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슬픈 우파

경고. 이 글은 "씨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등의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정신건강을 해치는 내용일 수 있으며,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한국기독교계와 더불어 기득권 세력의 앞잡이가 되고 있는 블로거들의 글을 마냥 칭송하는 자들의 기분을 더럽힐 수 있음.

난 노빠다.

광진구 노사모에 가입은 했으나 개입은 안 하고 있다. - 탄핵 당시 난 광진구 주민이었다 -

황석영 선생이 이런 얘기를 했다. '합리적 보수'가 늘어나는 사회라고.

합리적 보수가 늘기는 커녕, 수구세력만 늘어간다.

FTA. 이거 시기랑 협상. 중요하다. 그런데도 일본이나 중국보다 먼저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 애들 농민들 살려야 한다고 뛰쳐 나가는데, 그 뛰쳐나가는 애들도 학점 관리에다가, 좀 더 나은 직장 얻으려고 되지도 않는 영어 싸들고 공부해야한다고 절규하는 거 보면, 안쓰럽다. 1, 2학년 때, 데모 좀 경험해 보는 게 다른 애들보다 머리가 조금 더 굵어지는 걸지, 자기기만 하는 것만 더 배우는 걸지는 모른다.

툭 까놓고 얘기해서. 지금 농사짓는 농민들 다 돌아가신뒤에, 특별히 소득 높은 작물 제외하고. 누가 농사 지을 건가?

100분 토론 보면, 노무현 대통령 말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도 배려가 묻어난다. '수렴'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다시 쉬운 말로 표현하고, 몸살 기운이 가시지 않았을 텐데도 꽤나 명쾌한 면모를 보인다.

씨바, 전대 미문의 '고졸'에 똑똑한 대통령을 뽑아 놓고도 열받는 이유는 결국 그 새끼들 때문인데 말이다.



내가 우파인 건 지금의 대통령이 하나하나 행하는 일이 '한 걸음 진보'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고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 사회로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좌파는 그런 대통령의 행보가 너무 더뎌서 화가 나는 것이고.

뭐 어쨌건 시끄러운 5년을 보낼 거라 스스로 인정한 대통령이니까.



껀수 건질 건 많다, 시위장에서 사람 머리가 터져 나가고, 누구는 죽고, 인권은 유린되고. 정부를 비난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다.

100분 토론을 보면서, 한 경찰관이 희망의 한 마디를 부탁해도 미안하다는 말 밖에 못하는 '우파' 대통령을 보면서, 눈물이 자꾸 나는 건.

'뉴 라이트'라는 것들이 보수 우파인 냥 꼴깝치는 우리나라에 내가 살고 있음이며,

그런 나라에 짐을 지고 가는 대통령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그렇게 사라져 가는 데 그저 힘내라고 말 밖에 할 수 없는 내가 슬픔이다.



지랄을 해댈 좌파도 못 되고, 미친척 하는 수구도 못 되는.

그저 그런 우파라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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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6/09/29 02:15 2006/09/29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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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다.

물론 보통 때와 동일하게 잤기 때문이고, 그 얘기는 결국 두 시간 잤다는 얘기.

번역일도 닥달이지만, 맡은 회사 프로젝트 일정도 PT해야 하니 미리 하던 일을 마무리 짓자는 의도로 잠을 줄인 건데, 예상보다 일이 빨리 끝나진 않는다.

아침 7시의 종로는 오후 3시의 종로보다 훨씬 한산했다. 그래도 출근길로는 영 맞지 않는다. 아차 등하교 길이구나.

집에서 학교로 갈때는 서울 예고 언냐들의 어여쁜 교복 스타일도 감상할 수 있건만. 종로바닥은 도무지 삭막하기만 하니.

역시 북악터널 길이 좋다.

공기 좋고, 한산하고.

성격 때문에 회사 홈페이지 코딩은 내가 했으면 좋겠는데, 하청을 줘야 하니 좀 찝찝하다. 유지 보수를 내가 하게 될 거라면 정식으로 만드는 게 좋은데.

바이크를 조심히 타라는 경고는 사실 바이크 라이더에게 필요한 게 아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바이크로 순찰도는 경찰 아찌들 봐라. 겨울에 가죽 옷 입는 거 제외하고 보호 장구 차는 것 봤나?

모든 차량 운전자는 짭새만 보면 쫄아서 운전 제대로 한다. 시박 그럼 바이크라고 다른 거 없잖아. 운전자들이 서로 조심만 하면 되는데 서로 개무시하는 거잖아.

뭐 그러해서 결국 학교 근처 PC방에 와서 캡춰한 영상을 업로드하는 시간이 아까운 거다.

이럴땐 죠낸 폭주 뛰어 줘야 한다.

