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연애조작단

사람은 연애할 때 외로움을 더 타는 것 같아. 그냥 혼자일 때는 추억을 하든 딴 짓거리를 하든 괜찮지만 연애할 때는 바로 옆에만 없으면 외로워지잖아? – 나는 누가 옆에 있어도 누가 그립다.

나름 김현석 감독의 전작들 – 임창정 나왔던 스카우트, 봉태규와 김아중이 나왔던 광식이 동생 광태 – 을 무척 재미나게 봤기 때문에 은근 기대를 했고, 나름 만족할만한 구성에 기꺼이 즐기다 나왔다. 요소요소들의 배치가 적절했고, 주로 어설프게 연기해야만 하는 상황은 도리어 더욱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도 가져왔다. 사실 ‘시라노’라는 연극이 어쨌든 영화가 어쨌든 별 관심은 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어떤 남자를 위해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상황이 내게는 별로 슬픈 일도 아니 거니와 – 아니 우리는 얼마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질리도록 봐 왔던가! – 모티브로서의 역할도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진 않는다. 그저 이런 설정과 상황이 가져다 주는 코믹함을 넘어서서 연애에 있어 ‘믿음’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던져주는 허황된 관계가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지 곱씹어 볼 수 있다.

  1. 송새벽의 고백 Scene
    개인적으로 여주인공 두 사람 – 이민정과 박신혜 – 보다 훨씬 내 취향에 가까운 건 류현경인데 송새벽이 류현경에게 반해 고백을 준비하는 모습은 시종일관 낄낄거리도록 만든다. 시라노 에이전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빠른 템포로 설명하기 위해 송새벽의 고백 성공 스토리를 구성해서 보여줌에도 그 특유의 ‘금강 이남’ 사투리와 뻔뻔하고도 웃지 않는 눈매의 ‘추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유쾌함을 잃을 수 없게 만든다. 아 이 사람 ‘방자전’부터 시작해서 너무 매력적이다.
  2. 조개탕 Scene
    이 영화에 엄태웅과 이민정이 조개탕을 앞에 둔 장면이 대략 3회 정도 나온다. 왜 하필 조개탕인지 정말 김현석 감독에게 묻고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등장하는데 – 심지어 이민정의 트라우마다 –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난 ‘이들이 조개탕을 먹은 이유’를 모르겠다. 아 영화 보고 나서 유일하게 찝찝한 부분. – 개인적으로 조개를 안 먹는다. -
  3. 체 게바라 복장 Scene
    최다니엘이 교회에서 체 게바라 복장을 입고 등장하는 순간부터 난 포복절도하기 시작했는데, 권위주의의 상징인 교회의 목사가 통렬히 무너지는 그 광경은 배꼽빠질 정도로 즐거웠다. 물론 체 게바라 복장은 잊지 않고 마지막에 박철민이 한 번 더 입고 등장해 준다.
  4. 엄태웅의 정의의 기사 Scene
    영화를 보고 나서 궁금하던 복장 중 하나였는데, 분명 그렇게 고글을 끼고, 복면을 한 일본 만화 캐릭터를 본적이 있는 것 같은 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일본 노래 ‘On Your Mark’의 뮤직비디오 주인공들 같기도 하고, 뭔가 이어지는 게 있으면 더욱 즐거웠을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아는 부분에서 더 넓힐 수가 없어 못내 아쉽다.

캐스팅이 빛을 발한 부분이 있다면 아마 권해효가 아닐까 하는데 – 특별 출연으로 나와주시다니 – 대사를 아마 애드립으로 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웃겨서 좋다. 더불어 이민정은 그 묘한 ‘섹시미’를 통해서 관객들의 ‘오해’ – 라고 쓰고 아마 이건 설정보다는 경험의 문제지 싶은데 상당수의 관객이 영화 시작부터 그 누구도 이민정이 ‘잘못’했을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지 않았을 거라 생각된다. 심지어 이민정이 벗고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에서 조차도 ‘에이 옷은 저래도 그랬을 리 없어’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 를 불러일으킬만한 캐스팅이었는데도 순수한 이미지를 벗어내지는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쉽다. 적당히 놀아본,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자중성은 있는 뭐 그런 여성 캐릭터로 안성 맞춤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반면 박신혜는 너무 ‘상큼’해서 아까웠다. 마지막 고백 장면에서는 눈이 부시도록 예쁘게 나왔건만, 예쁘기만 하고, 상큼하기만 할 뿐. 흠 역시 좀 더 나이가 들면 꽤 멋들어진 배우가 되려나?

하나 궁금한 건. 만약 술 취해서 김지영이랑 엄태웅이 잤으면 영화가 어떻게 돌아갔을까? 왠지 그게 훨씬 리얼했을 것 같은 데 말이지.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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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sponses to 시라노; 연애조작단

  1. 화니 says:

    조개탕은 감독의 경험에서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 감독의 트라우마일가요? 영화 전체에 녹아들지 못했기에 좀 어색했습니다.

  2. 개살구 says:

    어제 이 영화를 봤는데요. 별로 기대를 안했던 로멘틱 코메디 영화 치고는 기대 이상으로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디테일도 훌륭했고 이런류의 영화는 뻔할거라는 편견을 깨고 시나리오도 참신했구요. 무엇보다도 배우들이 배역에 맡는 연기를 해준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연기변신(?)을 시도한 김지영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ㅎㅎ
    아, 그리고 맨처음에 나왔던 커피전문점 알바가 류현경이었군요. 영화를 볼때부터 내내 어디서 많이 봤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났는데.. 그러고보니 송새벽과 류현경은 방자전이후에 같은 영화에 또다시 출연했네요. ㅎ
    암튼 좋은 리뷰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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