹스가 던져주는 기분 더러움은 그냥 고깃덩어리와 섹스하는 기분이다. 여기서 '인권'에 대해 논박하고 싶은 분 계시리라 믿는다. 허나 본질은 다르다. 매춘부만 고깃덩어리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도 그저 섹스를 위한 동물로, 고깃덩어리로 느껴진다.



사람의 체온이 그리워서 '솔로'인 사람이 사창가를 찾아가는 것을 노골적으로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섹스'를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품'을 돈내고 사야하는 불쌍한 처지의 사람들이기에 방법이 틀리고, 어찌보면 악의 존재를 동의하는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섹스' 자체만을 즐기기 위해서 사창가로 뛰어든 사람들을 옹호해 줄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성업중인 매춘업을 본다면 그런 남성이 다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많은 남성들이 '사창가'를 가본 경험이 있다고, 더러운 남자로 치부된다 하더라도. 난 그들이 그 곳에서 자신도 어느새 고깃덩어리가 되어있다는 '경험'을 해보고 나온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혼전 성관계. 난 '순결서약'을 강요하고, 심지어 어느 대학에선 그런걸 자연스럽게 여학생들을 동참시켜 하는데. 이거 죨라깬다.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 속궁합은 죨라 중요하다.

속궁합이 안 맞으면, 즉 성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이혼사유'가 된다.

그렇다면 속궁합이 맞는 공식이 있느냐? 이건 당연히 없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앨리스님의 글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데, 속궁합이 맞는다는 얘기는 일종의 성생활에 대해 서로의 합의가 잘 일치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도처에 깔린 성교육 교본들을 볼작시면 '전희'부터 시작하며 마치 섹스가 무슨 제헌절 행사마냥 순서가 정해진 의식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거 죨라 우낀 얘기다. 섹스가 때론 부드럽게, 때론 격렬하게, 그때그때 다른 분위기, 다른 체위, 다른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지 무슨 침대 시트 새것으로 갈아 깨끗한 침구 위에서 조용하고 진중한 의식으로 행해지는 것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장소의 다양성, 행위의 다양성등의 수없이 내재된 성행위를 '도식화'하려는 시도는 '킨제이 박사'의 7단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간혹 지독한 순결의식으로 남자친구와의 스킨쉽도 꺼리고, 결혼 전 까지 '애무'이상은 절대로 안된다고 얘기하는 여성들이 매우 많은 점이 우리 사회에 '좋은'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이 어처구니 없는 마초들은 솔직하게 쓰레기로 봐도 무방하다.

위의 사창가는 언급도 하지 않겠다. 자신이 여자친구를 사귈 때마다, 어떻게 하면 손 한번 잡아볼까, 키스 한번 해볼까, 여관 한번 가볼까 속으로 고민하는 남정네들이 개구리 올챙잇적 모른다고 그 따우 소리를 해대면 영 아니올씨다이다.

흔히 얘기하는 '과거'. 그거 정말 '과거'다. '현재' 아니다. 물론 '현재'의 사람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을 과거이지만. 당신들이 사랑하는 것은 그런 밑거름을 통해 지금을 이루는 사람이다.



다시금 돌아와서, '속궁합'이 처음부터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웃긴 것은 잘 맞던 속궁합이 틀어져 갈 수도, 반대로 안 맞던 궁합이 차츰 변화하여 잘 맞아들어가게 되기도 한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신혼때는 하루에 저녁, 밤, 새벽 세차례씩 섹스를 하던 부부가 어느 새인가 시들해져 버리더니 바람나서 불화가 생기는 부부도 있거니와, 후자의 얘기로 신혼 초에 남편에게 전혀 만족을 못 얻던 아내가 둘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마침내 양쪽 다 만족의 길을 찾아내는 현명한 부부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섹스가 남성에게 객관적으로 불리하다. 육체적인 쾌락지수를 뇌파로 측정한 것을 보면, 남성은 자위할 때나, 섹스할 때나, 성적 감촉으로 느끼는 감각의 크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섹스할 때 남성이 소모하는 '노동'의 크기는 여성을 등에 업고 200m 전력질주를 한 것과 동일하다.

반면 여성은 남성의 10배에 달하는 뇌파의 세기를 보이며 Cloud 9(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천국의 다른 이름이자, 오르가즘의 속어)의 영역, 구름에 둥둥 뜬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위와 같은 사실만 놓고 이성적으로 보면, 남자들이 '섹스'에 미칠 이유가 전혀없다. 그런데도 섹스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얼까?

어쨋든, '속궁합'이라는 것.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면 결혼해서 그 속궁합을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맞추어' 나가면 될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결혼이라는 '구속력'을 벗어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 점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 '과거가 있는 여자'라는 이유로 핍박받는 이 사회가 얼마나 몰지각한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성생활은 평생 이루어진다. '속궁합' 조차 모른채 결혼하여 첫날밤에 성행위의 도구로 '허리띠'를 빼어든 미친새끼를 이해할 수 없음은 여성이나 남성이나 마찬가지다.

아 오해마시라, 만약 그 허리띠가 둘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성적 유희의 일부라면 이들은 변태가 아니다. 이건 킨제이 박사님이 남기신 '서로 합의하의 섹스엔 변태가 없다'라는 진리에 의거한다.

'결혼'이라는 구속력을 가지기 전에, 이 남성이 침대위에서 '대화'가 가능한 남자인지 확인해봐야한다.

테크닉이나, '조루' 따위의 성적 능력은 결혼 후에도 수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성에 대한 대화의 자세', 즉 속궁합을 맞춰나가는 의지를 보여 주는가는 '성격'의 문제다. 이 '성격'이 바뀌는 것은 강산이 바뀌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는 한 두 번의 성행위로 알 턱이 없다. 요 근래 여론 조사 발표를 보고 경악하는 여자 대학생을 본적이 있는데, 여대생의 40%이상이 성경험이 있다는 보고를 보고 '말도안돼'라며 일언지하에 부정하는 그 모습을 보면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대학생들의 '동거'문화가 상당히 넓게 작용한다. 어떤 학생은 '지방대'에서나 있는 일이라면 노골적인 '엘리트 주의'를 보이는 불쌍함을 보였지만, 내 생각엔 학생 수만 비교해봐도 서울쪽이 훨씬 많을텐데 말이다.

어쨋든, 학력차 따위나 동거가 학력이 낮은 대학에서 일어난다고 발언하거나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잠시 애도를 표한다.

이런 비유로 인해서 '동거=부정적인 인식'의 공식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는데, 물론 사회적인 시각차부터 '동거 사실'여부로 인해 사회적으로 피해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인식등 거론되어야 할 것이 많지만 결혼 전 '동거'라는 것 하나만 논의해보자면 메리트는 분명히 있다.



물론 그렇게 보면 '동거'와 '결혼'이 법적 구속력을 제외하고 다른게 무엇이냐고 얘기한다면 그 '법적인 문제' 때문에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평생, 자신의 재산, 자신의 모든 물적,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테스트 해보기엔 분명히 필요할 수 있다.

당연히 침대위에서의 모습도 중요하거니와, 이 인간이 집안일을 말로만 같이 해낼 것인지, 실제 집안일을 잘 분담해서 이어나가는지, 나와 데이트 할때만 다정한 성격이고 집안에서 혹은 24시간 밀착해 있을 때, 짜증섞인 단어들이나 행위들을 몇 번씩 해내는지, 그런 모든 것을 감내하거나 서로 고쳐가면서 살 각오가 되어있는지 말이다.



