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인생의 판도

생일인데 전화할 여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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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7/03/25 21:35 2007/03/2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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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로 인한 몇 가지 편견

Vex 횽이 새 바이크를 구입했다. 타고 있던 세라토를 팔고 샀으니, 어떤 사람들 -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 - 이 미쳤다고 얘기하겠지만.

뭐 어쨌든 상암 CGV에서 만나 영화 '300'을 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음 같아선 남산 한번 올라가서 타워 배경으로 찍었어야겠지만. 워낙 추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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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 야마하 페이저. 바이크 주제에 브레이크에 ABS 달았단다 ㅡ.ㅡ DarthVex 이미지 답게 블랙으로 완전무장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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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 가격이 거의 세 배 차이가 나니 내 GT250R이랑은 뽀대가 다르다 ㅡ.ㅡ 역시 돈이 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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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LCD는 싸(?)보이는 파란 빛인데, 비싼 바이크는 LCD도 색이 다르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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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라이더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하며.

길들이기 잘하시오.



며칠 전 신문에도 나왔던데, 이륜자동차는 사고도 많이 나고, 사망율도 높다는.

사실 이륜자동차가 위험한 것은 맞다. 4바퀴보다 2바퀴가 불안정한 건 당연한 거고, 고속 주행에서도 미세한 충격 하나만 이어져도 달나라로 가는 건 맞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건 대부분 편견이다.

첫째. 이륜자동차도 물리의 법칙에서 어긋나지 못한다. 타이어로 인한 접지력이 약해지면 넘어지는 건 당연한 거고, 대부분의 그런 상황은 노면에서 온다. 시내 도로주행의 경우 대부분의 맨홀 뚜껑이 차선의 중앙에 놓여있다. 이건 완전히 4륜 자동차 중심의 설계인데 오히려 웃긴 것은, 4륜차는 네 바퀴 중 한 바퀴가 살짝 얼거나 젖어 있는 맨홀 뚜껑에 걸쳐져도 운전에 무리가 없으나, 이륜자동차는 그 뚜껑 위에 한 바퀴만 걸쳐져도 바로 넘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복공판 - 보통 서울 시내 지하철 공사할 때 도로 위에 까는 철판 - 위에서는 완전 살얼음 걷는 기분으로 달려야 하는데, 여기서는 4륜차나 2륜차나 위험하긴 똑같다. 오히려 이륜차가 가벼워서 살얼음이 얼었을 때는 4륜차보다 사고율이 낮다.

그런데도 여전히. 타이어의 접지력만 확보된다면 이륜차가 굽이진 길을 돌기 위해서 몸체를 아무리 옆으로 뉘여도. 왠만해서는 넘어지지 않는다.


둘째. 사망률이 높은 건 순전히 법 때문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안전불감증' 운운하는데, 상식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으나, 이건 정말 웃기는 소리다.

시내에 다니는 이륜자동차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헬멧을 안 쓰고 다니는 운행자는 '애들'과 좀 '커다란' 이륜차를 타고 다니시는 '어른'들로 구분된다. - 이 냥반들은 자동차 몰듯이 이륜차를 몰아서 끼어들기나 뭐 이런 걸로 사고가 생기긴 어렵다. 반면 이 분들이 사망 사고로 이어지는 건 대부분 정면 충돌이며, 대부분 4륜차의 불법 유턴으로 인해 생긴다. - 이 중 교복 입고 돌아다니는 고삐리들의 이륜차는 십중 팔구 도난 차량일 거라는데 내 월급을 걸어도 좋다. - 아는 형을 통해 구입했든, 주웠든 -

문제는 이런 애들 못 잡는 게 우리 '나약하신 짭새 나으리들'이다. 그물쳐서라도 잡으면 과잉진압이라며 나댈 거고, 이거 맘먹고 잡자니 한도 끝도 없고.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풀 페이스 헬멧 - 위의 사진에 나온 머리 전체를 가리는 헬멧 - 을 쓰면 경추까지 보호가 되기 때문에 전신마비와 사망은 막을 수 있다.


