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 사건 단상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수업 중 과제.
1시간 내에 2,000자 작성. '조승희 사건'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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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주에 있는 대학에서, 한국인이 총기를 난사했다. 그리고 서른 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나갔다.

사실 내가 더 의아했던 것은 그 후에 우리 나라의 태도였다. 이건 인류애적 차원의 弔意표현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죄인이 된 모습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는데, 이걸 마치 우리 나라 국민이 ‘실수’로 미국에게 ‘전쟁’나부랭이 비슷한 걸 시도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건지, 아니면 마치 미국을 自國으로 여겨서 같은 동포 - 조승희가 동포가 아니라 전 미국민에 대하여 - 에 대한 ‘학살’로 사죄를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후자에 대한 고민을 할 때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나라가 미국에 州로 편입됐나?’라고 고소를 지을 정도였다.

우리 나라는 ‘부모에게 효도, 나라에 충성’이라는 지고지순(?)한 道義를 가르친다. 이 묘한 이치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야 하고, 나라의 뜻을 따라야 하며, 그 ‘뜻’은 결국 교육으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나서서 잘못했다 용서를 구한다. 잘못 가르쳐서 미안하다는 얘기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이제 ‘교육’이라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맡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인’으로 만들어 세금을 받고, 이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교육’을 시킨다. 그렇기에 조승희는 ‘우리 국민’이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가르쳤을 테니 우리 잘못이라 미안하다는 걸까? 조승희는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교육’을 미국에서 받았단 얘기다. 그렇다면 그들의 부모가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문제가 되는 건가? 도대체 말이 되기는 하는가? 그저 우리나라에서 살다가 이민을 택한 사람의 범죄이야기에 스스로 원죄의식을 뒤집어 쓰고, 외교관까지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것은 도리어 상식 밖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가?

이건 명백히 과잉대응이다. 그저 스쳐간 인연의 광기로 인해 벌어진 참극에 애도를 표하는 것 이상을 국가가 시도하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조롱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같이 슬퍼할 권리는 있어도 미안해야할 의무는 없다. 이 사건은 미국 자체의 문제로 그 ‘나라’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는 아무리 긍정적인 ‘국가 발전력의 원동력’으로 봐주고 싶어도 영 아니꼬운 것이 사실이다. 국가란 ‘미명’아래 국민이 탄압 받거나, 민족이란 이름 하에 소외되어가는 사람들은 결코 공평한 ‘사람’으로 대우받지 않는 것이 사실 아니던가? 미국이라는 엄연한 ‘국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아일랜드 민족인가, 이탈리아 민족인가에 따라서 갈라지기도 한다. 백인들 간에도 그런 ‘분류’와 ‘차별’이 존재하는데, 인종간 갈등과 권력에 대한 접근도의 차이는 얼마나 심하겠는가.

예컨데 이런 거다. 나는 어느 국가던 그 헌법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명기하기 보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명기되길 원한다. 국가라는 개념적이고도 추상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한정적인 영토 내에서 한정적인 법을 적용하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국민’이 아니라는 사실로 ‘다른 법’을 적용시키는 것은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그토록 추천하는 기본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던가?

나는 우리네 정부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 안을 들여볼 때라고 생각한다. 이미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민족’에 얽메이지 않고 내부의 문제를 다잡아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50만명을 돌파한 나라다. 대한민국의 1%, 아니 그 노동자들의 가족들까지 합치면 족히 100만에 달할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면, 조승희가 미국의 영주권자였듯, 우리 나라의 영주권 혹은 시민권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후에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이미 그들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나라는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다. 해외에 나간 동포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된, 그리고 이웃이 될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머리 깊숙히 박힌 ‘민족’을 뿌리 뽑고 즐겁게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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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억지로 주어진 글은 쓸 때마다 느끼지만.
너무 당연한 글을 쓴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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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30 14:17 2007/04/3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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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로 찾은 삶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3차과제
2,000자 잊지 못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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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

그런 글귀를 보면서 나도 이런 읊조림을 했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유행가였다’라고.

어린 시절 자라던 환경으로 인해서 TV를 보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이 TV를 보지 말도록 통제한 것은 아니었지만, 집이 두 채로 나뉜 상태에 부모님이 주무시는 곳에 TV가 있었거니와, 항상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온 나로서는 그 흔한 어린이용 만화 영화도 볼 시간이 없었다. 그런 환경에 익숙한 탓에 라디오를 끼고 살던지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유행가들은 꿰어찰 정도가 되었다.