사실 위의 것은 우리네 부모들이 결혼부터 하신 후에 평생을 거쳐 해오신 것이다. 결혼 후에 체크해봐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합리적인 주장에 좀 더 나은 접근을 이야기 하고자 함이지만, 시간을 두고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가 동일하고 그 '시간의 길이'도 30년 이상의 세월을 두고 얘기 할 수 있다면 주장의 차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



물론 혼전 동거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결혼할 마음에 드는 남성이 있다면, 한번쯤. 1주일 짜리 휴가가 있다면, 그 정도 같이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다. 감추고 있을 성깔따위가 발견되어 일찌감치 고치게 하던가, 쫑을 내던가, 판단의 기회가 일찍 오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콩깍지가 끼여, 집에서 이리 휙 저리 휙 옷을 벗어대고, 청소도 안하고, 딱 결혼하면 '어머니가 하는 '집안일'을 대체하는 정도의 사람'정도로 만들어 버릴 놈임에도 마냥 귀엽게 보이면 낭패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동거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성'의 문제다. 결혼도 안했는데 '애'가 들어서면 아니되기에. 모든 섹스, 심지어 결혼해서도 '섹스'에서 콘돔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정관수술하고 애 가질 때만 풀던가.

여성이 첫 경험을 하게 되면 상당수가 '질염'을 겪게된다. 태어나서 첫경험때까지 아무런 이물질도(물론 생리대를 템포로 쓴다면 아니겠지만)들어 온 적이 없기에 민감한 그 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남성이 그냥 삽입하든, 콘돔을 써서 삽입하든 마찬가지다. 그 고통으로 두려움에 휩싸여 산부인과를 방문하게 되면, 첫 경험시기가 중 고등학교때라면 어머니와 함께 찾아가는 아이가 많을텐데, 이럴 때 아이는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사실대로 말할지 그저 둘러댈지에도 휩싸여 고민하게 된다.

우리네 성교육은 이런점에서 너무나 낙후되어 있다. '무지'로 인한 두려움으로 심한 자멸감에 자살 시도를 하거나, 두려움에 임신을 하고 감추기만 하게 되어버린다.



혹시나 남자친구가 콘돔없이 섹스를 하려들면 무조건 거부하라. 촉감이 안 좋다고 둘러대면 가장 얇은 베네통 콘돔 쓰라하고, 그래도 감촉이 안 좋으니 섹스를 하다가 도중에 씌우겠다고 개사기를 치면 지랄하지 말라하고 헤어지라.

구성애 아줌마가 방송에서 그렇게 강조했듯, 남성의 성기가 '요로'와 '정관'이 결국 같은 통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성행위를 위해 발기하게 되면 정액이 나올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애액'이 나오게 되는데 이 속에도 수 많은 정자가 들어있다. 물론 확율은 엄청나게 낮지만 꼭 사정할 때 나오는 정액으로만 임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여성분들 스스로 정서적이든 실제 감촉이 그렇든,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성기와 자신의 성기 사이에 '이물질'의 감촉이 싫어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피임을 알아서 챙기는 수 밖에.

어쨋든, 그런 '감촉'운운 따위로 여성에게 '경구피임약'을 강요하는 남성 따위 발로 뻥 차버리라. 인체의 호르몬 분비를 억지로 바꾸는 약들이 얼마나 독하며 위험 가능성이 있는가는 누구도 모른다.



3류 로맨스, 흔히 얘기하는 소녀들의 환상. 예를 들어 한때 여고생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남자의 향기'가 환상적인 남성상을 보여주는 이유는 그저 '무조건 위하고 잘 기회가 있어도 같이 안 잤기에'이다.

운명을 믿고, 사랑은 한 번 뿐이라고 믿는 감성. 중요하고, 비웃음을 살 그저 어리고 여린 감성은 아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면 소중히 다뤄주어야 한다고, 이가희의 '그것만은 안돼요' 노랫말 처럼, 자는 것 만은 안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분명 여성의 권리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라면 그에 동의해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헌데 그런 '환상 아닌 환상'이 어쩌면 서로에게 손해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만큼 서로의 육체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그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 숭고한 사랑의 정신이라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이거나, 이룰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있는 성의 즐거움, 그것은 사랑이 풍부해 질 수 있는 기회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킨제이 박사님이 그리도 강요한. '서로의 합의'다.

이것에 다다르기 위해, 우리는 그 수 많은 내숭 사이의 줄다리기와 서로에 대한 무지를 일깨워야 하며,

어떤 때 하고싶지 않은지, 어떤 때 하고싶은지, 올드보이에서 강혜정이 최민식에게 '보고싶은 얼굴'을 부르면 무슨 말을 하던간에 덮치라는 '약속'과도 같은. 서로간에 말이 필요하든, 눈빛만으로 알 수 있든 그런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정점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

연인에겐 그런 것이 필요하다.



죨라 길게 썼지만, 난 이런 성담론이 쉽게 얘기되어, 무지로 인해 발생할 감정의 상처들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음담패설로 보인다면 할말은 없지만.

Posted by 함장

2005/11/01 18:22 2005/11/0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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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해찬

요즘 국회에서 대 정부 질의가 벌어지고 있다. 방송에서 중계해주는데 흔히들 떠벌이는 '양비론'에 입각해서 보면, 열린우리당은 정부입장을 이해하는 척하면서 정부정책 '광고'하기 바쁘고, 민주노동당은 조금 중심에서 많이 벗어난 '질책'으로 힘이 없는 야당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투중이고, 한나라당은...... 쩝이다.

정치인 이해찬에 대해서 내가 직접알리는 없고 유시민 의원의 말을 빌리자면

'누워서 똥을 눠본 사람'이다.

뭔 얘기인고 하니 '남산'에 붙들려가서 지독하게 고문을 받고 일어나지도 못해 누운 채로 똥을 눠본 사람이다.

요까지 얘기하면 그 때의 '울분'으로 지금 복수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웃긴 상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글쎄, 과연 복수할 상대의 가치가 있을까?



열린우리당 대표경선을 위해 몇 달 전 TV토론을 한적이 있다. 문희상부터 유시민의원까지 죄다 나와서 자신들의 의지를 밝히고 토론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진행자가 각자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물은 적이 있다.

꼴에 민족주의자로 다들 '김구선생'부터 시작하여 '김대중선생'까지 뛰어난 인물들을 언급했다.

유독 '유시민' 혼자 이해찬을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서슴없이 이해찬에 대한 존경심을 비춘다. 그러나 언론에 드러나는 그들의 '연계감'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서로의 영역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달성키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같아서라기 보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크기 때문이리라.



대 정부 질문을 보면 한나라당은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악의로 가득차있다. 그도 그럴것이 분명 이해찬은 '한나라당'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발언을 한적이 있다.

이는 유시민이 TV에서 늘상 대놓고 혐오감을 내비치는 것과 동일하다.

어제는 한 머리 허연 한나라당 의원이 나와서

'아직도 한나라당은 나쁜 당입니까?'

라 하질 않나. 자신들의 질의 태도나 내용은 아랑곳없이 '총리가 거만하다고, 태도가 건방지다고' 그렇게 찍어댄다. 물론 그에 선행된 논리는 자신들이 국민이 찍어준 국민의 대표이며, 총리 너는 공무원이니까 국민의 종이며 우리보다 아래다. 뭐 그딴 논리 되겠다.

분명 공무원이 국민의 세금으로 돈을 버는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들도 국민이고, 심지어 그들도 '월급쟁이'라서 당연히 세금낸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층보다 세금을 훨씬 많이 낸다.