현행 법률에 의하면 50cc 미만은 차량을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등록'이라는 것은 관에 등록하여 '번호판'을 교부받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등록'을 한 차량은 '책임보험'에 가입하게 되어서 사고가 나더라도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보상이 의무적으로 지급된다.

그런데 요즘 부는 스쿠터 열풍에서 바로 이 '등록'은 제외가 된다. 패션 바이크라면서 일제 번호판을 달고 돌아다니는 그런 이륜자동차들은 의무적으로 '등록'할 필요가 없다. 이거 뒤집어서 얘기하면 이런 차량이 사람을 치거나 차량을 쳐도 가해자가 배째거나, 뺑소니를 내고 도망가도 잡을 길이 없다는 점이며, 보상 따윈 물 건너간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느슨한 법의 이유는 50cc 미만의 이륜자동차가 낼 수 있는 최속이 60~70km/h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하나 죽이기엔 충분한 속도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점잖게 이륜자동차를 즐기는 사람, 생업으로 이륜자동차를 모는 사람, 겁도 없이 이륜자동차를 모는 사람.

역시 '이륜차'가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다.

법의 사각을 피해서 교묘하게 노는 것은 한편으론 현명하나, 한편으론 비겁한 거다.


심지어 이륜자동차 운전하는 사람들은 사륜차와 더불어 보행자들의 경멸을 받으면서 운전을 하게 된다.

끼어들기, 인도 주행, 소음.


이런 편견 속에서 나도 이륜차를 몰면서 생긴 편견이 있다.

사륜차를 모는 사람들 중에서 '여성 운전자'가 운전을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성격 급한 사람이다. 일반 도로에서 '급주행'을 즐기는 사람일 거라는 이야기다.

여성들의 공간 감각력이 어떻든 간에 대부분의 여성 운전자들이 욕을 먹게되는 이유는 '느리거나 애매한 차선 변경'과 차간 거리와 속도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끼어드는' 모습이다.

더 웃긴 건 그런 일이 '사고'를 불러 내려면 아마 대부분 시속 70km/h를 초과한 채로 주행하는 중이어야 할 거다. 이건 분명히 시내 도로 주행 규정 속도 위반이다.

이륜자동차 운행 중엔 운전자가 누구인지 보기가 훨씬 쉬운데, 여성 운전자들은 규정 잘 지켜가며 차분하게 운전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 하다.


사실 개념없이 끼어드는 건 공간 감각력 문제라기보다 자신의 차가 가진 '성능'에 대한 자만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대부분의 화가 치밀어 오르는 끼어들기는 십중팔구 '외제차'다. 이는 외제차 모는 사람들 - 요즘 뭐 연봉만 좀 되면 몰기 때문에 계급 문제는 차치하고 - 이 자신의 차에 대한 성능을 과신하고, 이륜차를 무시하는 행동일 수 밖에 없다.

싸구려인 내 바이크도 100km/h까지 가속하는데 3~4초면 된다.

순발력은 1억짜리 차 아니면 못 따라온다.

그런데 몇 천만원짜리 차가 깝죽대며 끼어들면, 비웃어 주기 전에 내 목숨이 위태롭다.


어쨌든.

이륜차 운전자들의 나태함은 강한 법으로 좀 다스렸으면,
대신에 이륜차 운전자가 약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도로 상황 좀 개선해 줬으면,
그래서 '보행자'든 '사륜차 운전자'든, '이륜차 운전자'든 걱정 좀 덜하고 살았으면.

기상청 믿고 새벽에 바이크로 출근했다가

비에 젖은 노면을 설설 기어 다녀야 하는 불쌍한 바이크 라이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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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7/03/21 14:09 2007/03/2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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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패러디한 '힐러리 1984' 광고



요즘 몇 군데 애플 관련 사이트에서 애플의 20주년 광고를 패러디한 정치 광고가 올라왔다. 물론 이 영상은 3월 5일에 이미 미국에 퍼져나간 것이지만. 그 글들의 코멘트를 보면서 사람들이 몇 가지 오해하는 것도 있고 해서 저런 광고가 왜 나왔는지 썰을 풀어볼까 한다.