규정속도 폭주 뛰기 신공을 펼칠 그날을 위하야.

p.s 남부순환로, 노들길 이륜차 운행 허가를 넘어서서 고속도로 바이크 운행권 쟁취를 죠낸 지지하며.

p.s 이런 두서 없는 글은 다들 읽기 어떠심? 맴에 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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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6/09/26 08:01 2006/09/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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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단평 – 이창태 CP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면, 창조라는 것은 그저 발견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창조라는 것이 내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공개되고 인정을 받으려면 대중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조라는 것은 그 누구의 이해도 얻지 못할 것이다. 대중성이라는 것이 상식과 이해, 기호, 가치관등이 공통분모로 작용되어 작용될 텐데 공감할 수 없는 정서나 혼자만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도배가 된다면 아무리 창의적인 컨텐츠가 도출된다 하더라도 각광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방송이란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꾸밈없이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공감과 함께 부드러운 감정 이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 물론 세트를 꾸미고, 연기를 꾸미고 하는 것이 기본 바탕이 된다 할지라도 세트가 컨텐츠에 어울리고, 연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은 보는 이들에게 얼마나 편안하고 재미남을 선사하던가?

사실 지루한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송보다도 작가가 구성하여 내러티브를 이끌어내는 능력에 사람들이 더 잘 공감할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꾸밈이고 우리의 일상과 상당히 다른, 작가적 상상력이나 연출가의 사상과 맞닿아 있음이 분명하다. 여기서 문제는 작가나 PD가 보여주기 위해 추구하는 방향이 대중성과 얼마나 맞아떨어져 있는 가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중성이란 것은 유희를 추구하는, 자극을 추구하는 대중을 말함이 아니라 뜬금없는 이야기에 분노하기 보다,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에 흥미를 돋우며 빠져드는 대중을 말한다.

방송이란 것은 제한된 시간 안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창의적이라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한 영화의 시작점에서 단 1분간의 영상편집으로 이야기의 프롤로그를 가볍게 관객에게 마스터하는 감독이 뛰어난 찬사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창의적인 구성을 써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 하느냐. 바로 거기에 크리에이티브가 있고, 대중성을 포함한 사회를 이해하는 힘도 들어있다.

문제는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편향성이다. 자본에 종속된 이미지는 대중을 편향되게 만들 수 있고, 오히려 신선한 이야기를 원하는 대중에게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한 이야기 속에서 그저 새로운 각도의 이미지적 접근만을 통해 현상을 유지하려 한다.

창의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 창의적인 것이 대중과 가볍게 만난다면. 그것은 사회가 추구하는 공통선에 부합하여야 하는 것은 일견 올바른 시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공통선’의 시각마저 가릴 수 있는 ‘창의적 이미지’들이 방송을 가득 메운다면 칼과 방패까지 빼앗겨 버린 대중에게 다가 설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매스미디어 사회에서도 책을 놓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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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수업 시작 1시간 전에 날림으로 쓰는....

그나저나 큰일입니다. 좀 독특한 학생이다 보니 경영학이랑 신문방송 복수전공하는데, 인사하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도무지 알아보기 어렵다는 ㅡ.,ㅡ

쩝. 오빠도 아닌 것이, 아저씨도 아닌 것이, 교수도 아닌 것이, 조교도 아닌 것이, 대학원생도 아닌 것이..... 커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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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6/09/25 11:08 2006/09/2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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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유감

현대사회와 미디어 시간에 최근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침묵의 나선 이론 - 다수의 의견이 횡포를 부리기 시작하면 소수 의견자들이 침묵을 지키며 끝없는 나선의 계곡으로 소멸되어져 간다는, 한마디로 소수 의견 자체 삭제 모드 - 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최근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자 하는 의도로 생각되었는데, 작통권 이야기가 나왔다.

작통권 환수에 대한 찬성 의견과 반대 의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과연 어느 쪽이 '다수의 의견'인가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여기서 극명하게 갈려버렸다.

나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TV와 한겨례신문에서 본 '환수 찬성'이 과반수라는 이야기였고, 거의 80%가 넘는 학생들이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서 봤다고 주장하는 '환수 반대'가 과반수라는 이야기였다.

우선 작통권에 '작'자라도 아는 학생들인지 슬펐고,

조, 중, 동을 보고 있으며 그들의 주장에 자기 가치관을 덧붙인 게 슬펐고,

그런 학생들에 둘러싸여, 스스로 침묵의 나선에 빠지는 교수가 슬펐다.

교수가 한겨례 신문의 존재 의의와, 존재 가치에 대해 얼버무리면서 80%가 넘는 학생들이 '쓰레기 조중동'이 아닌 '제대로 된 주류 언론'을 보고 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안쓰러웠다.

한국의 르몽드를 꿈꾸며, 국민 주주를 모아 창간된 한겨례가, 민주주의 사회의 한 강의실에서 그저 좌파적 색깔을 가진 비주류들의 도떼기 시장 매체로 전락되는 듯한 뉘앙스에 슬프다.

민족이 어떻고, 통일이 어떻고, 반미가 어떻고, 반북이 어떻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민주공화'국에서 윌슨의 민족 자결 주의를 제창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총칼들고 나가서 싸우더라도 내 나라 국민들이 뽑은 지도자의 명령을 받아 나가 싸워야 하는 것이고, 이미 대북 군사력 우위를 넘어선지가 언제인데 언제까지 비리로 돈을 쳐먹는 노친네들의 잇속을 챙겨주기 위해 미국에 국방을 휘둘려야 한단 말인가.

암만 생각해도 조중동은 뿌리를 뽑아야 한다. 언론방송학부 애들 수준이 이 정도면, 그리고 얘네가 조중동으로 들어가면.

결코 바뀌지 않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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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6/09/18 13:14 2006/09/1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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