국민의 종이라는 표현은 그저 '묘사'일 뿐이지 실제 계급이 그리 나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젠 쿠데타로 군사적 권위주의 정부로 실컷 달콤한 맛을 보던 애들이 아직도 그 맛을 잊지못해 '국민의 권위'를 빌어 지랄을 해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하는 씁쓸함은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이자, '뽑고 싶은 놈'이 없어도 뽑아야 하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 정부 질의니. 정부 정책에 대한 질의를 해야 하는 것이 상식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개수작 덕분에, 천정배 법무장관은 자유 민주 국가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사상의 자유'와 그로 인해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용의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 원칙' 주장에 대해 '생계를 위한 절도'와 같은 범죄를 '등치'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에 일부 국민은 흔들린다.

심지어 '공포의 백색가루'까지 천정배 장관에게 배달시키는 용감한 '시민'도 나오지 않는가?

우체부 아저씨의 '그 아래 김정일...이라고 써있드라고'라는 인터뷰 대목에서 울려나오는 어이없는 웃음은 우리네 국민의 상식이 얼마나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국민의 상식'과 동떨어져 있는 지를 실감케 한다.



결코 정부가 대단히 잘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면에서 '인권'을 걱정하고 '반전'을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의 당론과 그에 상응하는 권영길의원의 질의는 다소 빗나간 주장들과 말 그대로 국가 안보에 해당하는 질문들로 약간 빛은 바랬어도, 응당 '대 정부 질문'이라는 시스템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그들의 미친 짓에, 그래도 '품위'를 갖춰가며 준엄하게 꾸짓는 정치인 이해찬을 어찌 멋지지 않다 할 수 있으랴.



참으로 재수없는, 그래서 말그대로 재섭는 강재섭의 '코멘트'

“국무총리는 후덕함이나 푸근함이 있어야 국민이 편안한데, 하도 공기가 싸늘해서 독감에 걸릴까봐 (회의장에) 들어가기 어렵다”

아직도 저 '비합리적'인 인물론을 내세우는 당신들

잠수함 설계는 커녕 독일로부터 라이센싱 생산을 하는 우리 잠수함 설계를 북측이 달라고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하는 당신들.

당신네 '상상원정대'로 부터 우리네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필요하다니 참 우리 대한민국이 많이 바뀌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해차니 업뽜. 므쨍이 --)b

Posted by 함장

2005/10/25 21:31 2005/10/2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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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또, 버릇나오네 犬子들.

누차 얘기하지만, 나란 인간의 정치적 잣대의 현재 목표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보다는 한나라당 박멸로 누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건립에 모든 것을 걸고 있음이 명확하다.

요 근래 내가 벌였던 지롤같은 '극우언론 개무시 정책'의 일환으로 몇 블로거들을 싸잡아 씹어버렸던 것도 동일한 선상의 이야기다.

그네들의 '발언'을 무슨 호스팅 서버를 막던가 가입형 블로그 해킹해서 그들의 DB를 날려먹는 일도 아니고, 마치 정치인들 낙선운동 처럼, 안티조선 처럼, 조갑제나 전여옥이 떠들어대는 '행위'를 막진 않아도 그런 이야기 따위를 개무시 해주어야 한다는 지극히도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보편적인 상식을 넘어선 '그들만의 상식'은 무시하자는 이 주장이 '자유민주주의' 토대에서 허용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상의 자유, 발언의 자유. 누구도 막아서선 안된다. 그 발언이 '강제적인 선동'으로 이어진다면 그 선동을 막기위해 반대편에서 선동을 할 의지도 명백하다.



박근혜의 어제 기자회견은 진중권의 말마따나 어처구니의 상실을 보여준다. 멧돌로 갈아버릴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갈지를 못하는 상황.

웃기다. 한 나라의 몇 개 안되는 정당의 당수가, 그것도 국회의원 의석수도 상당량을 차지하는 당의 당수가. 아무리 정치인들의 속이 더럽다지만 저건 미친짓 아니던가?



주류가 바뀌었다고,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략한 한나라당이 마치 입장이 바뀌어서, 야당에서 여당으로 넘어가듯이 자신들이 7~80년대 국민의 자유를 위해 한 몸바쳐 희생했던 사람들의 입장이 되려하는 지랄은 욕이 목구멍까지 쳐올라 끝내 뇌까리게 만든다.

이제 조금이나마 물이 개선되어서 열린우리당 같이 보수적인 당이 주류가 되어서 사회가 진일보한 것이고, 아직도 '나라를 위해 이 한몸 바치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의 몫이지 구닥다리 너희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대학와서, 정말 많이 놀란 것이 바로 서태지 이후 세대들이라 볼 수 있는 현재의 스무살들이 가진 생각이었다.

국가보안법이 무너지면 당장 북이 쳐내려올 줄 아는. 그 어처구니 없는 연상력으로 똘똘뭉친 아집파들을 보면서 진보세력들에게 '우파'로 보장받는 내 입지는 완강히 저 왼쪽 끝으로 사라져버린다.



난 한나라당의 위선이 싫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만하면서 서민이 죽어가든, 노동자들이 죽어가든 밀린현안들은 지루해지거나 신경쓰일때 손톱깎듯이 처리해버리고 그 사이엔 태만의 극치를 보이며, 툭하면 장외투쟁 지랄해대는 꼴이 영 아니올씨다이다.

월간조선의 표지만 봐도 복거일이라던가 공병호 같은 쓰레기 경제학자들이 주절주절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경제'에 대한 비관을 써대는 것도 진절머리나는 것을 넘어서 그네들의 개소리로 묻혀진지 오래다.



그런데도 지하철에선 심심찮게 공병호의 10년 후 한국을 읽어대는 불쌍한 사람들도 넘쳐나며, 온라인에선 '빨갱이'로 싸잡아 몰아붙이는 것과 '사상의 자유'가 '체제의 유지'를 위한 제한적 자유로 깔아뭉개지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 연합세력은 녹록치 않은 떨거지들임엔 확실하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하지 않던가?



그래도 분명 내 두눈으로 그 망하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 도대체가 저 따우 것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고향 어르신들. 그 동네 근처 都경계선 안쪽에 사시는 분들.

참 쪽팔립니다 그려.

Posted by 함장

2005/10/19 13:28 2005/10/1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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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매체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 욕을 엄청 먹었다.

각오했던 일이고, 말 그대로 '생각의 다양성'이니까 당연한 귀결이다.

오해라던가, 변명따윈 필요없기에.

다만 '지인'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몇 줄 적어본다.



우선 '똑같아지는 취급'을 받을 걸 알면서 왜 악수를 뒀는가에 대한 얘기다.

조선일보 예를 들겠는데, 혹자들은 조선일보가 개버러지 같은 신문이라 말을 해도 나름의 '합리적인' 의견을 들어 옹호한다.

'그래도 문화면의 퀄리티가 뛰어나요'

맞다. 인정한다. 그러나 '경제의 법칙'을 적용시켜보자.

문화면이 좋다고, 사다보게 된다면 그 돈이 풀어지는 것, 광고비 부터 시작하여 어쨋든 신문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수입은 그들의 '권력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쓰일 뿐이지 문화면에만 풍성하게 풀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조선일보'같은 쓰레기를 갈아마시고 싶다면 문화면이 좋든, 퀄리티가 뛰어나든간에 그들이 가진 구도를 무너뜨려야 한다.