1984년은 애플이 '매킨토시'를 발표한 해이며, 동시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었고, 부통령은 1989년 레이건의 뒤를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되고 걸프전을 이끌어 낸 조지 H. W. 부시였다.

각설하고.

1984년이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를 갖는다. 당시 애플의 광고를 감독한 사람은 '리들리 스콧'감독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를 까부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의 영상이 패러디라는 이유로 마치 힐러리가 빅 브라더인 것처럼 묘사하며 네거티브 전술이다 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마지막에 1984년을 기억하라는 의미는 미국의 1984년 대선을 들여다봐야 하는 거다.

공화당의 레이건 재선을 막기 위해 민주당에서는, 월터 몬데일이라는 인물이 대통령 후보로 등장했는데, 정치에 등장하기 전에 영화배우로까지 활동한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의 '여심(女心)' 또한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기 위해 부통령 후보로 제랄딘 페라로라는 여성을 지목한다.

결과는 민주당의 개박살로 이어졌다.

이 선거 후 연구에 의해 '여성 유권자'중 다수가 '여성 후보'를 찍지는 않는다는 점도 발표되면서 그 후로는 미국에서 대통령, 부통령 후보에 여성 후보는 아직까지 발도 디민 적이 없다.

오바마 측 - 지지자든 뭐든 간에 - 에서 이런 패러디 광고를 UCC로 올린 이유는 바로 이거다. 공화당에 승리하면서, 여성표까지 얻겠다는 심산으로 민주당이 '힐러리'를 택하는 것은 1984년의 재현이 된다는 이야기를 던지는 거다.

그러나.

과연 그게 1984년의 재현이 될지, 암울했던 민주당의 화려한 부활이 될지는 뚜껑이 열려봐야 아는 거고.

이 광고를 통해서 우리 대선도 한번 돌아봐야 한다.

박근혜의 등장을 통해서 '우리도 여성 대통령 한 번 나와야 하지 않느냐'라는 '요상한 남녀평등주의'부터 시작해서, 심장정 의원과 한명숙 전 총리도 가세를 하는 '야릇한 삼파전'이 이루어질듯도 하다.

뭐 판도는 더 재미나겠지만.

뭐 어쨌든, UCC 때문에 정치 패러디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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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1 11:28 2007/03/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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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고독에 관하여


새벽에 출근하다가 잠시 바이크를 도로에 세우고,
새벽을 즐긴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노래를 듣는다.



며칠 전 회사에서, 김광석 콘서트 영상을 다운로드 받다가 사장님과 같이 앉아 보면서.

김광석의 '그날들'이 흘러 나오는 동안. 그렇게 '공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슬픈 노래가 또 어디 있을런가?

여자들은 이런 노래를 목놓아 부르면서 울어볼 수 있을까?


김광석을 못 잊는 것은.
그 짙게 배어나오는 고독의 목소리 속에서.
죽음을 잊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독하게 고독해서.
그래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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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7/03/20 04:49 2007/03/20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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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공감과 감동, 낯섦에 관하여

2007 학년도 1학기
현대 문학의 이해 과제.

이런 류의 과제는 처음이라서 글을 쓰기도 참 뭐해서 억지로 글을 써내려간 전형.

어떤 주제를 가지고 비교하는 글도 아닌채, 그냥 좋아하는 시 하나와, 이해가 가지 않는 시 하나를 뽑아 두 개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데, 각각 따로 쓰기도 그렇거니와 - A4 5장에 두 편 모두 쓸 것 - 시인 하나를 정하는 것도 아니고, 더불어 1주일만에 그 수 많은 현대 시 중에 골라내야 하는 뻘짓을 하게 되다니. 이건 좀 억지다 싶음.

