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혹은 모르시는 바와 같이.

장장 10개월의 구직기간, 8개월의 대리운전 생활을 거치고 취업을 했습니다.

고생이랄 것도 전혀 없는 기간이었으며, 확실히 제 지난 14년 삶 중에 가장 안 바쁘고 여우로우며, 스트레스 또한 거의 없는 한 때였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아르바이트를 대체하는 허울 좋은 단어가 생겨난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습니다. 노동 착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자본에 대한 두려움조차 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갈 길은 멀고도 험난하기만 합니다.

14년 전, 중학교 3학년 시절에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공군기술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담임부터 시작해서 3학년 담임 모두 뜯어 말렸습니다만. 고등학교 3년 학비나 생활비가 들지 않고, 공군 기술 하사관으로 갈 수 있으니 미래도 결정되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이런 머리가 당시의 제 머리에서 나왔을 리 없습니다. 육군 전차부대 하사관을 지내신 제 아버지의 선택이었습니다. 전역하지만 않으셨다면 당시보다 훨씬 '잘' 살 수 있으셨기에. 자식들에게는 그런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최선의 선택을 자식에게 부탁하셨던 겁니다.

결국은 교장선생님의 허가 도장까지 받아낸 공군기술고등학교 지원서를 찢어버린 것은 제 손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제가 무엇이 될지 몰랐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몰랐으며, 제 미래를 그렇게 1달여의 고민으로 결정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제가 선택한 인문계 진학은 예상대로 어려운 생활이 되었습니다. 집을 떠나와 시작한 독서실 자취 생활은 '먹고 살기' 위해 '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절감케 하는 하루 하루였습니다. 당시 시급 1,700원으로 모은 한달 알바비 십몇만원은 독서실비 5만원과 아침, 점심으로 먹는 캡틴 매운탕, 크림빵, 우유 값으로 대부분 들어갔으니까요. 그나마 그 어린 마음에도 '호프' 집에서는 일하지 않겠다는 - 물론 요즘은 미성년이 일하긴 불가능합니다만 당시 사회 통념상 불문율로 허용 되었고, 제 얼굴이 이미 그 당시엔 지금과 맞먹;;; - 의지로 더 많이 돈 벌 수 있는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어릴 때부터 옷은 칼같이 세탁해서 좋은 옷은 못 입혀도 늘 단정하게 입히셨습니다. 어디가서 가난한 집 아들이라고 욕 안 먹게 하시려고 늘 깨끗하게 씻기시고, 옷이라도 깔끔하게 입혀야 한다는 의지셨더랬지요. 그래서 비록 고등학교 3년 동안 혼자 살면서도 교복은 세 벌을 물려받아 한 벌을 이틀동안 입고 빨면서 깔끔을 떨었습니다. 덕분에 한창 땀 흘리며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해야 할 나이였음에도 교복 입은 채로는 땀 내는 일을 잘 안 했습니다. 더군다나 하루에 두 끼니를 컵라면에 빵우유로 때우는 제게 일터에서 땀내는 것 외에 다른 쪽 소모는 허기만 지울 뿐이었습니다. 한창 먹을 나이였으니까요.

뭐 대충 이런 전략이 잘 먹혔는지 제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다들 제가 그토록 가난한 환경에서 공부한 걸 모르고 계셨습니다. 요즘 와서야 술 마시며 옛날 얘기하다가 이런 얘길 하면 '그렇게 가난했었나?' 하시면서 그 때 못 도와주신 걸 아쉬워 합니다만, 저야 선생님들 도움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덕분에 이렇게 선생님들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만.

어쨌든 IMF는 저를 또 다시 '군대의 길'로 이끕니다. 경기가 안 좋다고 개나 소나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거랑 똑같은 것이죠. 성적이 좋아도 서울에 방은 커녕, 학비도 댈 수 없는 상황에서 사관학교 지원은 당연한 선택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로소 '체념'이란 걸 배웠습니다. 뭐든 안 되면 들이대면서 부러질 때까지 싸우던 제가 드디어 자본에 굴복한 첫 경험이었습니다.

나중에 배워서 안 것이지만 전 당시에 '인지부조화' 과정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 해군사관학교를 선택하면 90% 이상이 평생 해군 일을 합니다 - 길에서 그나마 '잠수함 함장'이란 꿈을 만들고, 그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라 스스로 주지시키며 맞대응 한 것이죠.

그래도 마지막 반항(?)은 했습니다. 이미 IMF 때문에 어쩔 수 없이 3사관학교에 진학해 생도 과정을 밟던 형과 울고 불며 말싸움을 하며 가족들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내가 지금 젤 싫은 게 뭔지 알아? 사관학교를 가야 한다는 거야!" 하면서 철부지 고3 티를 낸 것이죠.

지금도 가끔 그 때 왜 웃으면서 가족들에게 잘 된 거라고 하지 못 했을까라고 돌이켜봅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남자들 군대 가기 싫은 거랑 똑같은 거죠 뭐.

사관학교에서 2학년 때 자퇴를 결심하면서 그 때 제 삶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최소한 부모님과 내가 먹고 사는 것만 유지하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한다."

군생활은 선배들과 후배들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잘했음에도 그 자체가 갖는 구조적 열악함을 이해하면서 제가 노닐 물이 아니라는 게 확신이 섰기에. 더 치열하더라도 즐겁게 하고픈 일을 해보자며 뛰쳐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많이 착각하는 데 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일'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덤벼들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시스템과 그저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여야하는 '폐쇄적 구조'의 사회는 분명 다른 겁니다.