조선일보가 왜 나쁜지 모르는 사람은 시중에 나와있는 책이나 여기저기 널려 있는 안티조선의 멋진 글들을 읽어보는 것이 빠르시다. 내가 써도 책 한권은 쓴다.

그러자면 '수입원'을 끊게 만드는, 구독자를 줄이고, 그로 인해 광고 단가를 떨어트리고, 광고 수를 줄여들게 해 결국 목을 죄는 잔인한 방법이 유일한 길이다.

물론 실현되길 오매불망 기다리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왜 이 얘길 하냐고? 블로그는 매체다. 이미 시중의 버러지 같은 신문 사설 따위 보다 뛰어난 퀄리티의 논객들이 넘쳐 흐르는 곳이다. 그런 매체에 특히 내 블로그를 들자면 온갖 잡동사니 글을 다 올려놓는다.

정통 코멘테이터도 아닐 뿐더러 정치적 감각도 세련되지 못한 그저 우익 이상주의자에 가끔은 '돈' 때문에 현실주의자인 척 하는 그런 인간이메

문제는 내 글에도, 그리고 여러분의 글에도, 사람들은 블로그를 하나의 '뛰어난 매체'로 인정하고 읽어보고 있다.



그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뚜비'님의 코멘트 처럼, 한 블로그에선 '눈을 찌푸리게 하는 글'도 '좋은 글'도 읽혀 진다는 것이다.

혹자의 말을 빌리자면 '정치적인 색깔'이 다르다고 그 사람의 모든 점을 비판하는 것은 정상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지적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블로그가 '정치적'인 이야기 부터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면을 아우르고 있을 때 부터, 이미 이곳은 '신문'과 동일해진 수준의 '매체'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색채가 다르다면 그 '블로그' 자체를 구독 거부할 수 있는 표명이 가능하다.



그럼 여기서 두 번째 물음, 왜 조용히 '거부'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는 '공개거부'를 토해냈는가.

나는 어제 언급한 블로거들이 '조선일보'와 동일한 어처구니 없는 주장들로 철저하게 도배된 글들을 봐왔다.

그렇기에 '가볍게' 무시하고 '님하 차단되어쓰3, GG염~'

쳐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예를들어 '조선일보'가 전국을 장악하는 꼴을 봐왔기에, 그렇게 되는 것을 막기위한 시도를 펼쳐볼 수 있다.

여기서 중대한 착각이 생길 수 있다.

'과연 내게 그런 능력이 있는가?'

혹자들은 내 블로그의 히트수를 보고 '메이저 블로거'라 농담하시지만, 내 블로그의 방문자는 대부분 '포르노'란 키워드로 검색해 오는 분들이다.

리더기로 읽으시는 분이 몇 분될지 모르지만, 내 조악한 글솜씨와, 형편없는 국어 맞춤법만 보아도 내 수준이 한치 반도 안된다는 것을 아시기에, 그저 '길게' 쓰는 열성을 갸륵히 여겨 찾아와주시는 분들 뿐일거라 짐작된다.

그런 내가, 내가 몇 분을 뵈어도, 글이 길어서 안 읽어요 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인 블로거들을 상대로 '여론 조작' 이라도 가능하단 말인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개그다.



그럼 왜 그 지랄을 떨었던가.

그것은 결국, 올블로그 최대의 '장점'이자, 개발하신 '하늘이'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최악'의 기능인 '추천' 때문이다.



요즘 욕을 먹고 있는 부분은 분명 내 쓰레기 같은 글들이 왜 자꾸 '알찬글'에 올라가는지 모르겠다는 여러분의 말씀이다. 그렇다. 무림엔 주옥같은 글들이 넘쳐난다.

나도 그 이유를 모른다. 가끔 학교 학생들이 지나가며

'오늘 형 글 추천했어요~'

라 해대도 농담삼아

'친하다고 눌러주면 안돼 버릇 나빠진다'라 답하는 내 모습이 바로 그 씁쓸함을 증명한다.



반대로 생각해 봤다. 후끈글에 자주 올라가는 글 중에 '열받아서' 몇 번씩 읽어보게 되는 글도 자주 올라간다.

그러면 사람들이 혼동이 오게 된다. 이 글이 정말 사람들에게 '추천'받은 글인지, 아니면 '열받게해서 자주가다가' 올라간 글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물론 여기까지도, 참을만 하다. 그러나 어제 포스팅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의 '정의'라는 주장. 그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이 날조되고 있는가에 대한 고발이자, 내 입장의 표명이었다.

툭 까놓고 얘기하자.

내 블로그 방문자가 나를 '좋아해서' 찾아오는가? 만약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를 '좋아한다'고 내 의견을 100% 수용하는가?

무슨 그런 어처구니 없는 연결이 있는가?

방문하는 여러분은 내 글을 읽고 100이면 100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지, 내 블로그가 방문자들의 여론조성장은 아니다.



그리고 셋재, 편협하긴 마찬가지라는 것.

100% 인정하고, 첫번째와 똑같이,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에 대한 각오는 이미 했다.

여기서 내 글의 조악함이 빚는 실수가 나오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편협하지 않다는 주장이 아니라, 저런 블로그를 방문 대상에서 제외시키길 권하고 방문하지 않는 것, 즉 '무시'가 스스로를 '편협'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닐거라는, 방문객들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편협하면 편협한 것이지 뭔 말이 많겠는가.



각설하고.

분명, 어제의 글이나, 심지어 오늘의 이 글 까지도. 방문객들의 눈살을 지독하게 찌푸리게 만들게다.

이 점은 100번이고 머리 조아리고 사죄해도 할말이 없다.

그러나 방법인 면에서, 좀 더 점잖케, 아니면 우회적으로라도, 즐거운 분위기의 블로깅이 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허나. 그건 아니다.

'조선일보는 보지마세요'

보단

'조까튼 조선일보는 어여 어여 망하게 보지 마셔요'

라고 얘기해 주고 싶은 기분을 알 사람은 알리라.



끝으로 코멘트에 관한 부분. 그들의 글에 '다른 생각'이라면서 존중해주신 분들은 실로 고매한 인격을 가지신 분들이다. 난 그 분들의 인덕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글이 '왜' 속시원하게 잘 써준 글들인지 이해를 못했기에 그런 류의 코멘터에게 직격을 날리고자 했다.

물론 이것도 내 글의 조악함이 부른, 읽으시는 분들 께는 어처구니 없는 쓰레기 주장이었을게다.



정말. 이틀 간의 글을 읽고 기분 나빠지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치 온라인 바닥의 대부분을 극우 공화당파가 누리는 꼴을 보기 싫듯이.

온라인에서 '그들만의 리그'가 비중있는 부류가 될까봐, 그저 그게 두렵다. 그렇기에

나 여기 당신들 개무시하면서 잘 살고 있소

라고 한번쯤 외치고 싶었다.



다시금 눈쌀 찌푸리셨던, 그리고 찌푸리신 분들께는 죄송하단 말씀밖에 드릴길이 없다.

분이 풀리지 않으시고, 어제부로 RSS 주소에서 날 지우셨을 분들에게도 미안하단 말밖엔 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플하트'님 말마따나,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당당하게 손가락질 해대며, 내 버러지 같은 인격을 만 천하에 드러내고서라도.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비 오는 날 또 기분 나쁘게 해드려서 죄송하다.

그래도. 할 말은 한다.

비록 진흙탕에 일부러 구르면서 어떻게 추락하는지를 보여줘도.

어제의 글에 표현했던 '우리' 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우리' 가 날 진흙탕에서 일으켜 주고 다시 걷게 할 것을 믿기에.