더군다나 나는 영화든 뭐든 '칭찬하기'는 잘해도 '비평이나 비판하기' 따위는 질색인데 이해 안 가는 시를 가지고 난도질을 하라 하니 이거 영 어색해서 글을 못 쓰겠음 ㅡ.ㅡ

암튼 이런 과제는 정말 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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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의 ‘가난한 사랑의 노래’와
류시화의 ‘거리에서’

유홍준 교수가 얘기했던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 그 말은 어쩌면 대부분의 예술에 걸맞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저 캔버스에 칠해진 물감의 거친 표면을 볼 수 있는 사람과 그 안에 담긴 구도, 작가의 내면을 통찰하는 능력은 어쩌면 ‘지식’에 달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굳이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지식을 늘려나가야 한다면, 그건 이미 대중과 격리된 예술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어쩌면 이는 못 가진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 자괴감 섞인 읊조림일지도 모른다.

시가 주는 매력은 그런 ‘지식’의 한계를 뭉그러뜨리는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포장마차를 경영하는 아주머니의 시를 읽으면서 기쁘고, 벅차고, 슬픈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시작(詩作)이 결코 어렵고 까다로운 형식에 얽매여 옥죄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런 시의 느낌이 주는 감상. 그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결국 자신이 가진 경험에서 오는 게 아닐까? 직접적인 경험과 간접적인 경험, 그 모두를 아우르는 ‘공통의 인식’이라는 틀 말이다.

류시화의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 실린 ‘거리에서’라는 시를 살펴보자.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모두가 타인인 곳에서
 지하도 난간 옆에 새처럼 쭈그리고 앉아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아무도 그 남자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한 세기가 저물고
 한 세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모두가 타인일 수밖에 없는 곳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신이 눈을 만들고 인간이 눈물을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나는 다만 그에게
 무언의 말을 전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눈물이라고


이 시를 읽으면서 같이 고개를 주억거리기에는 너무 불편한 감이 있다. 일단 우리 사회에서는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는 상황은 드라마에서조차 보기 어렵다. 사회가 그리는 남성상 또한 그렇거니와 남자의 눈물이 ‘짠’ 상식은 극히 경험키 어려운 낯섦을 선사한다.

더불어 둘째 연의 ‘한 세기가 저물고 한 세기가 시작되는 곳에서’라는 시간적 배경은 더욱더 의문시된다. 과연 화자가 무엇을 말하기 위해 이를 집어 넣었는지 알 길이 없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밀레니엄 시대의 혼돈과 IMF의 광기를 겹쳐 구조조정과 실업에 비친 우리들의 남성들로 대변되는 가장상을 그리려 했다고 억지로 이해해 주기도 뭣하다. 차라리 저 한스밴드라는 소녀들이 부른 ‘오락실’이라는 노래가 더 나은 그 시대의 가장을 묘사하지 않았던가?

이어서 신이 ‘눈’을 만들고, 인간이 ‘눈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뜬금없게도, 평등한 사회에 주어진 ‘종족 내부의 경쟁’을 비꼬는 투라면 차라리 성공했을지언정.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으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가 없게 만들어버렸다. 문장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유추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벌어진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마지막 연에 와서는 상투적인 표현과 더불어 어색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무언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 몸짓도 손짓도 아닌 ‘말’을 사용하는 이 화자의 배반적 행위와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눈물이라는 일방적인 선언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모든 ‘타인’이 지켜보는 거리 한 가운데서 눈물을 흘렸기에 가장 강한 것인가? 사회적 통념을 깨고 덤벼들어 ‘남자’가 거리에서 ‘눈물’을 보였다는 것이 그토록 위로 받고, 격려 받아야 할 일이던가?

얼마나 울음이 급해서, 얼마나 억울하고 비통해서. 지나가던 도중에 거리에 주저 앉아서 울었겠는가? 그 누구도 그 눈물의 의미와 ‘왜’ 울어야만 하는 줄을 모르지만, 관찰자로서는 그 심정 충분히 짐작할 수는 있으리라. 그러면서도 그 내면적 갈등에 위로를 한답시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눈물이다’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