사실 꽤 많은 노래가 내 삶의 태도를 결정짓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지쳐있는 내게 용기를 준 것도 유행가이거니와, 우울한 어린 날의 감성을 순화시켜 준 것도 유행가였다. 그 어떤 친우의 따뜻한 말이나, 가족의 위대한 포근함 따위와도 비교되지 않는. 내 안의 고요하고도 부드럽게 강한 힘을 쌓아 준 것이 바로 그런 철학들이리라.

그렇게 학창시절, 줄기차게 유행가를 옆에 끼고 살아오던 내가 사관학교를 들어가면서 음악과 멀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훈련기간 동안 가까워진 것은 ‘멸공의 횃불’과 같은 군가였고 그런 노래는 내게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만들기엔 너무도 괴리감이 가득한 곡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훈련 기간 중. 외부와 연락이 단절된지도 어언 한달. 석식 후 과업에 카톨릭 군종 장교가 조그만 포터블 카셋트 레코더를 들고 들어와, 우리가 입대한 후에 사회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곡이라며 노래를 틀어줬다. 당시에 처음 데뷔한 GOD라는 그룹도 생소했거니와, ‘어머님께’라는 제목과 달리 울려퍼지는 ‘랩’은 약간 어울리지 않는 듯 하였다. 그런데도,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면서도 담담했던 내가,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랫말에 눈물이 핑 돌아버렸다. 역시 유행가의 힘이란. 그 어떤 시보다도 더 뛰어난 음악적 여운이 있지 않던가?

그 때, 잊혀졌던 내 어린 날의 유행가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출과 외박이 금지된 시절에는 주말마다 보급받은 노트북을 들고 전산실의 인터넷 접속 가능지역을 찾아가서 mp3를 검색했다. 당시엔 소리바다도 없었고, 음악서비스 같은 것도 없었거니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CD를 구매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토요일 저녁에는 사관학교 안에 있던 호국사라는 절을 찾았다. 그곳에는 케이블TV가 연결되어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KMTV에 나오는 뮤직비디오 보기를 즐겨했다. 어린 날의 군생활에서 무료함을 깰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을 찾는 독서도 아니었고, 공부는 더욱 더 아니었으며, 무언가 현재의 불만족스런 삶을 뒤바꿔 줄 수 있는 하나의 커다란 ‘충격’이 필요했던 거다.

당시에 사관학교에서는 인트라넷 보급이 시작되고 있었다. 생도들을 위해서 전산과장이 게시판을 하나 내 주었고, 나는 그 곳에서 ‘제다이’라는 닉네임으로 내가 선곡한 mp3파일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곡에 얽힌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적어 내려가고 있었고, 이런 ‘사이버 활동’은 생도들 사이에서 격론을 끌어내기도 했다.

공공재인 ‘서버’에 mp3를 거의 도배하다시피 올리고 있는 나의 행동이 고깝게 느껴지는 생도들은 너무 하는 게 아니냐며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했고, 어떤 생도들은 어차피 글도 잘 올라오지 않는 게시판에 음악이야기 좀 올리는 것이 어떻냐며 두둔했다. 더불어 전산과장인 중령이 전산학 수업 중에 내 선배들에게 접속 아이피를 이야기 해주며 서버에 쓸데없는 mp3를 올려 용량을 차지하게 한 괘씸한 ‘제다이’를 잡아 족치라고 성토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러 파란만장한 일을 겪은 후에, 나는 사관학교 자퇴를 결심했다. 결심을 확정짓게 해준 것도 다름아닌 이현우라는 가수의 ‘슬픈 전쟁’이라는 노래였다. 난 미치도록 이 노래를 읊조리며 내가 하고픈 일이 무엇인지 고뇌했고, 결국 그 노래의 가사처럼. ‘자유’를 택했다.

내가 자퇴하던 그날. 통로를 걷고 있던 뒤에서 한 선배가 날 불러 세웠다.

‘어이 제다이!, 네가 하던 일은 이제 내가 맡아서 계속 하마!’

그때, 떠나던 날 보면서 안타까워하던 이보다. 그렇게 환하게 배웅해주던 그 선배를 잊을 수가 없다.