욕 바가지로 먹어가면서 만용을 부려본다.

Posted by 함장

2005/10/07 12:55 2005/10/0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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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을 돌다가 이제 뚜껑열릴 일은 별로 없다.

그건 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일인데, 예를 들어 글 끄트머리마다 그 뭐시냐

'이성은 비관하대 의지는 낙관하라' 던가?

그렇게 적어대는 분이랑

'시적정의 배상'

요렇게 끝을 맺으시는 분들의 고매한 인덕으로 인하여 RSS에서 쉽게 제거 할 수 있거나, 혹은 올블로그의 마우스 커서 가져다 대면 블로그의 이름이 뜨는 친절한 서비스로 인하여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머릿속에 똥이 찼든, 아니면 배운게 가지든 간에 상식 밖의 읊조림을 적어대는 것이야 자기 마음이라지만 그걸보고 꽤나 많은 이들이 불쾌해지는 것을 즐기는 건지 아니면 그저 지 꼴리는데로 써대는 건지 참으로 간사하고 무례한 '지 조때로의 사랑'을 부르는 꼴이란 음치도 엇박을 넘어선 수준이다.



여기에서 DJHAN님의 링크 하나



최근 청계천 관련하여 깜빡하고 시적정의란 사람의 블로그를 다시 클릭하게 되는 실수를 범해버렸는데 어처구니 없는 'Open'의 사용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오늘 올블로그에 후끈글에 처음 보는 하늘이무너져도정의를세워라 라는 새로운 블로거가 떴는가 해서 가보았더니 이게 왠일?



써글. 지하철에서 휴거 제창하는 아줌마 만나서 그런가? 오늘 재수 왜이리 옴팡지다냐.



물론 저 위의

'이성은 비관하대 의지는 낙관하라' 던가?

그렇게 적어대는 분이랑

'시적정의 배상'

욜케 끝맺으시는 분께 가끔 감사드린다. 왜냐?

그 아래 그 글 옹호하시는 분들의 링크를 보고, RSS에서 삭제하고, 앞으로 정신건강을 위해 절대 방문하지 말아야 하는 블로그들 명단에 올리는 '분리수거' 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주시는 멋드러진 분들 아니던가?



인식을 넓힐 준비? <- 링크 걸려다가 타고 간 사람 정신건강 나빠질까, 어차피 트랙백이든 뭐든 지워질꺼 뻔해 참는다.

님하 댁이나 넓히3?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운다는 것.

그 정의는 분명 지 조때로의 정의다.

분명 모든 사람들이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고 싶어한다.

그런면에서 위에 열거한 블로그들과 그 글들에 '호응'하는 코멘트들을 단 블로거들은 내 정의에 거슬리는 악이다.

이게 내 조때로의 정의다.



분명, 블로깅이 즐거우려면, 자신이 보고싶은 글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스스로가 '보고싶은' 글을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이 편협이라 볼 수 있는가? 그렇다.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편협의 범위를 결정짓는 것은 지독히도 상식적인 수준의 '예의'와 '포용'이 존재한다.



그 포용이 이 곳을 방문하는 꽤 많은 사람들에게 거슬릴지라도.



난 결코 저들을 포용할 생각도, 저들에게 링크를 걸어줄 친절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비웃음만 날릴 뿐.



트랙백으로 싸운다고? 상대의 주장을 이해하라고?

이 전제는, 싸울 가치가 있는 대상인가와, 상대의 주장이 서로의 포용 범주에 들어가느냐 부터 고찰해야 하는 것이다. 결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가끔은 눈에 찌푸릴정도로 거슬릴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함부로 낙관하는 의지를 가지면서 낙관하는 체 하지 않고, 함부로 '배상'까지 써가며 가짜 '정의'를 남발하지 않는다.



결코 저런 '치'들과 어울리지 말아야겠기에.

이 포스트에 걸릴 수 많은 비웃음과, 욕설과, 냉소와, 개무시를.

감내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과의 타협은 없다.

그냥 그저 조까라고. 저들을 배제해도 우린 걸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이면 그만이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그 듣고 싶어하는 것은 '이성'에 치우치든, '욕망'에 치우치든.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포용'이 좋다 하더라도 범위가 있고, 시시비비를 가려 '양비'가 될지라도, 우세한 쪽은 있는 법이다.

그 우세가 '기득권'인지 '청춘의 열기'인지 '지식인의 고뇌'인지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



결코 영원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원칙도 없고, 상식도 없는 궤변들은 포용의 상대가 아니라 무시의 상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 하나.

다시금 떠오르는 하루다.



내 블로그 방문자께, 저들과 관련된 어처구니 상실의 블로그들을 가까이 하지 않으심이 정신건강에 좋을거라는 권유를 덧붙이면서.

그리고 그것이 결코 '편협된' 시각이 아닐 거라는 진중한 첨언을 곁들이면서.

이만 줄인다.



표현부터 시작하여 눈살찌푸리는 '사람에 대한 혐오'를 읽으셔서 너무 송구스럽다.

그렇기에. 이 글에 대한 모든 욕설을 감내하겠다. 읽으시는 분들. 너무나 죄송하고, 동의해주실 소수의 분들껜, 너무나 감사하다.

Posted by 함장

2005/10/06 19:26 2005/10/0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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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목요일에 있을 철학개론 시간에 발표할 내용을 미리 머릿속에 정리해 두기 위해 쓰는 글이며, 읽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글이므로 형식이나 그 외의 '학구적' 요건에 전혀 들어맞지 않은 괴팍한 글임을 인지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불친절한 함장쒸,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관계로 포스팅에 소홀하기에. 이 짓거리로 포스팅 할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올블로그 1주년 모임과 출사 및 멋진언니님 2만 힛 번개의 후기들이 못 올라오는 이유를 유추하시길 바랍니다.....

후다닥~

각설하고. 시작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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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7차 교육과정의 윤리 시간에는 어떻게 나오는지 확실치 않지만 제가 배운 6차 교육과정에서는 윤리교과서에 분명하게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 얘기하며 준법 정신을 강조했다"

라는 내용이 삽입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헌법재판소에서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구호로 '준법정신'을 교육시키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한 바가 있지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소크라테스는 책을 남긴 적이 없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책을 남겼고, 그 중 '악법도 법이다'라는 이야기를 유추해 낸 것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쓴 '대화' 편 중에 '크리톤'이라는 부분의 이야기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친구인 크리톤과 독배를 마시고 죽기 전날 새벽 감옥에서 나눈 대화로 이루어진 크리톤의 원본을 보든, 번역본을 보든 '악법은 법이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악법'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법'은 선한데, 그것을 적용시키고 집행하는 '법관'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고로 '악법'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합니다. 국가가 하는 일은, 이미 국가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많은 일을 해주었기에 그 국가의 일부인 법도 옳은 것처럼 묘사되니까요.

어찌보면 이것은 논리적 오류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과연 '국가'라는 전체가 정의라고 볼 때, 그 부분도 정의인가에 대한 일종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같은 것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죠.

어쨋든,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대화에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이야기를 유추한다는 것은 조금 억지스러운 일입니다. 군사적 권위주의 정권이 국민에게 세뇌교육을 시키기 위해 교육과정에 집어넣은 이야기이지요.



