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이 글은
리하나닷컴의 글을 보고 작성한 것도 아니거니와 일주일에 걸쳐 구상하던 글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거슬리는 글'이 될 수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상당히 '불쾌'할 수도,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도, 첨들어 보는 해괴망측한 이야기일 수도, 그저 그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리하나닷컴에서 언급한 '음담패설'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나, 충분히 그 논의에 들어갈 수 있으며, 순수하다 생각하는 그대에게 더러운 이야기 일 수도 있다.
분명 '음담패설의 논의'에 대해서 리하나닷컴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쓸 얘기는 100%, 내가 여느 자리에서, 혹자에 따라서는 성담론으로, 혹자에 따라서는 음담패설로 보일 수 있는 이야기의 '시작'이 된 질문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분명히 밝혀두지만, 여기서 '시작'은 내가 남성이기에 '다른 성'인 여성의 '궁금증' 혹은 '호기심' 또는 '무지'로 인해 빚어나온 질문들에 대한 내 답변들로 중심이 되는 것이며, 이는 지극히 내 주관적이고도 나름의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성담론이라 주장하고 싶다.
따라서 여성의 심리에 대해선 '조금의 확신'도 가질 수 없기에 최대한 겹치지 않는 선상에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 글이 음담패설로 치부되더라도 할말은 없다. 다만 적어도 이렇게 '性'에 대해 술자리든, 커피숍이든, 대학교정 벤치든. 어디서든 한 명확한 개인의 Privacy를 드러내거나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폭넓은 이해를 위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 '저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주관하에, 그리고 리하나닷컴님의 말씀에 따라,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호동의하에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일련의 연계하에, 얘기를 해볼까 한다.
그러므로 이 성담론 혹은 '음담패설'이 저질이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아니 읽으시는 것이 제 글로 인한 '성폭력'을 피하시는 길이며.
자신이 성에 대해 알고 있다고, 혹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요놈은 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하군'이라고 느끼시는 분들만 이 글을 보시면 좋겠다.
이 동의를 구하는 이유는 블로그의 글이 아무리 '코멘트'로 소통이 된다하더라도 '음담패설'의 경우 물이 엎질러진 상황에서 기분이 더러워 질 수 있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이다. 그렇기에 서두가 죨라 길었지만 이해하시기 바란다.
그럼 시작해보자.
흔히 비교하길 '조선시대 여성'이라 불리는, 성에 대해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들의 질문 중 하나는 이거다.
'남자들은 많은 사람이 자위 한다면서요?'
그와 연계되어 튀어나오는 '몇 살부터 해요?', '왜 해요?'들은 심히 당황스럽다.
아니 요즘 학교 성교육에서 '남성의 자위 경험은 90% 이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아니하는가?
내 경우엔 6학년 말 겨울, 중학교 반 배치고사를 볼 때 쯤이었다. 그 당시에 '발기'의 개념을 알게되었고, 이어 자위까지 이었졌다. 그리고 내 주위 친구들 대부분 중학교 1, 2학년 때 자위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자위행위의 은어인 '딸딸이'를 중2쯤 되면 반에서 모르는 애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여고생 혹은 여대생의 경우 남동생이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남동생이 자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는 여성분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더럽다, 혐오스럽다'는 표현을 남발하시는 분을 보면 나도 눈앞이 캄캄하다.
그건 더러운게 아니다. 手淫은 정액을 배출하기 위한 행동은 더욱 아닐 뿐더러, 그와 관련된 부위가 인간의 '배설'과 연계된 부분이라 더러운 것은 더욱 아니다. 남성들에겐 지극히 당연스런 행위이며, '자위'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이 조용히 집에 있을 때나, 외로울 때, 스스로 위로하는 행위에 속한다.
야한 상상을 하든, 무엇을 하든 간에 성기를 애무해서 쾌감을 얻어내고, 성교육 지침서에 쓰인대로 '허무감'이나 '죄책감' 비스무리한 것이 초반엔 들지만 세월이 지나가면 자연스레 무감각으로 바뀐다.