난 그렇게, 유행가를 통해 자유를 찾아 세상에 다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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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7/04/28 19:15 2007/04/2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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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서울공화국의 폐해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수업 중 과제.
1시간 내에 2,000자 작성. '서울'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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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 드라마였던 ‘서울의 달’은 서울에서 사는 밑바닥 인생의 삶과 야망을 다룬 작품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를 속여 돈을 빼앗고, 결국 캬바레의 제비로 사기를 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더불어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로 시작하는 드라마의 주제곡은 ‘서울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각인시켜준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우리나라 인구의 40%가 모여 있으며, 대부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이 서울 위주로 돌아간다. 대학 입시 인구 80만 중에 취학율이 90%대로 가까워지고, 사회 구성원을 이루기 위해서 대학 졸업장이 ‘자격증’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부터 존재하던 대학의 서열화도 기정 사실처럼 굳어져 여전히 서울대학교가 최고로 인정되고, 학력의 서열화도 서울 ‘안’에 있는 대학들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물론 중심지가 생기고, 그 곳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지독히 심화된다면 곪아터지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근대화된 국가의 초등 및 중등 교육은 결국 사회 생산을 담당할 ‘경제인구’ 창출에 쓰이는 국가의 도구이다. 경제인구는 소득과 더불어 국가의 주요 수입원인 세금을 내고, 이런 시스템은 국가를 유지한다. 그렇기에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교육의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에서 ‘교육’이란 것이 이런 용도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대부분이 대학교에 입학하여 고등 교육을 받는 풍토는 중등 교육을 졸업하고 평등한 대우를 원하기도 어렵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자.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러서도 동생에게 당부하는 것은 ‘공부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교육열에 불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문인(文人)’이 우대되는 사회 풍조는 학력으로 인한 국민의 서열화를 만들어냈다. 그나마 과거에는 ‘돈’을 거머쥐는 상인은 비천한 신분으로, 학식을 갖춘 선비는 굶어 죽어도 높은 신분으로 나뉘어졌으나, 이제는 자본주의와 합쳐져 배운 사람이 ‘돈’을 더 벌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지옥같은 입시를 보내고 있다. 서열화된 대학 중 상위 대학을 가야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업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불편하면서도 당연한 구조는 서울 중심의 사회 구조가 맞물려 더욱 굳어졌다.

당장 취업 문화를 살펴보자. 이력서에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기입해야 하고, 학력을 보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회사에서도 대학 성적표를 요구한다. 이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온 사람과, 지방에 있는 대학을 나온 사람도 구별된다. 이는 취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엄연히 사회에 취업할 수 있어야함에도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가 없어 대도시로 나와 취업을 시도해도 몇 십년 동안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직종을 택하려면 ‘대학’을 나와야 한다. 더불어 요즘엔 대도시에도 일자리가 없다. ‘사람’이 많이 몰려드는 서울을 찾아야 비로소 ‘일거리’가 생긴다.

지방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더불어 돈을 쓸 사람도 줄어드는 바람에 경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돈을 벌어 지방에 가 써주지도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돈’이라는 것은 순환되지 않으면 체제 자체가 무너지게되건만, 우리의 ‘돈’은 심장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오지도, 한반도 전체를 돌지도 못한다.

고향이 지방인지라 명절 때 내려가서 지인들을 만나다보면, 지방대를 나와 취업을 못하고 힘들어하는 후배들이 있다.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 설움을 겪고, 졸업하고 나서는 ‘지방대 출신’의 설움을 겪고, 먹고 살려 일자리를 구하자니 ‘지방’에 살고 있다는 설움을 겪는다.