그렇다면 왜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억지스럽게라도 유추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풀어헤쳤을까요? 여기서 저는 '악법'이 이야기 하는 내용상의 악의를 가진 법보다는 '한 국가 체제의 일부인 법'에 대한 유기적인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현대'에 적용하기엔 자본주의 사회로 인해 그 논리적 모순을 인정해주기 어렵습니다. '국가'라는 틀에 대해 현대사회에서 '이민'이라는 것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뿐더러, 해외도피 또한 엄청난 자금을 필요로 하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소크라테스 주장의 요점을 적용시키자면 결국 국가라는 유기적 구조의 '법'이라는 체계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오는 사람들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식의 법 해석은 '정의'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라 볼 수 있기에, 그에 초점을 두고 현재 대한민국의 두 가지 법을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첫번째는 '국가보안법'입니다. 악법 중에 악법이지요. 이는 과거 군사정권의 '정권 유지'를 위한 법입니다. 분명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이었고, 소크라테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켜야 하는' 법이라고 해석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법을 우리가 따라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보다 한참 뒤에나 나온 이야기로 프랑스 대혁명 때 천부인권 사상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그 뒤로 전 세계 대부분의 헌법엔 이것이 명시되어 있고 가장 상위의 법입니다. 자유주의 국가라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통이 되어버렸죠.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바로 '전통'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분명 자신의 국가가 정의인 이유는 자신의 조상들을 낳고 기르고 교육시킨 점에 있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국가보안법'을 탄생시킨 정부가 우리의 조상들을 낳고 기르고 교육시킨 정부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봐야 하는 거죠.

흔히 통일된 국가로 정통적인 교육체계를 이어오는 것은 조선시대부터로 얘기됩니다. 그 후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지요.

그런데 과연 그 때의 정부가 정통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제헌의회를 우리 조상의 손으로 뽑았으니, 헌법에 대해서는 정통성을 부여 할 수 있겠지요. 허나 그 수반은 임시정부의 적통이 아닌 그저 꼭두각시 반공정부였던 겁니다. 의회와 정부는 다르지요.

물론 여기서 적자논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반공'정부가 토대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바로 '반공체제'의 토대인 거죠.

이후로 군사 쿠데타로 지속적으로 '정통성'이 결여된 정부가 들어섭니다. 이들은 우리 '조상'들을 전통에 입각해 낳고 기르며, 교육시킨 정부가 아니라 그저 권력속에서 헤매는 부랑아 들이었던 것이죠. 그들은 정통적 정부가 아니었어요.

물론 소크라테스도 '대중'이 올바르다고 얘기하진 않았지요. 그러나 적어도 기존의 적통을 이어오는 정부를 대중의 동의 없이 뒤집고 법을 개정한다면 적어도 '국민의 동의'를 끌어내는 적법한 절차가 필요한 것이죠. 소크라테스도 분명 아테네에 군말없이 거주함으로 인해 아테네를 사랑하고 그 국가의 법을 사랑한다는 식의 국가와 자신 서로 간의 '계약'이 성립되는 논리 전개를 펼쳐도 무방하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네는 그럴 수가 없었죠. 정부가 전복되어도 국가를 쉽게 떠날 수 있는 현실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정부가 찍어낸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국민의 손으로 만든 '제헌의회'가 만들어낸 '헌법'이 보장한 천부인권을 농락할 수 있다는 것은 숫제 웃긴 일인 것이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을 조성하고, 국민들도 엄연히 그 체제속에 살고 있는 것이 맞지만, 적어도 그 '체제'가 만들어지는데 국민의 동의라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죠.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니라 분명히 선행점이 존재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의 논리로도, 그리고 우리의 상식으로도. 천부인권에 해당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넘어서는 '국가보안법'은 악랄한 악법으로 그네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쓰여왔다는 점에서 폐기처분 되어야 마땅한 것이죠.



두번째는 최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발안했던 이중국적자에 대한 병역법 개정안 이야기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독배를 마시지 않고 도망을 가게 될 경우, 국가 관리의 법 집행에 있어 지금까지 법 테두리 속에서 잘 살아오다가 '자신이 위험해지자' 지금까지 잘 지켜오던 법을 부정하려는 것과 동일한,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해석될 것을 우려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태어날 때 국가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으로 인해서 위의 법안이 국가를 선택할 자유를 침범했다고 악법이라는 평이 있었죠.

대한민국 남성들은 태어나서 초등학교 끄트머리에 도달할 때 쯤 어렴풋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중학교 끄트머리쯤엔 군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사람들이 계급별로, 서열이 나뉘게 되고 상명하복만 있는 곳이 어떤 분위기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 것이죠.

문제는 이것을 느낄즈음엔 이미 국가에서 제공하는 상당한 부분의 혜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논리대로, 부모를 통해 태어났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여러 세금보조를 통해 양육되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의무교육을 이행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받기만 하는 거죠.

그렇다면 애초부터 이런 병역이 있는 국가에서 국가의 혜택을 받고 싶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이민입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해줄 권리가 있지요. 그런 선택권도 물론 현실적인 금전문제에 부딪히겠지만 어쨋거나 그들이 '의무'를 행하지 않으려면 '권리' 또한 포기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오로지 병역기피의 목적만을 가지고 이중국적을 취득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의 권리만 받는 사람들에게 '법적인 제제'를 가하는 것은 스스로의 '체제'유지를 위해 국가가 발안해봄직 합니다.



위와 같이 '악법'이라고 거론되었던 대한민국의 두 가지 법안을 소크라테스의 시각을 빌어 왜 악법인지, 혹은 왜 악법으로 몰아붙이기 어려운지 잠시 들여다 봤습니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주어진 '천부인권'을 넘어서는 법은 죄다 악법으로 몰아붙여도 충분히 납득되어지는 모습으로 발달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색깔론'이라던가 반공주의로 물들어 보다 나은 가치를 바라보기 어려운 구도를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보다 나은 세계를 추구하려 하고, 유토피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합니다. 비합리적이거나, 비상식적인 것들은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지, 인간위에 있지도, 인간아래에 있지도 않은 그저 관념의 테두리인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악법을 존재시키는 정부는 국민의 허락을 얻어내기 어려울 겁니다. 이런 점은 국민의 교육수준이 높아질 수록 뚜렷해지겠지요.

제한된 시간에 많은, 또 깊은 이야기를 할 말주변이 없음이 아쉬우며.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Posted by 함장

2005/10/05 11:50 2005/10/0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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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49분.

벌겋게 충혈된 눈은 통증에 무감해진지 오래다.

내 성격이 지랄 맞은 이유는 완벽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결과물이 완벽하단 소리는 아니다.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처음에 번역본을 감수하기 위해 받았을 때.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이 번역한 것을 한번만 정독해봐도 도무지 무슨 문장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데도, 수정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소유격 문장의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는 경우도 허다하고, 수동태 문장을 차라리 직역이라도 해뒀으면 고쳐주기라도 쉬울텐데 능동으로 해석을 해서 논리적 오류가 생기는 문장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의무교육 과정만 착실히 밟아줘도 절대로 틀일일 없는 문장들의 번역에서 발견되는 오류들은 기어코 내 성질에 불을 지른다.



군사용어 감수는 그저 문맥과 전문용어, 단어의 통일성 위주로 봐주면 충분할 거라는 판단은 오산이었다.

개판 오분전의 번역들을 다 뜯어 고쳐야 했으며, 비교적 깔끔한 번역도 중간에 문장구조 번역이 오류난 것이 드러나면 그 때부터는 내 스스로의 성격을 저주하며 아예 원본 스크립트와 대조해나가면서 읽어내려간다.