이것은 영화 '킨제이 보고서'의 기독교인들이 얘기하는 '죄의식'이 아니라 감정의 선이 극 정상에 달한 뒤에 이전되는 상실감이며, 그 감각이 무뎌지는 것은 '죄의식에 대한 무감각'이 아니라 그저 감각에 대한 무뎌짐일 뿐이다.
그러면 여기서 또 되묻는다, 자위를 얼마나 자주하냐고. 사춘기때 자위에 빠져드는 애들은 주말에 집안에 들어앉아 하루에 몇 번이고 자위를 한다. 5번~10번 등등 종잡을 수 없다. 가능하냐고? 스무 살 넘어서도 가능은 한 일이다.
그것은 '중독'이라는 표현이 비유될 수는 있어도 '독'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자위는 아무리 빠져든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법이며, 여기서 얘기하는 한계는 '삽입'을 통한 또 다른 범위의 성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고 반복되는 '자위행위'에 대한 관심이 당연스레 줄어들기 마련이란 의미다.
성인이 된 후에 자위행위의 횟수는 천차 만별이다, 통계가 먹힐 지 안 먹힐지도 확신 할 수 없다. 어떤 이는 한달에 한번 할까 말까, 어떤 이는 자위라는 것을 잊은지 오래, 어떤 이는 집에서 매일 밤 시간 날 때 마다. 정말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밤에 불끄고 조용히 잠만 자는 사회가 아니라 별의 별것을 심야에 즐길 수 있는 사회다.
여기서 하나 더, 혹시나 여성분들, 주위에 있는 '성별이 남자인 친구'와 이런 대화를 하거나 혹시 한 기억이 있는 분들. 그 남자에게 '남자들은 대부분 자위한다며?'라는 질문에
'응 나는 안 하는데, 주위에선 그런 애들이 있지'
라 대답한 남성이 있다면 주저없이 권한다. '친구'로 남지 말고 절교해도 무방하다.
다시금 그 '사춘기 남동생'의 입장을 커버하기 위해 구성애 아줌마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아이들이 '자위'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초등학교 후반기가 되면 자연스레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가 각방을 쓰도록 가정환경을 만들어 줘야한다.
이는 '갓난아기'나 어린아이를 부모의 방과 다른 방에서 키우게 하는 미국식 환경에서도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데, 부모의 성행위 중에, 여성의 신음소리로 인해 아이가 '아빠가 엄마를 괴롭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로 인한 '공포감'이나 '혐오감'따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개인적인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그러한 것이다. 어느 날 남동생의 자위가 여동생 혹은 누나에게 들키는 것으로 인해 가족간에 '혐오감'이 생기면 이건 골때린 수준이 되어버린다.
여동생은 몰라도, 누나 정도라면 그런 것을 알고 방문이 잠겼으면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동생은 '더러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거나, 혹은 자신만의 '쾌감'을 찾을 뿐이다. 나쁜 일이 아니다.
물론 자위행위로 인해 '공부'할 시간을 뺏기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주말 내내 부모님도 안 계시겠다. 형제도 없겠다 아예 홀라당 벗고 자위를 즐기는 청소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야한 상상을 하며 딴청을 부리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뺏긴 시간만큼. 공부를 더 하는 환경인가? 요즘이야 남학생들이 컴퓨터 게임 때문에 공부를 안해서 그렇다 쳐도, 과거의 남학생들이 90% 이상이 빠져있을 자위행위로 인해 여학생보다 꽤 많은 수가 성적이 낮아야 하지 않은가?