서울 중심의 사회 발전은 주류만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유리하게 만드는 폐악이다. 한 국가의 틀 안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왜 ‘서울’에 들지 못한다고 차별을 받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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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6 12:24 2007/04/1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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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2차과제
2,000자 김성우 作, '돌아가는 배'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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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서전을 쓰는 목적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타인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그 목적의 뒤에 숨어있는 정치적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자서전을 읽는 재미라는 것은 그런 정치적 맥락을 떠나서, 한 사람의 삶에 숨은 가치관과 철학을 들여다 보는 것에 있을 것이다. 김성우의 ‘돌아가는 배’는 그런면에서 볼 때, 완벽하게 흥미로우면서도 차분하게 독자를 이끄는 깔끔함이 배어있는 자서전임엔 틀림이 없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부터 출발하여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나가면서도, 작은 주제거리로 묶어서 재미있게 연결해나가는 구성은 마치 바둑판에 금을 천천히 그어 나가며 종국에 완벽하게 짜맞추어진 얽음의 묘미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제목이 풍기는 ‘돌아가는 배’라는 것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알찰 수 있는가를 느끼게 한다. 모든 배의 출항은 ‘만선’을 꿈꾸며 닻을 끌어 올린다. 자신의 삶이 종극에 달했든, 작은 전환점에 달했든, 돌아오는 배는 그 안에 무언가 자신이 성취하고픈 목표를 담아서 왔으리라. 그렇기에 그 안에 숨은 내면의 알차기를 들여다보는 재미 또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끌어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사회적 계급을 구성하고 자라나는 사람들의 대처법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스스로 속이면서 사회에 적응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을 역이용하여 자본을 긁어모으거나, 계급을 끌어올리면서 체제의 권력자에 한 걸음 다가서기도 한다. 김성우도 마찬가지로 가난한 섬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 사회 깊숙히 자리 잡은 ‘학벌’을 통해 권력의 구심점으로 접근해 간다.

자신의 어릴 적을 묘사하며, 자신이 가진 가치관이 어떻게 구성되어 왔고, 그로 인해 생겨난 부
수적 삶의 태도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들로 점철된 이야기들을 보면서, 어쩌면 자서전은 타인에게 보여주는 자신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나이를 먹을 수록, 체제에 순화될수록 보수화가 이루어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합리화 말이다.

김성우의 아버지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잡혔다가 탈출에 성공하여,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결국 자신의 변론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부여된 수배령을 풀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글에서 묘사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체면’때문에 가난을 해결하지 못했던 일을, 또 다른 ‘미화’로 두둔하는 면에 이르러서는, 절대 아버지를 넘을 수 없는 ‘바다’로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염려스러웠다. 이는 후에 자신의 보수화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했을 거라 생각한다. 자신이 존경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그걸 이어받는 것은 자식으로서 두렵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바뀔 수 있다. 변화하는 것이 사람의 심성이며, 더불어 나이를 먹을수록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지독하게 자신 스스로를 깨어있게 하지 않는 한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자서전이라는 것은 자신이 지켜온 가치와 전통을 타인에게 전달하고픈 보수적 욕심의 결정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자신을 낮추고, 부끄럽게 여기더라도 결국엔 자신이 걸어온 길의 아름다움과, 잠시 옆길로 샌 자신의 청춘이 한때 젊음의 객기로 치부될 수 있는 작은 실수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김성우의 간결하고 함축적인 문체도, 그의 독서로 인한 해박한 지식과, 철학적 명문의 차용도. 분명 자신의 걸어온 길에 엮어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힘보다 더 빛날 순 없었다. 반대로 그런 차용들이 오히려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면서 자신이 정말 하고픈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흐트러진 것처럼 느끼는 것은 문학적 표현과 아름다운 묘사에서 비껴나간 채 성공한 언론인의 이야기로 꺾어지는 글 전체의 매듭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김성우의 얘기처럼, 한 사람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지는 삶이라면. 진정 태어났다고 외칠 수 있으리라. 신문 배달을 첫 직업으로, 그리고 결국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신문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한 사람의 외길 인생을 재미난 구성으로 미분하여 읽고, 적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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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6 12:19 2007/04/1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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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날벼락

새벽에 출근하려 집앞으로 나갔다.

이 뭐 어이가 없는 상황

바이크가 넘어져 있었다.

자는 동안에 넘어진 모양인데 넘어짐과 동시에 경보기 꽤나 울렸을 텐데 아무도 안 돌아봤나보다. 하긴 얘기하면 자기가 그랬는 줄 알까봐 다들 무시했겠지만.

새벽이라 길에 인적도 없고,

더 웃긴 상황은 인도 위에 올려서 세워 둔 - 왜냐하면 우리 동네는 주택법 개정 전에 지어진 원룸 촌이라서 건물마다 주차장 설치 의무가 없어서 밤이 되면 도로가 주차장이 된다. 늘 신기한 거지만 이 차들이 아침만 되면 다 사라진다는 것이며, 이런 차들로 인해서 나는 도로에 주차할 생각조차 못 하고 인도에 올려둬야 한다. - 내 바이크가 그대로 넘어져 남의 차 문 옆에 바짝 붙어 있다는 것이다.