번역본만 보면서 중요 어휘와 관용구 해석만 잡아주면 편당 3~4시간이면 떡을 칠 일거리가, 어느 새 가볍게 6시간을 넘겨버리는 무거운 짐으로 바뀌기 일쑤다.



2학기 시작하고 나서 학교는 오로지 출석과 아르바이트를 위해서만 접근했고, 통계학과 관리회계 같이 공부좀 끄적거려야 하는 과목들의 책은 아예 들여다 보지도 못했다.

간간이 아르바이트 시간에 컴터앞에 앉아 팔아먹은 글들만 올려대며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에 망중한을 즐기는 것이 고작인 요즘.



오늘도 화딱지 나는 번역본을 들고, 도무지 내가 군사 감수인지 번역 감수인지 스스로 엿먹이면서 또 다시 날밤을 까고 있다.

밤을 새고, 수업을 듣고, 금요일엔 또 시험이라..

사이비 대딩 치곤 그나마 쓰레기 짓 안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벌써 두 시다. 과연 아침까지 나머지 분량을 끝낼 수 있을까? 심히 졸립니다.

Posted by 함장

2005/09/29 02:01 2005/09/29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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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발달 상상하기 - 과제

지금부터 지껄이는 내용은, '글쓰기' 강의 과제로서, 언어가 어떻게 발달했는지 상상해보는 내용입니다. 어떤 친구는 '작업설'을 내세워서 남자가 여자에게 작업을 걸기 위해 만들었다고 얘기했던 것으로. 그저 웃자고 상상해보는 것이니 영양가 제로일겁니다.

실제 언어학의 발달 가설은 언어학 시간에 배우고 글쓰기 시간엔 작문이 더 좋을텐데 말이죠.

이래서 차라리 작문 숙제가 좋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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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필요설 -

선사시대, 정확히 얘기할 수 없는 시점에서 사람들 간의 언어소통이란 궁극적으로 '사유'를 위한 것이라기 보단 생존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냥을 하든, 채집을 하든, 먹고살기 위해서 일인 이상의 힘이 필요해지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소통'을 원하는 순간이 된다.

물론 애초에는 손짓발짓으로 '통했을'것이다. 그러나 그 손짓 발짓이 서로에게 동일한 의미로 다가가기 위해, 사물이라던가 행위들이 몸짓과 손짓에 각각 대응되며 하나의 기호로 전환이되기 시작하고, 또 그로인해 그 가지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좀 더 복잡한 체계의 '소통'을 필요로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이 열개라고 열까지 셀 수 있던 시기가 있다면 그 '열'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발가락으로 확장되는 변화가 있었다는 농담처럼 '소통의 확장'을 가져와야할, '언어'가 필요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을테니 말이다.

먹을 것을 채집하는데 필요한 지식이라면 아마 그 '분류'를 위한 선험적 지식일게다. 그렇다면 그 정보는 조력을 위해 타인에게 전해져야하고, 그런 정보의 전달이 누적되면서 일정한 형태의 '단어'들을 구성하게 되었을게다. 물고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같이 물 속에서 노니는 녀석들이라도 그 '맛'이라던가 '효과'에 대해 다른 반응들이 나타나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말이다.

사람의 삶이 '영원'하지 못하기에, 태어나는 생명에겐 생존을 위해 가르쳐 줘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형태들이 '텔레파시'가 먼저 존재하지 못했기에, '언어'라는 것으로 학습되는 모습으로 발전되어버렸을게다.

어쨋거나 언어는 '먹을 것'의 분류를 넘어서서 사물을 지칭하는 온갖 단어들과 상념들을 묘사하는 문장들로 풍요롭게 바뀌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면, 역으로 언어가 발생했을 시점의 '묘사수준'이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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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다큐멘터리 번역 감수였는데. 아예 번역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감수하다가 번역이 하도 짜증나서.....orz

고로..... 죨라 바쁩니다 (__;;a 이러다간 추석이고 뭐고 없겠어요 (__;;a

Posted by 함장

2005/09/10 20:37 2005/09/1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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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워낙 노곤해서, 집에 돌아온 후 짜파게티 하나 끓여먹고선 100분 토론 보기 위해서 눈좀 붙인 다는게 뻗어 자다가 새벽 3시에 깨버렸습니다. 새벽형 인간도 아니거늘.

간만에 유시민씨오 노회찬씨가 나오는 토론이라 재미나게 볼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아쉬운 놓침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iMBC. 교양 프로그램은 돈 안 받아 먹으니까 가볍게 다시보기로 봤지요.

참 재미나더군요. 목소리로 무게감을 주는 능구렁이 이낙연씨는 추락한 민주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고, 바보 김문수는 이젠 좀 그만 봐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말끝마다 '국민', '경제' 쓰는 것 때문에 화딱지나는 것도 신물이나요.

각설하고.

1학기 정치학개론 기말시험에 우리나라의 선거구제가 독일식 선거구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에이뿔따구를 받았는데, 사실 이 방법을 지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철학'에서도 중요시 하거니와 '경제학'에서도 늘상 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방법에 꼭 필요한 '합리성'을 추구하려 할때. 그리고 그 합리성이 '대의 민주주의'와 만나려 할때, 이 방법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전후 세대'와 '민주화 세대', '서태지 이후 세대'들이 겪는 갈등 구도 속의 정치문화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에 하나라고 보거든요.

흔히 사람들이 '너 왜 민주노동당 지지하지 않냐?'라고 물어보면 제가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키마를 깔아야 하는지 연결고리 얘기하다보면 사람들이 지칠지도 모를 정도니까요.



무슨 얘기인고 하니, 현재 우리나라는 노령화 사회에 급속도로 접어들 정도인 인구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이 보수화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그리고 미국도 그러하거니와 우리나라도 기존 선거들에서 '자칭 보수'인 한나라당이 40대 이후의 인구층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그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인구비율이 훨씬 늘어나는 시점이 눈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제 토론에서 보이듯이, 권역별 비례 대표제의 비중이 무척 높아져야 한다는 것에 '한나라당'만 빼고 모두들 동의해 나가고 있는 진척을 보이지요.

이거 실행된 후에도 현재와 같은 정당 구조면 '두려운' 겁니다. 보수당이 '한나라당'이면 보수층이 두터워지는 한국의 미래 사회에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높아지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초래되는 거죠.



그런데 그런 걱정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현재의 '주요흐름'인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분명. 인터넷 곳곳에서도 '미국식 정치'와 '정책'을 연호하고, 박사모와 창사랑이 존재하며, '빨갱이를 쳐부수자!, 죽창으로 찔러뿌자!' 따위의 구호를 연발로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한나라당이 거대 제 1야당. 대한민국 언론 중 주요한 신문, 그 신문시장의 70%를 먹고 있는 조중동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그런 분명한 사실이 존재하는데도 별 걱정이 안드는 것은 이제는 '무시'해도 될 일이라서 그런거라 생각됩니다. 요즘 늘 하는 얘기지만 이미 '대한민국'의 주류는 바뀌었으니까요.

열린우리당이 애초에 기대했던 대로, 우파 정당으로 흘러가고 있고, 그 당이 '보수'의 색채를 만연하고 있기에 우리의 그 많은 노령층과 중장년층이 오를 '보수의 단'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보수의 시각이 '열린우리당'으로 옮겨올 것으로 보여지거든요.

혹자들이 '뉴 라이트'라고 지랄을 떨며 한나라당 속에서 회생의 길을 노리곤 있습니다만 어제의 100분 토론 구도가 확연히 보여주거든요.