성에 대한 과도한 호기심이라는 단어는 웃긴 것이다. 궁금한 만큼 가르쳐 주고 반드시 벗어나서는 안될 '선'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지 성적이 하락할 가능성이 '자위' 탓인가? 성적호기심으로 그릇된 만행을 저지를 지도 모르지만 '자위'를 많이 한다고 반드시 '그릇된다'는 논리는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성경험' 이야기와 '사창가'. 이거 참 많이 받는 질문인데, '남자는 26세 되면 다 경험해 본다면서요?' 부터 시작하여 '다 그런 동물인가요?'까지 총 천연색 질문들이 파생된다.
우선 '모든' 남성이 26세까지 이성과의 성행위를 경험해 보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이 '혼전순결'에 대한 지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있듯, 남성도 섹스에 관해서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사창가'에 관한 질문도, 모든 남성이 간다고 일반화 시키기엔 너무 현실과 괴리가 있다. 아무리 발달한 매춘산업구도라 할 지라도, 모든 남성이 소비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용층도 상당수가 착각하는데, 소수이긴 해도 부모님께 받은 돈 모아들고 친구들이랑 어른인척 행세하고 찾아가는 중3부터 고등학생은 물론이거니와, 군대가기전의 동창을 밀어넣어주는 20대 청춘들, 술에 쩔어 20~30대 직장인들, 아예 질펀하게 놀 생각으로 찾아가는 40~50대 아저씨들까지 각양각색이다.
혐오스럽다고? 당연히 그럴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찾아가는 것은 억압된 성교육으로 경험해보기 위해 뛰어들어가는 것이고, 그 마저도 못해본 청년이 군대가기 전에 총각딱지 뗀답시고 들어가는 것이며, 집에서 부부생활에 재미를 못찾는 한량들이 먹고 마시고 자기 마음대로 성행위를 해보기 위해 찾아가는. 일반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더럽고 추잡한 남성의 백태를 보게 되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직업이기도 한 매춘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책은 많다. 그리고 도덕적인 이유로 비난을 날려야 하기에 무어라 다른 궤변을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다만 경험에 의한, 소회를 풀자면, 과연 사랑 속의 '섹스'가 어떤 것인지 내가 충분히 성교육을 받았더라면, 그리고 그 '사랑'이 없는 섹스가 얼마나 기분 더러운 것인지 사전에 알 수 있더라면. 사창가로 찾아가는 남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지 않을까라고 추측해 본다.
한 친구가 영화 '쇼걸'을 보고 느낀 감정이, '그저 고깃덩어리로 보였어'라고 얘기했다. '사랑'. 여기서 얘기하는 사랑은 오랫동안 깊게 사귄 사랑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눈빛만으로 반해버린', 흔히 얘기하는 원나잇 스탠드도 포함한다. 사랑이란 단어외에 딱히 표현할 수 없음이며, 지고 지순한 사랑만 사랑이라 정의하시는 분께는 궤변일 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그런 불꽃튀는 감정을 표현할 단어는 이 뿐인듯 하다.
어쨋든 그 '사랑'이 없는 섹스, 즉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하는 섹스가 던져주는 기분 더러움은 그냥 고깃덩어리와 섹스하는 기분이다. 여기서 '인권'에 대해 논박하고 싶은 분 계시리라 믿는다. 허나 본질은 다르다. 매춘부만 고깃덩어리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도 그저 섹스를 위한 동물로, 고깃덩어리로 느껴진다.
사람의 체온이 그리워서 '솔로'인 사람이 사창가를 찾아가는 것을 노골적으로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섹스'를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품'을 돈내고 사야하는 불쌍한 처지의 사람들이기에 방법이 틀리고, 어찌보면 악의 존재를 동의하는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섹스' 자체만을 즐기기 위해서 사창가로 뛰어든 사람들을 옹호해 줄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성업중인 매춘업을 본다면 그런 남성이 다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많은 남성들이 '사창가'를 가본 경험이 있다고, 더러운 남자로 치부된다 하더라도. 난 그들이 그 곳에서 자신도 어느새 고깃덩어리가 되어있다는 '경험'을 해보고 나온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혼전 성관계. 난 '순결서약'을 강요하고, 심지어 어느 대학에선 그런걸 자연스럽게 여학생들을 동참시켜 하는데. 이거 죨라깬다.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 속궁합은 죨라 중요하다.