묘했다. 이거 잘못되면 저 차의 파손까지 내가 덤태기 쓰겠다.

그대로 내버려 둔 채, 112에 신고했다.

그랬더니 관할 지구대 전화를 가르쳐 주길래 지구대로 연락했다.

3분만에 출동한 경찰.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촬영을 해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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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깊숙히 세워뒀는데도 넘어지니 길 가에 세워둔 차에 붙어있다. 분명 저 차 흠집 났으리라.

주먹을 불끈 쥔 우리의 경찰!..... 손 시린가보다 ㅡ.ㅡ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골 때린 상황인데.

바이크 도난율이 높긴 하지만 저렇게 덮어두면 도난율이 훨씬 낮아진다. 희까번쩍한 숑카도 저런 암색으로 덮여있으면 애들도 훔칠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더불어

누가 발로차서 넘어뜨릴 공산도 적어진다. 눈에 안 띄니 말이다.

그런데 왜 넘어졌냐고?

잘못 세워 두거나 바람에 넘어간 거 아니냐고?

8개월 넘게 잘 세워두던 자리에 잘못 세웠을리도 없고,

180kg의 무게로 초속 20미터 강풍이 불어도 자연스럽게 공기가 빠져나가는데?

더군다나 바람한 점 없이 맑은 날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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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뭐 누가 술쳐먹고 지나가다 홧김에 발로 찼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더군다나 내가 주차할 시점에는 저 레조가 아닌 갤로퍼였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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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뒤 쪽은 별 문제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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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어퍼 카울과 거울이 개작살 났다.

습하.

이 뭐 경찰에 신고도 안 되고, 범인도 잡을 수 없고.

아침에 저 레조 차량 주인에게 전화를 했는데, 보고 전화 주겠단다.

전화 주셔도 전 뭐 암 것도 못 해주는데 워쩔까나?

암튼 정말 재수 없는 날 되겠심.

이 뭐 또 얼마나 깨지는겨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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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7/04/10 07:59 2007/04/1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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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변해가는 것.

요즘 시간 날 때마다 예전 글들을 재분류 해 넣고, 거기에 달린 코멘트의 링크를 따라가서 다시금 RSS를 등록하면서 재구성하고 있다.

이로 인해 타 블로그를 거의 방문하지 않고 있는데, 게으르기보다는 RSS가 완성되어야 방문에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며 참고 있다.

새벽에 '좌파'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사실 죨라 할 말이 많은 부분인데 2,000 자에 다 때려 넣자니 어설픈 글이 됐다.

좀 더 가벼운 주제를 고르자니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더러운 것' 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정상적인 제출이 어려웠다. 물론 좋게 보려면 끝도 없이 좋게 볼 수 있으나, 내가 하고픈 얘기는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내 블로그 초기의 글을 보면 알겠지만 난 민족주의를 비롯한 우파들의 '사상'에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민족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한국'이라는 죨라 골때린 상황을 하나 둘 벗겨내면서 알아가자, 내가 가진 생각들도 변해가기 시작했다. 자주 써먹는, 유홍준 교수의 '아는 만큼 보인다'의 적용이랄까?

지금은 이름도 까먹은 - 나 이거 졸라 나쁜 버릇인데, 가르쳐 준 교수 이름도 기억 못한다 - 행정학 교수가 '공부'를 왜 하는지 가르쳐 줬는데, 참으로 명쾌하다.

'사람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공부한다.'

체제로부터, 자연으로부터, 공포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공부한다.

정말 내 옛 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참으로 많이 '생각'이 변했구나.

참으로 무식한 글도 숨어있고, 오히려 지금보다 더 리버럴한 글도 숨어있고 말이다.

그런데도 가장 중요한 건.

계속 변해가는 거다.

마치 석공이 돌에 정을 대고 망치로 쳐내듯, 계속 깎아 가며.
뭐가 나올지 모르지만 그렇게 변해간다.

죽기 전에 완성하지 못 하면 어떤가?

가만히 버려진 채 있는 것 보다, 이끼끼며 구석에 쳐박혀 있는 것 보다.

그렇게라도 조금씩, 변해가면서 나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지 않던가?



원칙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변해도 좋지아니한가?

나는 우파다.

우파 일변도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디 서 있는가가 중요한 거다.