물론 현재의 '열린우리당'이 보여주는 모습이 만족스러울 순 없죠. 내부에서도 '혼란'이 많게 노출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 '혼란'이 전 별로 '혼란'으로 보여지지도 않아요. 어제 유시민씨가 노골적으로 얘기했던 '난 한나라당이 싫어요~'와 관계된 일련의 발언들이 열린우리당 내부의 일부인들도 동일한 시각이니까 '연정론'에 그렇게 반대하는 게죠. 그리고 친절한 유시민씨 그렇게 싫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이해하는 과정까지 설명해 주잖아요?



한겨례 신문 얘기를 왜 했냐하면 몇 개월 전부터 한겨례 신문이 지속적으로 '정부'를 두들기고, 정부 정책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날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람들이 이를 보면서 '드디어 한겨례도 노무현으로 부터 등을 돌리는 구나'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이 있던데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손석춘씨가 100분 토론에서 유시민씨와 같은 방향에 앉아 있다가 어느새 반대편으로 가게된 모습. 노회찬씨가 유시민씨와 같은 방향에 있다가 어느새 반대편으로 가게된 모습.

이 두 가지가 말하는 것이 바로 '보수와 진보'의 양대 진영이 구축되고 있는 우리나라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유시민씨가 '보수'라고 하면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은데 좌파나 우파는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기도 하지만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그리고 그는 '시장주의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합리적 보수의 측면이 강하지요.

현재 그가 내세우는 '선거제 개편'의 문제가 '선거구 개혁안'이라는 이유, '개혁'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진보로 얘기되면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이 '극좌'가 되어버리는 우스운 스펙트럼이 생겨버리는 꼴이됩니다.

물론 유시민씨 '개인적'인 모습은 진보적이라 할 수 있으나, 정치권에서 그가 속한 틀이나 그가 그 틀 속에서 성과를 이루기 위해 뛰는 모습은 '우파'인 셈이죠.

사실 제 블로그 오시는 분이 저보고 '좌파'라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전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이거든요? 섹스쪽이나 인권, 사생활 관련 쪽은 '좌파적'이지만 그외엔 정말 '진보적'이신 분들이 절보면 우파꼴통으로 보일 정도니까요.



뭐 어쨋든. 이미 우리사회의 주류가 서서히 '정식의 보수'를 찾아가고 있다고 느껴지기에 이제 한겨례 신문과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의 계열은 보수가 자기 자리를 잡아가니 '좌파'도 자리를 잡아갈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죠.

노회찬씨가 예전에 민족문제는 '우파'가 할일인데 댁들이 왜 끼어드냐는 질문에 제대로 된 우파도 없는 데다가, 우파가 할일도 제대로 못하니 좌파가 나서서 해주는 거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젠 어느 정도 그 틀이 '완성'까진 아니더라도 조금씩 국민의 '의식'이라던가 거대한 '본류'가 이제 완전히 물꼬가 틀어진 것을 느끼기에 본연의 '좌파'로 돌아가는 것이라 봐요.



그런 시각으로 보면 이제 '한겨례' 신문도 자신이 '가고 싶던' 길을 가게 되는 거죠.

네, 이제 어제 100분 토론의 분위기 처럼 그냥 한나라당과 인터넷에서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농담조로, 측은하게, 무시해주면 될 것같아요.

조중동이 용을 써가며 곧 죽어도 박근혜를 매일 놓치지 않는 것부터 해서 '국민'으로 부터 잊혀지지 않게 발버둥을 쳐도. 그냥 웃으며 열린우리당 내부의 진흙탕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 관찰하고, 민주노동당이 다음에는 30% 넘는 지지율을 받을 수 있도록 진보진영을 논하고. 뭐 그런 흐름으로 서서히, 혹은 빠르게 변화해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여기 저기서 눈에 띄여 즐겁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 취임할 때. 개혁이라는 업적을 이루는 혁신적 대통령이 아니라 지난 세월동안 '잘못'되어온 것을 갈아엎느라 '시끄러운' 대통령이 될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임기가 반이나 남았는데 보통 권력말에 꺼내놓는 선거구 개편이나 개헌론.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거부하는 것보다 어차피 사람의 삶속에 한길 사람속을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고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구도'를 합리적으로 추론해 보는 것이 인간의 '선택'아니던가요?

우리에게, 선거공약도 아닌, 다음 정권을 잇기위한 제안도 아닌, 그것도 임기 한 중간에. 이런 정치적 '비젼'을 제시한 대통령이 또 있던가요?

한나라당이 서민 경제 서민 경제 운운합니다. 사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노태우가 되든 김영삼이 되든 먹고 사는 경제는 결국 한정된 자원으로 정책적 지원이 있던 곳이 부흥하고, 그러지 못한 곳은 연명하는 식이었을 뿐이지요. 대통령이 연정 제안하고 뒷짐지고 놉니까? 할일 다 하면서 국가 비전까지 제시하는 직업입니다.



열린우리당. 좋은 당은 아닙니다. 보궐선거 내보낼때, 당원이 뽑은 사람 추천안하고 지도부에서 선출하는 작태를 보이고, 한나라당에서 건너왔던, 아직도 기존의 뻔뻔하고 구태의연한 국회의원의 모습을 보이는 미친놈도 많습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우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앞으로도 이 많은 인구의 중장년층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그 속이 어떻게 좀 잘 굴러 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지지해줍니다.

제가 한나라당 무시하듯,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군중심리가 그렇지 않기에 이렇게 얽메이는 게지요.

100분 토론에서 잠깐 언급된 얘기지만 '여론조사'가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사람들이 '지역주의' 써먹는 당에 대한 인식이 '한나라당'이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역주의'라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압니다.

그렇기에 한나라당 나쁜 줄은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압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선거철에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연합홍보전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어떤가요?



어쨋든 즐거운 토론이었습니다. 조중동이 떠들어 대는 것과 달리. 한나라당은 바보가 되어가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다수의 국민들이 그냥 개무시 해줄 수 있는 풍토로 가고 있는 듯 하여. 다행입니다.



유시민의원때문에 박장대소 했어요.

'저는 한나라당 의원님들을 만나면 악수를 하기가 싫어요...... 제가 정형근 의원님같은 분 뵈면, 조금 악수하기가 그래서 이케 막 이케 좀 피해다닙니다...... 우리당 내에서도 저런당하고 어떻게 연정을 하느냐 과거에 독재, 고문, 도청 뭐 온갖것 다한 당의 후옌데 민정당 후옌데, 광주학살한 당 후옌데....'

TV에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다니 유~후~

아 물론 이것 보신 분 오해는 마십시오, 저 발언 전후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을 보는 시각도 언급되었고, 여러 정황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방청객들도 당연한 얘기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참 솔직한 사람이라니깐.



어쨋든 시간나면 한번 봐보세요. 저렇게 '한나라 당'이 싫어 죽겠는데, '대의'라는 거창한 명분은 일단 집어치우고, 파행이 계속되는 모습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이유와 '방법'이 싫은데 '그래, 그래 볼 수도 있다'며 입장을 제시하는 유시민. 민주당이나 한나라당과 같은 좌석에 있다는 것으로도 참 열받았을 노회찬씨를 보는 재미도 쏠쏠할겁니다.



그리고 보고나서, 이젠 좀 한나라당은 무시합시다. 개그 프로그램은 폭소클럼이랑 개콘, 웃찾사만 봐도 충분하잖아요? 이미 우린 전여옥의 발언 쯤은 무시하고 있을 정도로 무뎌졌잖습니까?

Posted by 함장

2005/09/02 07:45 2005/09/0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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