속궁합이 안 맞으면, 즉 성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이혼사유'가 된다.
그렇다면 속궁합이 맞는 공식이 있느냐? 이건 당연히 없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앨리스님의 글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데, 속궁합이 맞는다는 얘기는 일종의 성생활에 대해 서로의 합의가 잘 일치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도처에 깔린 성교육 교본들을 볼작시면 '전희'부터 시작하며 마치 섹스가 무슨 제헌절 행사마냥 순서가 정해진 의식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거 죨라 우낀 얘기다. 섹스가 때론 부드럽게, 때론 격렬하게, 그때그때 다른 분위기, 다른 체위, 다른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지 무슨 침대 시트 새것으로 갈아 깨끗한 침구 위에서 조용하고 진중한 의식으로 행해지는 것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장소의 다양성, 행위의 다양성등의 수없이 내재된 성행위를 '도식화'하려는 시도는 '킨제이 박사'의 7단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간혹 지독한 순결의식으로 남자친구와의 스킨쉽도 꺼리고, 결혼 전 까지 '애무'이상은 절대로 안된다고 얘기하는 여성들이 매우 많은 점이 우리 사회에 '좋은'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이 어처구니 없는 마초들은 솔직하게 쓰레기로 봐도 무방하다.
위의 사창가는 언급도 하지 않겠다. 자신이 여자친구를 사귈 때마다, 어떻게 하면 손 한번 잡아볼까, 키스 한번 해볼까, 여관 한번 가볼까 속으로 고민하는 남정네들이 개구리 올챙잇적 모른다고 그 따우 소리를 해대면 영 아니올씨다이다.
흔히 얘기하는 '과거'. 그거 정말 '과거'다. '현재' 아니다. 물론 '현재'의 사람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을 과거이지만. 당신들이 사랑하는 것은 그런 밑거름을 통해 지금을 이루는 사람이다.
다시금 돌아와서, '속궁합'이 처음부터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웃긴 것은 잘 맞던 속궁합이 틀어져 갈 수도, 반대로 안 맞던 궁합이 차츰 변화하여 잘 맞아들어가게 되기도 한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신혼때는 하루에 저녁, 밤, 새벽 세차례씩 섹스를 하던 부부가 어느 새인가 시들해져 버리더니 바람나서 불화가 생기는 부부도 있거니와, 후자의 얘기로 신혼 초에 남편에게 전혀 만족을 못 얻던 아내가 둘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마침내 양쪽 다 만족의 길을 찾아내는 현명한 부부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섹스가 남성에게 객관적으로 불리하다. 육체적인 쾌락지수를 뇌파로 측정한 것을 보면, 남성은 자위할 때나, 섹스할 때나, 성적 감촉으로 느끼는 감각의 크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섹스할 때 남성이 소모하는 '노동'의 크기는 여성을 등에 업고 200m 전력질주를 한 것과 동일하다.
반면 여성은 남성의 10배에 달하는 뇌파의 세기를 보이며 Cloud 9(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천국의 다른 이름이자, 오르가즘의 속어)의 영역, 구름에 둥둥 뜬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위와 같은 사실만 놓고 이성적으로 보면, 남자들이 '섹스'에 미칠 이유가 전혀없다. 그런데도 섹스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얼까?
어쨋든, '속궁합'이라는 것.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면 결혼해서 그 속궁합을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맞추어' 나가면 될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결혼이라는 '구속력'을 벗어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 점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 '과거가 있는 여자'라는 이유로 핍박받는 이 사회가 얼마나 몰지각한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성생활은 평생 이루어진다. '속궁합' 조차 모른채 결혼하여 첫날밤에 성행위의 도구로 '허리띠'를 빼어든 미친새끼를 이해할 수 없음은 여성이나 남성이나 마찬가지다.