저는 사관학교를 나온 이후에도 제가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지, 제 '목표'가 무엇인지 정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잘 할 수 있다는 마음은 '어떤 걸 하면 특출나게 잘 할지' 모른다는 것과 같으니까요. 고졸 학력으로 3개월 계약직을 전전하면서, 함께 일한 직원들이 일 잘한다고 인정해주고, 퇴사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주어도 '고졸은 고졸일 뿐'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벽이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세상엔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졸, 심지어 중졸로도 세상엔 뛰어난 일을 해낸 제 또래(?)가 몇 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히스토리에 감춰진 '가진 자본력의 차이'는 그리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이 열정이 있었고, 꿈이 있었으며, 그 꿈을 향해 '굶어가며' 달려들어 성공했다는 이야기 뿐입니다.

씨바, 저런 성공스토리를 볼 때마다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보다 '언론에서 또 지랄하네'라고 느낄 수 있는 건 역시 살아온 배경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의 열정도, 꿈도, 노력도 모두 존중합니다만 그들의 성공을 '돈 버는 사람들'로 포장해버리는, 그리고 그것을 '성공의 궁극'으로 만들어버리는 사회 또한 이제 서서히 '편견을 깨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벽'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사관학교를 그만둔 지 9년, 서울에 올라온 지 8년, 대학에 다시 들어간지 5년.

대학 졸업학기부터 구직을 하면서 대리운전을 시작한 이유는 '제가 원하는 직종에 정규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7학기까지 계속 비정규직으로 일을 해왔습니다만, 이런 목표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또 다시 덤벼든 것입니다.

이유는 딴 게 아닙니다. TV에 나오는 중3짜리 애도 '커서 무엇이 되고 싶어요, 무슨 일을 할 꺼예요' 라고 선언할 수 있는데, 저는 세상을 알아갈수록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채로 살아오다가 이제 조금씩 제가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고 심지어 'Career path'라는 걸 대충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 삶의 방향이 이젠 더 물러서지 못 하도록 막아섭니다. '최저 생계를 유지하되 하고 싶은 일을 할 것'. 온갖 사회적 편견이 가득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서른의 대졸'. 하고 싶은 일은 인터넷 업계 쪽임에도 너무 늙은 신인이 되어버리는 사회. 그저 두드리는 방법밖에 없으므로 의지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최저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작은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갔습니다. 원래 대기업은 바라지도 않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곳보다 약간 규모가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기에 그만큼 원서를 쓸 기회도 적었으나. 해오던 일을, 하고 싶던 일을 대졸 신입으로, 정규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건 무척 다행인 일입니다.



지방 국립대를 나오고, 지방의 작은 회사에 회계 쪽으로 취업한 지 6개월 된 후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일터가 싫다고, 비합리적인 회사가 싫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아마 여느 선배라면 조금만 참고, 2~3년 경력 쌓고 그 때 옮기던가, 어떻게든 버티면서 인정받으라고 조언해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배가 그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또 다시 대면하게될 학력차별과 사회적 편견들이 만연한 우리 사회를 알고 있음에도.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니가 원하는 직장을 찾으라는 것 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 후배들에게 이런 선배로 남기 위해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을 '기득권이 권위적으로 내리누르는 사회구조의 하부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이건 회사나 국가나, 모든 조직체에 당연히 적용되는 생각입니다.

내 지인들에게 당당할 수 있게 살아가는 것. 그거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아둥바둥 노력하는 것이, '최저생계 이상의 돈'을 더 많이 벌기위해 아둥바둥 살아가는 것보다 분명히 낫다고 확신합니다.



그토록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아온 30년이 이젠 빚 2천만원 정도에 현금은 거의 없고, 월세보증금 2천만원 정도로 살아가는 또이또이한 인생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할 생각도 없고 그저 재미나게 우리 가족 안 굶고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직업? 그저 생계를 유지하면 됩니다. 그러나 기왕이면 내가 일하고 싶은 조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더 좋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 결혼을 포기해야될 것 같은 사회의 '또 다른 편견'이 찾아옵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우리에겐 서로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리고 그런 삶이 우리를 더 나은 길로 이끈다는 믿음을 주는 '지인'들이 있잖습니까? 이런 유대감으로도 우린 충분히 세상의 편견을 바꿀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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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합격 소식은 지난 달 제주도 놀러갔을 때 들었습니다만, 지난 주 신입사원 OJT 교육을 받고 나서 입사를 완벽하게 마음 먹었습니다.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보수적이라서 좀 심하다 싶으면 과감하게 접고 다시 또 10개월간 대리운전 생활을 하면서 구직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다행히도 외부에서 경력직으로 들어와 일하는 선배 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타 계열사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깨닿고 '또 다른 편견'을 깨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그들의 이야기도 '인지부조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합리화한 과정의 일부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어느 회사 면접을 가든 다른 신입사원 면접자들이 제게 놀란 것은 '긴장 없는 태연함'이었습니다. 피식 웃을 수밖에 없지요. 제 친구들 말처럼 저런 10~20대를 보내면 왠만한 상황에선 탱자탱자입니다. ㅋㅋ

어쨌거나 마스크나 어법 때문에 어딜가나 신입사원 취급받긴 어렵습니다만. 신입은 신입일 뿐인 겁니다.

7월말까지 연수원으로 들어가서 인터넷이 두절됩니다. 다들 즐거운 휴가철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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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우 님께서 이어주신 '편견타파 릴레이'가 있었습니다만, 이 글로 대체를 하되 릴레이를 이어가진 않겠습니다. 릴레이를 시작하시고 이어오신 분들의 의향이 무척 훌륭하고 좋으며, 존중합니다만. 역시 글이란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세상의 많은 편견이 타파되길 바라며.

Posted by 함장

2009/07/19 18:10 2009/07/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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