앞으로 몇 년 뒤에, 나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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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7/04/02 13:39 2007/04/0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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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좌파에 대한 착각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작문 1차과제
2,000자 '한국, 한국인' 주제 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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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대선에서 좌파정당에 실망한 지지자들의 표가 극좌와 우파쪽으로 분산되는 바람에 좌파 후보가 1차 선거에서 탈락됐다. 결국 2차 선거에서 우파 후보인 시라크와 극우 후보인 장-마리 르펜이 겨루는 상황을 맞았다. 극우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좌파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라크를 지지했다. 결국 80%가 넘는 득표율을 얻으며 우파 대통령이 등장했던 과거다.

이제 다시 대선을 맞아, 프랑스 시민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계급과 정체성에 맞춰 ‘좌, 우’파를 구분하여 정당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도 대선을 곧 맞이하게 되지만, 과연 우리 국민들은 좌우파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기나 할까? 그저 색 바랜 이데올로기로 아는 것은 아닐까?

사실 좌파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엔 너무 방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자신이 지켜야 하는 가치, 그리고 자신이 배격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동반된다. 그런데도, 우리의 언론에서는 '좌우파'라는 단어를 너무나 많이 접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 중, 민주노동당을 ‘좌파’라고 얘기하는 언론이 꽤 있다. 이건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복지 정책을 늘려달라고 주장하면 좌파가 되고, 거기에 ‘친북’이라는 단어를 붙여 ‘친북좌파’라는 어이없는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우리의 비틀어진 언론이기에 더욱 재미있다.

‘친북’이라는 개념은 사실 민족주의의 성격을 나타낸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기에 통일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밑바탕인 친북은 그에 합당한 근거이다. 그런데도 이런 ‘친북’이 ‘좌파’라는 단어와 나란히 쓰이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이데올로기에 무지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민족주의라는 것은 지극히 보수적이면서 우파적인 생각이다. 민족이라는 가치를 지켜내야 하는 우파의 스펙트럼이며, 이는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런 ‘민족주의’가 ‘좌파’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기 시작했을까?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는 스스로 ‘민족주의’를 이용해서 외세에 대항하였다. 항일운동의 근간에는 ‘민족주의’가 있었으며, 이는 곧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고픈 ‘진보’의 삶도 묻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상황은 ‘민족주의’계열의 지식인과 ‘사회주의’계열의 지식인이 ‘독립’을 위해서 한데 뭉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진보적인 삶을 이끌어내는 데는 우파나 좌파나 가릴 것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서구의 천재 지식인 중 사회주의자였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걱정이 바로 이것이었다. 식민지배로 인해서 사회주의보다 민족주의가 먼저 각 국가에 퍼져나간다는 예견을 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예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광복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졌다거나, 이승만의 북진 통일이 성취되어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완성되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체성의 혼동은 겪지 않고 있으리라. 식민지배를 당했던 하나의 민족이 둘로 나뉘어져 완전히 다른 체제의 국가를 세우고, 서로를 적으로 규명한 시대의 아픔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기본적 정체성마저도 혼동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반공주의와 자유 민주주의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는 구세대와 그를 이용해 정략적 흔들기를 일삼는 언론의 시너지 효과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악랄하게 작용한다. 지성인이라 불리는 대학생들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도 구분하지 못하며, 이런 색안경을 만들어낸 정치인들과 언론은 한술 더 떠 자신들의 정략에 이용한다.

민족주의와 사회 민주주의가 더불어 공존하는 정당이 좌파로 불리고, 시장경제체제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독점을 눈 감아주려는 정당이 우파로 불리는 나라.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니던가?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의 미덕이 교과서에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단어로 묘사되는 교육은 잘못된 것이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더더욱 좌파와 우파의 정책적 대결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우파 일변도의 교육을 펼치고 있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이는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권력 자체가 자본과 닿아있는 기득권층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일제 강점기의 숱한 ‘사회주의 세력들’이 ‘신경향파’, ‘계급주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는 단어들로 완곡하게 표현된 역사 교과서를 살펴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좌파’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교육해왔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제는 좌파들 스스로도,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도, ‘좌파’라는 단어나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움찔 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 ‘공화국’의 시민들이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도, 구분도 못한다면 획일화된 체제 속에서 살던 봉건 시민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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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2 00:53 2007/04/0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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