아 오해마시라, 만약 그 허리띠가 둘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성적 유희의 일부라면 이들은 변태가 아니다. 이건 킨제이 박사님이 남기신 '서로 합의하의 섹스엔 변태가 없다'라는 진리에 의거한다.
'결혼'이라는 구속력을 가지기 전에, 이 남성이 침대위에서 '대화'가 가능한 남자인지 확인해봐야한다.
테크닉이나, '조루' 따위의 성적 능력은 결혼 후에도 수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성에 대한 대화의 자세', 즉 속궁합을 맞춰나가는 의지를 보여 주는가는 '성격'의 문제다. 이 '성격'이 바뀌는 것은 강산이 바뀌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는 한 두 번의 성행위로 알 턱이 없다. 요 근래 여론 조사 발표를 보고 경악하는 여자 대학생을 본적이 있는데, 여대생의 40%이상이 성경험이 있다는 보고를 보고 '말도안돼'라며 일언지하에 부정하는 그 모습을 보면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대학생들의 '동거'문화가 상당히 넓게 작용한다. 어떤 학생은 '지방대'에서나 있는 일이라면 노골적인 '엘리트 주의'를 보이는 불쌍함을 보였지만, 내 생각엔 학생 수만 비교해봐도 서울쪽이 훨씬 많을텐데 말이다.
어쨋든, 학력차 따위나 동거가 학력이 낮은 대학에서 일어난다고 발언하거나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잠시 애도를 표한다.
이런 비유로 인해서 '동거=부정적인 인식'의 공식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는데, 물론 사회적인 시각차부터 '동거 사실'여부로 인해 사회적으로 피해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인식등 거론되어야 할 것이 많지만 결혼 전 '동거'라는 것 하나만 논의해보자면 메리트는 분명히 있다.
물론 그렇게 보면 '동거'와 '결혼'이 법적 구속력을 제외하고 다른게 무엇이냐고 얘기한다면 그 '법적인 문제' 때문에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평생, 자신의 재산, 자신의 모든 물적,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테스트 해보기엔 분명히 필요할 수 있다.
당연히 침대위에서의 모습도 중요하거니와, 이 인간이 집안일을 말로만 같이 해낼 것인지, 실제 집안일을 잘 분담해서 이어나가는지, 나와 데이트 할때만 다정한 성격이고 집안에서 혹은 24시간 밀착해 있을 때, 짜증섞인 단어들이나 행위들을 몇 번씩 해내는지, 그런 모든 것을 감내하거나 서로 고쳐가면서 살 각오가 되어있는지 말이다.
사실 위의 것은 우리네 부모들이 결혼부터 하신 후에 평생을 거쳐 해오신 것이다. 결혼 후에 체크해봐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합리적인 주장에 좀 더 나은 접근을 이야기 하고자 함이지만, 시간을 두고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가 동일하고 그 '시간의 길이'도 30년 이상의 세월을 두고 얘기 할 수 있다면 주장의 차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
물론 혼전 동거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결혼할 마음에 드는 남성이 있다면, 한번쯤. 1주일 짜리 휴가가 있다면, 그 정도 같이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다. 감추고 있을 성깔따위가 발견되어 일찌감치 고치게 하던가, 쫑을 내던가, 판단의 기회가 일찍 오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콩깍지가 끼여, 집에서 이리 휙 저리 휙 옷을 벗어대고, 청소도 안하고, 딱 결혼하면 '어머니가 하는 '집안일'을 대체하는 정도의 사람'정도로 만들어 버릴 놈임에도 마냥 귀엽게 보이면 낭패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동거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성'의 문제다. 결혼도 안했는데 '애'가 들어서면 아니되기에. 모든 섹스, 심지어 결혼해서도 '섹스'에서 콘돔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정관수술하고 애 가질 때만 풀던가.
여성이 첫 경험을 하게 되면 상당수가 '질염'을 겪게된다. 태어나서 첫경험때까지 아무런 이물질도(물론 생리대를 템포로 쓴다면 아니겠지만)들어 온 적이 없기에 민감한 그 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남성이 그냥 삽입하든, 콘돔을 써서 삽입하든 마찬가지다. 그 고통으로 두려움에 휩싸여 산부인과를 방문하게 되면, 첫 경험시기가 중 고등학교때라면 어머니와 함께 찾아가는 아이가 많을텐데, 이럴 때 아이는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사실대로 말할지 그저 둘러댈지에도 휩싸여 고민하게 된다.
우리네 성교육은 이런점에서 너무나 낙후되어 있다. '무지'로 인한 두려움으로 심한 자멸감에 자살 시도를 하거나, 두려움에 임신을 하고 감추기만 하게 되어버린다.
혹시나 남자친구가 콘돔없이 섹스를 하려들면 무조건 거부하라. 촉감이 안 좋다고 둘러대면 가장 얇은 베네통 콘돔 쓰라하고, 그래도 감촉이 안 좋으니 섹스를 하다가 도중에 씌우겠다고 개사기를 치면 지랄하지 말라하고 헤어지라.
구성애 아줌마가 방송에서 그렇게 강조했듯, 남성의 성기가 '요로'와 '정관'이 결국 같은 통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성행위를 위해 발기하게 되면 정액이 나올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애액'이 나오게 되는데 이 속에도 수 많은 정자가 들어있다. 물론 확율은 엄청나게 낮지만 꼭 사정할 때 나오는 정액으로만 임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여성분들 스스로 정서적이든 실제 감촉이 그렇든,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성기와 자신의 성기 사이에 '이물질'의 감촉이 싫어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피임을 알아서 챙기는 수 밖에.
어쨋든, 그런 '감촉'운운 따위로 여성에게 '경구피임약'을 강요하는 남성 따위 발로 뻥 차버리라. 인체의 호르몬 분비를 억지로 바꾸는 약들이 얼마나 독하며 위험 가능성이 있는가는 누구도 모른다.
3류 로맨스, 흔히 얘기하는 소녀들의 환상. 예를 들어 한때 여고생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남자의 향기'가 환상적인 남성상을 보여주는 이유는 그저 '무조건 위하고 잘 기회가 있어도 같이 안 잤기에'이다.
운명을 믿고, 사랑은 한 번 뿐이라고 믿는 감성. 중요하고, 비웃음을 살 그저 어리고 여린 감성은 아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면 소중히 다뤄주어야 한다고, 이가희의 '그것만은 안돼요' 노랫말 처럼, 자는 것 만은 안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분명 여성의 권리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라면 그에 동의해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헌데 그런 '환상 아닌 환상'이 어쩌면 서로에게 손해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만큼 서로의 육체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그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 숭고한 사랑의 정신이라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이거나, 이룰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있는 성의 즐거움, 그것은 사랑이 풍부해 질 수 있는 기회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킨제이 박사님이 그리도 강요한. '서로의 합의'다.
이것에 다다르기 위해, 우리는 그 수 많은 내숭 사이의 줄다리기와 서로에 대한 무지를 일깨워야 하며,
어떤 때 하고싶지 않은지, 어떤 때 하고싶은지, 올드보이에서 강혜정이 최민식에게 '보고싶은 얼굴'을 부르면 무슨 말을 하던간에 덮치라는 '약속'과도 같은. 서로간에 말이 필요하든, 눈빛만으로 알 수 있든 그런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정점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
연인에겐 그런 것이 필요하다.
죨라 길게 썼지만, 난 이런 성담론이 쉽게 얘기되어, 무지로 인해 발생할 감정의 상처들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음담패설로 보인다면 할말은 없지만.
Posted by 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